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중세에서 근대로의 역사적 대전환 역사도서관 33
최종원 지음 / 길(도서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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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응종,《관용의 역사, 르네상스에서 계몽주의까지》2014.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관용'은 16세기에 등장한 '용인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얘기한다. 역사 속에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 관용도 이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해, '나'의 베풀기에서 '너'의 권리 존중으로 그 의미가 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해진 것은 근대에 들어 자연법과 자연권 사상이 발전하여 '개인'의 '권리'라는 혁신적인 개념이 등장한 덕분이다. 내가 어떤 종교를 믿고 어떤 사상을 가지는 것은 군주의 관용, 즉 용인과 관계없이 나의 자연권이라는 인식이 시작된 것이다. 볼테르는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타자를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로 관용이 자연권임을 주장했다. 프랑스혁명기에 나온 "관용을 불관용한다"는 놀라운 주장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관용이라는 말의 사용을 다소 주저하는 것은 관용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용서'라는 의미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관용이라는 말을 이렇게 16세기식의 협소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관용의 의미가 변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점에서도 관용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관용은 타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중세사회는 그리스도교가 지배한 사회이고, 근대사회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무기로 삼아 그리스도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사회이다. 성서와 ‘자연’에 새겨진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이지만, 역사 속에 드러난 그리스도교는 불관용의 종교이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그리스도교만이 ‘진리’요 구원의 길이라고 확신하여 그리스도교에 대한 내외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중세사회는 암흑기이며, 근대사회는 이성의 빛으로 암흑을 몰아낸 사회이다. 관용의 역사는 불관용적인 그리스도교로부터의 해방의 역사이다.

불관용적인 그리스도교교회를 무너뜨린 힘은 종교개혁보다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였다. 그리스도교의 지배를 받고 있던 서양사회가 잊고 있던 그리스 로마 사회의 부활을 뜻하는 르네상스, 그리고 그 르네상스의 연장이요 심화라 할 수 있는 계몽주의가 불관용적이고 미신적인 그리스도교에서 인간중심적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투쟁의 도구였던 것이다.

2. 최근 출간된 《종교개혁, 중세에서 근대로의 역사적 대전환》2026 에서 유럽 중세사가 최종원 교수는 종교개혁을 중세와의 단절이라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중세와의 연속성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15세기는 중세와 근대의 연속성을 증명하기 위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잇는 든든한 다리 역할을 한 세기로 재평가되고 있다. 15세기에 대한 해석이 바뀐다면 16세기의 종교 지형도 역시 바뀌게 된다. 중세사가로서 저자는 중세와의 연속성 속에서 종교개혁기를 유럽사 전반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 종교개혁을 중세와의 단절이라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중세와의 연속성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개혁 서사는 교회의 부패와 부조리에 대한 쇄신, 개혁, 정화이다. 그간의 프로테스탄트 프로파간다는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마틴 루터와 개혁가들의 운동이 발생했다고 본다. 16세기는 그간 유럽 내에서 공존해 오던 타 종교를 배타적으로 차별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했고, 체제 내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해외로 추방하거나 마녀사냥으로 박해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시기, 모든 지역의 종교개혁 운동에 관용의 문제가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했다. 그래서 이 책은 정화와 불관용, 사회규율과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관점으로 종교개혁을 읽어 나간다.

저자는 서양 역사의 최대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종교개혁사를 다차원적 분석을 통해 규명하고자 한다. 특히 독일 중심의 종교개혁사 서술,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중심의 서술에 머무르지 않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즉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스위스, 영국(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스페인 등 유럽 각국에서 벌어진 종교개혁의 내용을 밀도 있게 분석함은 물론,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맞서 로마교황청을 중심으로 벌어진 가톨릭 종교개혁사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서술함으로써 단순히 1517년의 사건으로서가 아닌 유럽 전체사 속에서 갖는 ‘종교개혁’의 의미를 깊이 있게 천착하고 있다. 유럽 중심 사관의 극복이라는 거창한 명제를 달지 않더라도 ‘우리의 시각’에서 서구의 종교사를 기술하고 있어서, 종교개혁의 정당성과 유럽의 근대를 연결하는 저자의 시도가 돋보인다.

3. 16세기 종교 문제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위의 책들은 유익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나아가 이를 다리 삼아 슈미트(이해영, 칼 슈미트-정치신학에서 지정학까지, 2024)와 푸코, 그리고 랑시에르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정치가 신학을 대체했다는 서사가 있지 않는가.

