간절한 소망을 이뤄주는 별꽃
 -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2)] 꽃 이름을 부르면 시가 됩니다
     김민수(dach) 기자   
▲ 2006년 3월 17일-서울 송파구
ⓒ 김민수
밤하늘 총총히 박혀있는 보석 같은 별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그 별을 바라보다 별똥별 떨어지면 마음 속으로 소원을 빌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 아련한 추억, 우리의 아이들도 그런 추억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할 텐데 학원과 학교만 오가며 공부하는 기계, 엄마와 아빠의 꿈, 혹은 희망을 위해 하늘 바라볼 틈도 없이 살아가네요. 아니, 하늘을 바라보아도 희뿌연 서울의 하늘은 별을 보여주지도 않네요.

별꽃, 그도 꽃다지만큼이나 흔하디 흔한 꽃입니다.

어디에나 피는 꽃입니다. 서울 하늘, 척박한 땅에서 피어날 뿐만 아니라 식물도감에 의하면 '범세계적으로 분포한다'(<한국의 야생식물>, 일진사)고 하니 그 생명력이 가히 놀랍습니다.

ⓒ 김민수
저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별꽃이니까 '범세계적으로' 분포해야 하는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어느 땅 어느 하늘, 별이 없는 곳은 없으니까요. 해와 달과 별, 하늘에 걸린 별들 중에서 땅으로 떨어져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별뿐이었나 봅니다. 작은 별똥별 떨어질 때 그 짧은 순간에 맞춰 소원을 빌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언 땅을 녹이며 오는 봄의 길목, 양지바른 언덕에 하얗게 피어나는가 봅니다.

간절한 소망, 너무도 간절한 소망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소망한다는 것 자체, 그것이 사실은 희망이죠. 소망한다는 것은 절망하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니까요.

흙이 있는 곳 어디나 살펴보면 서울 하늘에서도 만날 수 있는 꽃이 별꽃입니다. 때론 버려진 화분에서도 자라는 꽃입니다. 하늘에 달아놓은 별, 땅에 심겨진 별 모두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겠지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며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줄 별꽃을 찾아보는 일이 우리 아이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지면 어떨까요?

ⓒ 김민수
저 남녘 땅 제주에서는 별꽃을 한겨울에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양지바른 곳이면 한겨울에도 작은 꽃을 하나 둘 피워 보는 이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러다 잠시 따스한 날씨가 며칠만 이어지면 온통 하얀 꽃밭이 되어 햇살에 꽃잎을 활짝 엽니다. 그들이 한창일 무렵이면 어디 가나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어 아무리 계절의 오고 감에 무심한 사람이라도 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서울 하늘에서는 이제 막 그들의 기지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서울에도 곧 봄꽃이 지천으로 피어난다는 이야기겠지요. 이제 막 진달래도 하나 둘 피어나고 개나리도 노랗게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소망을 담아 그들보다 조금 일찍 피어나는 별꽃, 간절한 소망을 이뤄주는 별꽃을 만나 행복합니다.

▲ 2004년 11월 24일 -제주
ⓒ 김민수
별꽃의 종류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 꽃의 이름들을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은 꽃 이름만 불러주어도 아름다운 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되고 싶으신가요? 우리 꽃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냥 이름 없는 꽃, 잡초라고 하지 말고 이름을 불러주면 그것이 아름다운 시가 되니까요.

개별꽃 큰개별꽃 가는잎개별꽃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숲개별꽃 쇠별꽃 왕별꽃
아무리 왕별꽃이라도 별꽃은 작다
별꽃 뚜껑별꽃 실별꽃
작아도 별이듯이 작아도 꽃이다
보라별꽃 덩굴별꽃 별꽃아재비
이름만 불러줘도 시가 되는 꽃

자작시-별꽃


ⓒ 김민수
서울에 온 이후 전국각처에 보고 싶은 야생화들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들이 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그래도 인내하는 것은 언젠가는 그들에 대한 노래도 해야겠지만 야생의 꽃이 그리 많지 않은 서울 하늘 아래 피어났다 이내 질 꽃들, 그들부터 부지런히 만나야 할 것 같아 서울을 달팽이 걸음으로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나고 싶은 것 꾹 담아두었다 만나면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기에 내가 갈 때까지 내년을 기약하지말고 피어있어 달라고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아마도 이 소원 별꽃이 들어주겠지요.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면서

