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동스 1 - 나는 행복한 고양이 집사 옹동스 1
Snowcat(권윤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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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알림 소식만 듣고 책을 구입하는 작가들이 있다. 거의 서른 명에 가까운 작가들이 등록되어 있는데 나름 다양하게 구성(?)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스노우캣 작가도 포함되어 있다. 오래 전 서점에서 우연히 저자의 책을 읽고 많은 공감을 하게 되어서 한 권씩 모으다 보니 출간 된 책은 거의 다 읽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고양이가 왔다」였는데 오랫동안 저자의 출간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전작에 나왔던 고양이가 등장해서인지 마치 최근에 만난 것처럼 편안했다.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진 않지만 어렸을 때 고양이를 방에서 직접 키운 경험이 있어서인지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내가 다시 키워보고 싶을 정도로 애정이 있거나 무한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웹툰이 좋아 읽다 보니 저자가 좋아하는 고양이 이야기를 부담 없이 듣고 있을 뿐 고양이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저자에게 고양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면서도 가끔은 인격화 되는 것 같아 불편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에게 소중한 고양이의 존재를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내가 애완동물을 키웠던 적이 없으니 인격화 되는 것에 불편을 느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보면 온통 고양이 위주로 이어지는 생활들에 감탄을 할 정도다. 저자에겐 고양이가 이렇게 소중하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할 정도니 내가 그런 생활을 종종 공감하지 못하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일 것이다.

 

  12년을 함께 한 고양이 나옹이. 저자에게 어떤 존재일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사람도 12년을 함께 하기가 힘든 세상에 고양이와 그렇게 오래 했다면 모든 것을 고양이에 맞춰줄만 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나옹이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기 위해 고양이 한 마리를 더 들이고 은동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두 고양이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옹동스’다. 두 고양이가 함께 하기 위한 준비과정부터 커가는 과정이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고양이를 위해서 마당이 있는 집을 찾는 과정이 나오는데 고양이를 위한 열정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저자 자신이 살 공간은 좀 낡아도 고양이에게 좋은 환경이라서 집을 선택하는 것부터, 고양이를 위해서 울타리를 만들고 마당까지 미는 모습에(저자가 벌레를 싫어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나는 절대 따라갈 수 없겠단 마음이 들자 고양이들이 인격화 되든 말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봤던 것 같다.

 

  익숙한 저자의 그림과 고양이들. 그리고 중간중간 그림과 일치하는 사진들을 보면서 제 3의 관찰자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저자의 책을 통해서 만난 나옹이가 익숙했고 새롭게 등장한 은동이까지 합세해서 한 가족을 이룬(?) 완전체를 보는 듯했다. 고양이와의 함께하는 삶이 소소하면서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일상들을 지켜보면서 내 일상은 어떤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스런 두 아이들일까? 아니면 여전히 책이 우선순위일까? 고양이와 함께 하는 저자의 일상을 돌아다보니 똑 부러지게 나에겐 무엇이 우선순위라고 말할 순 없지만 소중한 것들이 하나씩 늘어가다 보니 그것들이 어우러져 소중한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방식이든 하루하루를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요즘 나에겐 최고의 행복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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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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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8년 전에 김사인 시인의『가만히 좋아하는』을 읽었다. 남해 바다를 보고 온 후에 읽은 시집이라 그런지 감성이 충만했고 모든 시를 다 이해하고 마음에 담아낸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시에 내 마음을 함께 공유했다고 믿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시에 더 무지했던 때라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움직이는 시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서정시가 좋았고 내가 읽은 시집이 저자의 두 번째 시집이었으며 첫 번째 시집과는 양상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시집은 여전히 만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렇게 세 번째 시집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집에서는 첫 번째 시집을 읽지 않았음에도 두 권의 시집이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씽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바짝 붙어서다」중

