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쓴다는 것 -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여름 신경림 시인과 함께 쓴 책을 읽고 또 만날 기회가 있을까 싶었는데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을 참 달게 읽은 것 같다. 인생에 시가 있고, 시에 인생이 녹아 있는 시를 만나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 솔직히 좀 고리타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미있었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과 시구들도 많았다. 늘 가까이 하고 싶지만 어려운 게 시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경계의 무게감을 좀 덜어낸 시간이었다.


  한동안 늙는다는 게 서럽고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지 두려운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기나긴 세월을 열심히 살아낸 이들의 초연한 모습을 보면서 나이 듦에 대해, 내면에 켜켜이 세월을 담아낸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이 더해졌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예술로 승화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시인은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시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명확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실은 ‘내 안에 언어가 있다’,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언어가 매우 빈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어휘도 얼마 안 되고, 경험도 적다, 이런 게 아니고, 제 바깥에 있는 일본어를 생각하면 그것은 참 거대하고 엄청나게 풍부한 세계로구나 싶었던 거지요. (41~42쪽)


  이런 생각과 시선을 갖는 다는 것. 그리고 시에 녹여낸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특히나 번역된 시는 공감하기 힘든 경우가 태반인데 이런 시선과 더불어 ‘그저 행갈이가 된, 활자로 인쇄된 시 형태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형태로 사라지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돼나가기를 바랐던(37쪽)’ 노력이 고스란히 외국독자인 나에게도 와 닿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언어에 의지하는 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인간의 현실을 놓칠 가능성이 있으니까, 늘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9쪽)


  시인의 시보다 대담이 더 많이 실려 있어서 오히려 시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법 한데도 그가 구축해온 언어의 세계를 듣고 공감하다 그의 시를 읽으면 ‘오호, 그렇구나!’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신기했다. 평생 언어를 신경 쓰며 살아 온 자의 폭넓은 시심과 친절한 안내라고 할까?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들어 주어서 이 작은 책을 읽는 동안 시문학이 내게 멀지 않음을, 우리 곁에 항상 있는데 그것을 바라 볼 시선과 마음이 없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었다.


일본어로 ‘시’는, 행갈이를 해서 쓴 시작품이라는 의미와, 또하나 시정時情(poesie), 이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시작품은 상당히 힘을 잃었고, 시정은 시작품뿐만 아니라 게임이라든지 만화,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것에도 스며 있다고 생각합니다. (149~150쪽)


  시정이라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님을, 내가 마주하고 겪고 있는 것에도 시정이 들어 있음을, 어쩌면 시인의 말마따나 ‘일종의 갈증’이 아닐까란 공감을 해보면서 새로운 눈으로 일상을 맞이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