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터>를 리뷰해주세요.
스웨터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
글렌 벡 지음, 김지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나약한 면을 안고 살아가기에 실수라는 것을 한다. 그리고 후회라는 것도 한다. 인생에서 관록이 생기는 것은 어쩜 그런 후회를 줄여온 단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젊은 날의 치기는 흔하디 흔하다. 열두 살 에디는 점점 후회가 깊어지는 행동과 말을 일삼으면서도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는 아이였다. 불러올 파장을 알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는 일을 줄일 수 있겠지만, 마음 속으론 브레이크를 당겨야 한다는 것을 앎에도 에디는 멈추지 못했다. 에디도 처음부터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넉넉하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빵집 아들로 엄마 아빠와 행복하게 살았다. 아빠의 빵집을 돕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평범한 열두 살 소년 모습 그대로였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 모든 것이 행복이었음을 에디는 너무 빨리 깨달아 갔다.

 

  엄마가 아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생한다는 것은 에디는 충분히 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는 꼭 자신이 갖고 싶었던 자전거를 선물로 받고 싶었다. 일 년 동안 자전거를 받기 위해 살았다 할 정도로 착하고 유순하게 굴었다 자신한 에디는 꼭 그 자전거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장담했다. 그러나 엄마가 에디에게 준 선물은 스웨터였다. 그것도 엄마가 손수 뜬 스웨터였다. 오로지 자전거만 기대하고 있었기에 스웨터를 받은 에디는 심통이 났다. 자전거를 사줄 수 없는 형편과, 그토록 자전거만을 바라며 지내온 시간이 분하고 억울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외할아버지 댁에 가면서도 에디와 엄마의 공백은 줄어들지 않았다. 엄마가 다가가려 해도, 에디는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았기에 더 심통을 부릴 수 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댁에 가서도 아슬아슬하게 심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피곤한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에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할아버지도 지친 딸의 모습을 보면서도 에디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에디는 그제서야 괜한 심통을 부렸다고 후회하지만, 이미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엄마와 에디가 탄 차는 사고가 난다.

 

  거기까지가 에디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불행은 오지 않을 것이며, 에디의 고집이 사춘기를 맞이한 소년의 치기였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가 편안히 책을 읽어나가도록 두지 않았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란 추측을 무참히 깨트리며 에디의 엄마는 사고로 죽는다. 그때부터 긴장하며 읽기 시작했다. 책 내용이 그저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은 뒤집혔고, 앞으로 에디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빠를 잃고, 그 상처도 치유되지 않았는데 엄마까지 잃어버리다니. 자신의 고집으로 차를 몰다 엄마가 돌아가시다니. 에디는 이제 세상을 믿지 않았고, 자기 곁의 사람들도 다 떠나갈 것이라며 더더욱 못된 아이로 성장해 갔다.

 

  할아버지 댁에서 살게 된 에디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자책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엄마가 죽은 것을 할아버지 탓으로 돌리고 막말을 일삼고,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친구를 부러워했다. 할아버지가 그런 에디를 변화시키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자신의 상처 속에서, 세상을 향한 불신에서 도무지 돌아설 줄을 몰랐다. 올바른 행동과 마음가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키지 않았으므로 예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엄마 아빠에 대한 그리움보다 온통 엇나가는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어 더욱 심술을 부렸다. 언제든지 손을 내밀면 도와줄 사람이 있고,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무척 사랑한다고 할아버지가 아무리 말해도 에디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다 알고 있는 듯한 말을 해주는 이웃집 농장의 러셀 할아버지가 더 편안했다.

