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 머신건스
미나미 나쓰 지음, 전새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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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춘기가 내 몸과 마음을 휘감아 혼란스럽던 시절. 내 안에 괴물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입을 통해서 들어낼 수 없었던, 불쾌하고 짜증스럽고 타인을 원망하던 삐뚤어진 마음들. 그 마음들을 분출할 수 있는 통로가 뭐였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음악이었던 것 같다. 서태지에 빠졌고 힙합과 록음악으로 연결되는 행보를 보니 나는 사춘기를 넘어 오춘기까지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런 불완전하고 불안했던 마음을 다른 방법으로 표출했더라면. 아니, 그런 마음을 누군가 어르고 달래주고 다른 것들을 추천해 주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이 소설은 15살의 소녀가 썼다. 15살이라면 우리나라에선 중학교 2학년인 셈인데 중2병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요즘에 이렇게 소설을 쓴다는 게 신기하고 대단하다. 거기다 봄방학 때 아빠의 업무용 컴퓨터를 빌려 3주 만에 완성한 소설이라고 하니 나의 유년시절과 비교해 보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중3때 쓰기 시작한 독후감 노트를 들여다보면 달랑 한 줄만 남겼던 유치찬란한 느낌이 허다했다. 이 소녀와 당시의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가진 재능이 다름에도 소설을 쓸 수 있는 행위 자체에 놀라움이 이는 것이다. 뭔가 참 잘 썼다는 느낌이라기보다 자신의 나이대의 고민과 일상, 처한 환경에 대한 솔직한 생각이 묻어나 능글맞음보다 주인공의 내면을 더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나라면 절대 글로써 이렇게 표출하지 못했겠지만 10대에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와 내면을 뒤덮고 있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는 감성을 고스란히 들여다봐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불편한 것은 결코 15살의 나이에 겪고 싶지 않은 주인공이 처한 환경과 그 안에서 성장해가는 과정이었다. 엄마는 가출하고 아빠는 자신에게 관심도 없고 아빠의 젊은 애인과도 늘 충돌이 인다. 학교에서도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조용히 묻어 지내려 하지만 왕따를 당하게 되고 그나마 평범해 지려 했던 마음의 문조차 닫히고 만다. 말 그대로 방황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어 때론 격하게 감정이 일기도 하고 꿈에서 나타나는 저승사자의 모습까지, 얼마나 불완전한 시기를 혼자서 보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맞추어야 할 표적을 알고 싶다. 싸워야 할 적의 정체를 알고 싶다. (93쪽)

 

  꿈에서 나타는 식칼을 든 저승사자의 요구를 들을 때마다 혼란을 겪으면서도 그 혼란이 어디서부터 야기되었는지 콕 집을 수 없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이 그 혼란의 원인인 것 같으면서도 그 탓만 할 수 없는 건 스스로 이겨내고 살아가야 할 삶이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승사자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머신건을 쏘아버린다면 그동안 걸어온 삶의 궤적에서 탈선해 버리는 것이다. 정해진 길은 없지만, 한 번 탈선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탈선에는 희망을 걸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기에 들끓고 꾸역꾸역 넘쳐나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건 일단은 자신의 책임이다.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보가 달라지듯 나 또한 겪어왔던 그런 혼란을 그냥 글로 써 보았더라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을 거란 생각이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들었다.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쓸 능력도 없지만 오로지 나만을 위해 마음에 이는 온갖 상념들을 끼적거려 봤다면 그때 맺힌 응어리를 푸느라 책을 읽고 난 느낌에 이렇듯 푸념을 해대진 않았을 텐데. 아니면 나의 마음과 비슷했던 책을 만났더라면 적어도 동질감을 느끼며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텐데. 이미 지나와버린 과거에 왜 이렇게 미련이 남는지 모르겠다. 미련을 갖는다고 해서 현재의 내 모습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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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15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살에 저는 책만 읽었는데 일본의 15살 소녀가 책을 쓰다니 대단한 친구네요. ^^

안녕반짝 2015-01-15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대단하긴 하더라고요.
 
아인슈타인과 도둑맞은 바이올린 범죄현장 탐구 Tatort Forschung 시리즈 1
벨린다 지음, 김희상 옮김, 요한 브란트슈테터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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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 언니집에서 함께 살 때 조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유심히 지켜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했다. 만화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다 똑같을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른 점이 있고 조카들이 재밌게 보는 프로그램은 어른인 내가 봐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조카들과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볼 정도로 열혈 시청자일 때가 있었다. 그때의 버릇이 지금도 남아 있어 만화가 할 시간에 채널을 돌리며 끌리는 프로그램을 종종 보곤 하는데 어린이가 중심인 과학수사에 관한 만화를 보고 있으면 꽤 흥미롭다. 그런 면에서 독일에서 출간되어 인기를 끌었다는 ‘범죄현장 탐구’ 시리즈인 이 책을 보니 즐겨보던 텔레비전 만화를 책으로 만난 느낌이 들었다.

