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래빗 시리즈 08 : 헝커멍커 이야기 베아트릭스 포터 베스트 콜렉션 8
베아트릭스 포터 글.그림,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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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기어다니는 아이를 키우다보니 매일 청소를 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집이 엉망이 된다. 청소를 막 해 놓은 뒤에 아이가 어질러 놓으면 그 상태를 유지하느라 정리하고 뒤 쫓아 다니기 바쁘고, 청소하기 전이면 맘껏 어지르라며 내버려둔다. 특히나 거실에 내 책이 엄청 많은데 그 책들을 빼고 뜯고 망가뜨리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벌써 여러 권의 책 띠지를 뜯고 입으로 망가뜨려버렸다. 사랑하는 아이가 이렇게 해도 짜증을 내야 하는지 인내해야 하는지 늘 갈등이 이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우리집을 어질러 놓았다면 어떨까? 상상만해도 피곤해진다.

 

  작은 인형의 집에는 꼬마 인형 루신다와 제인이 살고 있다. 장난감 음식이 잔뜩 있어 요리를 할 필요도 없는 아주 편리(?)한 집이다. 어느 날 루신다와 제인은 외출을 하고 그렇게 빈 인형의 집에 생쥐 부부 톰썸과 헝커멍커가 들어온다. 두 부부는 인형의 집 이리저리를 구경하다 식탁에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걸 보고 군침이 돈다. 그래서 그 음식들을 먹어보려 노력하지만 하나같이 딱딱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장난감으로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진 음식이니 당연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생쥐 부부는 여러 번 음식을 먹으려 시도하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티스푼으로 음식들을 산산이 부숴 버린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나 다른 음식도 부숴 버리고 벽난로에 넣어 버린다. 하지만 벽난로의 불도 가짜라 태울 수가 없었다. 생쥐 부부는 그것도 모자라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말썽을 피웠다. 옷장의 옷을 창밖으로 던지고 깃털 이불을 모조리 꺼내는 등 말썽을 부리다 깃털 이불을 만들고 싶어 일부를 집으로 나른다. 몇 가지 가구와 아기 침대까지 옮긴 부부는 의자까지 들고 가려다 루신다와 제인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후다닥 도망친다. 엉망이 된 집을 본 루신다와 제인은 어안이 벙벙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한 곳만 난장판이 아닌 온 집안이 엉망진창에다 가구까지 없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런 집을 만약 내가 발견했다면 정말 분통터졌을 것이다. 온갖 욕을 해대며 모든 짜증을 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신다와 제인은 이렇게 만든 이를 무청 궁금해 하며 ‘아니, 이게 다 뭐야.’ 라고 말할 뿐이다. 인형의 집을 가지고 노는 소녀는 인형의 집 앞에 경찰인형을 세워 놓을 거라고 엄마에게 말한다. 소녀의 엄마는 쥐덫도 함께 놓아야겠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이렇게 동화가 끝났다면 좀 심술궂은 생쥐 부부의 에피소드로 기억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들이 생쥐부부를 미워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생쥐 부부는 나쁜 쥐들이 아니며 자신들이 망쳐 놓은 것을 다 물어냈다고 했다.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인형의 집에서 가져온 양말에 담아 현관 앞에 놓았음은 물론 이른 아침에 헝커멍커가 일어나 매일 말끔히 청소를 해주었다고 했다.

 

  그리곤 방을 어질러 놓은 사람이 방을 치워야 한다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을 치우라는 엄마와 대충 치워놓고 다 치웠다고 하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을 본 적이 있다. 엄마는 아이에게 방을 치우라고 하지만 자신의 기준에서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길 바라고 아이는 자신의 기준에서 편한데로 정리하기 때문에 하나도 어지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곳이 자신만의 세계이고 자신의 시각에서 정리를 했기 때문에 엄마의 기준을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다음에 아이가 자기 방을 갖게 되면 그런 시선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단 생각을 하지만 잘 지켜질지 의문이다. 그래도 정 안되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할 참이다. 방을 어질러 놓은 사람이 치워야 하기 때문에 어떤 기준에서든 아이의 노력에 일단 응원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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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래빗 시리즈 07 : 글로스터의 재봉사 베아트릭스 포터 베스트 콜렉션 7
베아트릭스 포터 글.그림,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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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세 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명은 집에서 뒹굴거리고 한명은 일하고 한명은 책만 읽고 뭐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 말이다. 특히 학교 다닐 땐 시험 기간이 다가오거나 수업시간이 너무 지루할 때 그런 상상을 자주했었다. 상상만 해도 행복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현실에 찌들어 그런 상상이 헛되다 못해 일어날 수 없음을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다. 글로스터에 사는 재봉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대신 중요한 일을 누군가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전래동화 콩쥐팥쥐도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옷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하는 재봉사 할아버지는 가난하고 외로웠다. 정작 자신은 좋은 옷은 입지도 못하고 가족이라곤 고양이 심킨밖에 없는 쓸쓸한 할아버지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지만 그런 와중에도 남은 천으로 생쥐들에게 옷을 만들어주는 마음 한켠이 따뜻한 할아버지다. 그런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양복을 만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글로스터 시장님이 결혼식 때 입을 옷이었다. 기일을 맞춰야 했기에 모든 준비를 마쳐놓고 단춧구멍을 만들 비단실만 준비하면 되었다. 전재산 가운데 비단실을 살 돈을 배분해 고양이 심킨에게 비단실을 사오라고 시켰는데, 심킨이 저녁으로 먹을 생쥐들을 할아버지가 풀어주는 바람에 심술이 난 심킨이 비단실을 감춰 버리고 만다.

