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를 발견하다 - 임진왜란으로 시작된 한중일의 현대
쑹녠선 지음, 김승욱 옮김 / 역사비평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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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위한 자료의 섭렵과 분석을 통한 빼어난 역사에세이. 강추!
동아시아의 현대 노정을 추적하는 일은, 내재적으로 전개되어온 동아시아 현대의 역사적 광경, 그것이 19세기에 도래한 ‘식민 현대‘와 맺은 복잡한 관계, 그리고 서구의 현대성에 대한 독점적 해석을 타파하는 과정을 탐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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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 서강학술총서 45
강희정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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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석불사를 세웠다는 기록(삼국유사 大城孝二世父母條)은 <향전(鄕傳)>과 불국사에 전래되던 〈사중기(寺中記)〉를 바탕으로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석굴암은 일제에 의해 재발견된 것이다. 석굴암을 포함하여 일제의 복원과 수리는 고적의 '기술적 근대화' 과정이었으며 이러한 유물 유적의 물리적 근대화는 박물관으로 옮겨져 관람되거나 관광의 대상으로 탈바꿈되는 탈맥락화로 이어진다. 이후, 석굴암은 한국미술의 정점이라는 위상을 갖게 되고,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전해진 석굴사원이자 불교미술의 꽃이라고 규정되어 타자 조선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타자화된 과거 중국과 조선의 미술은 '낭만화된 과거'이자 일본이라는 동양의 선구자를 뒷받침해주는 '화석'이며 '박물'로 기능했던 셈이다. 이 책은 석굴암에 대한 인식의 기초를 살펴봄으로써 그 패러다임의 형성 과정을 고찰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근대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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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의 후예들 - 티무르제국부터 러시아까지, 몽골제국 이후의 중앙유라시아사
이주엽 지음 / 책과함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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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했던 몽골제국은 칭키스칸 사후 제국의 영토적 거대함, 칭기스 일족 내부의 대립과 전쟁 등으로 초기의 통합성을 상실하고 정치적으로 비교적 자립적인 몇 개의 ‘울루스’로 분할된다. 즉 카안 울루스(大元)를 정점으로 서방의 3대 울루스로 나뉘게 된다. 하지만 당시 그들은 자기네 나라를 Yeke Mongɣol Ulus, 즉 ‘대몽골 울루스’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14세기 이후 몽골제국이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과 같은 유라시아 제국들의 출현과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티무르제국, 무굴제국, 우즈벡 칸국, 카자흐 칸국, 크림 칸국과 같은 강력한 계승국가들로 분화, 발전함으로써 ‘근대 유라시아의 형성’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메시지이다.

분명, 이 책은 기존 연구의 빈 공간들을 메꾸고 있어 궁금한 점들을 해소시켜준다. 그러나 한정된 분량에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담다보니 그것들이 가지는 문명사적 의미를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울러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성과들 역시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몽골제국이 열어나간 '세계사'의 의미가 이후 어떻게 전개되고 굴절되었는지를 충분히 살펴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이를테면 김호동 교수는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통합한 몽골제국이 세계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며,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 즉 유라시아 각 지역이 그 이전의 상대적인 고립성을 극복하고 유기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몽골제국의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강조한다.

각 지역·문명이 독자적인 역사발전의 내재적 계기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외부와도 단절되지 않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 왔다고 보는 입장에서 보면 서구에 의한 소위 ‘근대적 세계체제’가 성립되기 이전에 이미 유목제국에 의해 구대륙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강조될 수밖에 없으며, 이후의 전개과정 역시 이러한 시각에서 살펴봐야하지 않겠는가.


*

역사학과 네트워크 연결망의 관계에서는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역사학 연구방법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히 새로운 세계사(global history)에서 그 연구대상인 ‘세계’(globe)를 일종의 네트워크 연결망으로 가정해그 구조, 변화 및 역동성을 탐구하는 시각을 가리킨다./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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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 2020-09-17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몽골제국의 후예들>을 높이 평가하는 역사 전공자로서 들님의 서평에 다음과 같이 이의를 제기해 봅니다.   