연재기사 <어른들을 위한 포토동화>를 마치고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라는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꽃에 대한 이야기를 쉬고 있을 때 누군가 그 꽃의 이야기를 이어주길 바랬습니다. 자체 연재로 <꽃을 찾아 떠난 여행>, 연재기사 <내게로 다가온 꽃들>을 통해 꽃들의 이야기를 이미 많이 풀어내어 이젠 식상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에 조금은 꽃과 거리를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돌고 돌아 꽃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한 사람이 쓰는 것이라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전의 이야기들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

저의 첫 번째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이후 제주의 생활을 마감하고 이사하던 날 제주의 사계를 담은 비주얼에세이집 <달팽이 걸음으로 제주를 보다>이 나왔습니다. 그 이후 많은 분들이 '달팽이'라고 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써오던 '강바람'을 포기하고 '달팽이'로 개명(?)을 했습니다.

달팽이는 느릿느릿 걸어갑니다.

결국 느릿느릿 걸어가는 길에 더 많은 것들을 봅니다. 그리고 깊게 보면서 이전에 듣지 못하던 이야기도 듣고, 보지 못하던 것도 보고, 그들의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 안에 작은 혁명이요, 기적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벙어리의 혀가 풀리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장님의 눈이 뜨이는 기적, 달팽이 걸음으로 걸어가는 길에 체험한 소중한 것들입니다. 일 년동안 어떤 꽃들을 만날지는 저도 모릅니다. 겨울이 깊어지기까지 달팽이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만나 꽃들의 이름을 하나 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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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3 2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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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4-23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빛 따뜻하고 바람 상쾌한 오늘, 나간 김에 00대학 교정을 잠깐 거닐었는데요, 고 작은 녀석들 꽃마리.. 또 이름 모르는 고놈들.. 잔뜩 핀... 자꾸 고개 숙이게 되요.
세상의 많은 작은 것!들.. 보일듯 말듯 이렇게 아름답네요.
 
 전출처 : 글샘 > 학생들의 머리를 잘라야 할까?

학생들의 머리카락에 구체적인 교칙을 제정하고 단속하는 학교는 외국의 사립학교를 빼고는 드물는지도 모르겠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두발 단속을 인권 침해사례로 발표했다.

1. 역사적 고찰
1981학년도까지는 당연히 일제시대처럼 빡빡머리 남학생과, 귀밑2센티 여학생 머리로 정리된다. 여고생은 꽁치머리도 있었다.
1983년 전두환 일당은 88올림픽을 겨냥하고, 박정희 신드롬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전국의 모든 학교에 사복을 입도록 교복과 두발 규정을 폭압적으로 폐지한다. 학교에서 학도호국단도 사라지고 학생회도 부활되었다. (그렇지만 그 지랄같던 교련 사열은 조금 완화되었을 뿐, 그대로였다. 껍데기는 조금 바뀌지만 알맹이는 그대로란 소리. 86년 전방 입소 거부와 87년 교련 반대 투쟁 등으로 교련은 점차 사라진다.)
1989년 이후, 올림픽이 끝나자 <교복 자율화>는 끝났다. 각 학교 교장들은 교복을 입히고, 그러면서 저절로 두발 규정도 생겼다. 제복을 입는다는 것은 그 외의 액세서리나 용모에도 당연히 규제가 있게 마련이다.

