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
이삼성 지음 / 한길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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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냉전사는 이 책을 통하지 않고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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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 정벌 - 은주 혁명과 역경의 비밀
리숴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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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상나라 정벌> , 상을 멸한 주와 화하의 탄생(翦商:殷周之變與華夏新生). 수많은 발굴조사보고서와 상고시대 문헌사료를 토대로 만들어낸 한 편의 대서사시를 읽은 느낌이다. 에필로그에 이르러 몰입감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연구노트를 연상케 하는 후기를 읽고서야 비로소 저자의 의도와 읽으며 가졌던 의문들을 대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2. 이 책의 내용은 최근까지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과 갑골문에 관한 연구 성과를 반영한 옛 문헌 다시 읽기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 것들이다. 저자의 연구와 합리적인 추론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가 돋보인다. 곳곳에서 만나는 저자의 추론은 역사의 문학성을 강조하며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의 자기인식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화이트(Hayden White)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란 사건에 대한기록을 바탕으로 역사가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역사는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서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며 서사의 의미는 오로지 역사가가 부여하는 것일 뿐 역사적 사건 자체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삶 자체는 이야기의 형식을 갖지 못하더라도 과거의 삶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은 이야기 형식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3. 그렇지만 하상주 교체의 역사를 재현하여 그 귀결로서 새로운 ‘화하의 탄생’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는 이 책은 개인에 의한 또 다른 夏商周斷代工程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단대공정이 서주 공화 이전부터 하 왕조 성립 시기까지의 연대 재구성을 목표로 추진된 거대한 국가적 프로젝트라면, 저자가 이끌어낸 결론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류의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상고사에서 현대에 이르는 중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저 '화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4. 정치 경제와 군사 부분에서 상나라의 ‘족’은 대단히 독랍적이었고 세습적이었다. 일부 외지의 ‘족’들은 또한 제후국이어서 ‘분봉제’나 ‘봉건제’의 사회 규칙에 속했다. 그 기초 원리는 사회 발전의 정도가 낮고 교통과 통신이 낙후되었던 까닭에 관료제를 통한 직접 관리 방식을 채용하기 어려웠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왕권은 각각의 ‘족’과 세습적인 권력 구조를 승인하여 전통적인 관습법 속의 이권과 의무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 문화는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측면이 있으나. 내부 사회는 또 분권체제로 운영되었다.

사회가 ‘족’을 기본 단위로 삼고 완비된 정부 체계가 없었으므로 부세와 병역 제도도 없었다. 이런 규칙 아래에서 왕이 직접 관리해야 하는 왕조의 사무는 비교적 적었고 가장 중요한 사무는 제사와 전쟁을 조직하는 일이었다. 요컨대 그것들은 모두 신권과 왕권이 합일된, 종교가 주도하는 사회였다.

다만 주가 상을 멸한 뒤로 살육과 인신공양제사를 특징으로 하는 옛 문명은 돌연 멈추었고, 그 대신 주공이 만든 새 문명이 나타났다. 주공에 대한 후세의 인식은 공적과 제도문화라는 두 분야로 나뉜다. 공적은 주로 성왕을 보좌하고 ‘삼감의 반란’을 평정하여 서주 왕조의 기초를 다졌다는 것이고, 제도문화는 주로 ‘예악을 제정’하여 제후국을 분봉하고 귀족 등급제도를 확립하는 등 서주의 정치 체제를 확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신공양제사를 지내는 종교의 퇴장으로 생긴 진공을 메우기 위해 주공은 새로운 역사 서사와 도덕 체계, 종교 이념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이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화하의 탄생’이다.

5. 하상주단대공정이라는 중국의 국가적 프로젝트는 일본과 구미학계에서 신랄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우리 학계 역시 동북공정이나 한반도 상황과 연계하여 심각한 우려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중국의 전래문헌에 나타난 고대사 상을 신뢰하는 경향의 중국고대사 인식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여러 공정들 못지않게 단군기년의 공식화와 고조선 관련 전래문헌 인식에서 그 불합리한 단면이 노출된 한국의 무리한 상고사 인식에 대한 재 성찰이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다. 문득, 지금은 절판된 윤내현 선생의 《상주사》와 《중국의 원시시대》가 생각난다. 그래서 후학인 심재훈 교수의 관련 논문도 찾아 읽을 수 있었다.

