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드무비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詩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1985년 수첩 기록
오래 전 김종삼 시인의 시 '묵화(默畵)'를 참 좋아했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 서로 적막하다고.('묵화' 전문). 군더더기 하나 없이 똑 떨어지는 동양화 한 폭 같은 시 '묵화'에 비해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라는 시는 뭔지 좀 유치하고 어리숙해 보인다. 그런데 난 이 詩도 참 좋았다.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있는 사람으로 살 자신은 없지만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돼지기름으로 구운 번철 위의 남대문시장 빈대떡 같은 詩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