  학창시절 공부에 흥미를 느끼는 학생이 아니었기에 과학 과목 역시 전혀 좋아할 수가 없었다. 뭔가 흥미를 느낄 요소나 그렇게 느끼게끔 이끌어 준 사람이 있었더라면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과학은 내게 먼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아인슈타인이 출현한다고 해서 과학과 관련된 책으로 묶어 버리는 단순한 생각을 깨트리듯 이 책에서 등장하는 아인슈타인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니었다. 추리소설 속에 아인슈타인을 등장시켜 그가 어떤 업적을 남기고 어떤 사람인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거기다 나처럼 게으른 독자들이 있을 걸 알고 그냥 술술 읽고 넘어가게 만들지 않고 아인슈타인과 쌍둥이 남매 야코프와 한나가 함께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사건은 쌍둥이 남매 집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시작됐다. 아빠의 친한 친구인 아인슈타인 박사가 클랙식 음악회에 초대되어 함께 즐기고 있었는데 아이슈타인 박사가 놓고 간 바이올린 케이스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거기에는 연구 노트가 함께 들어 있어 꼭 찾아야 만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찾지 못한 단서를 찾아내고 그 단서를 빌미로 이 사건의 범인을 찾아 나선다. 허탕을 치기도 하고 고민을 하기도 하면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에게서 절대 보지 못한 진지한 모습을 보았다. 내가 흥미가 있는 것에도 쉽게 포기하고 쉽게 마음을 접는 모습과는 달리 진지하고 끈질기게 해결해 나가려는 아이들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청소년 때 이런 책을 만났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가운데, 챕터의 끝의 질문을 보면서 범인과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어갈지 추리해 볼 수 있었다. 범인은 아이들에게 협박 메시지를 남기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그러면 그럴수록 더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해결에 골몰한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아인슈타인 박사가 아닌 아빠 친구이자 친절하고 때론 어수룩한 아인슈타인 박사가 있었기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은 사건을 해결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에게는 상과 벌을 동시에 받는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사건에 뛰어들어 해결했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서 말리고 싶은 마음도 있기 마련이다. 말린다고 아이들이 앞으로 이런 일에 뛰어들지 않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부모가 항상 지켜보고 있고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상과 벌이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의 생애와 그가 남긴 유명한 업적들을 그대로 보았다면 조금 따분했을 텐데 이야기를 통해 아인슈타인을 만나서 그런지 좀 더 친숙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나에겐 먼 이야기고 먼 나라 사람 같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와 상관없다고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라도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되고 알게 되어서 다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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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에서 주는 스탬프를 오늘에서야 다 모았다. 30일 연속 출석체크가 있어 오래 걸렸다는! ㅋ 다 모으니 뭔가 허전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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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1-1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탬프 더 만들어주면 좋겠어요_ 한 100개?! ㅎㅎ

소금창고 2015-01-14 09:02   좋아요 0 | URL
ㅋㅋ 맞아요
넘 쉽게 모은거 같아요

[그장소] 2015-01-14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출석에 걸려서 아직..더..종류가 다양해도 좋겠어요..재미있어요..

[그장소] 2015-01-14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한다고..고생하셨어요! 책읽는거야..각자 좋아 하는거라지만..소통하는 일은 ..부러 시간내서 하는것.. 자신을 내어주는 일..
감사합니다..
 
다빈치와 수제자 범죄현장 탐구 Tatort Forschung 시리즈 2
아네테 노이바우어 지음, 김희상 옮김, 실비아 크리스토프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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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과 도둑맞은 바이올린』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는 시리즈다. 이번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날 수 있는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가 배경이다. 지금도 이탈리아 피렌체는 한번쯤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인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날 수 있는 배경이라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유명한 화가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다방면에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제자 살라이를 가르치며 그야말로 이런 것에도 흥미를 가질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었다.

