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와 미니모이 1 - 미니모이 세계를 찾아서
뤽 베송 지음, 이희정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니모이들을 생각하면 괜히 나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무심코 한 행동이 미니모이들에게 커다란 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mm밖에 안되는 미니모이들을 내가 볼 수 없기에 이러한 말들이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아더에게는 다르다. 직접 미니모이들의 세계를 다녀왔었고 미니모이들처럼 몸집이 작아져 굉장한 모험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원에 살고 있을 미니모이들의 세계를 잘 지켜줄 터이고 미니모이들과 자신의 집의 문제까지 다 해결했으니 당분간은 안심하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더는 사랑에 빠져있다. 미니모이인 셀레니아 공주를 그리워하는 날들은 괴롭고 힘들겠지만 또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셀레니아를 얻었으니 값진 기다림이 될 것이다.  

  아더 못지 않게 미니모이 세계의 짜릿함을 맛본 나도 다음권의 책을 기다리는 시간이 값진 기다림이 될 것 같다. 너무나 유명한 감독 뤽 베송은 이번에도 역시 이름값을 하였고 책을 읽고 난 후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라는 간절함까지 생겨났다.책속에서 내가 느꼈던 재미와 상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 궁금하기 때문이다. 책의 중간 중간 애니메이션이 실려 있었지만 애니메이션 또한 독특했기에 책과 비교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뤽 베송 감독의 상상력 또한 뛰어나지만 줄거리 또한 탄탄하여 읽는내내 재미와 감탄에 빠져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애니메이션과 책의 연령층 구분이 많이 없어졌다지만 어린이 위주라서 완성도나 구성에 조금은 얕보았던게 사실이였다. 그러나 생각외로 재미있게 읽었고 미니모이들의 세계에 푹 빠져 나의 상상력은 한없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4년전 할아버지가 실종되고 홀로 남겨진 할머니와 어린 아더가 과연 빛 독촉을 해결할 수 있을지 할아버지가 남긴 비밀을 풀 수 있을지 의심했었다. 아더는 이제 막 10살이 되었고 미니모이들의 존재를 알았다고 해도 48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마타살라이 전사들이 할아버지에게 준 루비를 찾아야 하고 다비도가 아더의 집을 차지하게 되면 미니모이들에게도 위기가 닥치기에 이 모든 것을 아더가 해결해야 한다.

  우연히 할아버지의 비밀을 풀고난 후 마타사라이 전사들의 도움으로 미니모이들처럼 몸집이 작아진 아더의 모험은 시작된다. 미니모이 왕국은 지상위의 위험도 알지 못한채 저주 받은 M 말타자르의 공격에 위협 당하고 있었다. 마법의 검을 뽑은자만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셀레니아 공주는 마법의 검을 뽑지 못하고 지상에서 내려온 아더가 검을 뽑게 된다.

  셀레니아, 아더 그리고 셀레니아의 동생 베타메슈는 말타자르의 계획을 무마시키기 위해 아무도 돌아온 적이 없는 네크로폴리스로 떠나게 된다. 온갖 위험과 아슬 아슬함을 거쳐 세명의 아이들은 임무를 수행하고 실종되었던 할아버지까지 찾게 된다. 그 도중에 셀레니아와 아더는 얼떨결에 결혼을 하고 그렇게 그들의 운명은 시간에 맡겨진다.

  가까스로 지상에 올라와 원래 모습이 되는 아더는 마타살라이 전사들이 할아버지에게 준 루비를 찾게 되고 위기를 벗어난 후 그렇게 2권은 끝이 난다. 3권에서는 어떻게 셀레니아와 아더가 만나게 될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귀환으로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말타자르가 죽지 않았을 뿐더러 셀레니아와 아더의 문제도 쉽게 생각할 수 없기에 다음의 이야기도 기대가 되고 무척 흥미진진할 것 같다.

