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의 여신 3
윌버 스미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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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상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것에 대해..

토마스 만은 그런 말을 했다.(요셉과 그 형제들 4권중에...)

'모든 이별의 고통은 앞으로는 어쩔 수 없이 되리라는, 이 필연적 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망각 이후에는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게 된다. 바로 그래서 미리 애통해하며 우는 것이다'

라고.. 예상치 못한 눈물의 근원을 찾은 셈이다.

난 그들과의 이별을 애통해 했다. 어쩔 수 없는 망각을 알기에.. 그리고 그 사이에 그들에게 정이 듬뿍 들었기 때문에.

타누스와 로스트리스의 죽음.. 그리고 타이타와 그외의 낯익었던 인물들과의 헤어짐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 헤어짐 안에는 세월의 흐름도 무시하지 못했다.

1권에서의 싱싱함.. 2권에서의 젊음.. 3권에서의 생로병사...

그 허구의 삶속에서의 그들을 그리워하고 그들의 희노애락을 함께 나눈다 착각하며 지켜본 것인데 그들은 그렇게 떠나버린 것이다. 그들의 부재는 내가 삶을 맞이하기 전에도 있어왔고 그들을 알고 잊어 버린 뒤에도 늘 있을 테지만 나는 아직 놓아버리지 못했다. 그들의 존재를....

 

타누스와 타이타의 도움을 받긴하지만 이집트는 힉소스 족을 감당하기엔 벅찼다. 결국 이집트인들과 로스트리스 여왕 멤논 왕자 측근들은 남 나일강을 따라 망명길에 오른다. 험난한 폭포를 지나며 농사를 지어가며 국력을 강화하며 시작된 망명생활은 20년이 지나서야 이집트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전차와 말을 이용한 힉소스 족을 따라잡기엔 20년의 세월도 부족했지만 결국 그들은 테베를 기점으로 힉소스족을 몰아내고 험란한 통일의 제국의 길의 거점을 확보한 것이다.

망명생활중에 로스트리스는 점점 여왕으로써의 자질을 갖추어가고 타누스와의 변치 않는 사랑으로 공주를 두명 더 낳게 된다.(왕이 죽은 후에 로스트리스의 임신을 정당화시킬 수 있었던 건 파라오가 죽기전에 로스트리스에게 자기의 왕묘를 완성해달라는 부탁하에 파라오의 유해를 싣고 다님으로 인한 타이타의 신화적 중재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망명생활이라는 그 자체가 순탄할 수 많은 없는 법...

새로운 땅의 새로운 민족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야 했고 힉소스족에게 대항하기 위해 전차를 연구하고 말을 키우고 돌림병으로 말들이 폐사하고 그런 과정속에 시간은 흘러만 간다.

그러던 중 타누스,멤논,타이타 일행은 탐험중에 에티오피라인을 만나고 그들의 분열속에 포로가 된 다른 족장의 딸 미사라에게 멤논이 반해 그녀를 구하려다 되려 타이타가 포로가 되어 버린다. 미사라와 타이타의 계획속에 타이타는 탈출하여 미사라의 아버지에게 가서 이집트와의 조건 계약을 한 후 전쟁을 일으킨다. 가장 큰 궁극적인 원인은 멤논과 미사라의 사랑 때문이였다. 그러나 그 전쟁에 참가했던 타누스는 전사하고 만다.

끝내 자기의 아내가 되지 못한 로스트리스를 남겨둔채..

타이타는 로스트리스의 슬픔을 멤논에게 떠맡겨버리고 타누스의 시신을 수습한 후 로스트리스 곁으로 돌아가 이집트로 출격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로스트리스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테베를 갈망하던 그녀는 다행히 그곳에 도착해 죽음을 맞이한다.

 

처음 1,2권을 읽을때 제목과 상응하는 내용이 안나온다고 생각했다. 나일강의 여신이라면 하피신의 보호를 받는 로스트리스를 명하는 것인데 로스트리스가 중점이긴해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3권을 읽으면서부터 나일강의 여신에 로스트리스보다 하피여신에게 내재된 의의가 더 크다는 걸 느껴갔다.

