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기념 완역본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보랏빛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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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다시 읽게 된 구원 같은 책이 있다. 바로『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인데,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주 오랫동안 나쓰메 소세키 작품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한눈팔기』밖에 읽지 않았지만 주인공들의 성격이 너무 짜증 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작품 해제와 같은 책을 만나게 되었고, 나의 배경지식의 부족함과 작가와 인물들의 이해도가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새로운 시선으로『도련님』을 읽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놀랐다. 그때부터 저자의 작품을 전작하겠다고 마음먹고 조금씩 읽어나갔지만 이내 멈춰버렸다. 그럼에도 출간 순서대로 읽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이 되어버린『명암』을 먼저 읽게 되었다. 두툼한 이 책을 지친 기색 없이 읽어 나갔던 것이 비단 저자에 대한 나의 시선의 변화만이 아님을 소설 초반부터 느낄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내 마음 속의 나쁜 마음과 선한 마음이 교차해서 올라온다. 나쁜 마음을 잘 억누른 날은 그럭저럭 하루를 잘 보낸 날이고 그렇지 못한 날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나쁜 마음을 늘 억누르고 싶은 건, 내 안에 감춰진 어두운 본성을 들춰내고 싶지 않아서다. 나쁜 본성이 나와 버린다면 내 자신이 어디로 튈지 나도 잘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그런데 이런 양면성을 저자는『명암』이란 작품에서 가감 없이 드러낸다. 등장인물마다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는 착각이 일 정도로 각각의 성정과 성향, 그리고 상황에 따른 종잡을 수 없는 변덕과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보통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의 묘사에 따라 선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단정 짓기 바빴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런 경계가 없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명암이 시시때때로 드러나 내 기준으로 인물을 평가하기보다 그저 섬세하게 드러난 내면에 감탄하느라 바빴다.

신혼인 쓰다가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짧은 시간에 모든 대화, 자잘한 일들까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서인지 물리적인 시간 개념이 없었다. 이 모든 일들이 마치 오래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 느껴졌던 것은 사소한 일들과 대화 가운데 모든 인물들의 심정을 헤아려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저자 특유의 인물들 간에 얽힌 짜증스런 일들이 많았다. 이 소설에서는 특히나 인물과 인물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주인공 부부가 관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염려될 정도였다.

직장이 있고 결혼까지 했음에도 아버지에게 보조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쓰다는 결코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하려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에 갇혀 다소 자존심과 약간의 허세도 있는 인물이다. 아내 오노부는 ‘누구든 상관없어. 자기가 이 사람이라고 믿어버린 사람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거야.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를 변함없이 사랑하게 만드는 거야.’ 라는 생각으로 쓰다와 결혼했지만 점점 남편의 속내를 알 수 없어 결혼 생활의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서로 마음을 숨기고 자존심을 세우고,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는 인물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게 유쾌할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인물과의 에피소드는 늘 궁금증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마음이 변하는 모습도 그렇고, 거짓말과 상대방 마음 떠보기,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상식을 벗어난 생각과 행동, 유도해서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는 방식들이 때론 지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늘 인물들의 대화와 심정에 빠져들었고, 극적인 순간에 다른 인물로 이야기가 넘어가 궁금해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새롭게 펼쳐지는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앞의 이야기를 잊기 일쑤였다. 그만큼 저자는 인물의 균형을 잘 잡아 주었고, 섬세함과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심리 변화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무려 102년 전의 작품인데 왜 이렇게 잘 읽히는 걸까?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결혼에 대해, 부부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불안한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이 동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시대나 가지고 있는 고민이 소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고만고만하고, 그것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인간과 인간의 접점을 작품에서 잘 드러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소홀히 읽을 수 없었고 내면에서 솟아나는 수많은 질문과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진지해졌다. 여전히 불투명한 것투성이지만 이런 고민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각자 나름대로의 기준과 방향으로 고민하고 결국엔 전진하고 있다는 다소 두루뭉술한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미완이라는 것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쓰다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자신의 친구와 결혼한 기요코의 사연을 듣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쉽다. 이 작품을 쓰다 사망했기 때문에 결말은 영원히 알 수 없지만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래서인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 작품은 영원히 살아 있는 기분이 든다. 결말을 알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도, 언제든 내키는 대로 상상해 볼 수 있고 추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끝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것이 독서의 매력이라고 말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 앞에서는 되레 숙연해진다. 많은 생각을 하고 여지를 만들어 준 작품이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앞으로 돌아가 그의 남은 작품을 만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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