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순례 : 바닷마을 다이어리 8 바닷마을 다이어리 8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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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이 도착했음에도 며칠을 들췄다 덮었다 반복했다. 읽히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아껴 읽고 싶어서였다. 작년 여름에 출간된 책을 이제야 읽으면서 이러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일 년에 한 권씩 출간되기에 느긋하게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읽고 나서도 역시나 ‘좋다’를 남발했고 올 여름까지 어찌 기다리나 싶었다. 만화를 많이 알고 있진 않지만 1권을 읽으면서 단박에 좋아졌고, 유일하게 모으고 있고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다. 읽을 때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기분이 들어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마음이 따뜻해진다.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지난 책에서 언급한 셋째 치카의 임신을 어떻게 풀어낼지 가장 궁금했다. 임신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스즈를 제외하고는 치카는 부담을 주기 싫어 모두에게 임신 사실을 숨겼다. 아이의 아빠가 될 하마다 씨에게도 비밀에 부쳤고, 그는 오랜 마음의 짐을 벗고 새롭게 에베레스트 등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치카는 마음이 복잡하면서도 그의 무사귀환을 위해 무리하게 신사에 들러 기도를 하다 급기야 쓰러지고 만다. 임신 사실이 가족은 물론 하마다 씨에게도 알려지게 된 상황에서 사치는 치카에게 냉정하게 말한다.

그럴 생각은 없었겠지만 넌 스즈한테 상처를 줬어. 거짓말한다는 마음의 짐을 지운 거야. 하마다 씨한테도. 넌 그 사람의 산악인으로서의 자긍심에 상처를 줄 뻔 했어. 83~84쪽

스즈의 부담감과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하마다 씨에 대한 모든 심경을 냉철하게 읽어내는 사치를 보며 역시 첫째 언니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들이 결국엔 안정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안심되었다. 곧 첫 손주가 생기는 친엄마의 부족한 성의에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긴 했지만 네 자매가 지금껏 잘해 왔던 것처럼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스즈가 다니게 될 학교도 역시나 안심이 되었고, 비록 몸을 떨어져 있을지라도 언니들과 후타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걱정이 되진 않았다. 각자 나름대로의 로맨스(?)가 무르익은 가운데 다음 이야기에도 그들의 삶의 방향이 필요한 방향으로 흐를 거란 예감이 있었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고민이 되는 일이 있어도 가족과 이웃 간의 끈끈함이 그 모든 걸 유순하게 해결해 줄 거란 좀 허황된 믿음이 이 만화의 매력이다. 나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듯이 만화 속의 인물들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거란 믿음이 언제든 반갑게 맞이하게 되는 이유다. 그나저나 이모할머니가 임신한 치카에게 으깬 토마토와 간 사과를 섞어서 만들어 준 ‘토마토 으깨미’가 너무 간단해서 해 먹고 싶어진다. 예전에는 멸치 토스트(이건 내가 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지만)가 그렇게 궁금하더니, 종종 언급되는 음식들에 관심이 가는 걸 보면 이 만화의 자잘한 매력도 역시나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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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3-1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좋아하는 시리즈라 반갑네요-. 소장해두고 종종 들춰보곤 하지요- 최소 세 번씩은 읽은 듯 해요^^

안녕반짝 2018-03-13 14:52   좋아요 0 | URL
이 만화는 한번 읽으면 팬이 되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대부분 소장하면서 계속 들춰보는 것 같더라고요.
올해 9권을 기다립니다.^^
 
고약한 결점
안느-가엘 발프 지음, 크실 그림, 이성엽 옮김 / 파랑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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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결점 투성이다. 20대 까지는 외모에 대한 결점이 더 크다 생각했고, 30대에 접어들어서는 내면의 결점이 더 많았다. 단단하지 못한 내면, 쉽게 무너지는 자존감, 자꾸 초라해지는 내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게 싫었다. 출산을 하고 난 뒤에는 더 심했다. 육아에 지쳐 겉과 속을 꾸미고 들여다보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러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 시간을 조금씩 갖게 되면서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오랫동안 방치해뒀던 나를 찾은 기분이었고, 더 이상 주눅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결점은 여러 종류가 있단다. 잘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결점도 있고,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하거나 잘 읽지 못하게 하는 결점도 있지. 그런데 말이야. 이런 결점들이 큰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전혀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어.”

