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과의 하루
디아너 브룩호번 지음, 이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왜 벌써부터 이런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나의 미래는 어떨지 상상해보곤 한다. 나는 어떻게 늙을까? 내 곁에 남편은 오래오래 있을까?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며 손자들도 볼 수 있을까하는 다소 민망하기도 한 먼 미래의 내 모습에 관한 상상. 내가 초등학생일 때 수업시간에 커서 뭐가 될 건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얼버무리긴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서른 살의 내가 상상이 안 갔다. 당연했다. 그리고 서른이 넘은 지금은 10대 초반의 나를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 30년 이후의 삶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전혀 상상할 수 없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고, 기꺼이 30년 후에 지금을 떠올리며 미소짓고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함께 늙어가는 노부부 알리스와 쥘. 어느 날 갑자기 한쪽이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 광경을 목도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알리스는 평소처럼 남편이 끓여놓은 커피 향을 맡으며 잠에서 깨지만 소파에 앉은 채 세상을 떠난 남편을 발견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놀란 가슴을 부여안고 즉각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시신을 인도했을 것이다. 알리스는 남편 쥘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에 절망감을 느끼지만 아들이나 병원에 연락하기보다는 그런 남편 곁에 머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순간, 보통 사람과 행동하지 않았다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어떤 결말로 이 소설을 이끌어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남편의 시신을 곁에 두고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너무 사랑해서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알리스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오전 10시에는 항상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자폐아 다비드가 쥘과 체스를 두기 위해 방문한다.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오겠다는 다비드 엄마의 전화를 받고도 거절할 수 없어 다비드를 집안으로 들인다. 다비드도 쥘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쥘 할아버지는 가셨어요. 이건 쥘 할아버지의 껍데기예요.(89쪽)’ 인정하듯 한 사람의 시신이 있는 곳에 타인을 들여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알리스가 쥘에게 중얼거리듯 내뱉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왜 그녀가 그렇게 해야 했는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바라보게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먼저 내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리고 숨이 빠져나간 시신을 남편이라 자각한 채 말을 붙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리스의 말처럼 쥘의 죽음을 즉각 알렸다면 과연 그와 마지막 이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까? 그녀의 말처럼 얼마 안 되어서 남편의 시신은 처리될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이별을 할 시간은 땅에 묻거나 화장하기 전 짧은 시간일 뿐일 것이다. 그녀의 행동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사랑해서 결혼했고 오랫동안 함께 살아 온 사람이 세상의 규율에 따라 이별할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다는 건 애석하기 짝이 없었다. 단지 떠나보내기 싫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지만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발설하지 않았던 이야기, 신혼여행 중 호텔방에서 잃어버렸던 그들의 첫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쥘 과의 제대로 된 이별(알리스 혼자 고백하는 셈이지만)의 시간이 있어서 오히려 안도했다.


  그녀가 남편의 시신과 하룻밤을 보내는(혼자가 아닌 다비드란 소년과 함께) 이유가 너무 사랑해서, 혹은 아름다운 기억만 추억하기 위해서였다면 금세 식상해졌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과 평생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결혼하고 나서 깨달았기 때문에 삶의 고비들이 담겨있는 알리스의 고백이 더 와 닿았다. 물론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정을 드러냈다면 보는 이도 행복했을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현실감이 느껴져서 알리스만의 남편을 떠나보내는 행위에 어느새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짧으면서도 길었던 쥘과의 하루를 보내고 다비드와 함께 잠이 들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알리스는 이제 남편 없는 삶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것이 앞으로 그녀에게 주어진 삶일 것이고 어쩜 우리 모두가 겪는 인생의 고비를 넘어 다시 맞이한 평지가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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