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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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56쪽)

  세월호 ‘사건’이 잊히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 엄청난 사건을 나 또한 많이 잊고 있었음을, 오히려 떠오르지 않으려고 망각의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깨닫고 얼마나 씁쓸해졌는지 모른다. 또한 내가 진짜로 마주하지 못한 세월호 ‘사건’의 숨겨진 진실의 민낯을 만나자 얼마나 비극적인지, 얼마나 불행하고 슬픈 일인지 내 마음에 쿵 하고 다시 한 번 묵직한 고통이 내려앉은 기분이다. 첫 번째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던 건 세월호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사실이었다.

  소설가 박민규는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사전적 해석을 빌리자면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반면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의미하는데 거기엔 또 다음과 같은 해석이 뒤따른다. 주로 개인, 또는 단체의 의도하에 발생하는 일이며 범죄라든지 역사적인 일 등이 이에 속한다.(57쪽)’고 명확히 말하고 있으며 그래서 세월호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정확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워졌다. 이 엄청난 사건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단 말인가. 하물며 피해자인 세월호 유가족을 시간이 지날수록 가해자로 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이 모든 시간의 흐름 속에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란 말이던가.

  지난 4월 16일, 모든 방송을 장악했던 뒤집혀 있던 배, 세월호가 또렷이 기억난다. 처음엔 모두 구조되었다는 보도를 보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가 탑승인원과 구조자와 실종자, 사망자의 숫자가 오락가락 하다 약 300명의 사람이 실종됐다는 정정 보도를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길을 가다가도 내가 걷고 있는 이 거리가 통째로 물속에 가라앉아서 그대로 수몰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면 땅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 가슴이 저렸다. 한동안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 된 그들이 떠올라 바다를 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그런 고통은 나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언론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 나의 부족한 혜안으로 이 사건을 명확하게 볼 능력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갔고 잊힐 것 같지 않던 세월호 사건은 점점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산 자는 살아야 한다는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몸부림에 억지로라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간 이 엄청난 사건에 나 또한 그대로 묻혀 버릴 것 같아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을 감상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오히려 국민에게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정하고 보호하고 위로해야 하는데 좁혀지지 않는 갈등만 점점 고조되고 있다.

그러니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18쪽)

  세월호 사건을 지켜 본 우리는 과연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했을까?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을 다스리고 추슬러야 할 국가는 이해라는 다가섬으로 그들을 감싸 안으려는 노력을 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호 사건이 잊히고 있는 가운데 이 책에 실린 문인들의 글은 정신을 바짝 들게 한다. 세월호 사건을 보는 다양한 시각에서 나의 능력 부족으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건의 진실과 이면들을 낱낱이 만난 기분이었다. 다양한 필자만큼이나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 본 세월호 사건에 대한 시각이 때론 가슴을 찌르기도 하고, 조금은 난해한 비유에 나의 무지를 탓하기도 하며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월호 사건을 개탄하고 있음을,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함을, 얼마나 귀한 생명을 허무하게 잃어버렸는가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의미를 관통했다.

세월호 이후의 문학은 이러한 온정주의 금지선들, 그리고 시혜의 논리를 반동적으로 활용하는 감성정치들이 정당한 싸움을 마비시키지 못하도록, 고통받는 이들의 표상을 여러 방식으로 균열시킬 수 있어야 한다.(83쪽)

  평범한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흘러가는 세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문학이 움직이고 있음을, 이러한 시도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세월호 유가족의 고통을 우리는 통감하는 것조차 버겁기에 문학으로 위로를 받고 문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잊지 않으려는 시도가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국민의 생명을 구할 능력도 성의도 없는 정부에 실로 경악을 금치 못(129쪽)’했던 것처럼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앞으로 정부의 행보를 매의 눈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어이없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이 나라에 무슨 해를 입히는 존재로 취급받으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극단적으로 호소해야만 하는 유가족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그들의 고통을 감싸 안아줬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반드시.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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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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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살고 생활하면서도 가족 중 누군가 특정대상을 위해 뭔가를 써 본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늘 함께 생활하다보니 따로 생각해서 일화를 끼적여본다는 것 자체가 쑥스럽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엄마에 관한 책을 읽으면 나도 엄마에 대해서 추억을 남겨볼까 싶고, 아이에 관한 책을 읽으면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까워 기록해두자 하면서도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같은 동성끼리도 이러할진대 성별이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먼저는 상대방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 들 것 같았고 성별의 다름 자체에 의의를 두고 편협하게 흘러가진 않을까란 걱정이 앞섰다.

