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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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니 많이 혼란스러웠다. 소설이지만 현실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고, 어쩌면 어디선가 이미 이런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무섭기까지 했다. 내가 이 소설의 주인공 프랑수아처럼 무교였다면 이슬람교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흡수했을까? 흡수하지 못했더라도 타인의 이야기일 뿐이라며 지난한 시선으로 그저 조망했을 것 같다. 하지만 프랑수아처럼 무교도 아닌 기독교인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에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보니 정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자연스레 이슬람 문화가 정착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개종을 조건으로 재임용은 물론 파격적인 보수와 여러 명의 부인을 얻어준다고 하면 누구나 한번쯤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라면 인간적인 마음으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겠지만 개종을 하면서까지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데 결론을 내렸다.


  내게 닥친 문제도 아닌데 그런 결정을 내리고 나니 이상하게도 이 소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후련해졌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권태롭기까지 한 문학교수 프랑수아를 지켜보자니 내 마음에 쏙 드는 인물은 아니란 예감을 하면서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고민이 들었었다. 프랑스 소설가 위스망스 전공자로 권위도 있고 명성도 있지만 그의 내면은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학기마다 자기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끊음을 반복하면서 그나마 미리암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적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육체적인 관계가 잘 맞아서 그런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권태롭기 짝이 없었다. 인생을 달관해버린 사람처럼 학문에 대한 열정도 사랑에 대한 적극적임도 없이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읽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저자의 문체가 주는 흡인력과 곧 무슨 사건들이 터질 것 같은데 그 중심에서 프랑수아가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정의의 편에 맞서는 인물들을 좋아하는데, 프랑수아는 그런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고 급격하게 바뀌어버린 이슬람 정권에 대한 변화의 중심에서 과연 정의와 신념이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이슬람 정권이 폭력을 허용하면서 점령해가는 것과 신념이란 이유로 일부다처제 허용, 여성들은 히잡을 쓰고 사회생활이 금지되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기독교이고 여성이란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암묵적이면서 당당하게 그런 문화가 타 문화를 지배해버리는 것이 무서울 정도였다.


  프랑스 정부가 이슬람 정권으로 바뀌는 과정을 온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정치에 관심도 없고 흐름도 못 읽는 내가 복잡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프랑스와 이슬람 정치 상황을 완벽히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런 내용이 나올 때마다 큰 그림으로 두루뭉술하게 그려내며 프랑수아의 시선에 더 신경을 쓰며 읽었다. 그런 변화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고 그를 통해서 어떻게 변해 가는지 듣는 상황이라 그의 내면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래서인지 한 나라의 정권이 바뀌어 버렸음에도 한정된 인물과 배경 묘사가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오로지 프랑수아의 시선으로, 피부에 와 닿는 변화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 갑작스레 들어온 제안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결정을 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95쪽)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철저한 관망자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확실한 어떤 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소설이 주는 메시지를 찾기보다 혼란스런 내 마음을 다스리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소설의 배경이 2022년이란 사실을 상기하면서도 그런 상황들이 멀지 않음을, 미래소설이 아닌 현실을 반영한 소설 같아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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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든 나빴든 상관없이 과거는 늘 아름다우며, 미래 또한 그러하다. 오직 현재만이 힘들다. (325쪽)




- 적확할 정도로 맞는 말이다. 현재와 미래는 미화되고 현재는 힘들다. 하지만 그런 미화도 적절히 필요한 것 같다. 현재처럼 과거도 힘들고 미래도 힘들거라고 말한다면 정말 희망이 없을 것 같다. 분명 과거를 되돌아보면 좋았던 기억보다 힘든 기억이 더 많은데도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라고 종동 되된다.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절대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그리고 미래는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이 있다. 딱히 어떤 면을 콕 집기보다 지금보다 모든 게 나아지겠지하는 무모한 희망을 갖고 있다. 그 희망이 이뤄지기 위해선 힘든 현재인 지금을 잘 살아야 한다는 걸 앎에도 실천하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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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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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었던 사람과 부부가 되어 함께 살아보니 어른들이 말한 ‘집안을 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집안을 보는 기준이 제각각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집안을 보는 으뜸은 화목인 것 같다. 모든 가족이 단일화되어 행복할 수 없듯이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혜롭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늘 가족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건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어떨 땐 내가 이룬 가정의 자잘한 문제와 고민들만으로도 힘겨움을 느끼는데 거기에 친정과 시댁 문제까지 얽히면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특히나 너무 끈끈하게 얽혀있어 가끔씩 숨이 막힐 때가 있다고 말이다.


