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오기와라 히로시는 <오로로 콩밭에서 붙잡아서> 때문에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가로 각인되어 있다. 그 작품이 좋아 다른 작품도 읽고 책도 모았지만 만날 때마다 색깔이 달라 다양함을 느끼기 좋은 작가다. 그렇게 한참 관심을 갖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깊은 밤, 책이 읽히지 않아 멀뚱멀뚱 책장을 뒤지다 이 책을 무심코 펼쳐 들었다. 그리고 특유의 흡인력으로 순식간에 책을 읽어버렸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인 30대 탐정, 이나 실제로는 잃어버린 애완동물을 주로 찾는 슌페이와 80대 비서 할머니가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해프닝이 있었다고 해도 80대 할머니가 탐정 사무소에 채용될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 거기서부터 이 둘의 조합이 보여줄 환상적인 무언가에 대한 기대가 넘쳤다. 멋지게 사건을 해결해 줄 것 같았고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짜릿함을 느끼게 해 줄 것 같았다. 비록 애완동물 찾는 일만 하고 있지만 슌페이가 좋아하는 챈들러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냉철하고 명철하게 사건을 해결할 일이 곧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역시나 슌페이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잃어버린 개를 찾아주다 조직폭력배와 엮인 사건 속으로 뛰어 들게 된다. 슌페이와 할머니 비서가 해결하기엔 벅차 보였지만 슌페이가 아니면 아무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슌페이가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 여타 소설들처럼 멋지거나 개연성이 충만해 보이지 않았다. 무모했고 때론 어이없는 웃음을 유발시켰고, 사건을 해결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결말에 다가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숙자의 도움을 받아서 투견의 소굴로 들어간다거나 개의 입장이 되어 산 속을 일일이 헤매고 다녔으니 그런 걱정은 당연했다.


  그렇게 무모한 슌페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태연자약하게 비서 할머니가 나타나 너무나 쉽게 위기에서 구해준다거나, 정말 위험에 처해 있을 때에도 태평한 모습을 보면서 실없는 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들의 만남부터 그랬지만 정통 스릴러와는 거리가 멀어도 웃음과 진중함과 때로는 속물적인 내면까지 서슴없이 드러내는 모습에서 뭉클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간 내가 너무 소설을 많이 읽은 탓인지 이러한 경로로 이어질 거라는 혼자만의 예상은 빈번히 빗나갔고 슌페이 혼자서 용을 쓰고 사건이 맺어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범인이 가까이 있었다는 충격도 있었고 그 사건을 해결하고도 슌페이에게 탐정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는 실망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갑작스레 자리를 비워버린 비서 할머니 때문일까?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정이 든 할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슌페이의 미안함과 고마움에 대한 깨달음이 전달될 수 없는 이유 때문이리라.


  비서 할머니의 부재가 주는 허전함과 앞길이 창창한 슌페이의 고독이 주는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챈들러의 소설을 좋아해서 탐정인양 멋지게 대사를 읊어보지만 간식으로 완숙계란을 싸왔던 비서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그리울 것 같지만 슌페이는 또 슌페이만의 삶을 연명해야 하므로 앞으로 그에게 다가올 사건들이 그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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