  살라이는 명색이 수제자지만 스승의 잡다한 심부름이나 지루한 숙제를 겨우 하며 지낼 뿐이었다. 오히려 스승이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으면 몰래 빠져나가 여자 친구와 함께 노는 게 더 좋았다. 문제는 스승 몰래 빠져나간 틈을 타 스승의 발명 노트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당연히 다빈치는 불같이 화를 내고 풀이 팍 죽은 살라이는 그 사실을 여자 친구에게 말한다. 여자 친구 카테리나는 그런 살라이에게 범인을 함께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다빈치의 제자인 살라이보다 카테리나가 더 제자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차근차근 범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스승의 연구노트에는 사람이 날 수 있는 기계에 관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유추하고 그것을 살만한 가게부터 뒤지기 시작한다. 조금씩 범인에게 다가갈수록, 왜 범인이 그 노트를 훔쳤는지 알아갈수록 단순한 범인 색출에만 그치지 않고 다빈치가 어떤 연구를 하며 그 연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한다. 살라이는 그 과정에서 늘 자신에게 허드렛일만 시키고 지루한 숙제만 내고 불호령만 내렸던 스승의 깊은 뜻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그런 스승을 다시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독자도 다빈치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업적을 남겼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방면에 특출한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다.

  이렇듯 앞선 시리즈와 함께 유명인물을 소설 속에 내세워 친근하게 만들고 어떤 인물인지 알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게 부담 없는 것 같다. 억지로 알아가게 하는 것보다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는 인물과 그에 관한 지식을 알게 되어 다시 한 번 그 인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시기에는 이런 책보다 교과서에 관련된 책들이 주류였는데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책들이 있었다면 더 흥미롭게 지식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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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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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이지만 이 단편집을 읽는 내내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러면서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흘러나왔다. 중국문학 하면 고전에 치우쳐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서른 살이 넘어 미국에 정착해 글을 쓴 작가의 글에 이렇게 매료될 줄은 몰랐다. 톈안먼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 살기로 결심한 그는 ‘모험에 따르는 두려움을 잘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작가’라고 한다. 고향을 그렇게 떠나고 싶어 했으면서도 타 지역에만 나가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 몸부림치던 나에게는 너무나 머나먼 이야기다. 두려움에 잠식당해 절대 다른 나라에서 정착하며 살 수 없을 것 같은 나에게 그의 글을 통해 만난 중국계 이민 1세대들의 이야기는 그 두려움을 더 증식시킬 뿐이었다.

  낯선 곳, 사람이 많고 나를 아는 사람이 많아도 곤란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어 어색한 곳에 가면 나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그리워하며 쩔쩔맨다. 서른 살에 타 지역으로 직장을 찾아 떠나 2년 반을 살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1년 6개월이 됐음에도 여전히 당시에 느꼈던 두려움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곳에서 모든 걸 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더불어 낯선 일까지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게 했다. 물론 즐거운 일도 많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늘 일을 관두게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리란 마음이 잠재해 있었다. 막상 고향으로 돌아오고 보니 돌아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과 그만큼 버틴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의 이민자들의 삶, 그리고 저자 자신도 이민 1세대로서 그곳에서 살며 느꼈을 이런저런 고난과 마음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일어날 법한 사건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낯선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단함을 우울하고 무겁게 그려내지 않아 좋았다. 때론 유머로 긴장감을 풀어주기도 하고 감동으로 마음이 찡하게 했다가 갈등으로 인한 답답함을 불러일으키고 성공을 위해서, 미국이란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는 이야기들도 만났다.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다 보니 삶을 살아가는 건 어느 곳이나 다 비슷비슷하다는 걸 느꼈고 그럼에도 조금은 독특하고 힘든 환경에 놓여있는 그들이 고단해 보여 마음 한켠이 휑해지기도 했다.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살아야 행복한 건 아니지만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곳에 가야 한다는 건 그야말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을 바꿔야 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조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던 간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한다고 했듯이 살아남기 위해 접시를 닦는 일도 서슴지 않아야 하듯이 말이다.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기에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그들을 보면 딱하기도 하고 꼭 그래야만 하는 건지 되묻기도 했다. 그들이 선택한 일임에도 지켜보는 사람이 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그런 모험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들의 나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에 나도 처해진다면 과연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현재 나는 고향에 돌아와 모든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고단했던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수도 있고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질을 판단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12편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인지하는 반면 인생이란 것이 이렇게 팍팍하고 마음 찡해야 하며 힘들어야 하는지 괜히 허공을 향해 한숨을 쉬게 만든다.

  그럼에도 하 진이란 작가를 발견하고 그의 작품을 읽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오히려 그의 작품을 더 읽어 보고 싶고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어진다. 단박에 마음을 사로잡는 문체가 ‘적어도 스무 차례’ 걸친 교정의 결과라고 하니 대단하다는 감탄사만 터질 뿐이다. 그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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