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꿈 인문정신의 탐구 24
곽차섭 지음 / 길(도서출판)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내 애정하는 저자인 곽차섭 교수가 그간의 연구 성과물을 간동그려 두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마키아벨리의 꿈(2020)역사, 라프로쉬망을 꿈꾸다(2022)가 그것이다. 아시다시피 그의 관심 분야는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지성사, 미시문화사 및 미술사이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사회와 사상에 초점을 맞춘 지난 30여 년간의 연구에서 마키아벨리는 하나의 중요한 축이었기에, 그는 이 책에 이어 앞으로도 마키아벨리의 새로운 전기 집필을 계획하고 있는 듯하다.

곽 교수는 마키아벨리의 꿈을 고대인의 영광과 위대함에 대한 오마주이며, 동시에 그러한 영광과 위대함이 자신의 시대에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관직에서 쫓겨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것은 이 책을 메디치가 군주들에게 바쳐 자신을 다시 공직에 천거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지만, 이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떻게 사는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서로 거리가 먼 것이므로, 행해져야 하는 것을 위해 행해지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자신의 보존보다는 오히려 파멸을 배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측면에서 선을 표방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파멸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주가 스스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선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그리고 필요에 따라 이를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군주론 제15)

그는 여기에서 현실과 당위를 엄격히 구분하면서 현실 그 자체를 정치 행위와 판단의 기초로 삼고 있으며, 이를 통해 흔히 악덕으로 간주되어온 행위들이 정치의 장에서는 오히려 미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신군주의 새로운 행위윤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곽 교수는 마키아벨리 시대의 군주는 현대의 정치 보스이며, 그에게 조언하는 정치 참모는 현대의 마키아벨리로 본다. 이어 군주론이 현대에 던져주는 진정한 의미를, 우리로 하여금 때로는 한 개인으로서 때로는 한 집단으로서 스스로의 이기적 본성을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자국·자민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한 국가와 민족이 다른 국가·민족들과 공존하고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우쳐주는 데에서 찾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 라프로쉬망을 꿈꾸다 - 문화사와 지성사에 대한 12편의 에세이
곽차섭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에세이를 읽고싶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일전쟁 1 - 기원과 개전 한길그레이트북스 163
와다 하루키 지음, 이웅현 옮김 / 한길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와다 하루키(和田春樹)의 대작 《러일전쟁》을 힘들게 읽었다. 청일전쟁에 이르는 전반부는 빠르게 진행되었으나 지루한 외교전을 서술하고 있는 후반부에 들어서자 지쳐 한동안 책을 던져놓았다가, 설을 쇠면서 들어앉아 다시 붙잡고 후딱 읽어치웠다. 덕분에 다수의 논문과 연구동향도 살펴볼 수 있었다.

*

1904(메이지 37)년 2월 6일 토요일 오전 9시 도고 헤이하치로 사령관이 이끄는 연합함대의 제3전대가 사세보 항에서 출격했다. 연합함대 사령관에게 내려진 명령은 “신속하게 발진해 우선 황해 방면에 있는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라”는 것이었다. 목표는 뤼순이었다.

오후 4시 진해만에 정박해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제3함대 제7전대의 포함 ‘아타고’는 마산항에 입항했다. 함장은 마산 주재 미우라 영사와 협의하고 바로 한국 전신국을 점령했다.

이렇게 전쟁은 시작되었다. 또 다른 조선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진해만 점령과 부산 및 마산의 전신국 제압이 러일전쟁이라 불리는 전쟁에서 최초로 수행된 군사행동이었으며, 그것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주권과 영토에 대한 침략행위였다. 이 사실은 지금까지의 전사에서는 거의 완전하게 무시되어 왔다.

위의 책 pp1095~1099.

러일전쟁은 조선전쟁으로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전시 중립을 선언한 대한제국의 영내에 침입해 진해만, 부산, 마산, 인천, 서울, 평양을 점령하고, 대한제국 황제에게 사실상의 보호국화를 강요하는 의정서에 조인하게 했다. 인천과 뤼순에서 러시아 함선에 대한 공격이 동시에 시작되었는데, 이 공격은 무엇보다도 대한제국 황제에게 러시아의 보호는 없을 것이라는 의미의 결정타를 날려 황제를 체념시키는 역할을 했다. 조선 장악이 끝나자 전쟁은 압록강을 넘어 만주에서 본격적인 러일전쟁으로 진화해 간다. 일본은 선전포고에서 “한국의 보호”를 위해서 러시아와 싸운다고 선언했지만, 사실은 일본이 조선을 자국의 지배하에 두고 보호국으로 삼고 나서, 러시아에게 그것을 인정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을 추진했던 것이다.