 

  이상한 몰골을 하고 있는 러셀 할아버지는 에디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단지 한 마디를 건넸을 뿐인데, 에디는 러셀 할아버지 앞에서 엉엉 울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할아버지의 말을 조금씩 귀담아 들었다. 에디가 할아버지댁에서 가출해 폭풍 한가운데 있을 때에도 자신을 도와주었던 사람은 러셀 할아버지였다. 아무도 자신에게 오지 못한 상황, 어떤 누구도 자신을 구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러셀 할아버지는 에디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에디가 그 폭풍우를 뚫고 나올 수 있도록 에디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에디 자신 뿐이었다. 러셀 할아버지의 말들은 익숙한 충고였지만, 난관에 봉착한 에디에게 그런 에디를 바라보고 있는 독자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에디가 무엇을 회피해 왔는지, 두려움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여실히 보여주면서 에디의 부모님은 에디를 위해 그런 두려움을 극복해 왔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에디는 충분히 고통을 느꼈기에 갇혀진 내면 안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며, 삶을 좀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꾸 엇나가는 에디를 지켜보는 것도 슬슬 지쳐가던 차에 제대로 된 깨달음이 왔으니 마음 놓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안심까지 저자는 무참히 깨트려 주었다. 정말 다행일 수 밖에 없는 반전이었지만, 에디를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 눈물이 나도록 독자를 내버려 뒀다는 생각에 조금 심통이 났다. 심통이 나는 것을 보고, 에디가 깨달은 것을 진정 깨닫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를 풀리면서 허탈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에디에게 닥친 불행을 보며 마음 아파 하고, 실재로 그런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많다는 생각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보다, 왜 똑바로 서지 못할까라고 질책할 때가 더 많았다. 에디가 그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나왔던 고통이 나의 폐부를 찔렀기에 다행스런 현실이 허탈하면서도 씁쓸했으리라. 에디의 고통이 나에게도 이미 존재하기에 마음이 더 아파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만들어놓은 고통의 벌판에서 잘 이겨냈으면 한다. 자꾸만 어긋나는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나 혼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도 그런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하면서 동류의식을 갖었으면 한다. 에디를 도와주었던 러셀 할아버지의 존재를 생각해 보면서.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내면의 상처를 엇나가게 하다 치유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자아를 찾기에 혼동스러운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인생이란 길을 걸어가면서 부딪히는 가장 어려운 일은 말이다, 그 여행을 이어갈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믿는 거란다.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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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 책을 1+3 이벤트 할 때 구입했건만, 달랑 한 권 읽고 방치해 둔 상태다. 조금 어렵기도 했거니와 도통 책을 열어볼 기회가 닿지 않았다. 조금씩 보통 책을 모으면서도 <우리는 사랑일까>만 유독 구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을 기회가 닿아 내심 반가웠다. 이 책으로 인해 보통과의 재회를 불태우길 어느정도 소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책은 '어렵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어서인지 책을 펼치면서도 긴장 되었다. 읽다가 덮어버리면 어쩌나, 어렵다라는 인식이 더 강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초반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철철 넘치고 있었으므로.

 