1. 들님 왈 ˝분명, 이 책은 기존 연구의 빈 공간들을 메꾸고 있어 궁금한 점들을 해소시켜준다. 그러나 한정된 분량에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담다보니 그것들이 가지는 문명사적 의미를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들님은 <몽골제국의 후예들>이 이 책이 다룬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의 문명사적 의미를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그 ˝문명사적 의미˝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니 문명사적 의미를 살피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몽골제국의 후예들>의 목표는 ˝몽골 제국은 어떻게 되었는가? 어떤 유산을 남기고 세계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입니다. 이 책이 답으로 제시하는 메시지는 ˝몽골제국은 어느 한 시점에 소멸한 것이 아니라 여러 계승국가로 분화, 발전했으며, 주요 유라시아 제국의 등장에도 영향을 줌으로써 근대 유라시아의 출현에 기여했다˝입니다. 이 책의 전체 내용은 이 메시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논거들에 해당합니다. 이 논거들은 수많은 1차 사료와 국제학계의 최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백 가지 혹은 필요한 만큼의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 책이 제시하는 논거는 철저(exhaustive)하다고 봅니다)이 중요하지 각 논거와 관련된 하위 주제들을 지엽적으로 다루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굳이 ˝문명사적˝ 차원에서 따져 보아도 이 책이 놓친 문명사적 요소는 무엇인가요?   

일단 실제로 중앙유라시아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책이 역사적 사실들을 충분히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예컨대 

권용철의 역사책 소개 4편 - 몽골제국의 후예들https://www.youtube.com/watch?v=8_H7qUq4hXc&t=12s&ab_channel=%EA%B6%8C%EC%9A%A9%EC%B2%A0 

2. 들님 왈 ˝아울러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성과들 역시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들님은 <몽골제국의 후예들>이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성과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는데 국내의 어떤 논저들이 ˝몽골 제국 계승국가들의 역사˝와 ˝몽골 제국이 러시아, 오스만 제국 등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고 있나요? 예컨대 카자흐 칸국과 우즈벡 칸국과 크림 칸국 혹은 잘라이르 왕조의 역사를 학술적으로 깊이있게 다룬 논저들은 어떤 것이 있나요? 몽골 제국이 모스크바 대공국이나 오스만 제국 혹은 사파비 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자세히 다룬 논저들은 어떤가요? 북원 몽골에 대한 연구는 많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몽골제국의 후예들>이 놓친 내용은 무엇인가요? 

서울대 김호동 교수 저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가 <몽골제국의 후예들>이 다룬 몽골 제국 계승국들 관련 정보들을 그나마 가장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는 오류가 너무 많습니다. 

예컨대 <몽골제국의 후예들>에서 몽골계 국가로 다루는 잘라이르 왕조에 대해서 투르크만 계통이라고 적고 있습니다(172쪽). 그리고 잘라이르 왕조가 우와이스 사후 흑양조에게 멸망당했다고 적고 있습니다(172쪽). 잘라이르 왕조는 훨씬 후에 멸망했습니다. 같은 페이지에 티무르의 아들 샤루흐가 흑양조의 카라 유수프를 패배시켰다라고 적었는데 샤루흐는 카라 유수프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들을 패배시켰습니다. 티무르가 1370년대에 주치 울루스의 주요 교역 근거지를 파괴했다고 적었는데(162쪽) 이는 1390년대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티무르의 칭호 아미르가 지도자를 의미한다고 했는데(170쪽) 아미르는 군사령관을 의미했습니다. 티무르의 손자 할릴 술탄이 권력을 잡았으나 피살되었다고 적었는데(172쪽) 그는 피살되지 않았습니다. 나디르 샤의 침공으로 코칸드 칸국이 1733년 부하라로부터 독립했다고 적었는데(178쪽) 나디르 칸의 침공은 1740년에 이루어졌고 코칸드 칸국은 1733년 이전에 독립했습니다. 압둘라칸이 우즈벡 칸국을 1557년에 다시 통합했다고 적었는데(178쪽) 실제로는 1580년대 초입니다. 카자흐 칸국이 1720년대에 일어난 대기근 등의 이유 때문에 러시아에 복속했다고 했는데(206쪽) 카자흐가 러시아에 복속한 것은 대기근 때문이 아니라 준가르의 침공 때문이었습니다. 더 오류들은 이외에도 더 많습니다. <몽골제국의 후예들>을 보면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에 포함된 오류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몽골제국의 후예들>이 국내의 연구성과들을 많이 참고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 몽골 제국과 관련된 훌륭한 연구들이 많이 있지만 ˝(몽골 이외의) 몽골 제국 계승국가들의 역사˝와 ˝몽골 제국이 러시아, 오스만 등에 미친 영향˝에 대해 다룬 논저들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됩니다.      


