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 피터 래빗의 어머니
수전 데니어 지음, 강수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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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인의 추천으로 피터 래빗 시리즈를 읽고 팬이 되어 버렸다. 아픈 아이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을 줄 몰랐던 것처럼 나도 피터 래빗 시리즈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가끔은 개연성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줄거리도 모두 포용할 만큼 그림과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피터 래빗 시리즈를 섭렵하고 관련된 책을 찾다 흥분해서 구입했으면서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피터 래빗 시리즈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원했는데 저자인 베아트릭스 집에 관한 책이었고 글씨도 나름 빽빽해서 도무지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묵혀두다 영국의 시골길에 관한 책을 읽었고, 거기서 베아트릭스가 살았던 곳을 방문한 부분을 보고 이 책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마음에 닿는 만큼씩 천천히 읽어 나갔다.


  중간에 베아트릭스가 직접 꾸민 힐탑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사진들을 보면서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지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가구들과 소품 그리고 지역명과 이런저런 이름들까지 온통 영어다 보니 헤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중에 힐탑을 시민 환경운동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하는 대신 보존하는 조건을 붙였는데, 사람이 살고 있다는 온기는 없어도 애정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느껴져 놀라울 따름이었다. 가구를 들이고 배치하고 작은 소품 하나하나까지 챙겨가면서 꾸미는 시간이 오래였던 만큼 감탄이 터져 나왔다. 뛰어난 안목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해져서인지 꼼꼼하게 꾸민 집 구석구석과 주변 경관이 피터 래빗 시리즈의 배경과 같은 게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베아트릭스의 생애와 피터 래빗 시리즈가 탄생한 이야기와 넓은 땅의 지주가 되어 보존에 힘쓰는 것까지 기록 되어 있다 보니 피터 래빗에 관련된 이야기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 책의 첫인상에서 실망을 맛보았고 읽는 동안에도 집 구경을 하려고 한 건 아닌데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애를 지켜보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엄청난 자연 공간을 지켜내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피터 래빗 시리즈의 인세로 대부분 그 넓은 땅을 구입했고 관리했으며 농부로서의 삶도 충실히 이행했다. 지혜와 유머가 번뜩이는 노인이 되어갔으며 피터 래빗의 이야기가 오히려 일부분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녀의 드로잉은 이야기의 배경이 된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했고, 그곳에서 살다 보니 농부가 되고 싶었으며, 그건 다시 개발 앞에 취약한 자연을 파괴로부터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작은 것들과 상상의 세계에 관심이 많고 수줍음을 잘 타던 소녀는 이런 과정을 거쳐 자연이라는 더 넓은 캔버스 위에 꿈을 펼치게 되었다.

(176쪽)


  그녀가 지켜내고자 했던 자연을 보고 있으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너무나 아름답고 물질문명 때문에 그런 곳이 파괴된다면 안타깝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을 공간이다. 남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피터 래빗 시리즈의 인세가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런 곳을 그녀 스스로, 전폭적으로 지켜냈다는데 경이로움을 느낀다. 국내에도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본부가 있다고 하니 마치 그녀의 손길이 여기까지 닿은 듯한 착각이 일 정도다.


