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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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었던 사람과 부부가 되어 함께 살아보니 어른들이 말한 ‘집안을 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집안을 보는 기준이 제각각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집안을 보는 으뜸은 화목인 것 같다. 모든 가족이 단일화되어 행복할 수 없듯이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혜롭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늘 가족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건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어떨 땐 내가 이룬 가정의 자잘한 문제와 고민들만으로도 힘겨움을 느끼는데 거기에 친정과 시댁 문제까지 얽히면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특히나 너무 끈끈하게 얽혀있어 가끔씩 숨이 막힐 때가 있다고 말이다.


 

  나부터도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이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했는지 모르겠다. 칭찬하기보다 험담이 앞서고 다가가지 못하고 도와주지 못했던 나날들.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그래도 가족이라 생각하고 하는 말과 행동이라고 큰 오류들을 범했었다. 그냥 개개인으로 인정하고 때로는 그냥 지켜봐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치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졌고 저자의 말처럼 가족을 개인으로 치부하지 않고 혈연으로 묶어 소유하려 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병’이라고 부르게 되는 극단적인 일들까지 일어나게 되는 건 아닐까? 오죽했으면 ‘가족은 생활을 함께하는 타인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홀가분하다.(62쪽)’라고 했을까?


 

자신이 아닌 남에게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 타인에 대한 기대는 낙담과 불평을 불러오는 최대의 요인이다. (48쪽)


 

  전적으로 이 말에 공감하는 것은 내가 남편에게 품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무조건 나에게 더 잘해주고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사고(思考)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니 낙담과 불평을 쉽사리 뱉어내고 만다. 내 생각대로 남편을 고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서로 보완해 가야 하는데 소유물로 착각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드러나는 것 같다. 비단 남편뿐만이 아니라 자녀, 나아가서는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는 다른 식구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품기 때문에 합의되지 못한 불화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다. 지금도 종종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보면서 기도한다. 이 아이들을 내 소유물로 생각하지 말고 내 맘대로 키우게 하지 말아달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한 여러 가정의 사례들과 자신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서 자식을 키우는 데 정답은 없고, 가족의 화목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인지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녀들이 왜 생겨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가(지나친 사랑, 고생하는 게 싫어서, 자식이니까) 나에게도 있음이 드러났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부모에게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아마 내가 잔소리라 생각하고 흘려버렸으리라.) 단호한 모습보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아서 가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대로 된 독립을 못하고 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타지에서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리고 돌아온 고향에서 엄청나게 많은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이런 내가 내 자녀들을 강하게 키울 수 있을까? 벌써부터 마음이 아파오지만 가족이 ‘병’이 되지 않기 위해 분명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가족이란 말할 필요도 없이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의 문제인데.(168쪽)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가 가진 가족의 문제가 단박에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역시 해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보고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를 더 고민하게 되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해결이라기보다 그간 보아온 다양한 가족 문제와 그에 대한 느낌을 소소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안에서 연륜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중심을 잡고 삶을 대해야 한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준 것 같다.


 

자기 나름의 가치 기준이 없기 때문에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돌아보고, 친구나 지인의 가족과 비교하는 것이다.(80쪽)


 

  종종 내 가정을 두고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돌아보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현 상황을 직시하고 분수껏 살아가자 다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룬 가정 안에서 늘 부족한 것들만 찾아내면서 이미 가진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가족이 ‘병’이 되지 않기 위해 가치 기준을 확고히 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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