태어날 때부터 작은 결점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커감에 따라 점점 커지는 결점이 자신을 방해해서 애를 먹는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다 결국 의사 선생님까지 찾아갔다. 뾰족한 수가 없던 어느 날 아이는 특별한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 역시나 자신처럼 결점이 있는 선생님이었고, 아이에게 ‘전혀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작은 결점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아이에게는 꼬불꼬불한 실이 항상 몸에 머물렀다. 가슴에 있던 결점이 커가면서 얼굴에 드러나자 단순하게도 점 같은 건 줄 알았다. 그래서 결점이 아이의 발목을 잡고,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귀까지 막을 때에도 구체적인 결점에 대한 정체만 찾으려고 했다. 그러다 혼자 있을 때는 결점이 얌전해진다는 글과 그림을 보고 그것이 눈으로 드러나는 어떤 형태가 아님을, 내면에서 생겨나는 콤플렉스 같은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 자신이 결점인가?’라는 의문까지 갖게 되는 아이는 결점을 없애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특별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야 변화되기 시작한다. 여전히 결점은 아이를 방해하고 괴롭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자, 결점들이 작아졌다.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닌 스스로 강해졌다 믿는 아이를 보며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정말 운이 좋은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작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신경 쓰지 않게 되자 바로 변화가 시작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이는 다른 사람들도 ‘내 결점이 아닌 나를 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한껏 행복해졌다.

형태로 존재하지 않은 채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표현되고, 형형색색으로 묘사된 결점만 보고 있어도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내 안에 존재하면서 때때로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던 결점들이 어쩌면 정말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너무 움츠리진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요즘의 나를 곰곰 되짚어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치중한 결점들이 많이 드러났음을 알게 되었다. 외부의 영향에 쉽게 무너지는 자존감을 보며 내 스스로 좀 더 단단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달라고 하면서 정작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했으니 충족될 리가 없었다. 따뜻한 그림책 한 권으로 오늘 하루가 훨씬 풍성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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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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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이미 잊혔다. 그들의 영혼이 봉안된 명단도 없다. 그들에게 이 작은 책을 바친다. 42쪽

 

슬프게도 정말 그렇다. 도리고 에번스가 ‘가이 헨드릭스의 전쟁포로수용소 삽화책에 들어갈 머리말을 이렇게 끝맺’은 것처럼 이 책을 덮는 순간 모든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증발해 버릴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겪은 전쟁이 내게도 달라붙어 현실을 부정하게 만든다. 여전히 타이-미얀마 간 철도 건설 현장 속인 것 같고, 그 안에서 자행되는 잔인한 폭력과 굶주림과 죽음과 질병이 끈덕지게 날 따라온다. 모든 것을 지켜보는 것조차 힘듦에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그것뿐이었다.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에요.’란 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전쟁 속의 철도 건설 현장은 모두의 삶을 부셔 버린 듯했다. 분명 그들이 그 안에 갇히기 전의 삶과 벗어난 삶이 있는데도 전쟁 속의 기억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더 깊은 정글로 들어가 공사를 진행할수록, 사람들에게 잊힐수록, 인간이라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잔인해질수록 모든 것이 거짓이었으면 싶었다. 일본 천황에게 바친다는 명목 하에 이뤄지는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들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시간들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기이하게도 싸우고 비난하고, 증오할지라도 서로가 살아 있는 순간이 가장 평화로웠다. 종종 읊어대는 시구(詩句)가 현실이 되고, 하나씩 목숨을 잃어갈 때마다,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데 동료가 지겹도록 뱉어내던 말이 뇌리에 박혀 결국 유언이 될 때 그 세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이 전쟁포로로 잡혀 있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세상이 무너지는 일인데도 같은 공간 안에 함께 있을 수 없는 순간들이 더 그렇게 느껴졌다. 지독한 포로생활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다키 가디너가 그렇게 얘기했던 ‘니키타리스 생선식당’에 가서 물고기들을 풀어줄 거란 말을 그의 동료들이 실행했을 때만 해도 무덤덤했다. 그러다 식당 주인에게 그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고 사과하고 변상하려 했을 때, 식당 주인이 덜덜 떨린 손으로 돈을 꺼내려는 손을 막아서고 다키 가디너가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메뉴를 대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제야 그의 죽음이 실감났고 전쟁은 끝이 났지만 기억은 결코 전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외과의사로 성공했지만 자주 불륜을 저지르며 진부한 삶을 살아가는 도리고가 왜 그러는지 의아했다. 사랑해선 안 될 여자 에이미를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안고 전쟁터로 가야 했던 그의 마음이 처량하면서도 답답했다. 에이미의 들쭉날쭉한 불안한 마음도, 서로 죽었다고 알릴 수밖에 없는 내정된 배우자들의 거짓이 더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떠난 전쟁터에서 자행되는 잔인함을 낱낱이 목도하고 나자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의 삶에 가타부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나는 목격자에 지나지 않았다. 증언은 할 수 있어도 비난할 수는 없었다. 예고없이 끼어든 전쟁의 참혹함이 많은 것을 삼켜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의 삶까지 갉아먹었던 죽음의 철도 공사는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다양한 위치에서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의 삶도 이어졌다. 쉽지 않은 경험을 지닌 그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생을 마감할지 궁금했다. 하지만 저자는 많은 사람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던 것처럼 결코 진부하고 자극적인 시선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도리고와 에이미의 극적인 만남도, 전쟁 전범들을 억지로 심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간과 기억을 촘촘히 엮어가며 부조리하고 비현실적이더라도 ‘이게 진짜 삶이야!’라고 말하는 듯 했다. 담담하게 그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인간의 깊은 심연을 헤집고 다녔다. 아름답고 생생한 문장 앞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숨이 막히는가 하면, 나의 속내를 들킨 듯한 묘사 앞에 위로와 참회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매 순간 먹먹했다. 고난이 소용돌이치는 와중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모든 순간을 기록하는 저자의 참담한 의무를 알아차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죽음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지. 도리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안도감 또한 동정의 뒤틀린 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것은 곧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을 뜻했다. 그래도 살아야지.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296쪽