랑시에르는 ‘합의(consensus)’에 비판적이다. 현대 사회는 갈등과 차이를 제거하고 합의의 질서를 구축하려 하지만, 이것은 기존 감각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일 뿐, 진정한 정치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불화는 이러한 합의의 질서에 틈을 내고, ‘말해질 수 없던 것’을 말하게 하며, 가시적이지 않던 존재를 드러낸다. 정치란 그런 균열의 순간이며, 이때 미학은 결정적 역할을 한다. 예컨대 ‘데모스의 정치’를 보자. 랑시에르는 고대 아테네의 예를 자주 든다. 과거에는 ‘노예’나 ‘여성’, ‘민중’은 말할 수 있는 존재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들이 자신들을 정치적 주체로 선언하며 등장할 때 기존 정치 공동체의 감각 질서엔 균열이 일어난다. 이 균열이 바로 ‘불화’이며, 정치적 사건이다.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중세든 근대든 문제는 ‘질서의 근거’가 아니라 누가 질서를 말할 권리를 갖는가 하는 것이다. 그에게서 정치란 질서를 관리하는 체계가 아니라 몫 없는 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관용은 여전히 ‘배치’의 문제여서 진짜 정치적 순간은 관용을 넘어서는 균열이 아니겠는가. 불화는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무엇이 말해질 수 있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근본적인 정치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문학과 예술의 실천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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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김영민 논어 연작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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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중국은 동북의 만주에서 서부 신장과 티벳에 이르는 청대에 형성된 거대한 영역을토대로 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이른바 중원에서 한족을 중심으로 일어난 중화민족임을 내세워 왔다. 하지만 수많은 민족이 모여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그들에게 '공통의 역사적 공간'이라는 화두는 단순한 지식의 문제를 넘어 발 딛고 사는 땅에 어떤 정체성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 곧 중국은 어떤 나라이며 중국인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면 막연해 질 수밖에 없다. 이제 중국을동질적으로 통일된, 단일한존재로 전제한 뒤, 제국 시기 말까지 전제주의적 통치로 일관했으며, ‘유교가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함으로써 중국정치사상의 장기적 패권을 누렸다고 본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다.

2.     최근 김영민 교수의 저작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진작에 《중국정치사상사》에서 유형학적 접근법 대신 행위자 기반의 접근법을 택해 중국정치사상에 대한 비민족주의적이고 비본질주의적인 설명을 시도한 바 있다. 우선 그는 중국정치사상사라는 서사를 위한 지표로 왕조 교체 모델을 전제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사상가들이 정치적이라고 이해될 수 있는 일련의 큰 문제들에 대한 정치적 사유의 출현에 기여한 사회적 지적 과정을 찾아내고자 한다. 예컨대 계몽된 관습공동체, 국가, 형이상학 공화국, 정체, 시민사회, 제국 등이 그것들이다. 정치사상이란 전승된 지적 자원에 대한 창조적인 반응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이때 고전 텍스트는 종종 문화적 본질로 간주되어온 지배적인 가정들이 아니라 사상가들이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모식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후 중국과 중국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가며, 마지막으로 지금껏 많은 학자들이 중국정치사상 대부분을 전제국가를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해석해왔음을 비판한다. 요컨대 저자는 현대중국을 추동하는 핵심 원동력 중 하나가 중화라는 정체성 표지가 말하고 있듯이 어떻게 자신이 최고 존엄이라는 의식을 유지하는 동시에 어떻게 이 지구촌화된 세계의 일원으로 존재해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의식인 바, 중국정치사상 전통을 보다 역사적으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3.     그는 《논어》와 같은 텍스트가 어떤 근본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일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존재했던 특수한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고 있다고 본다. 사상사의 역설은 어떤 생각이 과거에 죽었다는 사실을 냉정히 인정함을 통해 비로소 무엇인가 그 무덤에서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며, 죽은 생각이 텍스트에서 부활하는 모습을 보려면 그 콘텍스트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논어 연작은 에세이·번역·해설·주석연구·번역비평을 아우르는 통합 프로젝트로, 1.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논어의 주제를 소개하는 에세이 2. 『논어』: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한 새로운 완역본 3. 『논어란 무엇인가』 공자와 논어의 세계에 대한 해설서 4. 『배움의 기쁨』: 논어학이편에 대한 심층 해설 5. 『논어번역비평』: 기존 한국어 번역에 대한 체계적 비평 작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듯 그는 《논어》를 매개로 해서 텍스트를 공들여 읽는 사람이 되어보기를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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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국 연구 - 미국 예외주의 신화를 넘어 너머의 글로벌 히스토리 10
앤서니 G. 홉킨스 지음, 한승훈 옮김 / 너머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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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읽어 나가다 보니 마침내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1400쪽도 더 되는 책을 한 권으로 펴낸 출판사도 참 대단하다. 부피가 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해가며 읽는 내겐 너무 불편했다. 하드커버만 아니었더라면 분책이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부제가 ‘미국 예외주의를 넘어서’인 이 책은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이보형 선생의 미국사 개설과 배영수 교수의 미국 예외론 연구서를 옆에 두고 수시로 확인해가며 읽었다. 특히 후자에서 미국 예외론 및 제국론 연구동향과 관련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미국 예외론은 미국을 역사의 보편적 발전 과정에서 벗어나는 예외적인 경우로 간주하는 관념이다. 그것은 미국인들의 집단적 정체성에 기초를 제공한 면면한 지적 전통으로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강조점을 바꿔온 담론이다. 미 예외론은 유럽 근대의 산물이자 그 극단적 자기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 시기 ‘자유세계의 리더십’, 9.11 이후 ‘문명의 수호자’, 심지어 인류세 담론에서의 ‘지구 관리 주체’라는 형태로까지 이어지고 있지 않는가. ‘보편의 주체로서의 예외’라는 신화를 체계적으로 해체하고 미국사를 유럽 제국주의 발전이라는 더 넓은 틀 안에서 재구성하고 있는 홉킨스의 연구는 미 제국을 이해하기에 시의 적절한 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이 독자적이고 예외적인 길을 걸었다기보다는 영국, 유럽 제국들과 유사한 궤적을 공유했으며, 따라서 예외적 미국사가 아니라 제국사 속의 미국사로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세계화의 세 시기를 초기, 본격적 산업화-제국화, 탈식민 이후의 포스트식민/세계화로 나누어 각각의 시기에 미국이 어떻게 제국적 글로벌 전략을 전개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미국 제국론에서 거대하고 포괄적인 ‘제국-세계화’ 관점의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책은 미국사를 유럽 제국사 및 세계사와 연결 짓고, 미국 내부만이 아니라 국제적-제국적 틀에서 제고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저자는 미국이 식민지 또는 제국으로서 갖는 의미를 재조명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미국사 서술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미국 제국성’을 역사적 맥락 속에 놓고자 한다.

