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의 꽃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 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생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그것에 물을 주눈 거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한다.

그건 잡초야, 하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정희성-

 

*어제 본 시집 <시를 찾아서>에 내가 알던 시가 있더라. 민지의 꽃. 꽃이야, 산골 아침에 그 말이 얼마나 신선하게 들렸을까 내가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 말이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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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11-0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좋아하는 시네요^^

라주미힌 2005-11-0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런 말을 해도 아름다울까요? ^^;;;;
예쁜 시군요..

낯선바람 2005-11-0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산책님도 좋아하는 시군요^^
라주미힌님, 처음 뵈요.
아름답게 들릴지는.....님 서재를 둘러보고 말씀 드리죠^^
 

  봄소식

 

이제 내 시에 쓰인

봄이니 겨울이니 하는 말로

시대 상황을 연상치 마라

내 이미 세월을 잊은 지 오래

세상은 망해가는데

나는 사랑을 시작했네

저 산에서 봄이 오려는지

아아, 수런대는 소리

-정희성

 

                 

이런 시가 있었구나. 음..... 아주 오랫만에 '편지'라는 걸 받았는데 그 속에 예쁜 그림이 그려진 카드가 있고 그 카드 속에 이런 봄소식이 들어 있다. 정희성 시인이 10년 만에 낸 시집에 들어 있는 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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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0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의 시인.^^
시 좋은데요?

낯선바람 2005-11-02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 시를 쓰고 10년 만에 낸 시집이래요. 시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조금 혹은 많이 달라진 모습이 이 시집에 담겨 있는 듯 해요. 잘은 모르겠지만요^^
 
 전출처 : 로드무비 > [퍼온글] Hey Jude 그리고 Praha

영화 프라하의 봄을 좋아한다. 물론 쿤데라의 소설도 좋아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니, 그때는 물론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직 어릴 때 읽었던
것이라 언제 한 번 다시 읽어야지 생각만 하는 소설.

소설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는 늘 프라하를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내가 정신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맞다고 생각했던 한 남자가 좋아한
영화이기도 하다.
막간을 이용해 그와 처음 차를 마시던 날 우리는 이 영화와 또 그와 내가 함께 좋아하던 것들에 대해
숨이 가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나는 삶의 한 모퉁이에서 단지 스쳐가는 그런 인연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기억 속에 흔적은
선명히 남는다.

좋아하는 배우들도 나오지만 특히 음악이 좋았는데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체코 가수가
' 헤이 주드(Hey Jude)'를 멋들어지게 부른다.
내가 체코 작곡가 야나첵을 좋아하게 된 것도 이 영화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영화 음악을 들으며 프라하를 누벼보리라 생각만 하고 살았다. 
작년 겨울 안 좋은 일로 독일에 3주 정도 머물러야 했던 나는 드디어 그 꿈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달랑 잠옷, 혹 음악회에 가게 되면 입으려고 광택 나는 바지 하나, 책 한 권을 챙겨 떠났던
3박 4일 일정의 여행.

바보같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라이프찌히에서 하루밤을 묵어야 했는데 또 이 라이프찌히는 
오죽이나  매력적인 도시인가.
바흐의 커피 칸타타며 괴테며 멘델스존의 흔적을 따라 헤매다보니 그냥 주저앉고 싶기도 했던 도시.
그래도 프라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또 늦게야 프라하로 향했다

막상 떠나보니 기차삯이나 방값이 너무 비쌌다. 
그래 어차피  아침에 돌아올 거 방값도 줄일 겸 하루만 자고 밤차를 탈 생각이었는데
결국은 그게 커다란 실수였으니......

드레스덴에서 부랴부랴 체코 돈을 환전하고 프라하행 기차를 찾아 앉으니 곧 여권 검사를 한 후
기차는 출발하고, 식당칸에서 사들고 온 적포도주를 마시던 그때의 벅찬 설레임과 약간의 두려움이라니..  

말이 통할지도 모르는 춥고 깜깜한 낯선 도시에 내려 헤매다 잡은 방은 딱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과거라면 제법 그 빛을 발했을 , 프라하를 닮은 그런 곳이었다.
높은 천장과 벽난로 덜컹거리던 그러나 활짝 열 수 있었던 넓은 창문.

짐이랄 것도 없는 걸 내려놓고는 관광객과 창녀와 쇼핑객이 뒤엉킨 거리를 헤집고 다니던 그 추운 밤.
싼 맥주 자욱한 담배연기 그리고 완벽한 자유...

다음날 음악은 없었지만 나는 내가 원했던 대로 그 도시를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춥고 지치면 술을 마시고 지인들에게 엽서를 쓰고 또 술을 마시고 야나첵의 음반을 사고...
유럽의 겨울밤은 길다.
네 시부터 어둑해진 도시는 어찌나 춥고 또 내가 타야 할 기차 시간은 어찌나 아득하던지.
나중엔 결국 낯선이들 낯선 언어속에 혼자 앉아 꽤 많은 술을 마셨더랬지... 