 

  비단실이 없다는 사실을 안 할아버지는 앓아누워 버린다. 그 실이 없으면 단춧구멍을 만들 수 없고 그럼 기일 이내에 양복을 완성할 수 없다. 앓는 와중에도 실이 모자라다며 끙끙대는 할아버지를 보자 심킨도 당황하고 말았지만 어떻게 할아버지를 도울 방법이 없었다. 모든 집들을 비밀 구멍으로 다닐 수 있는 생쥐들은 이 사실을 알고 할아버지 대신 옷과 단춧구멍을 만든다. 물론 할아버지가 준비해 놓은 양복점에서 많은 생쥐들이 열심히 말이다. 그 생쥐들은 할아버지가 풀어주었던 생쥐들이고 마치 은혜를 갚는 듯 할아버지가 누워 있는 동안 대신해서 일을 해주었다.

 

  심킨은 할아버지가 몸져누운걸 보며 깊이 반성하며 할아버지를 병간호 하고 숨겼던 비단실도 내놓는다. 몸이 회복된 할아버지는 비단실을 가지고 양복점에 갔지만 몸에 힘도 없고 코앞으로 닥친 크리스마스에 맞춰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하고 만다. 그런데 양복점에 도착해 보니 아주 멋진 외투와 조끼가 완성되어 있었다. 딱 하나의 단춧구멍만 빼고서 말이다. 실이 모자라다는 메모까지 발견한 할아버지는 얼른 가져 온 실로 옷을 완성한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에게는 행운이 찾아온다. 몸도 건강해졌고 돈도 많이 벌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솜씨를 칭찬했다. 과연 그건 생쥐들 때문일까 할아버지 덕분일까?

 

  어찌되었건 할아버지에게 행운이 찾아왔다는 건 마음 놓이는 일이지만 좀 더 일찍 할아버지에게 그런 행운이 왔다면 덜 고생했을텐데. 한편으론 현재 내가 어렵고 힘들지라도 인내하고 견디며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분명 활짝 꽃 필 날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생각이 스쳤다. 그 빛을 발함이 언제인지 몰라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낙심하고 원망도 하지만 그것을 알 수 없기에 인생은 살아볼만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과정을 묵묵히 견디는 것은 아니지만 절망 속에서 약간의 희망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앞으로 전진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은 아닐까? 헛된 희망은 차라리 희망 없음보다 나쁠지 모르지만 현실을 인식하는 희망을 가지는 것. 이 짧은 동화를 읽으면서 나에게 맞는 희망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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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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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읽기 자세는 누워서 보는 거다. 예전에는 엎드려서 보는 게 편했는데 큰 단점이 어깨가 아프다는 거였다. 우연히 독서등을 고정해서 누워서 보는 법을 터득한 후 그 자세로 책을 자주 보는데 양팔로 책을 들어야 해서 팔이 아픈 단점이 있지만 엎드려서 볼 때보다 훨씬 편하다. 그래서인지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서 책을 보지 못한다. 이런 마음가짐만 봐도 학창시절 학교성적은 불을 보듯 뻔하지만 종종 상상하곤 한다. 누워서 책을 보는 카페가 있다면 자주 가겠노라고. 아마 손님 회전율이 낮아 그런 카페는 금방 문을 닫겠다란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뜬금없이 독서 자세에 대해 이야기 한 이유는 이 책을 읽다보니 책은 누워서 보는 게 제일 편하다고 말하며 누워서 책을 보는 도서관이 나와서였다.

