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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ㅣ Mr. Know 세계문학 33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대한 애정을 잃지 못하고 러시아 문학이라고 하면 자꾸만 눈에 불을 켜고 구입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이러한 열정은 막상 작품을 맞닥뜨렸을때 조금은 난해함으로 맞이하게 된다. 러시아 특유의 내면의 표현은 익숙하지만 전개의 흐름은 몽롱하게 또한 나른하게 다가와 좀처럼 갈피르 잡을 수 없다.
그러한 분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나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만 그러한 느낌만 가지고 있을 수는 없는지라 막상 책에 대한 잔상을 남기려고 하면 할말은 여담 뿐이다.
책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못했다고 생각해도 좋을터나 그러한 여담 또한 싫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오는 파생적인 여운때문이리라.
구구절절 러시아 문학에 대한 특징을 혹은,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열정적으로 얘기할 순 없지만 문학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을 뿐이다.
러시아 문학에 대한 편애임이 틀림 없으나 분명한 매력은 있다.
폭서의 한가운데 집을 지키고 있는 천문학자 밀라노프 앞에 펼쳐진 사건과 그의 내면은 더위의 끈적함이 배어나올 정도다.
아내와 아들이 없는 빈집에서 그는 더위와 맞서고 있지만 200년만에 찾아온 더위를 이길 재간이 없다.
그러한 가운데 굉장한 공식이 떠올라서 차분하게 정리를 해보고 싶지만 도무지 주변 환경들이 도와주지 않는다.
엉뚱한 전화, 낯선 방문객들, 이웃집의 물리학자의 방문. 그리고 그의 죽음 앞에 밀라노프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정리할 수 있단 말인가.
정점 복잡미묘한 상황속에서 밀라노프와 주변의 학자와 친구들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누군가가 자기들을 제재하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가운데 외계의 압력을 받고 있다라는 의견까지 나온다.
그러한 어처구니 없는 비유가운데 풍자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걸 어렴풋이 알게 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없다.
몽롱함으로 이끌어가는 상황속에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압력을 느끼지만 그 안에서 분노하고 두려워하며 의견을 토로하지만 어느 것 하나 뚜렷이 떠오르는 것 또한 없다.
과학자로써 자신의 학문적 생존, 가족들의 안위까지 걱정하고 고민하지만 압력의 세력은 정체를 드러내지도 뚜렷한 해결점 없이 책은 끝을 맺는다. 어떠한 결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흐름은 번역자의 말마따나 어떠한 것도 우리에게 던져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무책임한 말로 들릴 수도 있고 그러한 것을 나같은 미미한 독자가 어떻게 캐내겠냐만은 꼭 무언가를 캐치하지 못하더라도 나만의 이런 모호함도 결론이라면 결론이리라.
이러한 모호함의 근원이 시대적 배경이 까마득한 미래나 과거가 아닌 현재이기에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의 삶 자체가 모호함이고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끊임없이 살아가며 우리가 누려야 할 가치들을 찾아야 함이 아닐까?
그것이 그들이 바라던 자유와 행복이라고 해도 나 또한 시원스레 말해줄 수 없는 것은 그들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현실 가운데 나 또한 생각해 보게 된다.
나에게 주어지고 있는 제재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위해 충실히 살아가고 있으며 분노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가끔은 너무나 망각하기에 이러한 사색도 필요할 것 같다.
현실을 잃어버리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