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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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8년 전에 김사인 시인의『가만히 좋아하는』을 읽었다. 남해 바다를 보고 온 후에 읽은 시집이라 그런지 감성이 충만했고 모든 시를 다 이해하고 마음에 담아낸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시에 내 마음을 함께 공유했다고 믿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시에 더 무지했던 때라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움직이는 시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서정시가 좋았고 내가 읽은 시집이 저자의 두 번째 시집이었으며 첫 번째 시집과는 양상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시집은 여전히 만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렇게 세 번째 시집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집에서는 첫 번째 시집을 읽지 않았음에도 두 권의 시집이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씽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바짝 붙어서다」중

  두 번째로 실린 시부터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팔순이 넘은 노인의 모습을 그려낸 모습에서 칠순을 넘긴, 시골에 혼자 계시는 엄마 생각도 났고 나도 저렇게 오래까지 살아있다면 궁핍하고 외로운 삶을 살진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런 시골을 떠나오면서 가끔 집에 갈 때마다 느낀 것은 시골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게 외로움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는 50년 이상 살아온 그곳이 익숙해서 외롭지 않게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종종 느끼는 외로움을 엄마 또한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진 않은지 가끔은 걱정이 된다. 그래서인지 이 시가 더 마음 찡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찡한 마음을 안고 그의 시를 읽어나가고 있는데 느닷없이 해리포터에 관한 시가 나온다. 그 영화를 보면서 저런 곳이 있다면 나도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단 생각을 했는데 진지하게 그 세계를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현실의 씁쓸함도 느꼈지만 뭔가 웃기고 슬픈 현대의 모습이 그려져 쓸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때론 저자는 온갖 핑계를 대며 ‘외롭다고 쓰지 않는다 한사코.「옛 우물」중’ 라며 외로움을 감추기도 하고 시원하게 ‘에이 시브럴’ 하며 욕을 뱉는 시를 들려주면서도 ‘마감 날은 닥쳤고 이런 것도 글이 되나/ 크게는 못하고 입안으로 읊조리는/ ’에이 시브럴 -’’ 이라며 현실적인 고민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시를 시작으로 다양한 시의 세계를 보여주다가 5.18에 관한 시, 정치를 풍자한 시들로 내가 만나지 못했던 첫 번째 시에 대한 궁금증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최근에 한강의『소년이 온다』를 읽어서인지 ‘온간 난리 아비규환 뒤에 그저 따신 밥 한술 먹자는, 웃음기 도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것, 이것이 왜 이렇게 나는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섦은지 모르겠다.// 안 그런가? 당신은 안 그런가?「오월유사」중’ 란 구절이 괜히 눈물겨웠다. 엄청난 사건 뒤에 평범한 사람들이 바란 것은 그들의 삶처럼 평범한 것(그저 따신 밥 한술 먹자는)일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비화시켜서 많은 목숨들을 빼앗아 갔는지 그저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까지 쉽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폭신한 침대에 누워서 시를 모두 읽어 버렸다. 그래서 이 시집의 시를 온전히 이해했다는 건 불가능하며, 시를 잘 아는 사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낼 재간이 내겐 없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저자의 시를 읽으면서 내가 평소에 등한시하며 살았던 삶의 이면을 조금은 더 섬세하게 바라 본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그 이면에 내 삶을 대입하여 그저 하찮은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깨달아 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란, 조금은 낯간지러운 상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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