  장황하게 이 책에 대한 염려를 늘어놓는 건 그간 저자의 다른 작품들 속의 소소한 일상과 걸림돌 없이 흘러갔던 분위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전작과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던 터라 누나와의 일상, 누나의 생각, 함께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사유를 나누는 모습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에 너무 얽매이다보니 누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느낌도 받기도 했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쉽기도 했다. 읽는 데는 어떠한 무리도 없었고 남동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이 꽤 세세하게 나왔음에도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누나와 남동생의 가식 없는 대화 속에서 성인 남녀의 진솔함과 솔직함을 엿보기도 했다. 서로의 사생활을 모두 털어놓다가도 어느 정도 선을 지니는 것 같은데, 둘의 대화를 들어보면 각자의 입장에서 동성의 심리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넌 평생 2만 엔짜리 브래지어는 만져볼 수 없는 남자야.’라고 남동생에게 쿨하게 말할 수 있는 누나가 몇 명이나 될까? 나에게 남동생이 있다하더라도 진지 혹은 농담으로라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둘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때론 남 같으면서도 남매 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대화하는 것을 보며 이게 이 책의 매력인가보다 싶었다.

  전작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혹은 전작과 비슷한 분위기를 원해서 읽고 나서도 좀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각각의 책이 지니고 있는 매력과 독자에게 전해오는 메시지가 다르듯이 이 책 또한 다른 매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남매간의 진솔함과 남녀 간의 심리 알아가기라는 낯간지러운 평은 그렇다 쳐도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보는 시선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시선이 그러했던 건 아니지만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어쩔 땐 그런 다름이 낯설다는 이유로 언쟁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같은 핏줄이든 타인이든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요즘, 내 주변 사람들을 그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와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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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21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정도 다 자랐고 알 것(?) 다 아는 남매가 수위가 높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똑같군요. ㅎㅎㅎ
 
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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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sns에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짤막한 나의 생각을 올리고 즉각 반응해 오는 답글에 매력을 느껴 나의 소소한 일상부터 나누고 싶은 책의 구절까지 올리곤 했었다. 그러나 1분도 안되어 일렁이는 글 속으로 이내 파묻혀 버리는 나의 소소한 감정들에 진부함을 느꼈다. 잠시 한눈을 팔면 나 역시 지나치고 건너 뛰어 버리는 타인의 감정들. 때론 거대함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고 작은 세상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지만 소모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접고 말았다. sns를 안 한지 2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돌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내 감정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타인의 감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게감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이 책을 읽으니 나 또한 sns 세계에 빠져 있던 때가 생각났다. 개인적인 이유로 sns를 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이의 일상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건 또 다른 매력이라는 걸 알고 있다. 꼭 답글을 남기지 않아도, 나에게 답장이 오지 않아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이들의 글. 지금껏 산문집을 출간한 적이 없기에 이 책이 가져다 준 의미는 저자의 팬들에게 좀 남다를 것 같다. sns에 올린 글들이 있고 인터넷에 연재를 하면서 남긴 느낌들, 그 외에 사소한 일상들, 그리고 저자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들은 부담이 없다. 오히려 옆집에 사는 누군가와 수다를 떨 듯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글들이다. 그 지나침이 미안해지지 않는 건 나의 일상을 저자에게 들려줄 순 없지만 그의 일상을 자주 들여다보는 익숙한 느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익숙함 속에는 소소한 일들도 있지만 소설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진지함이 묵직하다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저자의 내면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본 느낌이다. 소설가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건 어느 정도 편견도 있고 틀에 박힌 어떤 형식을 떠올리기 마련인데(그게 뭘까?) 결국 소설도 일상과 얽혀있고 그 얽힘이 있기에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설을 쓰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고통과 혼란과 변명과 독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나 살자’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도 그런 뜻일 테구요.(119쪽)

  인간 개개인의 내면에 담겨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일반인인 우리는 어떠한 창작물로 드러내지 못한다. 소설가는 그런 내면을 하나의 창작물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란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저자가 드러낸 생각을 통해서였다. 그래서 소설을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런 소설을 탄생시키는 인고의 시간들을 좀 더 존중해야겠다는 다짐도 들었다. 독자라는 이유만으로 늘 평가를 쉽게 하곤 했던 내 모습이 조금은 미안해지기도 했다.

  부담 없이 읽다 보면 저자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어진다. 자신의 나이대로 살아간다는 건 어렵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하는데 저자는 발랄한 소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몇 어른 같은 소재를 잠시 제쳐둔다면 꿈 많은 말괄량이 소녀의 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런 감성을 키울 수 있기에 소설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내가 더 애늙은이 같은 느낌도 받았다. 묵직한 글들에서 잠시 벗어나 책장을 휙휙 넘기며 편하게 읽다 보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일렁이는 타인의 글들이 잠시 그리워지기도 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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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밸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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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일. 두툼한 책을 덮은 후 나도 모르게 혼자 내뱉은 말이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얄궂은 운명을 지켜만 봤기에 그런 허무함이 더 밀려왔는지도 몰랐다. 또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으며 그런 이기심이 낯모르는 타인의 삶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가족까지 해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씁쓸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고 힘든 시간을 맞이하며 그 과정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는 물론이고 미래도 달라진 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성급하게 굴며 현재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이 전부인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누구나 그런 일들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건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남겨진 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며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이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라이언이기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했다. 이런저런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서를 들락날락 한 그는 사채업자에게 거금의 빚을 지게 되자 납치사건을 일으킨다. 요양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방문하고 남편과 함께 돌아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바네사는 라이언에게 납치 돼 라이언이 어린 시절 이름 붙인 폭스 밸리라는 동굴에 갇힌다. 라이언은 그 동굴에서 바네사가 홀로 빠져나올 수도 있다 생각해 나무 상자 안에 가둬버린다. 하지만 라이언이 바네사의 남편과 협상을 하기도 전에 폭행사건으로 구금되고 바네사의 일을 들춰내봤자 불이익을 당할 게 뻔해 감춰 버린다. 라이언이 구금된 상황에서 바네사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 말만 했어도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혼자서 얼마나 많이 되뇌었는지 모른다.

