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달달의 11-12월 책은 켈리 양의 Front Desk 이다.
미미님이 알려주신 유튜브 링크에서 음성 파일을 들어보았지만
음질이 좀 안 좋아서 그런가, 발음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잘 안 들려서 일단 책을 먼저 읽어보았다. 물론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왔지만 대략 짐작하며 읽어나갔다.
중간에 나를 서글프게 만드는 문장이 있었다.
중국에서 태어나 자유(free)의 땅 미국으로 건너간 Mia와는 달리, 부모님이 취업한 모텔의 주인 Mr. Yao의 아들 Jason은 중국 accent가 없고 발음이 좋다. Mia의 엄마가 영어 참 잘하네 라고 하니까 Mr. Yao는 Jason은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native라고 말한다. (악덕 고용주인 것 같은 Mr. Yao는 Taiwanese-accented Mandarin을 사용한다는 설정이다. (Taiwanese Madarin; 표준중국어 를 말하는 게 아니라 타이완 억양을 뜻하는 것 같다))
이 때 미아의 마음은 이렇다.
Native. I mouthed the word.
I wondered if I worked really hard, would I also be able to speak native English one day?
내 마음도 그랬다.
I wondered if I read/study really hard, would I also be able to speak/write native English one day?
그럴 리가 없지...
영어를 30년 이상 접해 (공부했다고 말하긴 어려우니) 왔지만 아직도 영어를 읽기나 듣기 (말하기나 쓰기는 더) 만 하려해도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진다. 최근 몇 번 외국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회의할 일이 있었는데 다 영어권 혹은 유럽 사람들이고 일본 사람과 나는 묻는 말에 대답만 하고 조용히 있었다. ㅠㅠ 그들끼리는 원래 친하기도 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말을 막 나누면서 점점 더 친해지기도 한다.
원서 읽으면서 가끔 영어로는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하고 재미를 느끼긴 하지만 과연 그런다고 나의 영어 실력이 한 톨 만큼이라도 향상될까? 난 왜 원서를 읽고 있는 걸까? 그렇게 오랫동안 영어를 접했는데도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서 말도 안 하면서?
어제 퇴근 길에 정희진의 공부 11월호를 들었다. 어린 왕자, 에린 왕자, 애린 왕자를 다루고 있는 코너 '한 문장의 세계'였다.
전에 <애린 왕자> 가 막 나왔을 때 <어린 왕자>와 <애린 왕자>를 낭독 모임에서 읽었다. 그리고 나중에 <에린 왕자> 가 나와서 그것도 읽었었다.
원래 낭독 모임에서는 예습을 하지 않고 즉석에서 읽었지만 (준비를 안 해도 된다는 것, 그것이 그 모임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애린 왕자> 낭독을 앞두고는 조금 예습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경상북도 네이티브 스피커인 집사2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 번 읽어봐봐."
"....."
집사2는 처음엔 좀 중얼중얼 하더니 곧 못 읽겠다고, 나에게 이런 걸 시키지 말라며 책을 주고 가버렸다. 아니 좀 읽어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그는 무척 어색하다고 했다. 경상도 말을, 그것도 구어체를 활자로 보는 건 처음이라면서..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말이 많다고도 했다. (<애린 왕자>는 경상북도 중에서도 번역자의 고향 포항 말로 쓰여있다.)
그는 경상북도 네이티브 스피커이고 성인이 되어 그 지역을 떠났는데, 먼저 경상도 사람이라고 말하기 전에는 그의 말에서 전혀 경상도 억양을 느낄 수가 없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서울말이 사실 뭔지 잘 모르겠는데, '서울말' 이라는 것이 표준어가 처음 지정될 때에야 독특한 억양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자랄 때 쯤에는 이미 여러 지역 사람들이 섞여 살아 그 억양이 뭔지 잘 모르고 자랐기 때문이다. 어쨌든 남편의 표준어 혹은 서울말은 특별한 억양이 없고 밋밋하다. 자신의 원가족 구성원들과 이야기할 때는 없던 억양과 내가 모르는 어휘가 마구 생겨나며 말도 빨라진다. (가끔 나에게 지금 알아듣고 있냐고 물어보곤 한다) 마치 2개 국어를 하는 사람 같다.
갑자기 n개 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쓰기 읽기 말고 아주 일상적이고 가벼운 대화) 영어 혹은 유럽어권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 사람들이 영어를 조금 어색하게라도 잘 하고, 불어로 얘기하고 독어로 들으면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건 그들의 언어가 서로 유사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게 쉬운 건 아닐텐데...
갑자기 집사2가 어릴 때부터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서울말로 쓰여져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떠올랐다. 교과서도 그렇고, 동화책이나 소설책도. 그게 2개 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을까? 영어 공부에 '읽기' 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얘기와 맥락이 통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위안을 하며 Front Desk를 더 읽어보기로 한다. 물론 재미있기도 하다.
재미에 힘입어 번역서는 보지 않고 끝까지 읽겠다는 다짐을 더해 본다.
*Chap. 1-2 표현들
pore over : 자세히 조사하다, 읽다
humongous : 매우 많은
cannonball : 물에 뛰어드는 것
bottomline : 핵심, 요점
책을 읽고 들어보니 조금 더 들렸다. 이번엔 읽고 들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