이집트에서 나일강은 빼놓을 수 없듯이 로스트리스,나일강, 하피 여신이 삼위일체가 되어 펼쳐지는 서사 속에 제목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처음 서문에 파피루스 속에서 이모든 이야기를 써내려간 타이타의 존재 속에는 마모세 왕묘속의 타누스를 만날 수 있었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타누스가 파라오가 되는줄 알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런 분위기는 못 느꼈다.

그러나 의문은 마지막에 풀렸다. 타이타는 타누스의 장례식과 파라오 왕묘의 완공 행사의 비슷한 시기를 이용해 미이라를 바꿔버린 것이다. 그래서 파피루스가 마모세 왕묘에서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로스트리스와 타누스가 떠나고 새로운 왕 멤논과 왕비 미사라가 탄생했지만 여전히 타이타는 그들을 지켜줘야 한다며 끝을 맺는다.(끝이면서도 새로운 세계의 예고를 알리는 저자의 맺음에 그들과 또 만날 수 있다는 헛된 상상을 품어 보았다. 내가 그들을 알지 못했듯이.. 그리고 이처럼 그들을 그리워 하듯이 말이다.)

 

3권의 내용은 방대했다. 1~3권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 했고 나의 능력으로는 줄거리의 요약이 엉성할 정도였다. 이집트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나라속에서 만나는 이방의 국가의 모험은 또다른 재미를 주었고 이집트 역사와 신들의 각축속에 신성함을 느꼈고 세대교체 속에서 그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나로써는 멤논과 미사라의 사랑과 젊음 속에 신선함을 느꼈지만 로스트리스와 타누스 그리고 타이타의 늙음이 서글펐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 법이지만 타누스와 로스트리스의 죽음을 맞이하며 내가 흘린 눈물은 그들의 안타까운 비극적인 사랑과 이별의 슬픔도 있었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인간의 한낱 미미함속에 더이상 그들을 잡을 수 없음이 너무 서러웠다.

망각의 눈물일지라도 그들을 놓고 싶지 않았고 그들을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며들었는데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티가 난다는 옛말처럼 그들의 부재의 허전함이 컸다.

고대 이집트에 푹 빠져들었고 어느새 이집트인이 되어가던 나였는데 이제 그 여행을 마쳐야만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방대했던 이집트의 역사,문화,문명의 발전 속에서 그들을 중점으로 너무 두지 않으려 했건만 감정에 구속되어 있는 인간인지라 그들과의 정을 이리 떼기가 힘든가 보다.

 

소설의 중점을 논한다는게 우습기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변하고 변했던 드러남의 중요함이 아닌 인간 삶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들이 충실하게 살아줬기에 모든것이 조화로울 수 있었고 그 조화속에서 모든것이 빛났던 것이다.

현실 도피를 도모하며 책 속으로 빠져드는 경향이 있는 나인데 이번에는 고대 이집트에 제대로 빠져본 것 같다.

내가 작정하고 빠지려고 해도 빠져지지 않는 것이 사람 맘인데 어느새 그 마음을 차지하고 들어오는 이집트와 이집트 인들의 삶...

그 여행이 꿈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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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의 여신 2
윌버 스미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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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계속 이집트의 꿈을 꾼다.. 나일강의 여신을 읽고 자면 꿈속에서 이집트를 만난다. 2권부터 그런 움직임이 짙어졌고 책을 열때마나 펼쳐지는 이집트의 모습이 생생해져 갔다. 로스트리스와 타누스는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았고 타이타의 언변의 기술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그들 앞에 놓여진 운명도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꿈속을 어지럽히고 꿈인지 소설인지 헷갈릴정도의 몽롱함의 하루 하루가 연속되어 갔다.

 

1권에 이어 2권을 대략 얘기하자면 로스트리스의 결혼으로 실의에 빠져 있던 타누스를 타이타가 건져내여(?) 왕과 약속했던 떼까치파를 소탕하게 된다. 그런 후 로스트리스와 교묘한 만남을 주선해서 왕자 멤논을 잉태하고 2년전 오시리스 축제때 파라오와 약속한 떼까치파의 소탕의 결과를 알리던 타누스는 로스트리스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 인테프의 악행을 드러내고 타이타의 증언으로 인테프를 극형에 처하려던 찰나 인테프는 유유히 도망을 친다.