3. 들님 왈 <몽골제국의 후예들>은 ˝몽골제국이 열어나간 ‘세계사‘의 의미가 이후 어떻게 전개되고 굴절되었는지를 충분히 살펴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이를테면 김호동 교수는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통합한 몽골제국이 세계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며,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 즉 유라시아 각 지역이 그 이전의 상대적인 고립성을 극복하고 유기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몽골제국의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강조한다. 각 지역·문명이 독자적인 역사발전의 내재적 계기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외부와도 단절되지 않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 왔다고 보는 입장에서 보면 서구에 의한 소위 ‘근대적 세계체제’가 성립되기 이전에 이미 유목제국에 의해 구대륙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강조될 수밖에 없으며, 이후의 전개과정 역시 이러한 시각에서 살펴봐야하지 않겠는가.˝
  
들님은 몽골 제국이 세계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며 세계사 탄생의 결정적 계기는 몽골 제국의 시대에 이루어졌다는 김호동 교수의 주장을 소개하며 <몽골제국의 후예들>은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왜 <몽골제국의 후예들>이 이러한 측면을 살피지 못했다고 들님이 보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몽골 제국이 셰계사를 탄생시켰다는 주장은 김호동 교수에 앞서 일본의 오카다 히데히로가 <세계사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오래 전에 한 주장입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는 1206년 몽골 제국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오카다 히데히로는 또한 “아시아와 동유럽에서 몽골제국은 서유럽에서의 로마제국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岡田英弘, 1999: 270)˝라고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몽골 제국이 실제 세계사의 탄생에 기여한 측면을 잘 보여 주는 책은 <몽골제국의 후예들>이 아닌가요? 몽골 제국이 세계사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김호동 교수와 오카다 히데히로의 주장은 이론 차원의 설명이었습니다. 몽골 제국과 관련된 세계사의 탄생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근대 유라시아의 형성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실제로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책은 <몽골제국의 후예들> 아닌가요? ˝(몽골)유목제국에 의해 구대륙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시각에서 이후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고 하셨는데 <몽골제국의 후예들>이야말로 포스트 몽골 시대의 여러 국가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하나의 (몽골 혹은 포스트 몽골) 세계를 이루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는 책 아닌가요?  

요컨대 <몽골제국의 후예들>은 몽골 제국이 세계사를 탄생시켰다는 김호동 교수의 시각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완/완성시켜 주고 있습니다. 

4. 실제 중앙유라시아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몽골제국의 후예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권용철의 역사책 소개 4편 - 몽골제국의 후예들https://www.youtube.com/watch?v=8_H7qUq4hXc&t=12s&ab_channel=%EA%B6%8C%EC%9A%A9%EC%B2%A0 
arşiv-i sema https://hanuur.tistory.com/87 

중소연구 44권2호 [서평] 몽골제국의 후예들 : 티무르제국부터 러시아까지, 몽골제국 이후의 중앙유라시아사 / 정세진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645564940 이 서평에서 정세진 교수는 <몽골제국의 후예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학문적 관심을 해갈해주는 학문 활동의 필수품˝인 동시에 ˝몽골의 후계 국가의 역사적 유산에 대한 내용을 정밀하게 다루는 책˝이라고 평합니다.  

역사비평(2020년 가을호) - 몽골제국 이후 중앙유라시아 세계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몽골제국의 후예들』(이주엽, 책과함께, 2020) / 최소영 

2020-09-17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지적 감사합니다. 제시한 공부거리들 좀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가나다 2020-09-18 0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들님 제 글을 다 읽어 주시고 또 참고해 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들님이 몽골 제국사 전공자라고 생각하고 제 견해를 길게 적어 보았습니다.)
 