 

  책 제목만 보면 나에게 맞는 책을 척척 골라 줄 것 같은 병원이나 약국이 나올 것 같지만 표지에서 풍기는 것처럼 이야기는 약간 으스스하다. 무섭다기보단 고딕적인 요소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집을 털러 간 도둑인 루크레시오에게 가짜 아빠가 되어 달라고 제안하는 아이. 사연이 있을 거란 예감도 잠시,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저택에서 일어난다. 성별을 알 수 없는 대머리 아이 칼비노는 의아해하는 루크레시오와는 달리 아이임에도 세상을 달관한듯한 차분함과 까칠함, 자기 식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집을 털려다 얼떨결에 가짜 아빠 노릇을 하게 된 루크레시오는 아이 엄마의 시체를 보았다고 믿고 집 안에 이상한 장치가 있으며 급기야 피리를 부는 이상한 사람까지 만나게 된다. 저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한 것 투성이라 급기야 더 이상할 것 같은 피리 부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까지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칼비노는 여자 아이로 분하기도 하고 책을 처방해주는 도서관 같은 정신병원에 데려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책 속의 주인공에게 갇힌 사람들을 보면서 책이 현실을 도피하는 도구가 아님을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책은 우리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들잖아요.”

루크레시오가 말했다.

“거리를 두게끔 돕는 거죠” (56쪽)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책이 재밌어서 읽는다고 하지만 실은 현실 도피용으로 이용한다는 말도 함께 보태곤 했다. 이 부분을 읽고 도피가 아닌 거리감을 두는 거라 생각하자 뭔지 모를 위안과 위로를 받았다. 정말 책을 처방해주는 도서관과 약국이 있다면 어쩜 자신의 세계에 갇힌 사람들도 더 빨리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것이다.

 

  그럼에도 루크레시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석연치 않다. 뭔가 꿍꿍이가 가득한 저택과 알쏭달쏭한 칼비노. 서서히 비밀이 밝혀지면서 책 제목에 따른 내가 생각한 이야기와 거리가 멀어진다는 느낌이 짙었다. 드라마에서 너무 많이 봐 온 출생의 비밀이 있었고 그렇다고 감동이 있다거나 가슴 뭉클한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출생의 비밀을 몰라온 사람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려는 과정이 좀 독특하고 특이하다는 것일 뿐 책 제목과 썩 어울리는 이야기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거기다 칼비노는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감춘 채 깐깐하게 굴고 있어서 더 맥이 빠졌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좀 더 다르게 생각해 본 게 있다면 책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 정도랄까? 현실 도피용이 아닌 거리감을 두는 용도로 책을 읽는다는 발견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놓인다. 비록 책 속의 인물들이나 이야기의 흐름이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책으로 이런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는 저자의 상상력은 참 독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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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는 나라의 공장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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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바닥에 누워 뒹굴 거리고 있는데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가 읽고 싶어졌다. 어떤 계기나 이유도 없이 문득 읽고 싶어 책장에서『해 뜨는 나라의 공장』을 꺼내왔다. 에세이 걸작선으로 재출간 된 다섯 권의 책 중에서 이 책만 못 읽고 있던 터라 다시 꺼내듦이 반가울 정도였다. 작년 이맘때쯤 하루키 작품에 몰두하다 급작스런 출산으로 멈춰버리고 거의 일 년 만에 꺼내든 책이다. 그래서인지 너무 술술 읽혀 어둔 방안에서 독서등으로 새벽까지 완독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시원한 대답은 못하지만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좀 더 편안하고 재밌는 건 사실이다. 특유의 끌림으로 꽤 오래 독서를 못하고 있던 나를 단박에 읽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나 역시 신형철 문학평론가처럼 ‘아무리 하루키가 썼다 해도 공장 탐방기 같은 것은 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 보기 좋게 당한 느낌이다. 깜짝 놀랄 만큼 재밌어서 깜짝 놀랐습니다.’란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과연 어떤 작가가 공장 탐방기를 썼다고 읽어보라고 하면 선뜻 읽을 수 있을까? 하루키란 작가에 과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읽기도 전에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거란 생각을 하게 된 것만 봐도 공장이란 곳에 대한 편견과 다큐도 아니고 사진이 적나라한 것도 아닌 글로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내제되어 있었다. 거기다 글을 여는 첫 공장이 인체모형을 만드는 공장이라니. 나에겐 생소한 공장이기도 했고 그런 공장에 어릴 적 추억을 보태어 거리낌 없이 들여다보고 질문하고 느낌을 남겨놓은 글에 살짝 충격을 받기도 했다. 글의 대상이 중요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단 글 쓰는 사람에 따라 글 속에 보이는 것이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인체모형을 만드는 공장을 시작으로 결혼식장, 지우개 공장, 옷 브랜드 공장, CD 공장 등 다양한 공장을 방문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견학의 과정부터 그곳에서의 느낌과 현장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애쓰는 모습까지 모두 담겨있다. 무언가 조사하고 그것을 상세하게 기록한다는 의미가 아닌 저자 스스로 궁금해 하던 공장들의 견학이어서 그런지 사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똑같은 형식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만들고 이러이러한 모습이었다라고 결론지어 버리면 재미도 없을뿐더러 하루키다운(?) 모습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장은 어느 신혼부부의 결혼식 상담내용을 보여주다 총 금액에 대한 도표로 마무리하는 등 이걸 견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상큼(?)하게 끝내 버린다.