  최근들어 읽은 연애소설은 좀 가벼워서 무게감 있는 책을 찾던 중에 읽게 된 <우리는 사랑일까>도 연애소설이지만, 타인의 사랑을 지켜보는 구경꾼에 머무르도록 독자를 놔두지 않는다. 사랑을 갈망하다,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또 다시 사랑을 한다는 간단한 스토리지만, 그 안에 내제된 것은 무궁무진했다. 이를테면 연애를 하면서 갖게 되는 고뇌와 외로움, 상대에 대한 신뢰의 유무를 거침없이 끌어내고 있었다.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적절한 비유와 독특한 예시로 이해를 돕고 있는 것은 물론, 그런 감정을 갖었다는 사실이 지극히 정상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했다. 보통 특유의 철학 사상을 접목 시키며 사랑에 대해, 내면의 변화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도 유쾌했고, 소설 속에 거침 없이 그림과 도표를 인용하는 것도 신선했다.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그만의 세계를 이뤄나갔기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벼운 연애소설과 지지부진한 연애소설을 살짝 버무려 줄 수 있는 소설을 만나보고 싶다는 갈망. 그것을 '지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통해서 어느정도 갈증 해소를 하게 되었다. 나 또한 여자이기에 주인공 앨리스의 시선에서 풀어 나가 더 많은 공감을 했을지는 몰라도, 빤한 스토리를 이렇게 승화시키는 저자의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는 도중 지인에게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이 '이러이러 하다'라고 말했더니, 소설가 김연수님의 말을 빌려 '알랭 드 보통은 틴 에이저(Teenager)의 우상이고, 수잔 손택이야 말로 경지에 오른 소설가'라고 말해 주었다.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않아 김연수님의 말을 제대로 옮겼는지 모르겠지만(곡해하지 않기를), 거침없이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김연수님 때문에 킥킥대고 말았다. 그 말을 한 지인에게 수잔 손택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자, 좀 어렵다는 말이 들리기에 그렇다면 틴에이저의 우상인 알랭 드 보통에 푹 빠져 보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런 일화에 부응하듯 보통의 소설은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고, 틴에이저의 소설을 승격(?)시킨 보통씨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연애를 하지 않은 시기에 그런 착각에 빠지기 쉽다. 어느 날 문득, 나에게 꼭 맞는 사람이 나타나서 깊은 사랑에 빠질 것이다라는 환상. 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기다림에 지쳐 있던 앨리스에게 그야말로 완벽한 애인이 나타난다. 우연히 파티에 갔다가 만난 에릭(에릭을 만나는 설정이 너무 빤하긴 했지만)과 하룻 밤을 같이 보내고, 그들은 연인이 된다. 런던에서 광고회사를 다니는 앨리스와 금융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물질적, 개인적 위치까지) 에릭의 만남은 시기적절했고, 잘 어울렸다. 앨리스의 매력이 소소할 정도로 에릭은 완벽했다. 외모, 물질, 직업까지 남들 앞에 내놓으면 저절로 목에 힘이 가는 애인이었다. 하지만 서로를 알아가면 갈수록, 무언가 부족한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눈에 띄었다라기 보다 내면적으로, 느낌으로 알아차렸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책의 시작에 '앨리스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의 입에서는 대뜸 '몽상가'란 말이 나왔다.'라고 했듯이 앨리스의 내면과 생각에 점점 어긋나는 사람이 에릭이었다.

 