 

  나부터도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이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했는지 모르겠다. 칭찬하기보다 험담이 앞서고 다가가지 못하고 도와주지 못했던 나날들.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그래도 가족이라 생각하고 하는 말과 행동이라고 큰 오류들을 범했었다. 그냥 개개인으로 인정하고 때로는 그냥 지켜봐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치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졌고 저자의 말처럼 가족을 개인으로 치부하지 않고 혈연으로 묶어 소유하려 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병’이라고 부르게 되는 극단적인 일들까지 일어나게 되는 건 아닐까? 오죽했으면 ‘가족은 생활을 함께하는 타인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홀가분하다.(62쪽)’라고 했을까?


 

자신이 아닌 남에게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 타인에 대한 기대는 낙담과 불평을 불러오는 최대의 요인이다. (48쪽)


 

  전적으로 이 말에 공감하는 것은 내가 남편에게 품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무조건 나에게 더 잘해주고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사고(思考)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니 낙담과 불평을 쉽사리 뱉어내고 만다. 내 생각대로 남편을 고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서로 보완해 가야 하는데 소유물로 착각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드러나는 것 같다. 비단 남편뿐만이 아니라 자녀, 나아가서는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는 다른 식구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품기 때문에 합의되지 못한 불화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다. 지금도 종종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보면서 기도한다. 이 아이들을 내 소유물로 생각하지 말고 내 맘대로 키우게 하지 말아달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한 여러 가정의 사례들과 자신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서 자식을 키우는 데 정답은 없고, 가족의 화목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인지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녀들이 왜 생겨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가(지나친 사랑, 고생하는 게 싫어서, 자식이니까) 나에게도 있음이 드러났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부모에게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아마 내가 잔소리라 생각하고 흘려버렸으리라.) 단호한 모습보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아서 가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대로 된 독립을 못하고 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타지에서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리고 돌아온 고향에서 엄청나게 많은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이런 내가 내 자녀들을 강하게 키울 수 있을까? 벌써부터 마음이 아파오지만 가족이 ‘병’이 되지 않기 위해 분명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가족이란 말할 필요도 없이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의 문제인데.(168쪽)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가 가진 가족의 문제가 단박에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역시 해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보고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를 더 고민하게 되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해결이라기보다 그간 보아온 다양한 가족 문제와 그에 대한 느낌을 소소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안에서 연륜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중심을 잡고 삶을 대해야 한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준 것 같다.


 

자기 나름의 가치 기준이 없기 때문에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돌아보고, 친구나 지인의 가족과 비교하는 것이다.(80쪽)


 