  단순히 피터 래빗 시리즈가 좋아 지켜본 그녀의 삶을 통해 마음 뭉클한 감동도 느끼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보존에 대해, 그리고 꿈이 확장되어 가는 것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현재의 나는 뭘 할 수 있을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데 이런 나도 꾸준히 시도를 하고 노력한다면 꿈이 또렷해질 수도 있고 또 확장되어 가는 건 아닌지 그런 기대를 다시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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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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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기와라 히로시는 <오로로 콩밭에서 붙잡아서> 때문에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가로 각인되어 있다. 그 작품이 좋아 다른 작품도 읽고 책도 모았지만 만날 때마다 색깔이 달라 다양함을 느끼기 좋은 작가다. 그렇게 한참 관심을 갖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깊은 밤, 책이 읽히지 않아 멀뚱멀뚱 책장을 뒤지다 이 책을 무심코 펼쳐 들었다. 그리고 특유의 흡인력으로 순식간에 책을 읽어버렸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인 30대 탐정, 이나 실제로는 잃어버린 애완동물을 주로 찾는 슌페이와 80대 비서 할머니가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해프닝이 있었다고 해도 80대 할머니가 탐정 사무소에 채용될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 거기서부터 이 둘의 조합이 보여줄 환상적인 무언가에 대한 기대가 넘쳤다. 멋지게 사건을 해결해 줄 것 같았고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짜릿함을 느끼게 해 줄 것 같았다. 비록 애완동물 찾는 일만 하고 있지만 슌페이가 좋아하는 챈들러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냉철하고 명철하게 사건을 해결할 일이 곧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역시나 슌페이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잃어버린 개를 찾아주다 조직폭력배와 엮인 사건 속으로 뛰어 들게 된다. 슌페이와 할머니 비서가 해결하기엔 벅차 보였지만 슌페이가 아니면 아무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슌페이가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 여타 소설들처럼 멋지거나 개연성이 충만해 보이지 않았다. 무모했고 때론 어이없는 웃음을 유발시켰고, 사건을 해결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결말에 다가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숙자의 도움을 받아서 투견의 소굴로 들어간다거나 개의 입장이 되어 산 속을 일일이 헤매고 다녔으니 그런 걱정은 당연했다.


  그렇게 무모한 슌페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태연자약하게 비서 할머니가 나타나 너무나 쉽게 위기에서 구해준다거나, 정말 위험에 처해 있을 때에도 태평한 모습을 보면서 실없는 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들의 만남부터 그랬지만 정통 스릴러와는 거리가 멀어도 웃음과 진중함과 때로는 속물적인 내면까지 서슴없이 드러내는 모습에서 뭉클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간 내가 너무 소설을 많이 읽은 탓인지 이러한 경로로 이어질 거라는 혼자만의 예상은 빈번히 빗나갔고 슌페이 혼자서 용을 쓰고 사건이 맺어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범인이 가까이 있었다는 충격도 있었고 그 사건을 해결하고도 슌페이에게 탐정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는 실망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갑작스레 자리를 비워버린 비서 할머니 때문일까?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정이 든 할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슌페이의 미안함과 고마움에 대한 깨달음이 전달될 수 없는 이유 때문이리라.


  비서 할머니의 부재가 주는 허전함과 앞길이 창창한 슌페이의 고독이 주는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챈들러의 소설을 좋아해서 탐정인양 멋지게 대사를 읊어보지만 간식으로 완숙계란을 싸왔던 비서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그리울 것 같지만 슌페이는 또 슌페이만의 삶을 연명해야 하므로 앞으로 그에게 다가올 사건들이 그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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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 -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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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여름 신경림 시인과 함께 쓴 책을 읽고 또 만날 기회가 있을까 싶었는데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을 참 달게 읽은 것 같다. 인생에 시가 있고, 시에 인생이 녹아 있는 시를 만나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 솔직히 좀 고리타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미있었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과 시구들도 많았다. 늘 가까이 하고 싶지만 어려운 게 시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경계의 무게감을 좀 덜어낸 시간이었다.


  한동안 늙는다는 게 서럽고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지 두려운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기나긴 세월을 열심히 살아낸 이들의 초연한 모습을 보면서 나이 듦에 대해, 내면에 켜켜이 세월을 담아낸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이 더해졌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예술로 승화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시인은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시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명확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실은 ‘내 안에 언어가 있다’,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언어가 매우 빈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어휘도 얼마 안 되고, 경험도 적다, 이런 게 아니고, 제 바깥에 있는 일본어를 생각하면 그것은 참 거대하고 엄청나게 풍부한 세계로구나 싶었던 거지요. (41~42쪽)


