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 어딘가에서 보고 읽기 시작했다. (독서괭님 리뷰인듯 하다) 5월에는 문어발 독서를 지양하려 했으나, 읽어야 하는 <레이디 크레딧>이나 <이기적 섹스>는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읽기가 눈치 보이고, <해러웨이 선언문>은 기차 안에서 잠깐 읽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배우자와 나는 책 취향이 많이 다르지만, ‘책에 관한 책’은 공유하는 편이다. 기차에서 이 책을 읽다가 졸려서 (책이 지루해서가 아니고 어린이날-어버이날 행사로 피곤해서다) 배우자에게 넘겨주었다.

나중에 재미있냐고 물으니, 너무 함부로 대충 쓴 거 아니야? 라고 했다. 그렇다. 그래도 가끔 진지한 책만 읽다보면 이런 책이 좋을 때가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다른 사람이나 작품을 평가하기도 하고 그걸 보면 편견도 좀 갖고 있는 것 같지만 본인이 도덕 군자인 척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게 된다.

참,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중이라서 무료로 기분 전환을 하게 되었다. 전에 썼듯 책에 관한 책 읽기는 나의 독서 guilty pleasure다. 그러나 내가 평소에 책에 써온 돈을 생각하면 구두쇠라고 하기는 좀 어렵고… 안 읽고 쌓아둔 책이 많아서 덜 사기로 마음을 먹은데다 절판책이기도 해서 빌려왔다. 이 책이 ‘살 생각도 없고 우리 집에 두고 싶지도 않는 읽을거리’ 인지는 다 읽고 판단하겠다. 지금까지 읽은 바에 근거해 판단하자면, 다 읽고도 집에 계속 두고 싶은 읽을거리라고 말하긴 어렵다.

언급된 책 중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약간 더 많은 것 같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주인공의 할머니가 아까던 <셰비녜 부인의 편지>를 보고 반가워 혹시 번역된 게 있을지 찾아보았더니 번역된 것은 없는 것 같고, 셰비녜 부인에 관한 창해ABC북 (시공디스커버리처럼 얇은 시리즈다) 이 있었는데 지금은 절판이네. 굳이 구해볼만큼 많은 내용이 있을지 모르겠다. 집에 있는 몇 권의 (내가 산 것은 아니다) 창해ABC북으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기대하면 허탈할 것 같다.



나는 장소를 가리지않고 책을 읽지만 화장실만은 예외다. 끔찍하게 형편없는 작가라면 모를까, 그건 내가 읽는 작가에게 더없이 무례한 모욕이다.

한번은 어떤 친구가 인간이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천년만년 살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브램 스토커가 『드라큘라』에서 전하려 했던 메시지라고 했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책벌레 드라큘라 백작이 수만 명 처녀들의 도자기처럼 매끈한 목덜미에서 피를 빨아먹었던 이유는 그가 악의 화신이라서가 아니라 읽고 싶은 책들을 웬만큼 읽을 때까지 오래오래 살 방법이 달리 없어서였다나.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작가가 책을 통해 직접 그들에게 말을 건다고, 나아가 그들을 돌봐주고 치유해준다고 느낀다. 그들은 종종 작가가 성체를 나누어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사람들은 항상 이 작가 혹은 저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대지만, 사실 특정 주제에 대한 독자의 생각을 작가가 글로 정확하게 옮겨주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그들은 작가를 일종의 영매처럼, 무언의 존재에게 목소리를 빌려주는 역할로 본다.

내 입장은 다르다. 나는 작가들이 내 생각이 아닌 말, 어떤면에서는 내가 아예 생각조차 못할 말을 한다고 느낀다. 누군가가 미국 최고의 여류 시인 운운하면서 에밀리 디킨슨에게 접근하려면 무릎을 꿇고 다가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위대한 작가들이 하는 말은 참으로 아름답기에, 그들의 말을 반복하는 바로 그 행위가 삶 자체를 한결 아름답게 한다.

책이 늘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진 않아도, 확실히 누군가는 가고 싶어 할 곳으로 데려다준다. 책에 환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현실에 만족 못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서점과 도서관을 나 몰라라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우연의 음악에 노출시키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모든 진실하고 아날로그적인 마법과 미스터리를 그네들의 인생에서 내치고 말았다. 그래서 편리할 수는 있겠으나 편리한 게 다다. 모름지기 기술은 공동의 것일 뿐이므로.

