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전쟁 (하)
닐 게이먼 지음, 장용준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닐 게이먼 판타지의 매력은 친근함이다. 굳이 먼 미래나 가상 세계를 창조하지 않고 현실 세계와 판타지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스타더스트'가 평범한 현실 세계와 월 너머의 마법 세계, '네버웨어'가 런던 지상세계와 지하세계를 넘나들었다면, '신들의 전쟁'은 미국에 동화된 과거의 신들과 그 내면에 깃든 신화세계를 넘나든다. 

과거 이주민을 통해 신대륙에 건너왔지만 이제 인류에게조차 잊혀진 과거의 신들. 믿음과 숭배를 잃은 그들은 미국 곳곳에서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 앞에 웬즈데이(오딘)가 나타나 새로운 신들, TV 인터넷 신용카드 등등과 맞서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독려하고, 우리 평범한 주인공 섀도가 그 신들의 싸움에 끼어들게 되면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이젠 숭배받지 못하는 옛 신화 속의 신과 현대인의 숭배를 받는 물신(物神)의 전쟁. 왠지 환상적이고 웅장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소설 속 싸움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마피아 같은 갱단들의 피의 대결에 가까울 정도다.  

웬즈데이에게 고용된 섀도는 새로운 신들의 '추파'를 피해가며 다양한 신들을 만난다. 그들을 통해 신과 종교의 의미는 무엇인지, 믿음이 사라진 신들의 삶이 얼마나 초라할 수 있는지, 속속들이 보여준다.

중간중간 '막간'을 이용한 신들의 신대륙 이주사도 색다른 읽을거리다. 오랜 항해 끝에 인디언과 조우한 바이킹 이야기, 유럽에서 죄를 짓고 팔려온 여자 죄수, 아프리카 노예선을 타고 온 주술사... 언뜻 줄거리와 동떨어져 보이지만, 신의 존재와 믿음(숭배)의 가치라는 전체 흐름에 이어진다.   

영화로 제작된다면 로드무비에 가까울 정도로 낯선 이방인의 눈에 비친 미국 대륙의 일상 모습을 함께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닐 게이먼이 영국인이었기에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미국인의 일상이 보다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별빛처럼

 2009.3.14-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들의 전쟁 (상) 환상문학전집 25
닐 게이먼 지음, 장용준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1월
구판절판


"난 진실인 것을 믿을 수 있고, 진실이 아닌 것을 믿을 수 있고, 사실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믿을 수 있어요. 산타클로스를 믿을 수 있고 부활절 토끼와 마릴린 먼로와 비틀즈와 엘비스와 미스터 에드를 믿을 수 있어요. 이봐요, 인간들이 완전해질 수 있다고도 믿고, 지식이 무한하다는 것도 믿고, 세상이 비밀 은행 카르텔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도 믿고, 정기적으로 외계인들이 방문한다는 것도 믿고, 주름진 여우원숭이 같이 생긴 착한 외계인들과 가축들을 못쓰게 만들고 물과 여자들을 원하는 나쁜 외계인들도 믿어요. 미래과 꽝이라는 것을 믿고 미래가 흔들린다는 것도 믿고, 어늘날 흰 버펄로 여자가 돌아와서 모든 사람들을 골탕먹일거라는 이야기도 믿어요. 모든 남자들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다 자란 애어른이라고 믿고, 아메리카에서 건전한 섹스가 쇠퇴한 게 이곳저곳 사방에 널려 있는 자동차 극장의 쇠퇴와 맞물려 있다는 것도 믿어요...-150쪽

...모든 정치인들이 훈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기꾼들이라는 것을 믿고, 그래도 그들이 다른 대안들보다는 낫다는 것도 믿어요. 큰 재앙이 닥치면 캘리포니아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거라는 것도 믿어요. 항박테리아 비누가 흙과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망쳐서 어느 날 '화성침공'의 화성인들처럼 감기로 멸종되고 말 것이라고 믿어요.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들이 에디스 시트웰과 돈 마키스라고 믿고, 옥이 용의 정자를 말린 것이라고 믿고, 수 천 년 전 전생에 내가 외팔이 시베리아 샤먼이었다는 걸 믿어요. 인간의 운명은 별에 있다는 걸 믿고, 공기 역학적으로 땅벌이 나는 것은 불가능하며, 빛은 하나의 파장과 입자이고, 어딘가에 있는 상자 안에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한 고양이가 있다는 것(상자를 열고 먹이를 주지않으면 그것도 결국 두 가지의 다른 죽음이 되겠지만)과 우주 자체보다 수십억 년 더 나이를 먹을 별들이 우주에 있다는 것을 믿어요. 나를 보살피고 걱정하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을 굽어보는 신이 있다는 걸 믿이요. 나를 보살피고 걱정하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을 굽어보는 신이 있다는 걸 믿어요. 우주를 돌게 하고 여자 친구들이랑..-151쪽