  두 번째로 실린 시부터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팔순이 넘은 노인의 모습을 그려낸 모습에서 칠순을 넘긴, 시골에 혼자 계시는 엄마 생각도 났고 나도 저렇게 오래까지 살아있다면 궁핍하고 외로운 삶을 살진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런 시골을 떠나오면서 가끔 집에 갈 때마다 느낀 것은 시골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게 외로움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는 50년 이상 살아온 그곳이 익숙해서 외롭지 않게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종종 느끼는 외로움을 엄마 또한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진 않은지 가끔은 걱정이 된다. 그래서인지 이 시가 더 마음 찡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찡한 마음을 안고 그의 시를 읽어나가고 있는데 느닷없이 해리포터에 관한 시가 나온다. 그 영화를 보면서 저런 곳이 있다면 나도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단 생각을 했는데 진지하게 그 세계를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현실의 씁쓸함도 느꼈지만 뭔가 웃기고 슬픈 현대의 모습이 그려져 쓸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때론 저자는 온갖 핑계를 대며 ‘외롭다고 쓰지 않는다 한사코.「옛 우물」중’ 라며 외로움을 감추기도 하고 시원하게 ‘에이 시브럴’ 하며 욕을 뱉는 시를 들려주면서도 ‘마감 날은 닥쳤고 이런 것도 글이 되나/ 크게는 못하고 입안으로 읊조리는/ ’에이 시브럴 -’’ 이라며 현실적인 고민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시를 시작으로 다양한 시의 세계를 보여주다가 5.18에 관한 시, 정치를 풍자한 시들로 내가 만나지 못했던 첫 번째 시에 대한 궁금증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최근에 한강의『소년이 온다』를 읽어서인지 ‘온간 난리 아비규환 뒤에 그저 따신 밥 한술 먹자는, 웃음기 도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것, 이것이 왜 이렇게 나는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섦은지 모르겠다.// 안 그런가? 당신은 안 그런가?「오월유사」중’ 란 구절이 괜히 눈물겨웠다. 엄청난 사건 뒤에 평범한 사람들이 바란 것은 그들의 삶처럼 평범한 것(그저 따신 밥 한술 먹자는)일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비화시켜서 많은 목숨들을 빼앗아 갔는지 그저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까지 쉽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폭신한 침대에 누워서 시를 모두 읽어 버렸다. 그래서 이 시집의 시를 온전히 이해했다는 건 불가능하며, 시를 잘 아는 사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낼 재간이 내겐 없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저자의 시를 읽으면서 내가 평소에 등한시하며 살았던 삶의 이면을 조금은 더 섬세하게 바라 본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그 이면에 내 삶을 대입하여 그저 하찮은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깨달아 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란, 조금은 낯간지러운 상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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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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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학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았더라면 순순히 찾아서 읽었을까? 이름도 태생도 생소한 작가이기에 더 그러했고 어떤 계기가 되었든 저자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이 책에 실린 첫 단편을 읽는 순간부터 저자의 작품을 좋아하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고 좀 오랫동안 읽은 셈이지만 조금 새로운 저자의 단편들에 빠져들었다. 장편도 마찬가지겠지만 요즘 들어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삶에 밀착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면 재미를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뚝뚝 끊기는 느낌도 싫고, 결말이 대부분 모호하게 끝나, 단편을 읽는 게 영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조정래 작가 선집을 통해 단편에 대한 편견을 깨게 되었고 그 뒤로 종종 단편을 읽어왔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단편의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나에게 소설을 왜 읽냐는 질문을 종종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망설임 없이 현실 도피를 위해서라고 말했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같은 내용을 만나기 싫어 고전을 찾아 읽으면서 철저히 현대소설은 외면했었던 것 같다. 우울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조금씩 외면을 철회했고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마주하면서 오히려 위로를 얻었다. 완전히 현대문학에 대한 마음이 열린 것은 아니지만 소설 속의 삶이 도피성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내가 피하고 싶었던 현실의 삶과 많이 닮아 있음에서 오는 위로였다.

  이 책은 저자가 1950년대부터 15년 동안 써 온 글을 모아 처음 낸 단편집이라고 했는데 몇몇 시대적 배경을 제외하고는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나에게 생소한 캐나다 작가의 작품에다 캐나다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 매력 있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뭔가 특별할 것 같은 일들도 있지만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묘사가 좋았다. 그런 이야기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어느새 내가 피하고자 했던 삶에 더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 들었고 지난하게만 생각했던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문구를 이 소설들을 통해 이제야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 일들은 언제나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거요. 헬렌 혼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도요.「그림엽서」중

