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절정에 달한 요즘, 애가 둘인 나는 야외로 떠나는 걸 꿈도 못 꾼다. 아이들이 좀 크면 모를까 이제 29개월, 4개월인 아이를 데리고 나갈 수가 없다.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시원한 음식 먹는 게 호사라면 호사일까? 당장 떠나고 싶게 만들었더 여행서들을 소개하면서 대리만족을 해보려고 한다.


주의) 이 책을 읽으면 정말 배낭 메고 떠나고 싶을 지도 모르므로 여행갈 수 없는 상황에서 읽을 것(?)! ㅋ

 

 

 

 

1.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의 사람들 - 박준


 

 

 

 

꼭 9년 전 여름,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마음이 심란했는지 모른다. 당장 배낭 메고 떠나고 싶은데 여건은 따라주지 않아서 처음으로 여행을 위해 돈을 좀 모아볼까 그런 생각을 했던 책이었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배낭 여행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서 들썩이는 몸을 눌러 앉히느라 무진 애를 먹었었다. 이 책에서는 슈트케이스가 아닌 꼭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나보라고 말하고 있다. 배낭을 메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보인다고.

 

'왜 꿈만 꾸는가.. 한번은 떠나야 한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게 아니다. 돌아와 더 잘살기 위해서다.'

 

이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야 깨달았다.

 

 

 

 

 

 


2.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 홍인혜

 


 

 

 

세상 사람을 '떠돌이'와 '머물이'로 양분한다면 난 일백 퍼센트 후자였다. 모험은 용감한 사람이나 하는 거였고, 나는 평생 남의 모험담을 들으며 동경하고 감탄이나 할 사람이었다. (16쪽)

 

  책을 펼치자마자 이런 문장과 만나게 되는 여행서. 나는 곧 흥분상태에 이르렀고 글자가 빠져나갈 틈 없이 정독했다. 여행서를 분위기와 느낌으로 마주했던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고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격하고 말았다.

 수많은 여행서를 만나왔다. 내가 마주한 여행서는 '나는 당신처럼 용기를 내어 떠날 수 없으니 그곳의 생활을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있는 독자에게도 간접 경험을 시켜 달라'는 일종의 요구로 만나왔다. 그렇다보니 내가 대부분 만나는 여행서들은 설레고 다른 풍경에 놀라고 현재를 더 소중히 하게 되는(물론 여행지에서의 어려움을 겪는 일들도 일어나지만 철저히 여행자이고 싶었던 나는 그 경험은 배제시켜 버렸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행서들만 보아왔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제목부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했듯이 왜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지 강렬한 동기부여와 함께(어느 누구라도 당장 만들어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동기 부여다.) 솔직하게 담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솔직함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이었다.


3. 파리의 스노우캣 - ​권윤주


 

이 책을 통해 바라본 파리의 무엇이 그토록 좋았을까. 더군다나 다른 책에서 보아온 파리의 모습을 통해 많은 장소는 낯이 익었는데. 아무래도 파리의 모습을 독특하게 그려낸 저자의 시선이 아니였을까. 사진의 생생함도, 파리의 적나라함도 없었지만 저자가 보고 있는 파리의 모습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소소함.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파리와,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의 조화가 적절했다. 파리의 많은 곳을 겉핥기보다 적지만 몇몇 곳에 정을 듬뿍 뿌려놓은 저자의 동선이 좋았다. 카페 이름이나 거리의 이름을 말해주어도 어차피 기억을 못하니 그림과 짧은 글을 통해 드러나는 소소함이 대리만족을 시켜주었다. 카페의 나라라고 할만큼 넘쳐나는 카페는 분위기 좋은 곳이 많았으므로, 그곳에 앉아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저자만 바라봐도 행복했다. 파리의 유명한 곳을 구경하는 것보다 자신의 흔적을 조금씩 흘려놓는 모습이 더 아련하게 다가와서 좋았다.




4. 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사진보다 글이 더 많은 여행서, 너는 일상에 찌들어 있지만 나는 멀리 여행을 왔다는 감상이 뒤범벅대지 않은 여행서, 그리고 지금 읽기엔 가장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는 1980년 중후반이 배경인 여행서를 이렇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까? 하루키 에세이에 익숙하지 않거나 뭔가 내 마음을 위로해줄 여행서를 찾아서 이 책을 펼쳤다면 실망하거나 쉽게 지루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초반은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었다. 책 제목도 너무 추상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세세하고 시시콜콜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리고 판본이 조금 작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을 쥐고 있으니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중후반이 지나면 이 책이 좋아지고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자가 머물렀던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그리스의 섬나라에 가보고 싶은 생각까지 들게 된다.


 


 

 


 

5.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 장태호




이 책을 읽고나서 아프리카에 대한 나의 무지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가난하고 억압의 땅으로만 기억하는 아프리카 대륙. 그런 나에게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은 정말 신세계로 다가왔다. 물론 위험한 지역도 있지만 자연과 자연이 맞닿아있고 한없이 여우로울 것 같지만 꿈틀대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곳. 아프리카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지극히 나의 잘못된 인식덕분에) 아름다운 땅을 만난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을 때 추석 명절이었고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보면서 읽었는데 케이프타운의 하늘과 내가 바라본 하늘이 닮아있을지 궁금해하던 기억이 난다. 언제쯤 이 아름다운 도시에 가볼 수 있을까? 아프리카 중에서 가보고 싶은 장소를 꼽으라면 망설임없이 케이프타운을 꼽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8-1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책 읽기의 매력에 빠지는 상황이 마치 에셔의 끝이 없는 계단에 오르는 상황 같아요. 여행을 떠나고 싶은 상황이 아니라서 여행책을 읽으면 정말로 여행 가고 싶은 생각이 드니까요. ^^

안녕반짝 2015-08-17 22:53   좋아요 0 | URL
대리 만족을 하면서, 여행을 꿈꾸면서, 여행 갈 날을 고대하는 그런 읽기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