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밸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일. 두툼한 책을 덮은 후 나도 모르게 혼자 내뱉은 말이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얄궂은 운명을 지켜만 봤기에 그런 허무함이 더 밀려왔는지도 몰랐다. 또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으며 그런 이기심이 낯모르는 타인의 삶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가족까지 해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씁쓸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고 힘든 시간을 맞이하며 그 과정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는 물론이고 미래도 달라진 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성급하게 굴며 현재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이 전부인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누구나 그런 일들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건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남겨진 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며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이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라이언이기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했다. 이런저런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서를 들락날락 한 그는 사채업자에게 거금의 빚을 지게 되자 납치사건을 일으킨다. 요양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방문하고 남편과 함께 돌아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바네사는 라이언에게 납치 돼 라이언이 어린 시절 이름 붙인 폭스 밸리라는 동굴에 갇힌다. 라이언은 그 동굴에서 바네사가 홀로 빠져나올 수도 있다 생각해 나무 상자 안에 가둬버린다. 하지만 라이언이 바네사의 남편과 협상을 하기도 전에 폭행사건으로 구금되고 바네사의 일을 들춰내봤자 불이익을 당할 게 뻔해 감춰 버린다. 라이언이 구금된 상황에서 바네사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 말만 했어도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혼자서 얼마나 많이 되뇌었는지 모른다.

  두툼한 책을 지루함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네사의 생사여부였다. 과연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이언이 나무상자에 가뒀기 때문에 탈출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도 라이언의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그녀가 어디선가 라이언에게 복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언을 지켜보고 있는 듯 그가 바네사에게 저지른 모방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네사가 충분히 복수할 수도 있겠지만 남편 매튜 앞에 거의 3년 동안이나 나타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녀가 부디 살아 있길 바랐다. 매튜에게 복수를 하더라도 어떡해서든 살아 틀어져버린 모든 일들을 바로 잡을 수 있길 바랐다. 바네사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겠지만 매튜와 가까워지기 시작한 지나가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내가 납치 된다면, 혹은 내 배우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생사 여부도 모르는 상태라면 과연 나는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도 해보고 살아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하며 지금껏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끊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갈망도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는지 겁이 나기도 한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 평범한 장소에서 돈을 목적으로 한 라이언에게 납치되었기 때문에 더 간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바네사는 물론이고 매튜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삶까지 망가트린 피해자가 불특정 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렵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랬기에 그런 라이언을 믿고 싶어 하고 사랑하게 된 노라가 더욱 더 비현실적인 인물로 비춰졌다.

  그런 와중에 바네사의 친구이자 네 아이의 엄마인 알렉시아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네사가 사라진 주차장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사라진 알렉시아. 라이언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독자는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일어나는 비슷한 범죄 때문에 바네사의 생사여부도 잠시 제쳐둔 채 제 3의 인물이 이 모든 일을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알렉시아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유사사건으로 은닉한 범인이 밝혀지면서 인간은 언제든지 충동적으로 범죄를 일으킬 수 있으며 목숨까지 해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양면성을 지니고 있고 나쁜 마음, 나쁜 생각을 담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을 꾹꾹 누르고 있기에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을 누르지 못할 때 범죄가 일어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며 목숨까지 해하며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고 말이다. 그런 마음을 감출 수만은 없는 게 인간이라지만 타인의 목숨을 해치고도 자신의 목숨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본능적인 추악함이 낱낱이 드러나 책장을 덮을 때는 씁쓸함이 입 안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으로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멈춰버린 사람도 있는데 끝까지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범죄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암울했다. 선량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이런 추악함을 지켜봐야한다는 것이 힘들었는지는 몰랐다. 내 삶이 소중하듯이 타인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들을 알 수 없기에 인생은 미지의 세계고 때론 허무함과 깊은 상처가 삶을 헤집어 놓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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