  내가, 혹은 우리가 함께 살아내고 있는 삶에는 ‘언제나 끊임없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살아가는 것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삶에 동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떠한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35년을 살아오면서 늘 서투르기만 했던 짧은 내 삶을 되돌아보면 자양분을 쌓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 내가 뭔가가 되어 있거나 좀 더 나아진 환경 속에서 살아갈 거라 착각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러한 결과물을 내는 것 역시 ‘나’의 한 요소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자신만의 명확한 고집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종종 단편집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저자의 이 작품 역시 뭔가 결론이 시원하게 드러나거나 희망을 그려낸다거나 나도 저렇게 살아봐야지 하는 되돌아봄은 거의 없었다. 있는 그대로 삶의 단편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옮겼을 뿐이다. 그래서 때론 당황하기도 하고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때도 있었지만 어느새 있는 그대로 그네들의 삶을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의 문체와 세밀함이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지만 번역임에도 꼼꼼하면서도 독특한 표현들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읽으면서 ‘우리말에 이런 표현도 있었나? 역자는 어떻게 이렇게 번역할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부터 심지어 원문이 궁금해지기도 했다(비교해 봤자 분간해 낼 능력은 내게 없지만!^^). 그만큼 신선한 표현력과 애정이 담긴 번역 덕분인지 읽는 내내 다채로운 느낌을 받았다.

  단편집의 느낌을 남긴다는 건 장편소설보다 더 어렵다. 그렇기에 두루뭉술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을 주절이주절이 떠들긴 했으나 이 책과 함께 구입한 저자의 다른 작품도 곧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 대한, 단편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바꾸고 더 알아가고 싶게 만드는 이런 기분. 소설을 읽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며 그런 즐거움을 주는 소설이란 문학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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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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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의 내면에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들끓는다. 그런 생각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지배받지 않기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에 놀라며 얼른 지워버린다. 하루 종일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부정적인 생각이 행동이나 말로 튀어나오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만약 그런 부정적인 것들이 튀어나와 버린다면 내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은 충동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것들을 꾹꾹 누르는 일. 그게 내 삶을 앞으로 밀어내는 하루하루의 노력이다.

 

   이렇듯 나는 내 모습을 많이 감추며 살아간다. 사적인 일이라도 타인이 보는 공간에 공개할 때도 되도록 좋은 모습만 올리려고 노력한다. 굳이 내 감정을 다 쏟아내서 타인을 피곤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한 모순을 지닌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선뜻 나의 내면을 오롯이 드러낼 용기를 갖지 못하는 건 지금껏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기 때문에 나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구구절절 알듯말듯 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속도감 있는 소설을 써내는 작가로 인식하고 있던 저자의 산문집을 만났기 때문이다. 산문도 소설과 비슷하게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며 빠르게 읽어나갔는데 의외로 멈추게 되는 문장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담담하게 꺼내놓고 있다는데서 오는 무언의 편안함이 여전히 내면을 감추며 살아가고 있는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 것이다.

행복이란 특정한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잠 못 들게 하는 것들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언제라도 경이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31쪽)

  소설로만 저자를 만났기 때문에 저자의 개인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저자의 사진만 보고 굉장히 젊은 줄 알았고 한 번의 이혼을 했다는 사실도, 자폐아인 아들이 있다는 것도, 불우했던 가정사를 지니고 있었는지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 속 인물들과 맞먹을 수 있는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 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써 내려가는 글에서 뭔지 모를 찡함과 동질감을 느꼈다. 저자의 나이만큼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앞으로 내가 경험하게 되거나 고뇌하게 될 일들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만 나열했다면 금방 지쳐버렸을 것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의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우연히 들은 타인의 이야기가 마치 한편의 소설처럼 짜여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거기다 저자의 고뇌와 고민들, 그리고 불행했던 순간들을 견디게 해준 문학과 음악 이야기가 함께 있어서인지 예술에 대한 저자의 깊이를 느끼고 내 생각과 대조할 수 있었다.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큰 질문들’이란 부제로 7가지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과정을 함께 겪고 나면 결과는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저자의 이야기에 온전히 동조할 수 없더라도 이미 위로와 치유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그것이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아무런 대답도 해 내지 못한 결론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저자가 제시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그 사실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큰 비극입니다. (156쪽)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지만 내 생각의 대부분은 내 자신에 대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남편이나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늘 내 생각으로 꽉 차 있으면서도 진지하게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많지 않다는 의미다. 저자가 살아 온 이야기, 그리고 내면에 맴돌거나 여전히 생성중인 이야기를 만나다보니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앞으로의 삶이 기대되고 희망으로 채울 수 있는가 등등 과거보단 현재와 미래에 집중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여전히 또렷한 답은 찾을 수 없지만 그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풀어야 할 숙제임을 깨달았다.