6. 이 책은 말미에서 공자 만년의 ‘육경’ 편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문왕의 《역경》과 그에 대한 해설서인 공자의 《역전》을 합쳐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고전으로서의 《주역》에 대한 서지학적 설명과 함께. 저자는 육경을 새로운 화하 문명이 가지는 독자적인 내용과 특징을 결정한 소스코드로 부른다.

7. 아무튼 상당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술술 잘 읽히는 이 책에 대한 전공자의 서평이 기다려진다. 모름지기, 질릴 정도로 이어지는 무수한 발굴보고서에 대한 분석을 독자들은 요령껏 읽으실 일이다.

*

안병직, 픽션으로서의 역사: 헤이든 화이트(Hayden White)의 역사론, 인문논총 51, 2004

심재훈, 하상주단대공정과 信古 경향 고대사 서술, 韓國史學史學報 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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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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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필드웤을 통해 작성된 인류학자의 민속지(ethnography)입니다. 송이버섯, 풍경, 전쟁, 자유, 자본주의 사이에 기묘하게 얽힌 이야기가 소설처럼 펼쳐지는데, 어제 막 역자 해제를 읽고나니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제가 사는 마을 뒷산에서도 송이가 납니다. 주변 동네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국유림이 많지만 마을마다 산 소유자가 다르고 운영 형태도 다릅니다.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고 경매에 부쳐 개인이 관리하는 곳도 있습니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책을 펼치자 말자 유혹하듯 저자가 말하는 저러한 삶이 가능할지에 대해선 의문이 듭니다. 좁은 이 땅에서도 가능한 삶의 형태일까요.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동해안 산불과 산림청의 정책에 맞서 싸우고 있는 최병성 목사와 같은 분도 있습니다. 정책이란 건 숲 가꾸기를 통해 생태적 다양성을 무시하며 잡목을 베어내거나, 경제성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산불이 난 후에도 화재에 가장 취약한 소나무만을 심는 등등의 사례가 되겠지요. 물론 소나무는 수목생태에서 최악의 조건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송이는 홀씨가 적당한 환경에서 발아된 후 균사로 생육하며 소나무의 잔뿌리에 착생하여 균근(菌根)을 형성하는 공생균(共生菌)입니다. 우리가 항용 버섯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땅 속 곰팡이가 만든 자실체란 얘깁니다. 곰팡이는 식물들을 잇는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저자는 균근이 숲을 가로질러 정보를 나르면서 생물종 간 상호 연결의 인프라를 형성하는 데 주목합니다.

기후위기로 오십 년 뒤 더 이상 휴전선 이남에선 소나무를 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인근에서도 수십 년 사이 참나무가 솔 숲을 파고들어 송이 채취를 불가능하게 만든 곳이 종종 보입니다. 온 산을 뒤지며 머리에 솔 갈비를 뒤집어 쓰고 숨어있는 송이를 찾아낼 때,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들이며 갓이 제법 핀 놈을 찢어 소주 한 잔 할 때 그 향과 식감이 주는 여유와 즐거움은 어느 것에도 비할 바 아닙니다. 버섯을 들어 이처럼 수 많은 창발적 사고를 던져주는 책은 여지껏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송이를 둘러싸고 많은 문제점들이 있기에, 인류학자인 저자가 제기하는 기본적인 어젠더를 저 역시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여러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숲과 소나무와 송이를 통해 우리 삶을 그리고 있는 진 풍경을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

남은 것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국가의 유효성과 자연 풍경에 대한 자본주의의 대대적인 파괴를 고려할 때, 우리는 국가와 자본주의의 기획 바깥에 있던 것들이 오늘날 왜 살아남았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다루기 힘든 가장자리의 것들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미엔인과 송이버섯이 오리건주에서 함께 모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이런 질문이 모든 것의 방향을 뒤집어, 예측 불가능한 마주침을 핵심적인 것으로 보도록 이끌지도 모른다. 위의 책 P51

