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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래빗 시리즈 07 : 글로스터의 재봉사 ㅣ 베아트릭스 포터 베스트 콜렉션 7
베아트릭스 포터 글.그림,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두세 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명은 집에서 뒹굴거리고 한명은 일하고 한명은 책만 읽고 뭐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 말이다. 특히 학교 다닐 땐 시험 기간이 다가오거나 수업시간이 너무 지루할 때 그런 상상을 자주했었다. 상상만 해도 행복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현실에 찌들어 그런 상상이 헛되다 못해 일어날 수 없음을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다. 글로스터에 사는 재봉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대신 중요한 일을 누군가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전래동화 콩쥐팥쥐도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옷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하는 재봉사 할아버지는 가난하고 외로웠다. 정작 자신은 좋은 옷은 입지도 못하고 가족이라곤 고양이 심킨밖에 없는 쓸쓸한 할아버지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지만 그런 와중에도 남은 천으로 생쥐들에게 옷을 만들어주는 마음 한켠이 따뜻한 할아버지다. 그런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양복을 만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글로스터 시장님이 결혼식 때 입을 옷이었다. 기일을 맞춰야 했기에 모든 준비를 마쳐놓고 단춧구멍을 만들 비단실만 준비하면 되었다. 전재산 가운데 비단실을 살 돈을 배분해 고양이 심킨에게 비단실을 사오라고 시켰는데, 심킨이 저녁으로 먹을 생쥐들을 할아버지가 풀어주는 바람에 심술이 난 심킨이 비단실을 감춰 버리고 만다.
비단실이 없다는 사실을 안 할아버지는 앓아누워 버린다. 그 실이 없으면 단춧구멍을 만들 수 없고 그럼 기일 이내에 양복을 완성할 수 없다. 앓는 와중에도 실이 모자라다며 끙끙대는 할아버지를 보자 심킨도 당황하고 말았지만 어떻게 할아버지를 도울 방법이 없었다. 모든 집들을 비밀 구멍으로 다닐 수 있는 생쥐들은 이 사실을 알고 할아버지 대신 옷과 단춧구멍을 만든다. 물론 할아버지가 준비해 놓은 양복점에서 많은 생쥐들이 열심히 말이다. 그 생쥐들은 할아버지가 풀어주었던 생쥐들이고 마치 은혜를 갚는 듯 할아버지가 누워 있는 동안 대신해서 일을 해주었다.
심킨은 할아버지가 몸져누운걸 보며 깊이 반성하며 할아버지를 병간호 하고 숨겼던 비단실도 내놓는다. 몸이 회복된 할아버지는 비단실을 가지고 양복점에 갔지만 몸에 힘도 없고 코앞으로 닥친 크리스마스에 맞춰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하고 만다. 그런데 양복점에 도착해 보니 아주 멋진 외투와 조끼가 완성되어 있었다. 딱 하나의 단춧구멍만 빼고서 말이다. 실이 모자라다는 메모까지 발견한 할아버지는 얼른 가져 온 실로 옷을 완성한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에게는 행운이 찾아온다. 몸도 건강해졌고 돈도 많이 벌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솜씨를 칭찬했다. 과연 그건 생쥐들 때문일까 할아버지 덕분일까?
어찌되었건 할아버지에게 행운이 찾아왔다는 건 마음 놓이는 일이지만 좀 더 일찍 할아버지에게 그런 행운이 왔다면 덜 고생했을텐데. 한편으론 현재 내가 어렵고 힘들지라도 인내하고 견디며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분명 활짝 꽃 필 날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생각이 스쳤다. 그 빛을 발함이 언제인지 몰라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낙심하고 원망도 하지만 그것을 알 수 없기에 인생은 살아볼만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과정을 묵묵히 견디는 것은 아니지만 절망 속에서 약간의 희망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앞으로 전진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은 아닐까? 헛된 희망은 차라리 희망 없음보다 나쁠지 모르지만 현실을 인식하는 희망을 가지는 것. 이 짧은 동화를 읽으면서 나에게 맞는 희망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