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어느 사학자의 에고 히스토리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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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사학자의 에고 히스토리-, 임지현, 소나무, 2016

역사가되기의 어려움. 역사학보 228, 임지현, 2015

 

1. 그는 역사학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글에서 ‘정체성’(identity)에 대한 본질주의적 파악보다는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identification)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이 더 적절한 방법이라며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되짚는다.

 

2. 일찍이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전공으로 택할 당시, 그는 서양을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비추어 한국사회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포스트식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서구의 헤게모니적 거울에 비추어 우리도 자생적 근대가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인정받으려는 비서구 역사학의 ‘인정투쟁’은 애초부터 ‘결과론적 서구중심주의’를 껴안고 출발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민족주의적일수록 더 서구중심주의적으로 되는 비서구 민족주의의 모순이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에선 1980년대 운동권의 NL-PD 논쟁을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 맑스-엥겔스의 민족 문제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맑스/엥겔스의 ‘서구중심주의’를 ‘자본중심주의’(Capitalo-centrism)라는 신조어로 바꾸어 변호한다. 사회주의가 성숙한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를 필요로 하는 한 맑스의 ‘자본중심주의’는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서구중심주의’는 ‘자본중심주의’의 불청객이라는 것이다. ‘문명의 진보’라는 관점에서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의 식민주의를 승인했던 맑스-엥겔스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선 1867년 이후 아일랜드 민족해방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변화된 맑스-엥겔스의 태도를 강조하며 비껴간다. 그를 일러 '맑시스트'라는 학위 논문에 대한 평가에 대하여 스스로를 '맑솔로지스트'라고 변명하는 부분을 읽다가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3. 그를 폴란드로 부른 것은 ‘맑스 이래 최고의 두뇌’라는 찬사를 받던 폴란드 출신의 유대계 맑시스트 로자 룩셈부르크였지만, 그 덕분에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게 되는 역설과 마주한다. 냉전체제가 무너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서구중심적 맑스주의, 붉은 오리엔탈리즘, 맑스주의적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가능했으며, ‘서양사’라는 학제적 정체성을 의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담론적 위치에 따라 움직이는 유동적 개념으로서의 ‘동양’과 ‘서양’은 결과적으로 ‘한국’과 ‘폴란드’의 교차점에서 서유럽과 동유럽, 동아시아를 함께 바라볼 수 있었던 독특한 포지션 덕분에 가능했으며, 독일 사회민주당의 실용적 개혁노선과 볼셰비키의 혁명적 주의주의의 가교 역할을 했던 폴란드 사회주의 운동의 독특한 위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볼셰비키 혁명처럼 좋은 헤게모니가 나쁜 헤게모니 대신 권력을 장악해서 물적 토대로부터 상부구조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변혁을 주도하면 세상이 바뀔 거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했다. 현실은 훨씬 녹녹치 않았으며, 법과 제도, 구조를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의 인식 지평 자체가 생산관계와 제도의 영역에 고정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권력의 지배와 착취가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여했고 그 최악의 결과는 당과 국가기관 노멘클라투라의 권력을 정당화해버렸다는 점이다.”

 

4.『당대비평』의 특집 '우리 안의 파시즘'을 기획하고 ‘일상적 파시즘의 코드 읽기’라는 역사-정치 에세이를 쓴 것은 이러한 반성의 결과었다. 법과 제도 차원의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서 역사적 행위자들의 매일매일의 사유와 실천이 민주화 되지 않는다면, 현실 사회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 사회의 민주화도 ‘자유’와 ‘해방’의 이름으로 억압을 내재화하는 일상적 파시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논지였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이는 것이 그의 에세이에 대한 일관된 관심이다. 역사학자라면 당면한 사회문제들과 대결하면서 그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실천적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인문학 위기에 대한 처방전이 되기도 하는데,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트랜스내셔널 기억 연구 등의 아이디어는 먼저 계간지 등에서 에세이를 통해 개진했고 한국 지식장에서 실천적 논쟁을 거치며서 생각이 더 다듬어지고 발전했다는 점을 술회하고 있다. 

 

 

뒤이은 ‘대중독재’론은 일상적 파시즘의 문제의식을 20세기의 독재 연구에 적용하려는 시도였다. 학문적으로는 먼저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 해석을 둘러싸고 폴란드 현대사가들이 제기한 도발적 문제 제기에 힘입은 바 컸음을 고백한다.

폴란드 민중이든 한국의 민중이든 현실사회주의나 박정희 체제같은 나쁜 권력을 지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덕분에 좌파독재와 우파 독재든 세계사적 근대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들이 서로 경합하면서도 서로에게 배우는 ‘트랜스내셔널한 사회 구성체’로서 ‘대중독재’를 보겠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한다. 특히 연구가 진행되면서 식민주의적 폭력과 홀로코스트의 연속성에 주목하게 되자, 민주주의와 독재를 서구와 비서구, 근대와 전근대, 혹은 정상과 일탈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범주화하는 세계사의 ‘상식’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게 된다.