위의 책 p1187.

2.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국제전인 ‘조선전쟁(1차 청일전쟁, 2차 러일전쟁, 3차 한국전쟁)‘을 통해 동북아 근현대사의 큰 줄기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와다 교수는 러시아사가 전공이지만 북한현대사와 한국전쟁에 대한 저작까지 남기고 있다. 하라 아키라(原朗) 교수 또한 청일·러일전쟁을 일으킨 근본 목적이 조선에 대한 지배권 획득에 있었다는 점에서 두 전쟁은 실제로 ‘제1차, 제2차 조선전쟁’인 셈이었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연결해서 '청일·러일전쟁'이라고 일컫는 순간 한반도의 중요성이 퇴색되면서 '메이지의 영광'이 전면에 부각되는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청일·러일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 2015)

러일전쟁을 "서구와 아시아를 묶는 ‘지(知)의 결절 고리’로 나타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는 야마무로 신이치(山室信一)의 시각 또한 빼놓을 수 없겠다.(러일전쟁의 세기, 2010)

3. 청일전쟁 발발의 원인에 대하여서도 와다 교수는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가고 있지만, ‘동학농민혁명’은 결코 ‘청일전쟁’의 원인이 아니고, 오히려 ‘청일전쟁’으로 인해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였다는 시각이 있다. 즉 1차 기포는 내정개혁을 위해 일어난 혁명으로서 내정 문제였고, 2차 기포는 일본이 ‘청일전쟁’을 전후하여 벌인 조선의 주권 침탈 만행에 저항하여 일어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안외순, 2020)

4. 최근 러일전쟁 연구의 새로운 경향 중 하나는 전쟁을 결정하고 수행한 국가나 정부, 군부 지도자의 정책이 아니라 전투에 직접 참여한 병사나 피해지역 민중의 삶 등 전쟁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토대로 전쟁의 사회사를 복원하는 경향이다. 또한 방법론적으로도 외교문서나 정부문서와 같은 공문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편찬한 戰史 등에만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회고록이나 견문록, 종군기자의 보고 등에 의거하여 전쟁의 참화 속에 휘말린 개인들의 삶을 복원하는 것이다. 물론 민중 스스로 남긴 기록이 없다는 점은 한계이지만, 전쟁의 실제 현장과 피해지역의 참상을 좀 더 가까이에서 기록한 자료들을 토대로 한 연구라는 점에서 새로운 의의가 있다.(서영희, 2016)

예컨대 이인직의 《혈의 누》를 다시 읽으며 청일전쟁에 대한 지식인의 시선을 돌아보고 있는 논문(정선태, 2015)이라든가, 일본 측의 전쟁견문록과 청일전쟁을 보도하기 위해 특별히 전쟁기간에만 간행된 잡지 및 통상휘찬 등을 이용하여 청일전쟁 당시 조선 전쟁터의 실상과 민중의 삶을 살피고 있는 논문(차경애, 2006, 2008), 모리 오가이(森鴎外)라는 군의의 종군 일기를 중심으로 러일전쟁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는 논문(박영선, 2015) 등이 그렇다.

5.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대한 일본과 중국 및 러시아의 연구동향을 좀 더 살펴봐야겠다. 그들의 연구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이 있을테고 거기에서부터 변별력을 키워나갈 수 있지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 아시아 - 1945-1991 동아시아 냉전의 재인식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노루 꼬리 만 한 오후 햇살이 서산에 걸리더니 이내 어둠이 내린다. 뒷산 대숲을 찾아드는 잘 새들의 시끄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2. 지난 가을부터 현대사를 읽어내는 방법으로서 ‘발전사’와 ‘냉전사’ 등의 관련연구동향을 찾아보고 있는데, 레이섬 (Latham, Michael E.)과 개디스 (John Lewis Gaddis), 베스타(Odd Arne Westad) 등의 책들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3. 코로나 시국이라 해가 바뀌어도 움직이기가 싫어 조용히 들어앉아 책장만 넘기고 있다. 프레시안에 오랫동안 연재했던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을 흥미진진하게 읽으며 그 패기만만함이 싫지 않았다. 오늘 그의 학위논문(중화세계의 재편과 동아시아의 냉전, 2015)을 간행한 《붉은 아시아》2019를 손에 잡았다. 뚜렷한 문제의식과 방법론에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여 엮어나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고, 이끌어낸 논지가 설득력이 있다. 그는 지역사의 지평, 즉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구조 변동의 측면에서 냉전을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상대적으로 사회주의진영의 역사에 소홀했던 냉전기 동아시아사를 온전히 복구하는 방편인 동시에, 냉전 구도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세계 판도를 G2(미중 양극 구도)로 바라보는 세계인식에 일정한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을 수 있는지를 타진하고 있다.