북클럽은 독자가 뭔가 대화에 보탤 것이 있다는 자기 본위의 착각을 중심축 삼아 돌 아간다. 아니, 뭘 보태겠다는 건데? 책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오가는 일련의 논쟁들이고 독자는 그중 어느 논쟁에서도 승산이 없다. 제임스 조이스가 관여하는 논쟁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북클럽 회원들이 공유하는 독서 경험은 내밀하지가 않다. 북클럽 참가자는 책에 대해 자신과 아주 똑같이 느끼는 사람들하고 연결되기를 원한다. 독서 토론회는 사실 독서와 거의 무관하다. 이런 토론회에서 좋은 책을 좀체 선정하지 않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토론 참가자들은 만장일치를 원하지만 좋은 책은 만장일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좋은 책은 다툼, 혼란, 칼부림, 혈투를 부른다.

내가 아는 북클럽 가입자들은 대부분 지적이긴하지만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하기는 뭐하다. 그들은 책에 있지도 않은 그 무엇을 책에서 끌어내고 싶어 한다.

널리 알려진바, 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상당 부분 기분 전환과 구두쇠 노릇을 돕는 데 있다. 도서관이 무료로 읽을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노랑이들은 자기가 아는 작가에게 그 사람을 빌려 봤다는 말만 건네도 자기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줄 안다. 이 고약한 수전노들에게 자기가 30년간 알고 지냈던 누군가가 쓴 책을 구입하기 위해 15달러를 쓰는 일은 있을 수도 없다. 그러면서 작가가 자기네들의 조언을 소중하게 생각할 거라는 오해에 빠져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작가들은 돈에만 신경 쓴다.

어릴 적 나는 도서관은 문화의 탄약고 같아서 여기서 내가 적들을 제거하고 사회 계급적으로 일어서기 위해 써먹을 물품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나는 내가 살 생각도 없고 우리 집에 두고 싶지도 않는 읽을거리를 구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가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이 될 수 있는데 문학적 스타일이 떨어져서 나쁜 책이 되는 게 아니다. 나쁜 책은 그냥 나쁜 책이다. 나쁜 책은 문장이 나쁘고, 발상이 나쁘고, 캐릭터가 나쁘고, 주제가 나쁘다. 나쁜 책의 작가들은 애당초 좋은 책을 쓸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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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5-07 0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guilty pleasure ^^
재미있네요

건수하 2022-05-07 10:42   좋아요 3 | URL
담아두는 책, 사는 책 목록이 더 길어져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너무 건전한 일에 저런 말을 붙였나 싶기도 해요 ㅎㅎ

독서괭 2022-05-07 1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수하님 읽으시는군요! 저도 첨에는 빨리 읽고 치워버리려고 했는데 후반부가 좋았어요~ 배우자와 책 같이 읽으시니 좋네요. 즤 남편은 요즘 통 안 읽는 듯 합니다 ㅠ

건수하 2022-05-07 12:27   좋아요 3 | URL
독서괭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후반부 기대되네요 ^^

저의 배우자도 요즘엔 잘 안 읽어요 ㅎㅎ 유튜브를 더 좋아하는 듯 ^^

미미 2022-05-07 1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셰비네 부인의 편지>를 찾아 읽으시는 것보다는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프루스트의 <잃.시.찾>을 읽어보시는게 어떨까 조심스럽게 추천드려요ㅎㅎ
민음사 책 주석이 참 잘 되어 있어서 주석읽는 재미도 쏠쏠하거든요.

건수하 2022-05-07 12:29   좋아요 3 | URL
아, 미미님 저는 국일미디어 판으로 읽었고 민음사 판은 1권만 갖고 있어요. 언젠가 다시 읽어보고 싶긴 한데 아직은 아니… 민음사판으로 완결되면 생각해봐야겠어요. 셰비녜 부인의 편지가 대체 어떤 책인지 궁금하더라고요 ^^

미미 2022-05-07 12:38   좋아요 3 | URL
아!! 어쩐지 전에 읽으셨다고 하셨네요. 제가 기억력이 그닥이라 그만^^;;

건수하 2022-05-07 12:48   좋아요 3 | URL
별말씀을~ 제가 북플에서 놀기 전에 읽어서 그래요.
사실 책을 읽어서 궁금한 거였지요 ^^;

레삭매냐 2022-05-17 0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어발과 공간을 가리지 않는
독서는 우리 책쟁이들의 숙명
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득 작가도 혹시 화장실에서
글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상상에
빠져 봅니다.

그렇다면 독자에게도 면죄부가...

건수하 2022-05-17 15:37   좋아요 3 | URL
화장실에서 글을.. 읽는 것보다 훨씬 힘들것 같은 일입니다.. @_@

이 작가도 문어발은 엄청나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