 

전쟁의 기억은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지만 삶이 흘러가는 대로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결국엔 그들이 하나씩 사라져갈 때마다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을 겸허히 받아들였고, 그것이 끝이었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지켜본 나에게는 끝이 아님을, 고뇌의 시작과 동시에 그것 또한 삶의 다른 형태임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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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
정은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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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듣기에는 설레도 막상 해보면 대체로 고단한 것투성이다. 어쩌면 우리는 반짝이는 찰나를 위해 고단함도 감내하겠다는 각오를 여행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33쪽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여행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준비부터 설렌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귀찮고 고단해서 쉽게 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준비해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성향과 안 맞을 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정하자 더 이상 여행에 관한 글을 회피하지 않게 되었다. 여행서를 마주할 때마다 나도 가고 싶어 질까봐, 현재의 나의 상황을 한탄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자 여행서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고, 오히려 가보고 싶은 곳도 생겨났다. 틀에서 벗어나면 좀 더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경험한 셈이다.

여행자는 자신의 낯섦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일상과 맞교환한다. 그렇게 그들의 일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여행 아닐까. 44쪽

그럼에도 종종 안전해서 평범한 나의 일상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일상과 맞교환’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혼자 여행하기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역시나 고단함을 이길 정도의 열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저자의 글과 그림,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종종 유혹에 넘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특별함보다는 소소함에서 오는 느낌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할 일이 빼곡하게 적힌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부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뭔가를 보고 남겨야 하는 여행과는 무관한 빈둥거림을 우리는 원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때론 예기치 못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여행의 느긋함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때론 ‘지금 여기에 없는 답이 여행이라고 있을 리가.’ 있겠냐는 팩트를 날리고 ‘이국의 낯섦을 보는 것도 좋지만 주변을 둘러보는 것 역시 훌륭한 여행이 될 있다. 잘 알고 있다 여기던 것들을 새삼스레 살펴보고 새로운 사유만 할 수 있다면’ 서 사람들이 국내 여행을 잘 하지 않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여행을 간접으로만 경험한 나에게도 제대로 날아드는 말들이 잠시 혼란을 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세계 많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도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들려주는 게 좋았다. 작가나 책이 되기도 했고, 유명 인물이나 그림이 되기도 했다. 소소한 일상과 얽힌 여행의 느낌들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게, 때론 잔잔하게 흘러가는 글이 책 속으로 침잠하게 만들었다.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먼 여행은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 산보 나가듯 가까운 것을 가족과 거닐고 싶은 마음은 늘 있다. 날씨, 피로, 건강 등 온갖 핑계를 대면서 집 밖을 나서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꼭 특별하지 않아도 풍경을 같이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임을 알았다. 장소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고, ‘그저 매일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사랑하는 이들 곁에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될 것 같아서다. 이래저래 굉장히 깊은 감격을 하게 된 것 같다. 나의 일상도 종종 이렇게 깊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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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03-06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여기에 없는 답을 여행 가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냐는 팩트폭격, 완전 좋았음.ㅋ 나도 리뷰 써야지.

