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면 6월이다. 뜨아~~ (한 일도 없이 또 1년의 거진 반이 지나간 데 대한 비명성)
단순무식한 나는 몸으로 직접 느껴지는 온도보다도 달력이 한 장 넘어가며 달이 바뀔 때 더 진한 계절감을 느낀다. 3,4,5월은 봄이고 6,7,8월은 여름이고.. 하는 식으로. 그래서 내일모레부터는 바야흐로 여름인 것이다. 사실 이런 분류는 나만 하는 게 아니고 언론에서도 곧잘 한다. 오늘까지만 해도 뉴스 앵커는 "시민들은 공원에서 늦봄을 즐겼습니다" 어쩌고 했지만 당장 내일모레가 되어봐라. 금세 "초여름의 날씨가 참 따갑기도 합니다" 할 게 뻔하다.
난 추위를 무지무지 타기 때문에 겨울보다 여름이 훨씬 좋다. 겨울에는 가급적 바깥 출입도 삼간다. 겨울엔 학교도 가능하면 안 갔고, 회사도 최대한 놀 수 있는 만큼 논다. 여름휴가를 아꼈다가 겨울에 모아서 한꺼번에 겨울잠을 자는 식으로.. ^^ (난 곰이다~)
여름의 좋은 점으로는 우선 옷을 얇고 가볍게 입을 수 있다. 얇고 가벼운 옷이 어울려주는 몸매는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옷 여러 개 겹쳐 입는 걸 질색하는 나는 가벼운 티셔츠와 팔랑한 치마 하나면 오케이인 여름이 너무 좋다. 특히 여름엔 치마를 입어줘야 한다. 바지는 아무리 짧은 걸 입어도 걸리적거리는 느낌인데 반해, 바람이 잘 통하는 옷감으로 만든 시원한 무늬의 원피스를 입으면 몸에 닿는 감촉도 좋고 기분도 날아갈 듯하다. 그래서 여름 옷장에는 온통 원피스만 주루루룩. 백화점에서 올 여름에 새로 살 원피스도 몇 개 찜해뒀다. (그러나 그 전에 다이어트부터!!!)
또 하나 좋은 점은 미친 듯이 내리쬐는 태양! 이렇게 말하면 다들 '저 미친 것'이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_- 그러나 뜨거운 태양에 공기중의 수증기마저 다 날라간 듯 습도가 낮은 날(반드시 습도가 낮아야 한다. 찐득찐득한 날씨는 금물), 열기에 녹아서 약간 말캉해진 듯한 아스팔트를 밟으면서 끝없이 계속 걷는 걸 좋아한다. 선크림을 발랐어도 팔다리는 까아맣게 타들어가고 온몸의 수분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바싹 말라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까지 계속 걷는다. 그러다가 지쳐 주저앉고 싶어질 때쯤 마음에 드는 까페에 들어가서 마시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나 아이스티 한 잔! ^^
이러고 노는 게 난 즐겁지만 다들 맛이 간 애 취급을 해서 탈이다. 그래서 은밀히 혼자 즐겨야 한다. 부디 따라하지도 마시길. 그러다 일사병 걸려도 책임 못 지니까. 이런 건 나처럼 땀도 별로 안 흘리고 여름과 친한 사람이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좋아하는 여름에도 딱 하나,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데.. 그건 계절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낸 거다. 바로 여름=공포물의 계절이라는 것. 왜 이런 바보같은 스테레오타입이 생겨났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6월로 다가서면서 사방에서 또 징후가 보이고 있다. 서점에도 스티븐 킹류의 소설들이 스멀스멀 매장으로 잠입하고 있고, 초봄부터 만들기 시작한 '여름용' 공포영화들도 개봉을 기다리며 각 사이트 광고배너를 물들이고 있으며, 각 방송사들에서는 여름 특집 어쩌구 하며 작년에도 봤고 10년 전에도 봤던 몰개성 공포물 제작에 여념이 없다.
내가 그런 것들을 그냥 가벼이 웃어넘겨줄 만한 간뗑이의 소유자만 됐어도 이렇게 치를 떨지는 않을 텐데, 불행히도 그런 애들은 머리카락 끄트머리만 봐도 기절할 것 같다. 추리소설도 약간만 무서워도 못 보고 공포영화는 그 제목 보는 것마저 꺼려하며 어떤 책 안에 섬찟한 삽화라도 한 장 들어 있을라치면 그 책 자체를 내 방 근처에도 안 두는 내게, 이 여름은 참으로 헤쳐나가기 힘든 계절이다.
요즘 늘 가는 사이트 배너에 수시로 공포영화 광고가 떠서 사람을 기겁하게 만든다. 일 때문에라도 자주 가야 되는데 눈을 감고 인터넷을 할 수도 없고 너무 괴롭다. 새로고침을 누르면 다른 광고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눈을 감고서는 새로고침 버튼의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_- 그리고 잠깐 방심하고 있으면 어느새 다시 그 나쁜! 영화 광고가 번뜩이고 있고.. 아, 돌겠다아아!!! ㅠ---ㅠ (사실 지금도 그 사이트에서 도망와서 알라딘에 숨어 있는 중)
공포에서 오는 오싹함으로 더위를 이기자는 안이하고 무식한(내가 보기엔) 발상을 부디부디 집어치우고 좀더 획기적이고 신선한 더위 탈출법을 개발해주기를.. 그래서 나같은 사람들도 여름을 즐겁고 안전하게 보낼 수 있도록!!
* 지금 떠오른 생각인데 스팸메일 퇴치 프로그램처럼 공포물 광고배너 퇴치 프로그램도 있었음 좋겠다. 누가 개발 좀 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