  종종 내 가정을 두고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돌아보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현 상황을 직시하고 분수껏 살아가자 다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룬 가정 안에서 늘 부족한 것들만 찾아내면서 이미 가진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가족이 ‘병’이 되지 않기 위해 가치 기준을 확고히 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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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과의 하루
디아너 브룩호번 지음, 이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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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벌써부터 이런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나의 미래는 어떨지 상상해보곤 한다. 나는 어떻게 늙을까? 내 곁에 남편은 오래오래 있을까?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며 손자들도 볼 수 있을까하는 다소 민망하기도 한 먼 미래의 내 모습에 관한 상상. 내가 초등학생일 때 수업시간에 커서 뭐가 될 건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얼버무리긴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서른 살의 내가 상상이 안 갔다. 당연했다. 그리고 서른이 넘은 지금은 10대 초반의 나를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 30년 이후의 삶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전혀 상상할 수 없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고, 기꺼이 30년 후에 지금을 떠올리며 미소짓고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함께 늙어가는 노부부 알리스와 쥘. 어느 날 갑자기 한쪽이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 광경을 목도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알리스는 평소처럼 남편이 끓여놓은 커피 향을 맡으며 잠에서 깨지만 소파에 앉은 채 세상을 떠난 남편을 발견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놀란 가슴을 부여안고 즉각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시신을 인도했을 것이다. 알리스는 남편 쥘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에 절망감을 느끼지만 아들이나 병원에 연락하기보다는 그런 남편 곁에 머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순간, 보통 사람과 행동하지 않았다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어떤 결말로 이 소설을 이끌어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남편의 시신을 곁에 두고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너무 사랑해서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알리스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오전 10시에는 항상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자폐아 다비드가 쥘과 체스를 두기 위해 방문한다.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오겠다는 다비드 엄마의 전화를 받고도 거절할 수 없어 다비드를 집안으로 들인다. 다비드도 쥘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쥘 할아버지는 가셨어요. 이건 쥘 할아버지의 껍데기예요.(89쪽)’ 인정하듯 한 사람의 시신이 있는 곳에 타인을 들여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알리스가 쥘에게 중얼거리듯 내뱉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왜 그녀가 그렇게 해야 했는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바라보게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먼저 내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리고 숨이 빠져나간 시신을 남편이라 자각한 채 말을 붙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리스의 말처럼 쥘의 죽음을 즉각 알렸다면 과연 그와 마지막 이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까? 그녀의 말처럼 얼마 안 되어서 남편의 시신은 처리될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이별을 할 시간은 땅에 묻거나 화장하기 전 짧은 시간일 뿐일 것이다. 그녀의 행동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사랑해서 결혼했고 오랫동안 함께 살아 온 사람이 세상의 규율에 따라 이별할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다는 건 애석하기 짝이 없었다. 단지 떠나보내기 싫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지만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발설하지 않았던 이야기, 신혼여행 중 호텔방에서 잃어버렸던 그들의 첫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쥘 과의 제대로 된 이별(알리스 혼자 고백하는 셈이지만)의 시간이 있어서 오히려 안도했다.


  그녀가 남편의 시신과 하룻밤을 보내는(혼자가 아닌 다비드란 소년과 함께) 이유가 너무 사랑해서, 혹은 아름다운 기억만 추억하기 위해서였다면 금세 식상해졌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과 평생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결혼하고 나서 깨달았기 때문에 삶의 고비들이 담겨있는 알리스의 고백이 더 와 닿았다. 물론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정을 드러냈다면 보는 이도 행복했을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현실감이 느껴져서 알리스만의 남편을 떠나보내는 행위에 어느새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짧으면서도 길었던 쥘과의 하루를 보내고 다비드와 함께 잠이 들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알리스는 이제 남편 없는 삶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것이 앞으로 그녀에게 주어진 삶일 것이고 어쩜 우리 모두가 겪는 인생의 고비를 넘어 다시 맞이한 평지가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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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가 절정에 달한 요즘, 애가 둘인 나는 야외로 떠나는 걸 꿈도 못 꾼다. 아이들이 좀 크면 모를까 이제 29개월, 4개월인 아이를 데리고 나갈 수가 없다.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시원한 음식 먹는 게 호사라면 호사일까? 당장 떠나고 싶게 만들었더 여행서들을 소개하면서 대리만족을 해보려고 한다.


주의) 이 책을 읽으면 정말 배낭 메고 떠나고 싶을 지도 모르므로 여행갈 수 없는 상황에서 읽을 것(?)! ㅋ

 

 

 

 

1.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의 사람들 - 박준


 

 

 

 

꼭 9년 전 여름,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마음이 심란했는지 모른다. 당장 배낭 메고 떠나고 싶은데 여건은 따라주지 않아서 처음으로 여행을 위해 돈을 좀 모아볼까 그런 생각을 했던 책이었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배낭 여행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서 들썩이는 몸을 눌러 앉히느라 무진 애를 먹었었다. 이 책에서는 슈트케이스가 아닌 꼭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나보라고 말하고 있다. 배낭을 메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보인다고.

 

'왜 꿈만 꾸는가.. 한번은 떠나야 한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게 아니다. 돌아와 더 잘살기 위해서다.'

 

이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야 깨달았다.

 

 

 

 

 

 


2.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 홍인혜

 


 

 

 

세상 사람을 '떠돌이'와 '머물이'로 양분한다면 난 일백 퍼센트 후자였다. 모험은 용감한 사람이나 하는 거였고, 나는 평생 남의 모험담을 들으며 동경하고 감탄이나 할 사람이었다. (16쪽)

 

  책을 펼치자마자 이런 문장과 만나게 되는 여행서. 나는 곧 흥분상태에 이르렀고 글자가 빠져나갈 틈 없이 정독했다. 여행서를 분위기와 느낌으로 마주했던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고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격하고 말았다.