2. 학생의 입장
1990년대 초, 교복을 입는 학교와 자율복을 입는 학교가 반반일 때, 입장은 치열했다.
교복 입는 학교는 교복 벗고 싶다고 했고, 사복 입는 학교는 예쁜 교복을 입고 싶어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학교가 교복을 지정해 입고 있다.
일제시대의 교복을 탈피했으나, 남학생은 정장에 넥타이, 여학생도 마찬가지다.
90년대 중반부터 no-cut 운동 등으로 인터넷을 통해 고발도 하고, 학교 홈피에 또는 교육청 홈피에 올려 보지만 대부분 학교에서 시키는대로 깎고 있다.
열공 모드인 학생들은 헤어 스탈에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학교는 열공 모드인 학생 중심으로 돌아가므로(반장도 열공 모드, 수업 시간에도 열공 모드만 인간이다. 그리고 밤 10시까지 자습하고 12시까지 학원 다니는 생활은 열공 모드일 수밖에 없다.) 두발 규제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열공 모드를 지나치게 탈피하려는 자유형 학생의 경우, 길거리로 나서면 얼마든지 탈선의 길이 열려있다. 여학생의 몸을 사려는 파렴치한들로 길거리는 붐비며, 덩치 큰 고교생에게 담배를 팔지 않는 편의점은 거의 없다. 이런 자유형 학생들에게 두발 규제는 '생활지도의 미약한 한 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학생들은 정말 절실하게 두발 규제를 풀고 싶어한다.
절반 정도의 학생은 이도 저도 아니지만, 사실은 청소년이기 때문에 마음은 자유형이다. 이준기 머리가 하고 싶지, 원빈의 빠박이 머리는 별로 안 하고 싶을 것이다.

3. 교사의 입장
교사는 사실 아무 입장이 없다.
교복때문에 규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율화하자고 하면, 절반 이상은 항상 규제해야 한다에 손을 든다.

4. 당국의 입장
당국도 개코도 관심 없다. 단위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고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청소년들이 교육청에 신고하지만, 교육청 공무원들은 정말 허섭쓰레기같은 공문들만 가지고도 순직하는 사람들이다.

5. 학부모의 입장
학부모는 교복을 입히는 것은 단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복 안 사서 좋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기 아이가 머리 깎여 오면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생길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아이가 머리를 교칙에 맞게 단정하게 깎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학교의 과도한 단속과 아이의 고집불통 사이에서는 아이 편을 들게 된다. 제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깐.

사실, 두발 자율화 문제는, 사회 전반적 억압의 구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두발의 문제는 단순한 두발이 아닌, 교복이란 유니폼의 문제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문제는 교복은 그대로 두고, 두발을 자율화 하려니 뭔가 모양새가 안 난다는 것이다.
교복을 없애면 된다. 그러면 두발이 저절로 자율화 된다.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졸업식 날, 아이들이 교복을 발기발기 찢어대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요즘 아이들'을 욕하는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이 미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 요즘 아이들은 정말 피곤하다. 끝도 없는 경쟁의 나락으로 초등학생부터 투입된다.
교복을 입으면 깔끔할 수도 있지만, 아이의 자율성을 짓밟을 수도 있다.
하긴, 요즘 아이들에게 자율성 운운할 권리가 있는지를 나는 평가할 수 없다.

교사-학생 관계는 1차적 관계일까? 2차적 관계일까?
가족같은 관계라면 머리를 깎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계약 관계라면 두발 단속은 인권 침해다.
이제는 2차적 사회임을 분명히 해야하지 않을까?

소수의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몸을 팔고(이런 것을 구조적 문제라고도 하지만, 그건 개인적 문제일 수도 있다.), 담배를 사고 한다고 해서,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교복과 두발이란 규제를 행하는 것은 과도한 간섭이다.

이런 말을 하면, 선진국 일본도 교복을 입는다고 핑계를 대겠지.
난 교육 관료들이 선진국의 좋은 점을 배우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선진국 일본은 한국에 비해서 훨씬 열린 사회다. 거기도 물론 공부에 찌들려 도쿄대학에 목매단 학생들은 두발같은 데 관심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만 해도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도 12시까지 공부하라고 하진 않는다. 그리고 교사는 명백한 2차적 관계다.

교사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라.
공부도 잘 가르쳐야 하고, 대학 입시 제도의 진흙탕에서 아이를 제대로 찍어서 보내야 하고,
머리도 깎여야 하고, 지각생 손바닥도 때려야 하고...
지금은 전후 50년대가 아니지 않은가.

투표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몇 분의 의견만이라도 듣고 싶다.