가장 커다란 ‘의심’은 자기 자신에 대해 품는 의심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잘 다스려 ‘내일에는 내일의 해가 뜬다.’는 낙관주의를 지켜갈 수 있을까? 바로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300쪽)

 

  때로는 나와 판이하게 다른, 그러면서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공감하고 고민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다시 느낀 것 같다. 저자의 산문집이지만 소설적인 요소를 갖춘 채 문학의 힘을 드러내고 있는데서, 그간 가지고 있던 저자의 글에 대해 편견을 깨고 조금은 달리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인해 나의 고민은 더 많아졌지만 예전보다 더 가벼워진 느낌이다. 더 무거운 삶을 살아 간 사람들, 혹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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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06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마지막장만 읽고있어요
스케이트를 탔던 적이 있어서 소제목에 끌려^^
 
귀가도
윤영수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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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명작을 읽겠다고 다짐하면서 해외소설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국내문학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해외소설이니 철저히 국내문학을 외면한다면 모를까, 늘 마음 한켠에 국내문학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곤 한다. 유명한 몇몇 작품은 틈틈이 읽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해외소설에 쏟는 애정만큼은 아니다 보니 늘 애가심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러다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국내문학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읽게 되었는데, 내가 모르는 작품과 저자가 엄청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의 무지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출판사에 일하는 시기에 그나마 국내문학을 접하고 작가를 알아가고 운 좋게 만나기도 하고 강연을 들으면서, 내가 더 관심 갖는 해외소설 만큼이나 국내에도 다양한 작품과 작가가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 전혀 기대하지 않은 작품에서 의외로 괜찮은 모습을 발견하면 책을 읽는 기쁨이 배가 됨을 느낀다. 특히나 내가 잘 알지 못한 작가였다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제라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윤영수 작가가 내게 그렇게 다가왔고 표지도 제목도 독특한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관심을 갖고 싶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단편의 내용은 밝고 희망을 주며 마음속에 희열을 주는 것보다, 속 터지게 만들고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를 만난 듯해서 답답함이 이는 내용이 많았지만 그래도 문체라든지 소재라든지 오랜만의 국내문학에서 괜찮은 작품을 만난 것 같았다.

  6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속 터졌던 작품은「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이었다. 제목 그대로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아 애먼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행패를 부리는데도 집주인은 천하태평에 그 사람에게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휘둘리기만 한다. 답답할 정도로 착한 주인공의 등장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머니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을 보는 것은 인내를 요했다. 나 또한 타인에게 악다구니를 쓰며 따지기보다 혼잣말로 불만을 드러내는 편이라 격한 성격은 아닌데도 이 단편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불평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속 터짐을 느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착한 인물을 등장시킨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어딘가에 이런 인물이 존재하고 있을 것 같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점점 악해져가는 이 세상에 대한 반푼이 같은 저항은 아니었을까?

  「도시철도 999」란 작품을 읽으면서 짧은 나의 대도시 생활 가운데 늘 우울하고 무미건조하게 남아 있던 지하철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하철은 비교적 시간이 정확하고 목적지에 잘 닿을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해서는 너무 무관심일 때가 많아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노선만 안다면 버스를 이용하고 싶지만 늘 여의치 않아서 지하철을 이용하곤 했는데, 타인에게 전혀 관심 없는 무심한 표정과 행동을 일삼는 반대편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 그리고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은 표정과 행동을 닮아가는 모습에서 지난함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이 단편을 읽는 내내 쓴물처럼 지하철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올라서 더 씁쓸해져 버렸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이 소설집에는 어디선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참 많이 등장한다. 똑 부러지고 강하고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뭔가 부족하고 뒤통수를 치는 게 당연할 만큼 착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답답하고 힘 빠지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인도하는 이야기 속에서 쉽게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흡인력과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면서도 외면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들었던 것 같다. 철저히 약자의 편에 서서 이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뿐인데도 이상하게 빨려드는 이야기. 그게 바로 소설의 힘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도 책 제목처럼 집이라는 공간, 귀가할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위로가 되는 사실을 발견한 것 자체만으로도 이 소설을 만난 보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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