하지만 작금에 중국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활발한 편이다. 주지하듯이 역사학 영역에서 중국대륙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그것을 상대화하려는 시도가 크게 두 가지 범주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하나는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 중국대륙 중심의 중국사 서술을 비판적으로 해체하기 위해 중화민족 담론이나 중국 변경지역과 소수민족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높아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사 자체를 상대화하려는 연구가 ‘동아시아적 시각’에 입각하여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의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작업은 어떠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서양사 연구자로 출발하여 동·서양의 경계를 넘는 역사가를 꿈꾸던 임지현은 이제 지구적 기억 공간에서의 기억 활동가로 이동하고 있다폴란드 근현대사와 유럽 지성사에서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로 학문적 관심을 넓히며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국사의 해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등 탈민족주의 담론을 주도해온 그는 기억 연구를 통해 진짜와 가짜가해자와 희생자 사이의 회색지대를 누비며 전후세대의 역사적 책임을 돌아본다민족주의 기억을 탈 영토화해 국경을 넘어서는 기억의 연대를 지향하며 서구 중심의 기억 연구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차원의 기억 문화를 탐색하는 데 학문적 주안점을 두고 역사가에서 기억 활동가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2. 그는 바우만(Zygmunt Bauman) 세습적 희생자 의식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예컨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스피박(Gayatri Spivak)의 질문을 역사가는 들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되묻는다홀로코스트 생존자나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들의 증언을 보면서발턴이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이 듣지 못한 것이어서제노사이드나 일본군 성노예 같은 트라우마를 겪은 증인들과 만나는 장은 문헌 증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증인들을 취조하는 역사의 취조실이 아니라사실과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아니 사실과 어긋나기 때문에 증인들이 드러내는 깊은 기억에 귀를 기울이고 그 진정성을 복원하는 기억 활동가(memory activist)적인 태도라는 것이다요컨대역사가들의 작업은 곧 과거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만드는 작업이며이 점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역사가 기억 활동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3. 10년 이상 다국적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를 그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로 제시하고 있다이는 후속 세대들이 앞 세대가 겪은 희생자의 경험과 지위를 세습하고세습된 희생자의식을 통해 현재 자신들의 민족주의에 도덕적 정당성과 정치적 알리바이를 부여하는 기억 서사이다기억 서사로서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가해자 민족을 선험적으로 전제한다가해자가 없는 희생자를 생각하기 어렵듯이가해자 민족 없는 희생자 민족은 상상하기 어렵다그에 의하면 가해자 민족과 희생자 민족이 함께 구성하는 부정적 공생(negative symbiosis)의 인식론적 프레임은 20세기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지구사를 구성하는 연쇄 고리다.

 

이 책의 초점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역사보다는 그것을 구성하고 재현하는 기억의 역사에 놓여 있다사람들의 생각과 실천을 유도하는 문화적 기억은 문서자료의 실증적 보조 수단이 아니라과거를 재현하고 역사를 구성하는 인식론적 정치의 중요한 장치라는 것이다하여 이 책은 동아시아의 기억 체제에 대한 담론적 문제제기로 읽힌다.

 

저자는 21세기 민족주의를 포착하는 개념인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통찰함으로써 지구적 기억의 윤리를 모색하고 있다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천차만별의 모습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 중심의 문화적 기억이 그것에 도덕적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21세기의 지구화 조건에 맞게끔 민족주의를 재구축한다는 것이다궁극적으로 그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전제하는 가해자와 희생자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는 식민주의제노사이드홀로코스트 등을 근원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고 본다. 세습적 희생자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역사적 성찰이 21세기 문화적 기억의 서사적 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