 

로드무비님이 이벤트를 하신다고 엽서를 한 장 쓰라고 했을 때 난 물론 분위기는 달랐겠지만
이런 얘기가 하고 싶었다.
그때 기분에 따라 연애담이 되었을지 여행기가 되었을지 아님 그냥 영화 얘기만 썼을지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내가 원하는 그녀가 부르는 Hey Jude 노래를 찾을 수가 없는 거다.

비틀즈를 들으며 글을 쓰려는데 요 며칠 상황상 내 생각의 끈이 늘 떠돌이 삶에 연결되어 있다보니 
어찌 구구절절히 내 개인적인 얘기를 풀어놓게 되었다.
그래 음악도 새로 골라 올리고 말이다.

이런 사연이 있었는데 오늘 그녀가  마음에 드는 글을 골라 주는 선물이 하필이면 '헤이 주드' 오르골이고
그걸 내게 주겠다니 참 기분이 묘하더라.
그냥 내가 비틀즈의 '헤이 주드'를 올리고 프라하 이야기를 풀었더라도 그녀는 내 글이 마음에 들었을까?
그래서 내가 '헤이 주드' 오르골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님 그녀는 '헤이 주드' 때문에 웃었을까.

 

아 열몇 시간 밤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차마 침대차는 꿈도 못 꾸고 어찌어찌 불편한 의자 사이로
몸을 구겨넣고 잠을 청하는데 표검사하는 아저씨왈, 이 기차는 뉘른베르그 부분에서 갈라져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간신히 제대로 된 기차칸을 찾아 또 어찌어찌
잠이 들었다가 라이프찌히와 프라하에서 100장 넘게 찍은 디카를 도둑맞았다.

그래 프라하 여행은 이제 지인들이 가진 엽서 속의 내 글씨로, 그리고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로드무비님 이만하면 뻔뻔한 이유 충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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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알라딘은 재밌는 곳이다.

메인화면에 눈에 띄는 제목이 있어서 봤더니 그 책을 쓴 사람이 알라디너였다니 와우~

<외로울 땐 외롭다고 말해> 서점가서 봐야지.

아, 오늘은 화창한 가을하늘만큼 기분이 좋다.

한 달쯤 되니 이제야 백수생활이 맘이 편하다. 아침에 밥먹고 옛적 드라마를 다시 봐도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는 불안감이 없다 ㅎㅎ 낼모레 면접보러 갈 데도 있고 실업급여도 받고 그래서 그런가^^;

그리고 내가 예전에 편집한 책에 리뷰가 이제 8개나 된다. 리뷰가 수십개, 백 여개 달리는 책에 비하면 8개가 쨉도 안 되지만, 내가 편집하면서 감동받았던 그 책에 다른 이들이 반응을 하는 게 기쁘다. 가끔씩 내가 편집한 책들을 검색해서 새로운 리뷰가 있으면 낚시하다 고기 걸린 양 기쁘다. 물론 리뷰가 혹평이면 맘이 아주 아프쥐~

회사 그만두고 쉬고 있으니 살짝 얘기할게요. 저 출판사에서 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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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09-0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감회가 남다르시겠어요.

2005-09-07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낯선바람 2005-09-08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름은 어케 읽는 게지? 브리니? 암튼 반가워요^^
 







5월에 천성산 계곡 가는 길에 요 이쁜 것을 봤답니다. 이름이 쌍살벌인데 집짓기와 모성애로 유명하더군요.

 맨 위 사진을 보면, 식물의 줄기에다가 이쁘게도 집을 지었죠? 닥종이 같은 느낌이 나는데요, 나무의 껍질에서 섬유질을 긁어 입에 넣고 씹은 다음 그걸로 방을 하나씩 만든대요. 방 하나 만들고 알 하나 놓고 이런 식으로 해서 계속 방을 붙여 나간대요. 아래 사진 보면 맨 윗칸에 조그만 알 보이죠? 날이 더우면 날개로 부채질을 해서 온도를 낮춰 주고 비가 오면 벌집 안의 물을 빨아다가 밖에 버려서 집을 깨끗하게 한대요.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면, 밖에서 다른 곤충의 애벌레를 잡아다가 꼭꼭 씹어서 먹인대요.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키워서 요것들이 일벌이 되면 그때부턴 어미는 알만 낳고 애벌레 키우는 건 일벌들이 한대요.

쌍살벌이 지은 이쁜 집을 보고 곤충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고 작은 것들이 참 이쁘고 신기한 게 많더라구요. 너무 이뻐서 자꾸 보다가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어서 끙끙대며 그려봤죠. 쌍살벌에 대해 검색을 했더니 최근에 관찰일기책이 하나 나왔더군요. 일본의 초등학생이 3년 동안 쌍살벌과 어떤 벌을 관찰하며 쓰고 그린 일지를 <웅태의 벌 이야기리> 라는 책으로 냈던데 서점 가면 읽어봐야겠어요. 나보다 잘 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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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20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