  에릭을 사랑하면서도 점점 자신의 시선에서 엇나가는 그에 대한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앨리스를 공감하기도 했다. 사랑일까 아닐까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문제였고 앨리스가 나아고자 하는 길을(대화의 길이든 미래의 길이든) 자꾸 차단시킨다는 것에서 혼란스러워 했다. 똑똑하고, 매너있고 겉보기엔 완벽해 보이는 에릭은 앨리스와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모호해져 갔다. 앨리스가 늘 자신이 '에릭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란 말을 자주 했듯이 에릭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큰 일에 대수롭지 않아 했고, 작은 일에 열을 내며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에릭을 쳐다보는 것은 깜깜한 어둠 속을 헤메는 것과 같았다. 그와의 미래는 아무런 희망도 비추지 않았고, 길도 펼쳐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앨리스가 쉽게 결단할 수 없는 것은 에릭을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부분에서 많은 연인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발전을 자꾸 차단하고,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의 존재 자체로도 굉장한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앨리스는 점점 에릭이 전자에 속한다고 생각했고, 후자에 속한 사람은 필립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결국 에릭과 헤어지고 필립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것으로 책은 끝이 나지만, '사랑일까'라는 물음에 정확한 답이 없다라는 사실에 반박할만한 무엇가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 없다. 에릭과 앨리스의 만남은 흥미로웠지만, 금새 결말을 예고하게 만들었기에 장황하고 생뚱맞기도 한 저자의 사랑에 대한 해석과 고견 때문에 책을 읽는 재미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끌어 모으고 뱉어내느라 책이 길어졌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세밀한 심리묘사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착각이 일 정도의 표현들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진부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사랑. 알랭 드 보통의 독특한 시선으로 인해 그야말로 새로운 시각으로 사랑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진부보다는 시니컬하게, 열정보다는 담담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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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시에인션 러브>를 리뷰해주세요.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책의 띠지에는 '반드시 두 번 읽고 싶어지는 소설' 이라고 되어 있지만, 내게는 그런 기력이 남아 있지 않다. 독특한 구성에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에 내가 쌓아온 이미지가 한 순간 무너져 내려 허탈했다. '속였다' 라고 말하기도 뭣하고 '속았다'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책의 반전은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책의 구성을 알고 읽는다면 재미없을 것 같고, 아예 모르자니 내가 느낀 허탈감이 전해질까 염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Side A를 읽어나갈 때의 속도감을 기억한다. 첫사랑의 설레임이 그득한 추억을 더듬는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장은 쉴새없이 넘어갔다. 우연히 미팅에서 알게 된 마유와 스즈키의 사랑이 조금씩 성장하며 하나가 되어 가는 애틋함이 전해져 왔다. 그 순수함에 빠져 한없이 환상을 품어보기도 하고, 현실적이면서 솔직담백한 그들의 모습이 예뻐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Side B에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이 종종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받곤 했지만, 책의 마지막에서의 그 서늘함이란. 내가 지금껏 읽어온 이야기와 만들어온 인물들의 이미지, 책의 분위기가 잘못된 것인가 하는 멍함이 나를 지배했다. 해설을 읽고, 내가 느낀 혼란스러움을 가늠하긴 했지만 뒤죽박죽 엉망이 된 소설의 일부만이 남아있을 뿐, 많은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혼란스러워 '완전판 해설'을 찾아 읽어보았다. 결코 짧지 않은 해설을 처음엔 궁금증이 풀려간다는 사실에 흥분해서 열심히 읽었다. 그러나 세세히 지적되고, 숨겨진 의문이 풀려 갈수록 소설이 조각조각 찢겨진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하나의 이야기에 반전도 모자라서, 이렇게 수 많은 조각을 드러내고 있다 생각하자 원래의 형태는 사라져 버렸다. 흩어지고 분리되어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의 이미지의 세계에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종종 느꼈던 '엇!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설명해주는 것은 좋지만, 추리소설을 방불케하는 구성과 복선에 개끗이 속아 넘어간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간단한 해설이 뒤따랐을 때만 해도, 그럴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스토리가 해체되고 나자 내가 간직한 이야기는 이미 다른 이야기가 된 후였다.

 

   Side A와 Side B는 양면의 성격을 띈 것이 아니라, 동시진행형이었다. 이 책을 읽어가는게 가장 큰 포인트이기 때문에 처음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연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기에 Side B를 읽어나가면서 기분이 점차적으로 가라앉았다. Side A에서 그렇게 애틋하고 순수했던 스즈키와 마유는 스즈키의 발령으로 원거리 연애를 하게 된다.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해야 하는 스즈키와 매주 마유를 보러 내려와야 하는 고충을 이해못한 바는 아니다. 조금씩 지쳐가고 순탄치 않게 흘러가는 마음이 비져나온 것은 어쩜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처럼 잘 드러맞는 것이 원거리 연애만한 것이 있을까. 스즈키의 사무실에는 매력적인 미야코라는 여성이 있었고, 마유와 비교하면 할수록 조금씩 마유가 멀어지는 느낌을 어쩔 수 없었다. 미야코가 자신에게 고백을 하고, 마유가 임신을 하고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날 수록 스즈키는 점점 변해간다. Side A에서의 순수하고 다정다감했던 스즈키가 아니었다.