놀러 가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비인간적인 신에 대해서도 믿어요. 일상적인 혼돈의 신이 없는 텅 빈 우주와 백그라운드 소음과 순전한 요행을 믿어요. 섹스가 과대평가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섹스를 적절히 하지 못해서 그런다고 믿어요. 세상사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그만 것에 대해서도 거짓말할 거라고 믿어요. 절대로 정직함과 센스 있는 사회적 거짓말을 믿어요. 여자들의 선택의 권리, 아이들의 삶의 권리를 믿으며, -151-2쪽

사법제도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모든 인간의 목숨은 신성하면서도 사형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게 된다는 것을 믿어요. 인생이란 농담이고 잔인한 게임이며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생기는 것이고, 우리는 되받아 거짓말할 수 있고 그것을 즐길 수 있다고 믿어요."-15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름빵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2
백희나 글.사진 / 한솔수북 / 2004년 10월
구판절판


지난 여름 10개월을 갓 넘긴 우리 여경이에게 고모가 선물한 책입니다. 그때는 좀 이르다 싶었는데, 16개월 지난 요즘 들어 실력 발휘를 톡톡히 하네요. 구름빵을 침대 맡에 두고 있으면 밤잠이 들락말락할 때쯤 엄마 아빠에게 들고 와 책 읽어 달라고 조른 답니다.

토끼 인형, 곰돌이 인형을 좋아해 늘 손에 끼고 사는 여경이는 깜찍한 종이 고양이 캐릭터가 맘에 드는 모양입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 가며, 엄마, 아빠 합니다.

먹을 것만 보면 사죽을 못쓰는 여경이. 엄마 고양이가 구름빵을 빚는 모습을 보면 절로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빵을 유독 좋아하는 것도 구름빵 때문일까요?

매일 아침 여경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는 아빠 뒤꽁무니를 쳐다보며 잘가라고 손흔드는 여경이 모습. 아빠 고양이가우산 타고 훨훨 나는 모습을 보며 아빠 생각을 하는 걸까요? 아직 그림 내용을 이해하기엔 이르지만 엄마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예쁜 그림 보는 재미에 오늘도 책장을 넘깁니다.

구름빵 다 봤으니 이제 꿈나라로 가야할 텐데. 씽씽 웃는 것 보니 오늘도 잠 다 잤네요. 여경아, 구름빵 한번 더 읽어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기하와 얼굴들 - 1집 별일 없이 산다
장기하와 얼굴들 노래 / 붕가붕가 레코드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장기하와 얼굴들(출처: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beatlemom/)
  

달리면서 음악을 들어 버릇하진 않았다. 한두번 이어폰을 꽂고 달려보긴 했는데 자꾸 들썩거려 거추장스럽고, 행여 자전거라도 쌩 지나칠라 치면 위험천만이다. 그래도 무라카미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나쁘지않을 듯 했다.

오늘 꽂힌 노래는 장기하와 얼굴들. 지난달 새로 나온 음반이다. 처음 들을 땐 왠지 낯설고 어색했는데 두세 번째 듣고 나니 은근히 중독성 있다.

'나와'
에 맞춰 가볍게 몸을 풀고 '아무 것도 없잖어'를 들으며 집앞을 출발해 구파발역까지 달린다.

뭔가 비꼬는 말투.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어리석은 민중의 비애가 느껴진다면 오버일까.

광채가 나는 눈을 가진 선지자의 입술 사이로
그 어떤 노래보다도 아름다운 음성이 "나를 믿으라"
머리를 조아린 다음 거친 가시밭길을 지나 꼬박 석 달을 왔지마는

아무 것도 없잖어

푸석한 모래밖에는 없잖어
풀은 한 포기도 없잖어
이거 뭐 완전히 속았잖어
소들은 굶어 죽게 생겼잖어
딱딱한 자갈밖에는 없잖어
먹을 거는 한 개도 없잖어
이건 뭐, 뭐가 없잖어
되돌아갈 수도 없잖어


마침 은평뉴타운 공사가 한창인 구파발역 주변은 온통 황량하기만 하다.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을 들을 때쯤 옛 통일로 구파발 삼거리를 지나지만. 새 통일로가 뚫린 요즘 옛 정취는 남아있지 않다. 진관동 주민센터 앞 익숙한 '통일로' 표석만이 이곳이 한때 서울 북부의 교통요충지였음을 증명할 뿐이다.