  두툼한 책을 지루함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네사의 생사여부였다. 과연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이언이 나무상자에 가뒀기 때문에 탈출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도 라이언의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그녀가 어디선가 라이언에게 복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언을 지켜보고 있는 듯 그가 바네사에게 저지른 모방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네사가 충분히 복수할 수도 있겠지만 남편 매튜 앞에 거의 3년 동안이나 나타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녀가 부디 살아 있길 바랐다. 매튜에게 복수를 하더라도 어떡해서든 살아 틀어져버린 모든 일들을 바로 잡을 수 있길 바랐다. 바네사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겠지만 매튜와 가까워지기 시작한 지나가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내가 납치 된다면, 혹은 내 배우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생사 여부도 모르는 상태라면 과연 나는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도 해보고 살아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하며 지금껏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끊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갈망도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는지 겁이 나기도 한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 평범한 장소에서 돈을 목적으로 한 라이언에게 납치되었기 때문에 더 간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바네사는 물론이고 매튜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삶까지 망가트린 피해자가 불특정 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렵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랬기에 그런 라이언을 믿고 싶어 하고 사랑하게 된 노라가 더욱 더 비현실적인 인물로 비춰졌다.

  그런 와중에 바네사의 친구이자 네 아이의 엄마인 알렉시아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네사가 사라진 주차장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사라진 알렉시아. 라이언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독자는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일어나는 비슷한 범죄 때문에 바네사의 생사여부도 잠시 제쳐둔 채 제 3의 인물이 이 모든 일을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알렉시아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유사사건으로 은닉한 범인이 밝혀지면서 인간은 언제든지 충동적으로 범죄를 일으킬 수 있으며 목숨까지 해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양면성을 지니고 있고 나쁜 마음, 나쁜 생각을 담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을 꾹꾹 누르고 있기에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을 누르지 못할 때 범죄가 일어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며 목숨까지 해하며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고 말이다. 그런 마음을 감출 수만은 없는 게 인간이라지만 타인의 목숨을 해치고도 자신의 목숨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본능적인 추악함이 낱낱이 드러나 책장을 덮을 때는 씁쓸함이 입 안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으로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멈춰버린 사람도 있는데 끝까지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범죄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암울했다. 선량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이런 추악함을 지켜봐야한다는 것이 힘들었는지는 몰랐다. 내 삶이 소중하듯이 타인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들을 알 수 없기에 인생은 미지의 세계고 때론 허무함과 깊은 상처가 삶을 헤집어 놓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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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신간은 왜 이리 자주 출간되는지!

늘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1.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파트릭 모디아노

 

 

저자의 작품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밖에 읽지 않았는데 작년에 노벨문학상 수상 영향 탓인지 출간 된 작품이 많았다. 인터파크에서 다이어리를 받으면서 함께 받은 도서 상품권 등록을 잘못하는 바람에(유효기간이 하루밖에 안 되는 줄 몰랐다. 뒷면의 설명서를 좀 자세히 읽을 걸!) 상품권을 쓰기 위해 이 책을 부랴부랴 구입했다. 저자의 책이 여러권 있었는데 줄거리와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이 책을 선택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는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2. 나란 무엇인가 - 히라노 게이치로

 

 

국내에 출간 된 히라노 게이치로 작품은 모두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에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에는 에세이로 '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내 안에 숨쉬고 있는 수 많은 나를 이 책을 통해서 좀 명확하게 만날 수 있을까? 얼른 만나고 싶어진다.



 

 

 

3. 냉담가계 - 이상화

 

 

개인적으로 옛글은 따분하게 느끼는 편이다. 아는 게 없거니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거란 자신감이 없어서이기도 한데, 예전에 백탑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옛글의 매력에 대해서 알게 됐다. 그래서 옛글에 대한 책을 만나면 일단 관심부터 간다. 한참 관심 가질 때 옛글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구비해 놓고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계기로 그런 읽기가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읽다 만 책들은 늘어나고 있는데 이렇게 새 책이 들어오면 또 밀리게 된다. 분명 오늘 저녁에 이 책들을 먼저 꺼내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한 권씩 집중해서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여러권을 한꺼번에 읽는 습관은 쉽게 안 고쳐진다. 장단점이 있지만 비문학과 소설을 함께 읽을 때는 집중력이 확실히 좋은 것 같아 당분간 그냥 부지런히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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