  2mm의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미니모이 세계를 재미나게 그려주었고 신비함으로 가득찬 우리에게 가깝지만 먼 곳 미니모이 왕국의 등장도 독특했다. 그러므로 인간세계와 미니모이 왕국의 조화를 어떻게 이어갈지 기대해보며 그들의 변화에 동조하려 한다. 어여 3권이 나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만나보는 미치 앨봄의 신간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따뜻해지는건 전작에서 보여 주었던 삶과 죽음을 통해 많은 메세지를 던져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억지로 묻어 나오는 감정이 아닌 내 안에서 스르르 던져지는 자연스런 감정의 이입은 그래서 더 소중했다.

저자의 문체는 조금은 어두우면서도 아픈 마음을 자극 시키는 강렬함을 가지고 있다. 그 감정은 내가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살아 있으므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한 요소였다. 언젠간 나도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러한 느낌보다 무상함을 논하며 평안을 더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살아있기에 죽음에 대한 준비보단 후회를 줄이기 위해 충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찰리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 자신의 삶을 돌아 볼때 후회와 부끄러움이 드는 일이 더 많았다.

어린시절부터 상처를 안고 자란 그는 자신의 삶을 흥청 망청 써버린다. 자신을 걱정해주고 사랑해주었던 사람들의 마음도 모두 망각한채 말이다. '우행시'에서 블루 노트를 보는 듯한 어머니와의 추억과 자신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가슴 아프고 우울함이 그득한 것들 뿐이다. 영화 '환생'에서 처럼 간절히 그리워 했기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들처럼 찰리에게 어머니 또한 그런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녀가 그리워 했기에 찰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만날을 수도 있으나 찰리에게 어머니의 등장은 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며 후회와 번민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때는 촉망받던 야구선수이기도 했던 그가 자살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었기에 자신의 소중함과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던 사람들을 잊어버린 탓이였다. 내 자신에게 부끄러운 것도 모자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러한 대접을 받는 다는건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늘 자신을 사랑해주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도 알지 못했던 찰리는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죽으려 했으나 살아 있다는 느낌 때문에 다시 한번 시작해 보려고 했던 찰리.

그러나 어머니와의 시간은 끝나가고 자신의 생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렇게 그리워하며 마음 한구석에 자신도 모를 정도의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어머니를 만났으니 그것 만으로도 만족했다. 그 시간을 통해 찰리는 지금껏 느꼈던 외로움, 괴로움, 상실감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에게 그러한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또한 그 사람과의 하루가 나의 삶을 보상받을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담고 있을만한가.

나는 잘 모르겠다. 찰리처럼 망가지지 않으려 아등바등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하루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후회를 적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일까. 나의 생활에서 활기와 생기를 잃어버린지 오래고 버티기로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 또한 나의 소중함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모두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최소한 주변 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찰리와 찰리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상황이였는데 사소함으로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우리의 과거 모습이 이런 아픔으로만 기억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기쁨과 따뜻함이 더 많아야 할 것이고 어머니와의 하루가 가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듯 나의 하루, 나의 하루 속에 속해 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럴때에 인생의 끄트막에서 회한의 눈물을 덜 흘리리라.

 

매일 매일 그러한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우리 일지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그러한 사람과 보내고 있다 생각하며 살아보자.

누구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닌 나 자신에게 우선 솔직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가지 말라고 하는데 자꾸 어긋난 쪽으로 가고 있다면 그건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한 모순의 바탕은 후회와 번민이 종착역일 수 밖에 없다.

지금껏 그래왔다면 이제는 따뜻한 하루 하루를 맞이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려 놓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과의 하루를 가져보는 것도 한 방법일테다.

어떠한 하루든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 주식회사 - S.E.R.V.E 리더십으로 만드는
케네스 블랜차드 외 지음, 조천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이제 이러한 자기계발서들은 커다란 충격과 감흥을 주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망각의 대상이 되지 말라고 말해주는 기억하기 위해 존재하는 산물 같다.

처음 이러한 종류의 책을 만났을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그러나 내가 실천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기에 그러한 충격의 기억은 생생해도 늘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간간히 이러한 책을 읽어 줌으로써 망각의 그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여기고 싶을 정도다. 이러한 상태에서 읽었기에 편안하게 읽으면서 커다란 반응은 얻지 못했더라도 조금씩 내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무언가를 끌어내는 과정을 겪었다.