새로 지은 은평뉴타운 2지구를 돌쯤 가사와 달리 경쾌한 '나를 받아주오''그 남자 왜'가 흘러나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그 남자 왜 나에게 마음없는 척' 미미시스터즈의 코러스가 인상적이다.

30여분 뒤 출발지로 들어올 때쯤 드디어 '싸구려커피'가 흘러나온다. 추적추적한 가사에도 커피가 당기는 건 왜일까?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 맞춰 마무리운동을 한다. 톡톡튀는 후렴구가 체조 음악으로도 딱인 듯.

그런데 웬 반전. 맞바람을 맞으며 열심히 달려왔더니, '느리게 걷자'고 한방 먹이네.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만큼 뛰다가는
아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마리도 못보고 지나치겠네

웬만큼 달려도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아가씨 얼굴 볼 틈 정도는 있다는 말씀.^^;

집안에 들어와 손수 탄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별일없이 산다'로 깔끔하게 마무리.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이것 참 물건이다.

                                                                                        *별빛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른셋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테네에서 첫 풀코스를 달렸고 난 서울에서 다섯번째 풀코스를 달렸다
 

표지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뒷모습은 전형적인 마라토너다. 크지않은 키에 근육질이 아닌 비교적 마른 체형, 가는 발목에 탄탄한 다리. 42.195km를 달리는 데 아주 경제적인 몸매다.  

사실 그처럼 가벼운 걷기와 조깅으로 시작해 5km, 10km, 하프, 풀을 끊고 울트라마라톤이나 트라이애슬론까지 도전하는 과정은 '마스터스'라 불리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겐 거의 통과의례에 가깝다. 하지만 환갑이 되도록 25년 넘게 매년 풀코스 완주에 성공한 이라면 이 바닥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꾸준함이 미덕인 마라톤에선 세계신기록 제조기인 게브르셀라시에 못지않게 귀한 존재인 셈이다.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그가 마라토너란 사실은 솔직히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10여년 전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뒤 한때 무라카미 소설에 빠진 적도 있지만 그동안 내게 있어선 '과거'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내게 다가왔다. 소설도 아닌 달리기 이야기로. 

사실 이 책 역시 내가 마라토너가 아니였다면 쉽게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나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슷한 나이(33세)에 달리기를 시작해 지난 3년 동안 풀코스 5번을 완주했다. 기록도 3시간 30분대인 한창 때 그에겐 못 미치지만 '서브4'는 어렵게 달성했다. 

이 책은 그의 달리기 인생에 관한 글이자, 글쓰기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는 4장 제목이 이를 압축한다. 전혀 비교할 게 못되지만 역시 '글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달림이로서 이 책을 보는 감회는 남다르다. 바로 '공감'이다.  

왜 그렇게 힘들게, 때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달리냐고 묻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128쪽)

그가 말했듯 글쓰는 데 필요한 재능도, 꾸준한 성실함도 갖추지 못한 나 같은 이들에게 마라톤은 이처럼 달리는 것 이상의 많은 가르침을 준다.  

사실 내가 이책을 읽기 전 난 6개월 가까이 달리기를 중단한 상태였다. 하루키처럼 '러너스 블루' 같은 거창한 이유도 아니다. 지난해 3월 동아마라톤에서 최고기록 달성 이후 목표 잃은 기러기처럼 달리기를 조금씩 일상에서 밀어내고 있었다. 

물론 갖다댈 핑계는 많다. 이사온 뒤로 마땅히 뛸만한 조깅코스도 없고, 매주 일요일 훈련하는 한강과의 거리가 2배는 멀어졌다. 하지만 핑계는 핑계일 뿐. 덕분에 그간 몸무게는 3kg 늘었고, 얼마전 자전거 타고 언덕을 오른 뒤 하늘이 노래지고 숨이 막힐듯한 빈혈증세까지 다시 찾아왔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다. 마침 이 책을 접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조깅을 시작했다. 
주어진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나를 효과적으로 연소시키기 위해...

                                                                      *별빛처럼

2009.3.2-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