 

  거기서 눈치를 챘으면 좋았으련만. Side A에서의 스즈키가 아니라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 다른 인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사랑도 언제든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그저 안타까운 시선으로 스즈키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유에게 한 없는 연민을 느꼈고, 변해가는 스즈키를 이해하면서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이를 떼고, 스즈키까지 잃어가는 상황을 마유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상상만 해도 우울하기만 했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미팅, 단체로 놀러갔던 눈부신 바다, 첫 경험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씁쓸함을 자아냈다. 그런데 조금씩 의심의 싹을 뿌려놓던 책의 결말에서 그 모든 것을 다 뒤집어 버렸다. 미야코가 스즈키를 '다쓰야'라고 부르며, 책에는 나와 있지 않던 마유와의 추억을 떠올린 스즈키의 회상. 스즈키는 스즈키였지만, Side A에서의 스즈키가 아니었고, 마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었다.

 

  Side B의 스즈키가 양다리를 걸쳤다면, 마유도 양다리를 걸쳤다. 성이 같은 스즈키라는 두 남자였기에 이 소설은 가능했다. 또한 중복되는 시기가 있었기에 독자들은 의심하지 않고, 한 사람의 스즈키라고 생각했으며 마유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마유는 Side B의 스즈키와 먼저 사귀었고, 원거리 연애가 시작되고 우연히 미팅에서 또다른 스즈키를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순서가 뒤바뀐거라고 생각했지만, 해설을 보니 그제서야 곳곳에 뿌려졌던 의심의 씨앗들이 정상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독특한 소설임을 인정하며, 철저히 계산된 복선과 구성에 저자의 노고를 인정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처음 갖었던 마유와 한명의 스즈키에 대한 이미지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기에 어떤 이야기로도 기억할 수 없다. 오히려 Side B의 스즈키가 지극히 정상적이었고, Side A의 스즈키가 순수하고 속았다는 느낌, 마유의 능수능란함의 기교를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한 편의 연애소설이 추리소설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반전의 묘미보다 고통이었음을 고백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독특한 소설이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추리소설을 좋아하거나, 독특함의 묘미를 즐기기를 좋아하는 독자.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다쓰야?"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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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조금씩 봄기운이 찾아오는 이때, 많은 솔로들의 갈망은 연인이 생기는 것이다. 겨우내 움츠렀던 몸과 마음이 흐물흐물 해지면 기분도 들뜨는 법. 따스한 햇볕을 나 아닌 다른 누군가와 쬐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은 포근함이 밀려드는 봄. 그러나 왜 이렇게 사랑이 힘든 것일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순수하지 못한 것일까. 사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려 하기 때문일까. 조건을 보고, 외향을 보기 때문에 쉽게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사랑타령을 하는 것은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속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고, 조금은 쉽게 사랑이 다가오는 것 같아 좀 허탈했다. 그의 소설에는 상황을 배제하더라도 오랫동안 연애 한 번 못해본 솔로들에게 염장을 지르기에 충분한 설정이 많았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가다 우연히 만나게 된 그녀. 문을 닫는다는 방송이 아니었다면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꼼짝도 안하는 그녀에게 말을 걸게 되는 페이. 그러나 그녀(교코)는 별 반응이 없었다. 멋쩍어서 그대로 공원을 나오지만 두 번째 만남도 그 공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녀가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글로 대화를 이어간다. 평범하면 평범하고 특별하면 특별하달 수 있는 그들의 첫 만남을 지켜보며 내가 살짝 분개했던 이유는, 우리집 근처에 자리한 제법 알려진 공원때문이었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 심심찮게 산책을 하기도 하는데, 왜 나는 그런 상황이 되어보지 못했냐며 말도 안되는 억지를 꾸역꾸역 뱉어내고 있었다. 거기다 순전히 느낌만으로 상대방과 사귀게 되는 상황이 부러웠다. 내가 페이라면 교코와 연인의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분개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그라 들었다. 상황에 너무 몰입한다 싶어 안정을 취하기로 하고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페이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그의 직업을 조금 눈여겨 본다면, 교코와 너무 다른 세계의 일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교코와 함께 하면 소리의 존재를 감지할 수 없는데, 정작 그는 소리가 난무하고 그 소리로 많은 것을 이뤄 나가는 세계에서 묻혀 살고 있다. 너무나 익숙했기에 교코에서 소리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 그는 사소한 일 하나도 교코가 감당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교코가 자신의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져 가고, 홀로 남겨진 교코는 보통 사람이 겪는 일상을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비상벨 소리, 윗층에서 떠드는 소리, 관리인의 주의 등 교코에게는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그런 일이 교코에게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하던 페이는 조금씩 교코의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의 소리를 좇으며 살면서도 교코와 지내는 시간을 통해 미개척지를 발견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페이가 하는 일은 사무실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해외로 취재를 갔으며, 일에 찌들려 살기가 일쑤였다. 그런 생활의 연속이다 보니 조금씩 교코의 세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교코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일도 일어나고, 일은 바빠지고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자신의 일이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면 낼수록, 교코에게 지쳐가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부모님께 교코도 소개 하고, 교코가 자신의 집에 늘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내면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눈치를 챈 교코가 자신에게 그런 힘든 마음을 풀어 달라고 말한다. 그 말에 언뜻 위로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이나 처지가 교코에게 별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운을 잃어간다. 그런데 그런 교코가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연락이 닿지 않고, 그녀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페이의 어머니는 교코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다. 잘 부탁한다는 내용을 썼다고 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다. 그 뒤로 교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교코의 집을 찾으러 헤메기를 여러 날. 어머니로부터 또 전화가 걸려온다. 교코가 편지를 썼다고. 자신이 연락을 끊은 것은 어머니 편지 때문이 아님을 전해달라 했다고. 페이는 교코를 찾아 집으로 간다는 문자를 보내고, 그 동안 힘겹게 취재한 방송이 나가는 것을 지켜본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그토록 전하려고 했을 때, 자신의 연인에게는 아무것도 전하지 못했지만 방송이 나가기 전에 그녀로부터 연락이 닿았다. 우연처럼 보이는 묘한 상황이 교코가 자신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기엔 충분했다.