그것을 끌어내느냐 마느냐의 차이는 내가 결코 느껴야 하지만 우선은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기억하고자 한다.

 

레이첼은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었다. 팀원들간의 화합을 이루어 내지 못했고 실적은 떨어지고 직원들까지 떠나고 있는 상황이였다. 도저히 이렇게는 안되겠기에 우연히 회사의 한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레이첼의 상담자는 다름 아닌 회사의 회장 제프였다.

어려기만한 제프와의 첫 만남이였지만 레이첼은 제프를 회장이 아닌 리더자로 관찰할 수 있었기에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제프는 조언자 뿐만이 아닌 레이첼에게 필요한 리더자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사람이였다.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준다던가 만남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여러번 만나서 좀 더 진솔한 대화를 이끌어 가는 모습은 서서히 레이첼을 변화시키고 S.E.R.V.E의 비밀 속으로 이끌어 간다.

 

첫번째 비밀은 '미래를 바라 보라' 이다.

레이첼은 위기를 맞고 있지만 그 위기에서 빠져나올 생각만 했지 팀의 미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기에 미래를 바라보더라도 말은 굉장히 광범위하면서도 제프의 설명을 통해 가닥을 바 잡아간다. 솔직히 나의 미래도 상상이 되지 않는데 팀의 미래, 나의 미래를 바라 보라니 무척 복잡미묘했을 것이다.

두번째의 비밀은 '다른 사람을 끌어 들이고 발전시켜라'이다.

레이첼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우연히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사서를 만나고 후에 그 사서를 자기의 팀으로 끌어들이면서 발전시켜 주는 계기를 만들지만 실은 레이첼이 그녀로 인해 더 도움을 받는 셈이였다.

나 자신에게 관대해도 남에게 관대하기가 참으로 힘든데 같이 일을 하기 위해 끊임없는 관심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실제로 사무실에서나 주변에서 내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고 상상해보자.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러나 못할 것도 없는게 사실이다. 내 자신을 낮추면 되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계속해서 재창조하라'이다.

이것은 팀원들과 혹은 주변 사람들과의 솔직담백한 대화의 시간을 만들어서 나올 수 있는 결과다. 늘 그 자리에 있기에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이나 새로움을 대화를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보며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네번째는 '결과와 관계를 중시하라'이다.

결과 보다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지만 냉정한 세계에서 이러한 말은 득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와의 관계라함은 때론 얼마나 미묘한지 상상이 가지만 짚어 나갈 것은 나가고 맺어야 할 관계는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데 동의하는 셈이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가치를 구현하라'이다.

사람이든 일이든 그 가치를 발견하고 지켜나가는 것은 처음 문제를 발견하거나 그것을 지속시키며 제거할때 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눈에 띄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안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다섯가지를 차근 차근 곱씹으며 내게 대입시켜보면서 변화하고자 한다면 마지막 단게에서 가장 인간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느 것이 되었든 내 마음을 열어 놓고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진심으로 대할때만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책을 통한 변화를 바라는 것만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인한 관계성 전달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내가 그 주역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우선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럴때에 나의 가치도 올라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Mr. Know 세계문학 33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대한 애정을 잃지 못하고 러시아 문학이라고 하면 자꾸만 눈에 불을 켜고 구입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이러한 열정은 막상 작품을 맞닥뜨렸을때 조금은 난해함으로 맞이하게 된다. 러시아 특유의 내면의 표현은 익숙하지만 전개의 흐름은 몽롱하게 또한 나른하게 다가와 좀처럼 갈피르 잡을 수 없다.

그러한 분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나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만 그러한 느낌만 가지고 있을 수는 없는지라 막상 책에 대한 잔상을 남기려고 하면 할말은 여담 뿐이다.

책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못했다고 생각해도 좋을터나 그러한 여담 또한 싫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오는 파생적인 여운때문이리라.

구구절절 러시아 문학에 대한 특징을 혹은,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열정적으로 얘기할 순 없지만 문학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을 뿐이다.

러시아 문학에 대한 편애임이 틀림 없으나 분명한 매력은 있다.

