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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알게 된건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에서 였다.
자신이 감시 하는 사람이 늘 이 책을 읽었기에 주인공은 이 책을 사서 본다. 그러나 이내 재미 없고 따분한 이런 책을 왜 읽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나온다.
구미가 당겼다. 책 속의 책. 그리고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책.
이상하게 재미가 없다는대도 관심이 쏠렸다.
그래서 월든을 사려고 검색하자 여러 출판사의 책이 떴다.
양장본도 제쳐둔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개정판이라는 문구 때문이였다. 번역에 민감한 터라 개정판 하나만 믿고 구입했었는데 두툼한 책을 보고 있자니 약간의 두려움도 생겼다.
시작하면 언젠가는 끝내겠지 하는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뉴욕 3부작의 그 처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괜한 호기심을 품은걸까 하는 마음이 들어 한참을을 덮어 놓은 책이였다. 아무리 낑낑대도 집중이 안되는 책.
그래서 올 추석 큰 맘을 먹었다. 이 책을 끝내기로.
욕심만 잔뜩 머금은채 긴 연휴만 믿고 읽을 책을 다섯권정도 가져갔다. 월든이 잘 읽히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셈인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현장 독서의 힘이 있었다.
월든의 소로우 처럼 인적이 드문곳은 아니였지만 내가 자란 시골은 두메산골이여서 어느 정도의 분위기는 형성하고 있는 셈이였다.
도심 속에서 읽으려고 애쓰고 낑낑대던 월든이 시골집에서는 술술 잘 읽혔다. 고요했고 온갖 벌레들의 침략(?)과 자연의 소리가 가까웠기에 여기가 월든 숲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때도 있었다.
비록 호수나 저수지 같은 웅덩이는 없고 작은 개울이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라 소로우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월든 숲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파악했을지라도 나와 소로우에게선 큰 차이점이 있었다. 내 자의로 두메산골에서 자란게 아닌 반면 문명의 해택을 받고 대학 공부까지 한 소로우는 스스로 월든 호수로 들어온 것이다. 2년여후 소로우는 월든을 떠나지만 내가 학교때문에 직장 때문에 도시로 나간 것과 소로우의 떠남은 확연히 달랐다.
나는 환경에 의한 어쩔 수 없음이라고 해도 소로우는 월든에서의 생활에 이젠 미련이 없다고 봐도 된다. 근원적인 차이에서 오는 도시속의 흡수는 그래서 다른 것이다.
문명 사회를 따라 가고자 하는 이들과 그러한 문명에서 잠시 떨어져 새로운 통찰을 하고 단순한 따라감을 하지 않겠다는 소로우의 의지는 신선한 것이다.
경험하지 않고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 보다 더 큰 결과는 없을 것이나 소로우를 보자면 경험에 의한 것 또한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을 월든에 옮겨 놓았기에 소로우의 생각들은 우리에게 더 와 닿는다.
손수 농사를 지으며 기본적인 욕구부터 인간의 가장 꼭대기층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상 실현을 위한 가능성까지 월든 호수에서 모든 것을 짚어낸다.
가장 원초적이고 이상적이 되어 버린 자연속의 삶에서 말이다.
단순히 자연예찬만을 하는 것이 아닌 숲 속의 경제, 숲을 통한 의식 속의 통찰 등 욕망은 잠시 제쳐둔채 돌아봄으로써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깊이 뿌리 박혀 있던 관념의 변화를 유도하면서 이제는 이렇게 변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깨달음이 있었다.
현세에 절고 절어 버린 우리를 과연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 우리 모두가 숲으로 들어가 그러한 성찰을 하기 바라는 것은 아닐터이나 그러한 유혹 또한 없는 것도 아니였다.
그러나 소로우의 2년여의 생활을 돌아 보자면 모든 것을 제쳐둔채 숲으로 들어 갔다고는 하나 우리가 단순히 판단할 수 있는 무념, 무상의 삶은 아니였다.
오히려 숲으로 들어간 소로우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귀찮게 하는 사람도 있었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손수 집을 짓고 농사를 지었다고는 하나 다른 사람들과 문명 세계가 없었다면 스스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순한 숲에서의 생활이 아닌 지리적인 문명과의 떨어짐이였을뿐 숲은 나름대로의 또 다른 세계였다. 그랬기에 현장 독서의 절묘한 짜릿함 속에서 온전히 즐길수만은 없었다.
소소한 월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로우의 세계 속으로의 여행은 이래서 다양했다.
때론 나를 돌아보게 하고 때론 욕망이 없게 만들었다가 평안함을 던져주며 몽상가가 되기도 하고 사색적이 되게도 하면서 이 삶은 한번쯤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아름다운 월든 호수와 숲 가운데에서만이 아니라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서도 충분히 그러한 가능성을 끌어안고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랬기에 시골집에서 탐독했던 월든과의 시간은 무척 소중하다.
한바탕 꿈을 꾼 것인냥 그런 잊혀짐이 아닌 오래도록 그 시간이 남아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