투표기간 : 2006-04-22~2006-04-29 (현재 투표인원 : 7명)

1.
0% (0명)

2.
57% (4명)

3.
42% (3명)

4.
0%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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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2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6-04-23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두발자율에 관한 공문이 내려왔을 때, 학교운영위에 학생부장샘께서 두발에 관한 안건을 올리셨거든요. 파격적으로 아이들이 회의장소에 와서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요. 결국 남학생들은 옷깃을 덮지 않을 정도의 길이까지는 봐주는 걸로 완화하고 여학생들도 고무줄이나 핀 색깔같은 각종 사소한 규제조항을 삭제했지요. 그러나 지금, 완화된 그 규정은 어느덧 잊혀지고 교사들의 개인적 습관적인 기준에 의해 두발단속을 하고 있지요. 대부분 학부모들도 '학생답고 단정하게' 자르는 것이 학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는 교복을 그대로 두고 두발만 자율로 해서는 백날 인권위에서 권고하고 교육청의 공문이 내려와도 결국은 '학생다운 단정함'에 길들여진 어른들에 의해 단속과 규제로 다시 돌아간다는 겁니다. 교복의 장단점과 사복의 장단점이 분명히 있겠지만 '자기 결정권'을 길러주어야 하는 교육의 기준을 명확히 한다면 개인의 입성을 강요하는 '교복' 역시 두발규제와 함께 극복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그 안에서 여러가지 극복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출처 : stella.K > [퍼온글] 임형주 노래 모음


 
        임형주 노래 모음 01, 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 02, O Mio Babbino Caro 03, Lascia Ch'io Pianga 04, O Del Mio Dolce Ardor 05, Lungi Dal Caro Bene 06, Apre's Un Reve (With Wendy Hoffman) 07, 아리랑 08, 찔레꽃 09, 동심초 10, 하월가 (何月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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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일-248호]
 
 

불현듯, 미친듯이
솟아나는 이름들은 있다
빗속에서 포장도로 위에서
온몸이 젖은 채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던 시절
모든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죽음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부활이라고 했다
불러도 외쳐 불러도
그것은 떠오르지 않는 이미 옛날
그러나 불현듯, 어느날 갑자기
미친듯이 내 가슴에 불을 지르는
그리움은 있다 빗속에서도 활활 솟구쳐 오르는
가슴에 치미는 이름들은 있다
그들은 함성이 되어 불탄다
불탄다. 불탄다. 불탄다. 불탄다.
사라져버린
그들의 노래는 아직도 있다
그들의 뜨거움은 아직도 있다
그대 눈물빛에, 뜨거움 치미는 목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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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4-20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ㆍ19 의분의 불기둥으로

그렇지만 4ㆍ19 혁명은 그것을 기억하고 그 이념을 간직하며 실천하려는 뜨거운 가슴의 후배들이 있어 다시 불씨가 이어지고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자유ㆍ평등, 민주ㆍ민권운동으로서 4ㆍ19 정신은 그 숭고한 이념과 열망이 남아있고, 이상과 희망이 살아있기에 영원히 살아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6ㆍ3 배일(排日)운동으로, 다시 60년대 말 3선개헌 민주화를 위한 인권운동, 유신반대 민주화운동으로서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거센 민족ㆍ민중운동으로 가열하게 전개돼온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은 80년대 자유ㆍ평등, 자주ㆍ주권운동으로서 5ㆍ18 광주민주화항쟁으로, 노동운동으로, 통일운동으로 계승되면서 이땅에 민주화를 조금씩 조금씩 실현해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길은 멀지만요, 우리에겐 ‘지울 수 없는 노래’로서 4ㆍ19 의분의 불기둥이 가슴 속에 솟구치고 있기에 희망을 갖고 통일조국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
 

4월 혁명 46주년을 맞아

4월의 시인 신동엽의 외침을 되새기자

 

 

또 다시 419를 맞는다. 그리고 우리는 1년 동안 잊혀진 ‘4월의 시인’ 신동엽(1930-1969)을 떠올린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의 삶이 미완으로 그친 4월 혁명만큼이나 안타깝게 다가온다. ‘껍데기나 가라’는 그의 외침은 우리 사회의 몰상식과 모순이 존재하는 한 언제나 마음 깊이 새겨야 할 호통이요 경구이다.<편집자 주>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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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0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6-04-2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어렵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