 

 페이의 심경 변화와 교코와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이 늘어 갈수록 불안했다. 무언가 어긋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초초해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연락이 끊겼던 교코와 연락이 닿고, 작은 에피소드로 마무리 되는 상황 앞에서 허탈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말을 하지 못하는 교코의 처지를 생각할 때 그 일은 작은 에피소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반쯤 내려 앉았던 가슴이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철렁 주저 앉아 버려 끓어 올릴 수가 없었다. 허탈하고, 허망하고, 특별한 사랑을 말하는 듯 하면서도 평범한 사랑으로 점철되어 가는 과정에서 진이 빠져 버렸다. 페이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사람을 긴장시키더니, 이렇게 마무리 지을 수 있냐는 핀잔이 절로 터져 나왔다. 순탄한 사랑, 평범하지 않은 교코와의 순수한 교류 같은 것을 원했는지는 몰라도, 요시다 슈이치식의 사랑에 조금 지쳐간다. 무언가를 말할듯 말듯 머뭇거리면서 얼버무어 버리는 그의 소설이 조금씩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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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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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동안 일본 소설을 안 읽어서인지, 조금씩 일본 소설이 그리워지고 있다. 그러다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읽을 기회를 얻어, 가장 먼저 <동경만경>을 꺼내 들었다. 제목을 많이 들어봐서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읽고 난 후의 허탈감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깊은 밤, 몰아치듯 읽어버린 소설의 뒤끝이 유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랑에 관한 명쾌한 답이 없었기 때문일까. 사랑에 대해 명쾌히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대리만족적인 사랑이라고 해도, 무언가 가슴 벅찬 이야기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것은 내면의 허영일지도 모르겠다.