 

폭서의 한가운데 집을 지키고 있는 천문학자 밀라노프 앞에 펼쳐진 사건과 그의 내면은 더위의 끈적함이 배어나올 정도다.

아내와 아들이 없는 빈집에서 그는 더위와 맞서고 있지만 200년만에 찾아온 더위를 이길 재간이 없다.

그러한 가운데 굉장한 공식이 떠올라서 차분하게 정리를 해보고 싶지만 도무지 주변 환경들이 도와주지 않는다.

엉뚱한 전화, 낯선 방문객들, 이웃집의 물리학자의 방문. 그리고 그의 죽음 앞에 밀라노프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정리할 수 있단 말인가.

정점 복잡미묘한 상황속에서 밀라노프와 주변의 학자와 친구들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누군가가 자기들을 제재하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가운데 외계의 압력을 받고 있다라는 의견까지 나온다.

그러한 어처구니 없는 비유가운데 풍자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걸 어렴풋이 알게 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없다.

몽롱함으로 이끌어가는 상황속에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압력을 느끼지만 그 안에서 분노하고 두려워하며 의견을 토로하지만 어느 것 하나 뚜렷이 떠오르는 것 또한 없다.

과학자로써 자신의 학문적 생존, 가족들의 안위까지 걱정하고 고민하지만 압력의 세력은 정체를 드러내지도 뚜렷한 해결점 없이 책은 끝을 맺는다. 어떠한 결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흐름은 번역자의 말마따나 어떠한 것도 우리에게 던져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무책임한 말로 들릴 수도 있고 그러한 것을 나같은 미미한 독자가 어떻게 캐내겠냐만은 꼭 무언가를 캐치하지 못하더라도 나만의 이런 모호함도 결론이라면 결론이리라.

 

이러한 모호함의 근원이 시대적 배경이 까마득한 미래나 과거가 아닌 현재이기에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의 삶 자체가 모호함이고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끊임없이 살아가며 우리가 누려야 할 가치들을 찾아야 함이 아닐까?

그것이 그들이 바라던 자유와 행복이라고 해도 나 또한 시원스레 말해줄 수 없는 것은 그들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현실 가운데 나 또한 생각해 보게 된다.

나에게 주어지고 있는 제재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위해 충실히 살아가고 있으며 분노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가끔은 너무나 망각하기에 이러한 사색도 필요할 것 같다.

현실을 잃어버리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03년(tv, 책을 말하다)의 올해의 책으로 발표된 후부터 찜해두고 올 1월에 구입한 책이였다. 대충 훑어볼때 왜 그리 책이 안 땡기던지. 그래서 지금까지 방치하였는데 우연한 계기로 내 책 꽂이에서 내 손으로 간택(?)되었다.

그리고 잊지 못할 훌륭한 책이 되어 버렸다.

정민의 '책 읽는 소리'를 읽고 우리의 고전이 너무 읽고 싶어 나의 책 꽂이를 살펴 보았지만 비슷한 책이 한권도 보이지 않았다.

죄다 외국 문학 아니면 현대 국문학이 전부였다.

그러던 찰나 이 책이 보였다. 그래 시기라도 비슷하니 이 감흥을 이어가자며 꺼냈던 책인데 너무나 놀라웠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자랑스러워질 정도였다.

띠지의 찬사가 허황된 것이 아닌 제대로 드러맞는 책.

그런 책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난 딱 만나버린 것이다.

 

예전에 책 정리를 할때 내가 좋아하는 책은 왼쪽부터 정리해갔고 장편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습관을 아무 의심 없이 지나쳤는데 어느날 태백산맥 세트를 시켰더니 오른쪽부터 순서가 되어져서 온 일이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잘못 끼워진건가?' 하며 거꾸로 마추려다가 문득 낯설지가 않아 그대로 두었었다.

그러다보니 조정래님의 책끼리 모아서 정리할때 태백산맥 덕분에 자연히 다른 장편들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순서를 다 바꿔야 했다.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왼쪽에서부터 꽂지만 장편들은 순서가 다 오른쪽부터 시작이 된다.