5. 이후 그는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이라는 한·일 지식인 모임을 결성하여 동아시아의 지역 차원에서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국사’ 패러다임에 대한 동시다발적 비판을 시도한다. 한·중·일 삼국의 ‘국사’에 대한 동시다발적 비판을 강조한 것은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적대적 공범관계’를 드러내서 해체한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적대적 공범관계’의 고리를 끊음으로써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와 우경화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이라는 판단이었다. 그 밑에는 일본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데 공동전선을 결성해온 일본의 좌파 지식인과 한국의민족주의 지식인들 간의 신성동맹이 한반도의 민족주의를 정당화하고 결과적으로 다시 일본 열도의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정당화해 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한·중 간의 역사논쟁도 상황은 유사했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를 중국사의 공간적 범주로 규정하는 중국의 역사 교과서와 한민족의 역사적 활동공간을 한국사의 공간적 범주로 간주하는 한국의 역사 교과서는 곧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한국과 중국의 고구려사 논쟁은 오히려 더일찍 일어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고구려사의 국가적 귀속에 대한 주장만 다를 뿐, 근대 국민국가의 ‘국경’ 개념을 고구려라는 먼 과거에 적용하여 전유하려는 ‘국사’의 인식론은 논쟁 당사자들이 모두 공유하는 인식의 틀이었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창립기념 국제학술대회 <근대의 국경, 역사의 변경>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고구려사를 고구려인에게!’라는 모토로 ‘변경사’의 시각에서 고구려사 논쟁을 되짚어봄으로써, ‘국사’ 패러다임에 대한 학문적·정치적 대안으로 ‘변경사’를 제시하고자 했다

 

 

‘국사’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지구사’ 혹은 ‘트랜스내셔널 역사’를 살피며 그는 종속이론이나 섭얼턴 연구, 맑스주의 세계체제론이나 페미니즘의 이론과 문제의식을 자양분으로 삼아, 국민국가를 주역으로 삼는 서구중심주의적 역사상에 대한 비서구의 대안적 역사상으로서의 ‘지구사’의 의미를 강조한다. 지구적 관점에서 19세기 이후 근대 역사서술의 역사를 보면, ‘국사’는 유럽의 근대 국민국가에서 시작되어 식민주의의 이동경로를 따라 주변부에도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변부의 저항 민족주의가 실은 식민주의의 거울 효과라는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주변부의 ‘국사’는 민족주의의 형태로 식민주의 혹은 유럽중심주의적 담론을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이다.

6. 그는 ‘서양사’ 연구자로 출발하여 동·서양의 경계를 넘는 ‘역사가’를 꿈꾸다, 이제 지구적 기억 공간에서의 ‘기억 활동가’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그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세습적 희생자 의식’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예컨대, “섭얼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스피박(Gayatri Spivak)의 질문을 “역사가는 들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되묻는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나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들의 증언을 보면, 섭얼턴이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이 듣지 못한 것이어서, 제노사이드나 일본군 성노예 같은 트라우마를 겪은 증인들과 만나는 장은 문헌 증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증인들을 취조하는 역사의 취조실이 아니라, 사실과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아니 사실과 어긋나기 때문에 증인들이 드러내는 ‘깊은 기억’에 귀를 기울이고 그 진정성을 복원하는 ‘기억 활동가’(memory activist)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역사가들의 작업은 곧 과거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만드는 작업이며, 이 점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역사가’는 ‘기억 활동가’라는 것이다.

7. 그가 늘 주장하는 것은 이렇다. "인문사회과학의 독창성이라는 것은 개인의 학문적 수월성 여부를 떠나서 연구자 자신의 개인적 역사적 삶의 경험을 성찰적으로 천착하면서 그 경험을 추상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문제화할 수 있는 힘에 있다. 자신의 삶에 뿌리박은 고유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학문적으로 형상화 할 수 있는 역량이 뒷받침될 때 나름의 독자적 이론이 가능하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동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역사학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디에 착목하여 자신의 사론을 펼쳐나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는 점이다. ​분투에 분투를 거듭하며 자생적인 학문의 정립과 본격적인 인문학을 위한 그의 노력에 격려의 응원 아끼고 싶지 않다. 그는 내 가장 사랑하는 저자 중 한 사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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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조 2016-12-28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소나무 출판사 홍보 담당자 유현조입니다.

정성들여 작성해주신 리뷰를 보니,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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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8 09: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