그러나 그가 제국이라는 개념을 영토제국과 같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형태로만 설정함으로써, 더 복잡하고 ‘비 영토적 제국’ 혹은 비 정형 지배구조(네트워크형 헤게모니) 부분을 상대적으로 경시하고 있으며, 중심 분석이 영국 제국과 유럽 제국 중심의 비교 틀에 머물러 아시아-비서구권 맥락, 비 영토 지배구조, 군사기지 네트워크 등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있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

역자 후기를 읽다가 반가운 이름을 만났다. 이 책의 서평에 관여하고 있는 김광민 교수가 그 장본인이다. 그는 P. 퍼듀의 ‘중국의 서진’에 대한 역사학보의 기획서평에도 필자로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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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지리학 강의 민속원 아르케북스 232
한마오리 지음, 탕쿤 외 옮김 / 민속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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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지리학은 방대한 문헌기록은 물론이고 ‘시간과 공간의 융합’이라는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특정 지역의 명칭변화, 행정구역의 분리 및 통합, 강역의 변동을 추적하는 전통적인 ‘연혁 지리’에서부터 근래 역사문화지리연구 영역을 개척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탄치샹의 ‘중국 역사지도집’에 이르기까지.

예전에 ‘중앙유라시아사’의 저자 김호동 교수도 저술과정에서 지도 제작 앱을 사용하여 일일이 옛 지명을 직접 기록하여 역사지도를 만드는 수고가 있었음을 토로한 바 있다. 과거의 지명을 현재 좌표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공동체의 유산으로 체득하기 위해선 학문적, 사회적 요건들이 필요하다. 역사지도를 만드는 과정은 한 시대의 역사적 이해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던 공간을 ‘공통의 역사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작업이기에. 따라서 거기엔 적어도 ‘공간의 켜’를 드러내는 층위, 집단기억과 구비전승의 결합,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공간의 시각화 작업 등이 필요하다. ‘공통의 역사적 공간’이라는 화두는 단순한 지식의 문제를 넘어 발 딛고 사는 땅에 어떤 정체성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위에 언급한 탄치샹의 中國歷史地圖集 역시 새롭게 정의된 ‘중국’ 개념에 입각해 제작되었는데, 중국은 하나의 다민족 국가이며 중국의 역사는 각 민족이 함께 창조한 것이라는 기본 전제 아래, 1840년 아편전쟁 이전 청조의 판도를 역사상 중국의 기본 판도로 확정하고 있다. 즉, 中國歷史地圖集에 다민족으로 구성된 국가, 중국의 다민족이 함께 창조한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생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새로이 國史를 편찬하는 한편, 그 자신의 역사가 전개되었던 역사적 공간을 지도에 담아낸 것이 ‘中國歷史地圖集’이라고 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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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恩珍ㆍ柳賢貞, 譚其驤의 中國歷史地圖集 編纂과 中國現代歷史地理學의 誕生, 中國史硏究 103, 2016

설혜심, 지도 만드는 사람, 휴머니스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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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
이삼성 지음 / 한길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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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냉전사는 이 책을 통하지 않고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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