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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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이지만 이 단편집을 읽는 내내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러면서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흘러나왔다. 중국문학 하면 고전에 치우쳐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서른 살이 넘어 미국에 정착해 글을 쓴 작가의 글에 이렇게 매료될 줄은 몰랐다. 톈안먼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 살기로 결심한 그는 ‘모험에 따르는 두려움을 잘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작가’라고 한다. 고향을 그렇게 떠나고 싶어 했으면서도 타 지역에만 나가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 몸부림치던 나에게는 너무나 머나먼 이야기다. 두려움에 잠식당해 절대 다른 나라에서 정착하며 살 수 없을 것 같은 나에게 그의 글을 통해 만난 중국계 이민 1세대들의 이야기는 그 두려움을 더 증식시킬 뿐이었다.

  낯선 곳, 사람이 많고 나를 아는 사람이 많아도 곤란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어 어색한 곳에 가면 나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그리워하며 쩔쩔맨다. 서른 살에 타 지역으로 직장을 찾아 떠나 2년 반을 살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1년 6개월이 됐음에도 여전히 당시에 느꼈던 두려움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곳에서 모든 걸 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더불어 낯선 일까지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게 했다. 물론 즐거운 일도 많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늘 일을 관두게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리란 마음이 잠재해 있었다. 막상 고향으로 돌아오고 보니 돌아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과 그만큼 버틴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의 이민자들의 삶, 그리고 저자 자신도 이민 1세대로서 그곳에서 살며 느꼈을 이런저런 고난과 마음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일어날 법한 사건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낯선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단함을 우울하고 무겁게 그려내지 않아 좋았다. 때론 유머로 긴장감을 풀어주기도 하고 감동으로 마음이 찡하게 했다가 갈등으로 인한 답답함을 불러일으키고 성공을 위해서, 미국이란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는 이야기들도 만났다.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다 보니 삶을 살아가는 건 어느 곳이나 다 비슷비슷하다는 걸 느꼈고 그럼에도 조금은 독특하고 힘든 환경에 놓여있는 그들이 고단해 보여 마음 한켠이 휑해지기도 했다.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살아야 행복한 건 아니지만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곳에 가야 한다는 건 그야말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을 바꿔야 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조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던 간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한다고 했듯이 살아남기 위해 접시를 닦는 일도 서슴지 않아야 하듯이 말이다.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기에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그들을 보면 딱하기도 하고 꼭 그래야만 하는 건지 되묻기도 했다. 그들이 선택한 일임에도 지켜보는 사람이 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그런 모험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들의 나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에 나도 처해진다면 과연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현재 나는 고향에 돌아와 모든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고단했던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수도 있고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질을 판단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12편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인지하는 반면 인생이란 것이 이렇게 팍팍하고 마음 찡해야 하며 힘들어야 하는지 괜히 허공을 향해 한숨을 쉬게 만든다.

  그럼에도 하 진이란 작가를 발견하고 그의 작품을 읽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오히려 그의 작품을 더 읽어 보고 싶고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어진다. 단박에 마음을 사로잡는 문체가 ‘적어도 스무 차례’ 걸친 교정의 결과라고 하니 대단하다는 감탄사만 터질 뿐이다. 그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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