책을 정리하고 보니 그게 조금 뒤죽 박죽인 느낌은 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전의 나의 습관이 낯설게 느껴졌었다.

이러한 석연치 않은 의문을 나는 단순히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서예를 할땐 오른쪽에서부터 쓰니까 라며 지나쳐 버렸는데 이 책을 읽고 잊고 있던 그 의문이 풀어져버렸다.

왜 책의 번호를 오른쪽부터 나열해야 편안한지를 말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활자가 가로가 되어버렸지만 예전에 세로로 된 책들과 신문을 기억할 것이다.

일본은 세로와 가로의 쓰임이 자연스럽게 복합적인데 우리는 왜 세로 쓰기를 다 버리고 가로쓰기가 되었을까?

보기가 불편하고 쓰기가 불편해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은 서양식이다.

서양의 그림은 네모 반듯한 캠버스에 시선이 자연스레 좌상左上에서 우하右下로 가지만 우리의 시선은 우상 좌하이기 때문에 족자나 병풍의 글과 그림들이 긴 것이다.

그러니 내가 느꼈을 책정리에서의 평안함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이유가 서양식의 시선 때문이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조들의 유명한 그림을 보면 이러한 시각의 방향을 모르더라도 자연스레 우상, 좌하의 시선으로 눈이 좇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을 몰랐을때 그림의 백미를 놓쳐버리는 경우도 많다.

 

책의 순서에 관한 나의 의견이 억지스럽고 충동적인면이 있더라도 우리의 옛 그림에서는 이렇게 그림 보는 방법을 알아야 진정한 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감상하는 방법을 몰랐으니 외국의 화려한 그림과 비교했을때 우리의 그림이 초라하고 고리타분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외국의 그림을 잘보는 것도 아닌데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우리의 그림을 대충 본 것이나 우리의 미를 알지 못했던게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특히 저자는 김홍도의 그림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의 그림을 열정적으로 알리고 있는데 읽고 있는 나에게 그러한 열정이 그대로 전달되어 오고 오래된 그림들에서 풍겨져 나오는 숨겨진 아름다움에 놀랄 따름이였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그림을 볼때마나 커다란 수수께끼를 풀듯 풀려나가는 의미와 섬뜩함은 이 책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울 지경이였다.

책을 읽기전, 제목의 '특강'이라는 말이 있었음에도 알아보지 않고 편견에 사로 잡혔던 우리 그림에 대한 고리타분함이 그대로 이 책에도 전달되어 있었다.

 

이 책은 여러 군데에서 저자가 강의를 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처음엔 그러한 형식이 적응이 안되어서 얕잡아 보기도 했었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했던 것만큼 책으로도 쉽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오로지 그림을 그림만으로 보는 것이 아닌 그림 속에 담겨 있는 우리의 풍속이나 역사 문화까지 고루 담겨 있어서 그러한 재미가 더 쏠쏠했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음양오행 같은 경우는 '뿌리 깊은 나무'에서 자세히 설명된 걸 읽었음에도 이 책에서 설명된 것이 내 마음속에서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아 조금은 혼란스럽고 어려웠지만 따로 공부를 해봐야 겠다라는 생각이 든 배경에는 저자가 재미나고 열정적으로 강의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특히 그림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닌 시와 그림과의 절묘한 조화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한 것들이 무지한 나에게 바로 보이면 더 좋았을 거라는 배부른 생각도 해보았지만 역시 숨겨진 백미의 맛이였다.

그래서 충동적인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랑이 아닌 이렇게 책으로 볼 수 있는 우리의 멋과 미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터였다.

늘 우리의 것은 팽개치고 외국의 문학, 외국의 그림에 감탄하며 홀렸던 것이 사실이나 이러한 계기로 서서히 우리의 옛 것에 관심을 두고 애정을 쏟는 것이 참 좋다.

오로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우리의 문화, 아름다움에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렇게 커다란 것들이 보인다.

그 가운데는 분명 우리가 있을 것이고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기백이 넘칠 것이다. 그 희열의 중심부로 들어와 보라.

이 책을 통한 경험은 그만큼 소중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