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 페코로스 시리즈 2
오카노 유이치 글.그림,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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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란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고작 여덟 살 때라서 많은 추억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종종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가 기억나는 걸 보면서 신기할 때가 많다. 나는 이제  서른 다섯살이 되었고 애 엄마가 되어 저런 드라마를 보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그래도 예전이 좋았다며 미화하고 있다. 그때도 미래에는 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았을 텐데 그런 미래를 살고 있는 나의 현재를 돌아보면 글쎄, 당시에 내가 꿈꾸던 미래에 가까운지 확실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이렇듯 내가 살아온 과거의 나를 끄집어내는 게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이제 35년을 살았을 뿐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희미해진다면 내 수명이 길어져 50년 60년 전의 일을 기억하려 한다면 과연 어떤 기억들이 남겨질까?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때쯤이면 내가 경험한 일들이 마치 꿈인듯, 어디선가 읽은 소설의 내용인듯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기억상자처럼 상자속의 내용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올 뿐, 그 내용으로 보자면 누구에게나 자신만 기억하고 있는 상자가 하나쯤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전작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귀엽게 그려낸 저자의 이야기를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었다. 그 이후에 이야기도 궁금하다는 찰나에 이 책이 출간되었지만 집필하는 도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작에서와 달리 많이 여위고 기운이 떨어진 어머니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찡했다. 아들과 함께 더 많은 추억을 꺼내주었으면 싶었는데 점점 기력이 없어지고 세상과 하직하려는 듯이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더 자주 무너졌고 그만큼 어머니의 의식은 더 흐려지는 듯했다.


 

  특히 과거의 이야기나 아버지를 목도하고 함께 한 이야기들은 저자라는 매개물 없이 어머니의 의식 세계로 바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그런 추억이 차라리 미화되어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면 행복했을까? 이런 추측이 들 정도로 전쟁을 겪었고 술버릇이 고약한 남편 곁에서 고생스런 세월을 보냈으며 두 아들을 키워냈다. 10남매의 장녀인 저자의 어머니가 짊어졌을 짐을 생각하면 감히 어느 한부분도 이해한다 말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역시나 한량에 술고래인 아버지 곁에서 악착같이 9남매를 키워낸 우리 엄마. 젊은 시절의 엄마는 왜 저리 드셀까 싶을 정도로 다정함이 없었다. 나도 엄마가 되어보니 남편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농사일과 아이들을 길러내는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절대 버텨내지 못했을 세월을 감당해내고 종종 치가 떨리듯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측은하다 못해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을 통해 저자 어머니의 의식에 떠오른 과거를 보고 있자니 내 엄마도 생각나고 내가 지나온 보잘것없는 삶의 궤적도 되짚다보니 몹시 쓸쓸해졌다. 그때의 시간, 그때의 추억, 그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 곁에 없는 지금의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건지, 괜찮은 건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저자는 자신이 그려낸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비슷한 환경에 놓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지만 치매라는 기억의 무너짐을 통해 멀쩡히 잘 살아가고 있다고 다짐하는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이렇게 관찰하고 그리고 추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그것이 나의 부모님이라면 한번쯤 되짚어 보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와 얼마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를 나의 엄마. 엄마의 과거를 듣고 보듬어주고 싶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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