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드무비 > [퍼온글] Hey Jude 그리고 Praha

영화 프라하의 봄을 좋아한다. 물론 쿤데라의 소설도 좋아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니, 그때는 물론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직 어릴 때 읽었던
것이라 언제 한 번 다시 읽어야지 생각만 하는 소설.

소설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는 늘 프라하를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내가 정신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맞다고 생각했던 한 남자가 좋아한
영화이기도 하다.
막간을 이용해 그와 처음 차를 마시던 날 우리는 이 영화와 또 그와 내가 함께 좋아하던 것들에 대해
숨이 가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나는 삶의 한 모퉁이에서 단지 스쳐가는 그런 인연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기억 속에 흔적은
선명히 남는다.

좋아하는 배우들도 나오지만 특히 음악이 좋았는데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체코 가수가
' 헤이 주드(Hey Jude)'를 멋들어지게 부른다.
내가 체코 작곡가 야나첵을 좋아하게 된 것도 이 영화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영화 음악을 들으며 프라하를 누벼보리라 생각만 하고 살았다. 
작년 겨울 안 좋은 일로 독일에 3주 정도 머물러야 했던 나는 드디어 그 꿈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달랑 잠옷, 혹 음악회에 가게 되면 입으려고 광택 나는 바지 하나, 책 한 권을 챙겨 떠났던
3박 4일 일정의 여행.

바보같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라이프찌히에서 하루밤을 묵어야 했는데 또 이 라이프찌히는 
오죽이나  매력적인 도시인가.
바흐의 커피 칸타타며 괴테며 멘델스존의 흔적을 따라 헤매다보니 그냥 주저앉고 싶기도 했던 도시.
그래도 프라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또 늦게야 프라하로 향했다

막상 떠나보니 기차삯이나 방값이 너무 비쌌다. 
그래 어차피  아침에 돌아올 거 방값도 줄일 겸 하루만 자고 밤차를 탈 생각이었는데
결국은 그게 커다란 실수였으니......

드레스덴에서 부랴부랴 체코 돈을 환전하고 프라하행 기차를 찾아 앉으니 곧 여권 검사를 한 후
기차는 출발하고, 식당칸에서 사들고 온 적포도주를 마시던 그때의 벅찬 설레임과 약간의 두려움이라니..  

말이 통할지도 모르는 춥고 깜깜한 낯선 도시에 내려 헤매다 잡은 방은 딱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과거라면 제법 그 빛을 발했을 , 프라하를 닮은 그런 곳이었다.
높은 천장과 벽난로 덜컹거리던 그러나 활짝 열 수 있었던 넓은 창문.

짐이랄 것도 없는 걸 내려놓고는 관광객과 창녀와 쇼핑객이 뒤엉킨 거리를 헤집고 다니던 그 추운 밤.
싼 맥주 자욱한 담배연기 그리고 완벽한 자유...

다음날 음악은 없었지만 나는 내가 원했던 대로 그 도시를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춥고 지치면 술을 마시고 지인들에게 엽서를 쓰고 또 술을 마시고 야나첵의 음반을 사고...
유럽의 겨울밤은 길다.
네 시부터 어둑해진 도시는 어찌나 춥고 또 내가 타야 할 기차 시간은 어찌나 아득하던지.
나중엔 결국 낯선이들 낯선 언어속에 혼자 앉아 꽤 많은 술을 마셨더랬지... 

 

로드무비님이 이벤트를 하신다고 엽서를 한 장 쓰라고 했을 때 난 물론 분위기는 달랐겠지만
이런 얘기가 하고 싶었다.
그때 기분에 따라 연애담이 되었을지 여행기가 되었을지 아님 그냥 영화 얘기만 썼을지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내가 원하는 그녀가 부르는 Hey Jude 노래를 찾을 수가 없는 거다.

비틀즈를 들으며 글을 쓰려는데 요 며칠 상황상 내 생각의 끈이 늘 떠돌이 삶에 연결되어 있다보니 
어찌 구구절절히 내 개인적인 얘기를 풀어놓게 되었다.
그래 음악도 새로 골라 올리고 말이다.

이런 사연이 있었는데 오늘 그녀가  마음에 드는 글을 골라 주는 선물이 하필이면 '헤이 주드' 오르골이고
그걸 내게 주겠다니 참 기분이 묘하더라.
그냥 내가 비틀즈의 '헤이 주드'를 올리고 프라하 이야기를 풀었더라도 그녀는 내 글이 마음에 들었을까?
그래서 내가 '헤이 주드' 오르골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님 그녀는 '헤이 주드' 때문에 웃었을까.

 

아 열몇 시간 밤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차마 침대차는 꿈도 못 꾸고 어찌어찌 불편한 의자 사이로
몸을 구겨넣고 잠을 청하는데 표검사하는 아저씨왈, 이 기차는 뉘른베르그 부분에서 갈라져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간신히 제대로 된 기차칸을 찾아 또 어찌어찌
잠이 들었다가 라이프찌히와 프라하에서 100장 넘게 찍은 디카를 도둑맞았다.

그래 프라하 여행은 이제 지인들이 가진 엽서 속의 내 글씨로, 그리고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로드무비님 이만하면 뻔뻔한 이유 충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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