  이런 생각과 시선을 갖는 다는 것. 그리고 시에 녹여낸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특히나 번역된 시는 공감하기 힘든 경우가 태반인데 이런 시선과 더불어 ‘그저 행갈이가 된, 활자로 인쇄된 시 형태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형태로 사라지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돼나가기를 바랐던(37쪽)’ 노력이 고스란히 외국독자인 나에게도 와 닿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언어에 의지하는 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인간의 현실을 놓칠 가능성이 있으니까, 늘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9쪽)


  시인의 시보다 대담이 더 많이 실려 있어서 오히려 시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법 한데도 그가 구축해온 언어의 세계를 듣고 공감하다 그의 시를 읽으면 ‘오호, 그렇구나!’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신기했다. 평생 언어를 신경 쓰며 살아 온 자의 폭넓은 시심과 친절한 안내라고 할까?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들어 주어서 이 작은 책을 읽는 동안 시문학이 내게 멀지 않음을, 우리 곁에 항상 있는데 그것을 바라 볼 시선과 마음이 없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었다.


일본어로 ‘시’는, 행갈이를 해서 쓴 시작품이라는 의미와, 또하나 시정時情(poesie), 이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시작품은 상당히 힘을 잃었고, 시정은 시작품뿐만 아니라 게임이라든지 만화,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것에도 스며 있다고 생각합니다. (149~150쪽)


  시정이라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님을, 내가 마주하고 겪고 있는 것에도 시정이 들어 있음을, 어쩌면 시인의 말마따나 ‘일종의 갈증’이 아닐까란 공감을 해보면서 새로운 눈으로 일상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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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 페코로스 시리즈 2
오카노 유이치 글.그림,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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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란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고작 여덟 살 때라서 많은 추억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종종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가 기억나는 걸 보면서 신기할 때가 많다. 나는 이제  서른 다섯살이 되었고 애 엄마가 되어 저런 드라마를 보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그래도 예전이 좋았다며 미화하고 있다. 그때도 미래에는 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았을 텐데 그런 미래를 살고 있는 나의 현재를 돌아보면 글쎄, 당시에 내가 꿈꾸던 미래에 가까운지 확실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이렇듯 내가 살아온 과거의 나를 끄집어내는 게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이제 35년을 살았을 뿐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희미해진다면 내 수명이 길어져 50년 60년 전의 일을 기억하려 한다면 과연 어떤 기억들이 남겨질까?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때쯤이면 내가 경험한 일들이 마치 꿈인듯, 어디선가 읽은 소설의 내용인듯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기억상자처럼 상자속의 내용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올 뿐, 그 내용으로 보자면 누구에게나 자신만 기억하고 있는 상자가 하나쯤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전작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귀엽게 그려낸 저자의 이야기를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었다. 그 이후에 이야기도 궁금하다는 찰나에 이 책이 출간되었지만 집필하는 도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작에서와 달리 많이 여위고 기운이 떨어진 어머니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찡했다. 아들과 함께 더 많은 추억을 꺼내주었으면 싶었는데 점점 기력이 없어지고 세상과 하직하려는 듯이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더 자주 무너졌고 그만큼 어머니의 의식은 더 흐려지는 듯했다.


 