 

  연애 소설보다 로멘스 소설을 더 좋아하는 것은 과정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연애소설을 많이 읽거나 로멘스 소설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연애소설은 결말에 더 관심이 쏠리고 로멘스 소설은 과정에서 대리만족을 하게 된다. 로멘스의 세세함이 연애소설에서는 듬성듬성 있거나, 훌쩍 뛰어넘어 버리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연애소설을 읽다보면 허탈할 때가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편가름이라고 해도 차라리 과정을 즐기는 로멘스가 더 나은 것이 그런 연유이다. <동경만경>은 연애소설이다. 무언가 확 달아 올라 정점에서 끝나는 소설도 아니고, 스토리의 전개가 빠르거나 선명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만남이에도 익숙한 사랑, 권태기가 엿보이고 무덤덤한 사랑 얘기에 가까웠다.

 

  미팅 사이트로 알게 된 료스케와 료코. 둘의 첫만남은 너무 싱거웠다. 온라인 상으로 알게 되어 첫 만남임에도 차 한잔 마시고 모노레일을 타고 그걸로 끝이었다. 료스케는 료코에게 끌렸지만, 료코는 자신의 감정을 내비추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서 재회하게 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더라도 도무지 마음을 읽을 수가 없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시간의 흐름에 맡겨 버렸고, 타인의 끈질긴 물음에 의해서 조금씩 마음을 드러내는 정도였다. 극적인 상황일 때조차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서로의 직업, 과거의 사랑, 나이같은 것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마음을 굳게 닫고 두려워 하고 있었다. 사랑하면 떠나버릴 것 같은 불안감. 서로에게 '빠지'는게 아니라 '탐닉'의 대상만 되었던 연애기간동안 내내 그들의 마음에 멤돌던 그림자가 바로 그것이었다.

 

  마음을 더 열지 못한 인물은 료코였다. 미팅 사이트에서 알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사귀는 동안에도 본명과 직업을 말해주지 않았던 것에 고의가 있었던 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했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을 뿐. 료스케의 전 애인이 그 사실을 말해주기까지 그 사실을 몰랐던 료스케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그것 보다 더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갈팡질팡 했다.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고, 사랑한다는 느낌조차 무미건조하게 다가오는 그들에게 감정을 터트리는 것은 두려움으로 치닫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 같았다. 회자정리를 두려워 하는 마음이 그들 뿐이겠냐만은 서로에게 표현할 수 없었다. 말로 하게 되면 실재로 그렇게 되버릴까봐 두려워 했다.

 

  그들의 직장만 봐도 그랬다. 료스케는 도쿄만에 인접해 있는 화물선적 창고에서 일을 하고, 미오(료코의 본명)는 거기에서 1킬로 남짓 거리의 빌딩에서 일을 한다. 바다 때문에 우회 해야지만 닿을 수 있는 두 사람의 일터처럼, 그들의 사랑도 한참을 우회해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든다.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혀주듯 두 곳의 거리가 새로운 노선의 개통으로 가까워지고, 조금씩 두 사람의 마음도 가까워 진다. 끓어오르는 사랑도, 무 자르듯 날선 이별도 없었지만 조금씩 긍정적으로 다가가는 그들의 마음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을 말해 주었다는데서 오는 무력감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책 속에는 두 사람만의 사랑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료스케의 첫사랑부터 좋아하지 않는 여자친구과의 교재, 친구 커플의 권태기가 가득한 사랑, 미오의 제대로 된 사랑이 없는 것부터 그 둘을 배경으로 씌여지는 또 다른 소설까지 사랑은 흔하고 넘쳐났다. 그러나 뚜렷히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상이 늘 똑같이 흘러가는 착각이 드는 것처럼, 늘 내 곁에 자리한 익숙함이 내재된 사랑이었다. 깊은 열정이나 끌림은 없었지만,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사랑의 모호함을 사실적으로 드러낸 작품이었다. 그래서 더 허탈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도 지극한 현실임을 앎에도 환상을 품게 되는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랑이 다가오고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사랑할 가치가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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