자유를 쟁취한 사람이 받는 트로피처럼 여겨지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 헤매게 되는버섯이 어떻게 자본주의적 자산이 되는가? 그리고 그 후에 어떻게 전형적인 일본식 선물이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공급사슬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예상치 못한 배치를 이루며 연결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연결고리를 하나의 초국적 순환 노선으로 끌어들이는 번역 과정 또한 주의 깊게 봐야 한다. P119

저자가 제시하는 개념과 방법들은 인간 정신의 진보에 대한 실증주의적 서사와 달리, 일련의 부정적 전환점들을 취했던 레비스트로스의 설명방식과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통해 기존 사회과학/철학의 주관-객관이라는 이분법적 양식 대신 이질적인 연결망(heterogeneous network)으로 보는 시각을 강조하는 라투르에 많이 기대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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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11호
김민재 외 지음,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부 엮음 / 서울리뷰오브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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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받아 든 서리북 11호엔 그 어느 때보다 읽을거리가 많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최근 읽고 있는 책들과 관련된 서평이다. 서평자들이 관련 분야 전공자들이기에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몇 편을 읽어 치웠다. 김학재-한국전쟁의 기원, 백승욱-항미원조, 우동현-승리하는 비결(The Triumph of Broken Promises: The End of the Cold War and the Rise of Neoliberalism)등이 각기 서평자와 리뷰 대상 텍스트들이다.

요즘 지속적으로 유럽사와 러시아 역사, 그리고 동아시아사를 읽으며 냉전의 종식과 신자유주의의 부상이라는 현대사의 단면을 엮어 낼 수 있는 것들로 발전사로서의 근대화론과 냉전사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에, 최근 관련 저작들을 간행한 바 있는 서평자들의 학문적 감각과 통찰은 마치 연구노트를 읽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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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
와다 하루키 지음, 남상구 외 옮김 / 청아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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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1, 2》1981, 1990에 이어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2002가 거의 동시에 번역되어 이제 두 대작을 함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2. 와다의 ‘전사’ 한국어판 서문을 읽다 보니 눈에 걸리는 지점이 있다. “남북한 국민이 3년간의 전쟁을 과거의 일로 흘려보내고 평화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려면, 쌍방 모두 무력으로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에 발을 담갔다는 공통인식을 가져야 한다. 또 그러한 전쟁을 함께 반성하고 서로에게 사죄할 필요가 있다. 이 전쟁에 대한 공통 인식이 없는 한, 나아가 반성과 사죄의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한, 공존과 평화를 향해 도약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3. ‘일본인’의 전후 민주주의와 평화주의가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없이도 성립 가능하다는 인식을 와다의 자기배반으로 보는 비판이 있다.

“와다의 한반도 연구를 지탱하던 기본 관점은 1950년대부터 견지해온 탈식민과 침략비판이라는 관점인데, 반제국주의와 탈식민주의가 지적영위의 출발점이었음에도 동시에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와 평화주의가 ‘일본인’의 자연스러운 감각이라 평가하는 자기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반성의 결여와 평화주의가 분리되는 순간 전후의 새로운 식민주의는 고개를 든다는 지적으로까지 이어진다.

(김항, 2017, 평화, 천황 그리고 한반도 : 와다 하루키와 전후 일본 평화주의의 함정, 동방학지 179)

4. 하여 한국전쟁 시기의 일본을 연구한 남기정의 《기지국가의 탄생》2016은 더욱 시선을 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총력전 체제를 갖추고 ‘고도국방국가’가 되어 있던 일본은 전후 평화 헌법하에서 ‘평화국가’로 재기를 다짐했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기지국가’가 되어 국제사회에 복귀했던 바, 전후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 계승되어야 할 자산이거나 부정되어야 할 유산으로 자리 잡은 평화국가의 실상은 기지국가였다는 것이다.

‘기지국가’란국방의 병력으로서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동맹국의 안보 요충에서 기지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집단안전보장의 의무를 이행하고, 이로써 안전보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를 말한다. , 기지국가에는 평화헌법과 미일동맹이라는 모순이 동거하고 있었던 것으로, 일본은 기지국가였기 때문에 평화국가일 수 있었으며, 평화국가이고 싶다는 지향이 기지국가라는 현실을 묵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구호 하에 '정상국가'를 재촉하는 거친 발걸음은 전쟁 재발을 향한 가능성을 높여가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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