  특히 과거의 이야기나 아버지를 목도하고 함께 한 이야기들은 저자라는 매개물 없이 어머니의 의식 세계로 바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그런 추억이 차라리 미화되어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면 행복했을까? 이런 추측이 들 정도로 전쟁을 겪었고 술버릇이 고약한 남편 곁에서 고생스런 세월을 보냈으며 두 아들을 키워냈다. 10남매의 장녀인 저자의 어머니가 짊어졌을 짐을 생각하면 감히 어느 한부분도 이해한다 말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역시나 한량에 술고래인 아버지 곁에서 악착같이 9남매를 키워낸 우리 엄마. 젊은 시절의 엄마는 왜 저리 드셀까 싶을 정도로 다정함이 없었다. 나도 엄마가 되어보니 남편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농사일과 아이들을 길러내는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절대 버텨내지 못했을 세월을 감당해내고 종종 치가 떨리듯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측은하다 못해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을 통해 저자 어머니의 의식에 떠오른 과거를 보고 있자니 내 엄마도 생각나고 내가 지나온 보잘것없는 삶의 궤적도 되짚다보니 몹시 쓸쓸해졌다. 그때의 시간, 그때의 추억, 그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 곁에 없는 지금의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건지, 괜찮은 건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저자는 자신이 그려낸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비슷한 환경에 놓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지만 치매라는 기억의 무너짐을 통해 멀쩡히 잘 살아가고 있다고 다짐하는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이렇게 관찰하고 그리고 추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그것이 나의 부모님이라면 한번쯤 되짚어 보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와 얼마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를 나의 엄마. 엄마의 과거를 듣고 보듬어주고 싶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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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불패 - 이외수의 소생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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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로는 요즘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책으로 보이겠지만 6년 전에 출간 된 책이다. 그래서 놀랐다. 어쩜 지금과 같은 팍팍한 시대에 읽어도 변함이 없는지, 왜 이런 충고들이 들어맞도록 갈수록 사는 게 힘들다는 소리만 들려오는 요즘인지 그런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인 채 지루함 없이 읽었다. 청춘을 위로하는 다른 책들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의 말투는 친절하지 않다. 직설적이고 풍자하는 듯한 문체가 종종 비위를 건드릴지 모르겠으나 헛된 희망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수긍했던 것 같다.


나는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그대의 나이를 경험했고 그대는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나의 나이를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현재를 공유하고 있다. 나는 그대보다 젊은 날을 먼저 소멸시켜 버린 늙은이로서 허심탄회하고 솔직담백하게 그대에게 고백하고 싶다. (29쪽)


  <청춘불패>라고 해서 청춘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건 아니다. 나보다 먼저 삶을 살아낸, 그것도 팍팍하게 살아낸 저자의 경험에 비추어 인생을 돌아보듯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에 대해, 부모에 대해, 친구에 대해, 외모에 대해, 자살과 공부 등등 인생을 살아가는 누구라면 한번쯤 고민했던 주제들을 때로는 어르듯, 때로는 따끔하게 혹은 능청스럽게 이야기한다. 먼저 삶을 살았다고 으스대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인생은 각자에게 달려 있으므로 저자의 이야기를 참고정도만 해도 충분히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었다. 그럼에도 자꾸 되돌아보게 되고 곱씹어 보게 되는 건 그냥 흘려버리기엔 현실이 너무 삭막해서가 아닌가 싶다.


잔인하다 세월이여. 동서남북 분주하게 이력서를 던졌건만 종무소식.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있다는 속담도 이제는 단물이 다 빠져버린 츄잉껌이 되었다. (87쪽)


  이런 문장 앞에서 깊은 공감 혹은 좌절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서두르지 말라고 한다. 아직 세상으로 타락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대가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좀 오글거릴지는 모르겠으나 저런 상황을 당한 사람 앞에서 과연 무어라 위로할 수 있을까. 팍팍한 현실을 빗대어 채찍질을 할 수도 없고, 입에 바른 말들로 희망만 심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직 젊음이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으나 미심쩍어도 앞서간 선배들의 충고를 따르는 수밖에. 오글거리게 청춘을 위로하는 책들에 거부감을 가졌으면서도, 이 책은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평했으면서도 결국엔 위로의 글 앞에 긍정과 희망으로 점철시킬 수밖에 없나 보다.


  최근에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을 풀어쓴 책을 읽었다. 내 안의 공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양심적인 삶을 살라는 주제였는데 이 책 또한 결국엔 바른 길(?)로 인도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이런 충고조차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미 자신 안에 있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생각과 달리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그것에 대한 판단은 타인보다는 이미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을 터이고 종종 타인의 한마디가 내면에 변화를 만들듯이 삐뚤어져 있는 나를 고치라는 뜻보다 익숙하고 고정화 되어 있는 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책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어떠한 말이든 생각이든 받아들이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므로 마음을 한껏 열고 이 책을 만나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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