 수많은 여행서를 만나왔다. 내가 마주한 여행서는 '나는 당신처럼 용기를 내어 떠날 수 없으니 그곳의 생활을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있는 독자에게도 간접 경험을 시켜 달라'는 일종의 요구로 만나왔다. 그렇다보니 내가 대부분 만나는 여행서들은 설레고 다른 풍경에 놀라고 현재를 더 소중히 하게 되는(물론 여행지에서의 어려움을 겪는 일들도 일어나지만 철저히 여행자이고 싶었던 나는 그 경험은 배제시켜 버렸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행서들만 보아왔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제목부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했듯이 왜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지 강렬한 동기부여와 함께(어느 누구라도 당장 만들어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동기 부여다.) 솔직하게 담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솔직함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이었다.


3. 파리의 스노우캣 - ​권윤주


 

이 책을 통해 바라본 파리의 무엇이 그토록 좋았을까. 더군다나 다른 책에서 보아온 파리의 모습을 통해 많은 장소는 낯이 익었는데. 아무래도 파리의 모습을 독특하게 그려낸 저자의 시선이 아니였을까. 사진의 생생함도, 파리의 적나라함도 없었지만 저자가 보고 있는 파리의 모습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소소함.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파리와,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의 조화가 적절했다. 파리의 많은 곳을 겉핥기보다 적지만 몇몇 곳에 정을 듬뿍 뿌려놓은 저자의 동선이 좋았다. 카페 이름이나 거리의 이름을 말해주어도 어차피 기억을 못하니 그림과 짧은 글을 통해 드러나는 소소함이 대리만족을 시켜주었다. 카페의 나라라고 할만큼 넘쳐나는 카페는 분위기 좋은 곳이 많았으므로, 그곳에 앉아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저자만 바라봐도 행복했다. 파리의 유명한 곳을 구경하는 것보다 자신의 흔적을 조금씩 흘려놓는 모습이 더 아련하게 다가와서 좋았다.




4. 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사진보다 글이 더 많은 여행서, 너는 일상에 찌들어 있지만 나는 멀리 여행을 왔다는 감상이 뒤범벅대지 않은 여행서, 그리고 지금 읽기엔 가장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는 1980년 중후반이 배경인 여행서를 이렇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까? 하루키 에세이에 익숙하지 않거나 뭔가 내 마음을 위로해줄 여행서를 찾아서 이 책을 펼쳤다면 실망하거나 쉽게 지루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초반은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었다. 책 제목도 너무 추상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세세하고 시시콜콜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리고 판본이 조금 작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을 쥐고 있으니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중후반이 지나면 이 책이 좋아지고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자가 머물렀던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그리스의 섬나라에 가보고 싶은 생각까지 들게 된다.


 


 

 


 

5.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 장태호




이 책을 읽고나서 아프리카에 대한 나의 무지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가난하고 억압의 땅으로만 기억하는 아프리카 대륙. 그런 나에게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은 정말 신세계로 다가왔다. 물론 위험한 지역도 있지만 자연과 자연이 맞닿아있고 한없이 여우로울 것 같지만 꿈틀대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곳. 아프리카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지극히 나의 잘못된 인식덕분에) 아름다운 땅을 만난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을 때 추석 명절이었고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보면서 읽었는데 케이프타운의 하늘과 내가 바라본 하늘이 닮아있을지 궁금해하던 기억이 난다. 언제쯤 이 아름다운 도시에 가볼 수 있을까? 아프리카 중에서 가보고 싶은 장소를 꼽으라면 망설임없이 케이프타운을 꼽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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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1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책 읽기의 매력에 빠지는 상황이 마치 에셔의 끝이 없는 계단에 오르는 상황 같아요. 여행을 떠나고 싶은 상황이 아니라서 여행책을 읽으면 정말로 여행 가고 싶은 생각이 드니까요. ^^

안녕반짝 2015-08-17 22:53   좋아요 0 | URL
대리 만족을 하면서, 여행을 꿈꾸면서, 여행 갈 날을 고대하는 그런 읽기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