 

  지우개 공장을 둘러보고 나서야 지우개의 원료의 대부분이 지우개가 아님을 알고 충격 받고, 농장에 들러 소들의 냉혹한 경제동물의 역할을 보며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을 우울하거나 겉핧기만 한다던가 너무 자신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아(이건 아닌가?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친 부분이 많아 더 인간적으로 느끼며 읽었는데!) 어떤 장소가 되었든 비교적 재미나게 읽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글의 대상보다 글쓴이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대상이 달리 보임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피부에 와 닿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글이 쓰인 1980년대 중반이라는 배경을 차치하고 지금은 그 공장들이 과연 남아있을지, 남아 있다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너무 빨리 읽어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일 년 동안 묵혀둔 게 무색할 정도의 독서였고 오랜만에 글자의 향연에 푹 빠질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좋았다. 이 느낌이 좋아 역시나 작년에 읽다 만 하루키 에세이를 다시 꺼내들었는데 술술 읽힌다. 한참 읽다보면 질린다고 손 놓아 버릴지 모르나 이렇게 흐름을 탔을 때 하루키 작품을 실컷 읽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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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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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는 국내문학보다 해외문학에 편중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조금 독특하거나 신선한 작품을 만나면 금세 알아채는데 겨우 이름만 들어본 황정은 작가의『백의 그림자』가 그랬다. 젊은 작가이고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독특하고 앞으로 지켜보고 싶은 작가. 하나의 작품을 읽고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을 때 독서에 대한 흥분이 인다.

 

  무척 독특한 소설이었다. 두 남녀의 연애소설로 볼 수도 있지만 철거직전인 전자상가 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연애소설로 치부하기엔 무게감이 상당하다. 도심 한가운데 전자상가가 있다는 것도 세월이 거꾸로 흐른 듯 시간이 멈춰버린 그곳의 풍경도 요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볼 수도 없었고 거리가 멀어 다른 나라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없었다. 한없이 맑고 투명한 연애소설을 보다가도 선량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처해진 답답한 이야기들이 적당한 무게를 유지한다고나 할까?

 

어딘가에서 다름없는 자신의 모습을 목격했다면 그것은 그림자, 그림자라는 것은 한번 일어서기 시작하면 참으로 집요하기 때문에 그 몸은 만사 끝장, 일단 일어선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고는 배겨 낼 수 없으니 살 수가 없다 (20쪽)

 

  은교와 무재의 대화를 놓칠 수 없다. 이렇듯 심오하다가도 연애 밀당의 순수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대신 들려주기도 하다. 대화의 구분이 없어 이것이 둘의 대화인지 저자의 생각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그런 모호함조차 이 소설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 존재할 것 같지만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전자상가의 배경처럼 이 둘의 연애도 흔히 보아온 남녀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더 순수하게 바라보고 싶고 더 깊고 무게감 있게 바라보고 싶은 묘함. 그들의 대화에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그러했다.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중략)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중략)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144쪽)

 

  짧은 소설이지만 어느 한 문장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사료(思料)가 들어있다. 보기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 문장들. 타인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고민을 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줄거리를 간추린다던가 제목에서 느껴지는 메시지를 찾는다던가 하는 행동들이 때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나의 생각을 끌어내는 일.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그러한 것들을 할 수 있다는데서 오는 성취감이 꽤 오랜만에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나의 이런 주절거림도 이 작품이 어떠했다는 명확함을 드러내진 못한다. 온전히 빨려 들어갔지만 내가 들어간 세계가 어떠했는지 정확히 드러낼 수 없는 몽롱함과 모호함, 그러면서도 읽는 행위에 대한 행복감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앞으로 저자의 신작이 나온다면 일부러 찾아서 읽고 싶어지는 그런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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