안녕반짝 2018-03-0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재밌게 읽으면서, 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ㅋ
 
명암 -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기념 완역본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보랏빛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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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다시 읽게 된 구원 같은 책이 있다. 바로『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인데,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주 오랫동안 나쓰메 소세키 작품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한눈팔기』밖에 읽지 않았지만 주인공들의 성격이 너무 짜증 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작품 해제와 같은 책을 만나게 되었고, 나의 배경지식의 부족함과 작가와 인물들의 이해도가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새로운 시선으로『도련님』을 읽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놀랐다. 그때부터 저자의 작품을 전작하겠다고 마음먹고 조금씩 읽어나갔지만 이내 멈춰버렸다. 그럼에도 출간 순서대로 읽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이 되어버린『명암』을 먼저 읽게 되었다. 두툼한 이 책을 지친 기색 없이 읽어 나갔던 것이 비단 저자에 대한 나의 시선의 변화만이 아님을 소설 초반부터 느낄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내 마음 속의 나쁜 마음과 선한 마음이 교차해서 올라온다. 나쁜 마음을 잘 억누른 날은 그럭저럭 하루를 잘 보낸 날이고 그렇지 못한 날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나쁜 마음을 늘 억누르고 싶은 건, 내 안에 감춰진 어두운 본성을 들춰내고 싶지 않아서다. 나쁜 본성이 나와 버린다면 내 자신이 어디로 튈지 나도 잘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그런데 이런 양면성을 저자는『명암』이란 작품에서 가감 없이 드러낸다. 등장인물마다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는 착각이 일 정도로 각각의 성정과 성향, 그리고 상황에 따른 종잡을 수 없는 변덕과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보통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의 묘사에 따라 선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단정 짓기 바빴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런 경계가 없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명암이 시시때때로 드러나 내 기준으로 인물을 평가하기보다 그저 섬세하게 드러난 내면에 감탄하느라 바빴다.

신혼인 쓰다가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짧은 시간에 모든 대화, 자잘한 일들까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서인지 물리적인 시간 개념이 없었다. 이 모든 일들이 마치 오래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 느껴졌던 것은 사소한 일들과 대화 가운데 모든 인물들의 심정을 헤아려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저자 특유의 인물들 간에 얽힌 짜증스런 일들이 많았다. 이 소설에서는 특히나 인물과 인물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주인공 부부가 관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염려될 정도였다.

직장이 있고 결혼까지 했음에도 아버지에게 보조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쓰다는 결코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하려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에 갇혀 다소 자존심과 약간의 허세도 있는 인물이다. 아내 오노부는 ‘누구든 상관없어. 자기가 이 사람이라고 믿어버린 사람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거야.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를 변함없이 사랑하게 만드는 거야.’ 라는 생각으로 쓰다와 결혼했지만 점점 남편의 속내를 알 수 없어 결혼 생활의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서로 마음을 숨기고 자존심을 세우고,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는 인물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게 유쾌할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인물과의 에피소드는 늘 궁금증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마음이 변하는 모습도 그렇고, 거짓말과 상대방 마음 떠보기,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상식을 벗어난 생각과 행동, 유도해서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는 방식들이 때론 지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늘 인물들의 대화와 심정에 빠져들었고, 극적인 순간에 다른 인물로 이야기가 넘어가 궁금해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새롭게 펼쳐지는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앞의 이야기를 잊기 일쑤였다. 그만큼 저자는 인물의 균형을 잘 잡아 주었고, 섬세함과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심리 변화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무려 102년 전의 작품인데 왜 이렇게 잘 읽히는 걸까?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결혼에 대해, 부부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불안한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이 동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시대나 가지고 있는 고민이 소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고만고만하고, 그것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인간과 인간의 접점을 작품에서 잘 드러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소홀히 읽을 수 없었고 내면에서 솟아나는 수많은 질문과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진지해졌다. 여전히 불투명한 것투성이지만 이런 고민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각자 나름대로의 기준과 방향으로 고민하고 결국엔 전진하고 있다는 다소 두루뭉술한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미완이라는 것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쓰다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자신의 친구와 결혼한 기요코의 사연을 듣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쉽다. 이 작품을 쓰다 사망했기 때문에 결말은 영원히 알 수 없지만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래서인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 작품은 영원히 살아 있는 기분이 든다. 결말을 알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도, 언제든 내키는 대로 상상해 볼 수 있고 추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끝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것이 독서의 매력이라고 말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 앞에서는 되레 숙연해진다. 많은 생각을 하고 여지를 만들어 준 작품이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앞으로 돌아가 그의 남은 작품을 만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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