의학의 철학 - 질병의 과학과 인문학
최종덕 지음 / CIR(씨아이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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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가 쏟아진다. 덕분에 최종덕 교수의 ≪의학의 철학≫(2020)을 진득하게 붙들고 앉아 읽었다. 참고문헌과 색인을 훑고 마지막 장을 덮자 이 책의 특장이 진화의학과 면역의학의 철학, 그리고 노화의학에 대한 서술에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들은 '정상과 병리'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통해 인간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질병이 생명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불안전과 결함이 생명 자체의 부분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일은 의철학의 가장 큰 과제라는 것이다.

선생의 오랜 연구 결과가 ≪생물철학≫(2014)과 이 책에 모여 있는 듯해 감사한 마음과 격려의 말씀 전하고 싶다. 토버(Alfred Tauber)의 ≪The Immune Self≫에 대한 선생의 리뷰 <면역학적 자아>를 대한 이래, 그동안 홈피를 드나들며 참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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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의 비밀
빌 헤이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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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사하게도, 자리에 들어 마음을 모으면 몸짓이 일어난다. 내 안의 주인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다. 오래전 지인의 도움으로 몸이 열리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짓이 일어나면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오열이 터져 나왔더랬다. 처음으로 내 안의 주인을 만난, 놀랍고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도와준 그이를 나는 지금도 멀리에서나마 사숙하고 있다. 당시 일어난 몸짓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 손에 잡은 책이 어리석게도 생리학과 해부학 개론서였다.

몸짓, 산스크리트어 무드라(Mudra)는 결인(結印), 혹은 수인(手印)을 뜻하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소리 나는 대로 문두루(文豆婁)라고 옮기고 있다. 겉 드러난 내가 내 안의 주인을 만나고자 할 때 이를 통해 서로 얘기 나눌 수 있지만, 인간의 인지능력은 너무나도 미약해 이를 온전히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명상은 인간의 존재가치를 실천, 구현하고자 하는 행위이기에, 수행이 깊어지면 궁극엔 하나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몸이라는 미시세계를 들여다볼 때 우리 자아는 겉 드러난 자아와 심층자아, 근원자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아를 효율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의식은 각기 여기에 대응하는 표상의식, 심층(매개)의식, 근원의식이 되겠다. 절집에서 이야기 하는 供養의 의미와 見性에 이르는 단계를 묘사한 十牛圖를 떠올리면 쉬 이해되리라 여겨진다.

2. 어리석은 나는 오늘도 몸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 책을 뒤적인다. 서양근대의학은 임상에서의 사례를 바탕으로 해부학과 병리학을 구축하였고, 그를 토대로 생리학을 발전시켜왔다.

저자 빌 헤이스는 《그레이 아나토미≫를 둘러싼 불가사의한 두 명의 헨리를 중심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동시에 저자는 ‘해부학’이라는 산을 만나고 그것을 넘기 위해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서 해부학 실습 강좌를 네 학기나 청강하며 두 해부학자의 미스터리에 다가간다. 하여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해부학 책’과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해부학도의 수련 과정’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저자는 160여 년 전에 살았던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 헨리 그레이와 삽화가인 헨리 반다이크 카터 두 사람의 비범한 삶과 천재성을 드러내면서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경이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어둠 속에 잠긴 그레이의 삶을 카터가 남긴 기록을 통해 되살려내고 있다.

3. 해부학자들은 ‘인체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강조한다.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완벽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해부학에 대한 이해의 상당 부분은 여러 신체 부위들을 동시에 다룸으로써 형성되고, 한꺼번에 다루는 신체 부위의 수가 줄어들면 이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인체가 작동하는 과정에 눈을 뜨면, 인체가 오작동하는 과정-즉 당신의 몸이 당신을 배반하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새삼 말하지만 시신을 이용한 맨눈해부학에서 배우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삶과 인생이다. 삶의 본질은 운동에 있다. 그렇다면 운동이란 무엇일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마지막 해부학 시간에 무릎, 어깨, 팔꿈치 관절을 해부하며 인간의 운동 메커니즘을 빠삭하게 알게 되었다. 눈을 깜박이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든, 팔과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폐를 들썩이든 운동이란 뭔가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다. pp.359-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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