그러는 와중에 로스트리스는 출산을 하고 파라오 마모세는 왕업을 이어줄 아들의 탄생을 감격해하면서 로스트리스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타이타의 중재로 타누스와 로스트리스 그리고 멤논은 각자의 위치에서 적정 거리를 둔채 그럭저럭 만족해하며 생활해 가지만 그런 평온은 오래가지 않는걸까?이집트는 아시아계 유목민족 힉소스족의 침략을 받는다. 전쟁이라면 어느 정도 자긍심을 갖고 있던 이집트였지만 말과 전차를 이용한 힉소스족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마모세왕은 전사하고 모든 왕권의 위임을 받은 로스트리스는 전쟁을 준비하고 대책을 세우며 타누스와 타이타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이 전쟁의 가운데는 힉소스족을 부추겨 이집트를 통째로 삼키려는 인테프경이 있었고 자신의 야욕을 위해 딸까지 이용한 악랄함이 내부의 갈등으로 부패될대로 부패된 이집트를 더 위험에 빠트린다.

 

2권도 이렇게 끝이나고 지루함없이 재미나게 읽었다.

그러나 조금씩 빈틈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가운데 하나는 타이타의 뛰어난 능력이였다. 너무 설치다 싶을 정도의 다양한 능력발휘는 여러곳의 헛점을 혼자서 틀어막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 짜증도 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의 언변은 지칠줄 몰랐고 그의 말마따나 그가 아니면 많은 것들이 더 얽혀버렸을 이야기꾼으로의 또다른 능력의 타이타를 만날 수 있었지만 그의 문체에서 한가지 부족한게 있다면 긴장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1권에서는 절망적이던 로스트리스와 타누스의 사랑은 각자의 위치에서도 어느정도 틀을 형성해갔고 타이타의 희망적인 예언이 있기는 했지만 2권에서 그들은 중점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집트의 왕자가 잔짜 왕자가 아니라는 엄청난 사실 앞에서도 그들의 관계는 너무 태연히 진행되었고(의문스럽기까지 했다. 다른 비밀들은 그렇게 잘 새어나가는데 타누스와 로스트리의 관계는 누설에서 아예 차단된 느낌이였다.) 그런 태연함이 긴장감을 감소시켰다. 이집트의 세계에 푹 빠져있긴해도 감정의 굴곡이 적은 제3자인 독자라는 인식이 짙었고 소설은 위험스럽게 흘러가도 그에 대응한 복선의 두려움이 적었다.

1권에서의 불행한 운명은 2권에서 만큼은 희망적일거라는 결론의 도달앞에 나아갔고 굵은 사건이 나와도 나는 구경꾼의 입장이 되는 긴장감이 약해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끊임없이 그려보는 이집트의 세계는 무한했고 그러한 가운데 문명의 발전의 시작은 지금의 문명과 너무도 흡사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수술이며 건축에 필요한 양식 등등) 그러한 것들을 보고 있으면 이집트의 문명 발전에 놀래야 하는건지 지금의 모습을 너무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해야할지 고민이 갈 정도였다. 그래서 책마다 부제목과 소제목이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그 제목이 있었더라면 시간의 흐름과 배경을 좀더 쉽게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싶다.

 

여튼 전체적인 맥락과 틀은 1권의 기대에서 크게 벗어난건 아니지만 그 기대치가 큰만큼 2권에서는 헛점을 찾으려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1권 칭찬에 대한 균형이라도 맞추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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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의 여신 1
윌버 스미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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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에서 흥미를 일으키는 것이 고등하교때 읽었던 람세스를 떠올리게했다.. 5권이나 되는 분량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무작정 들었다.. 이집트라는 나라가 불러일으키는 호기심은 그렇게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영화나 책을 봐도 늘 호기심이 목마른 나라라고나 할까.. 그랬기에 얼리리뷰어 모집을 한다는 이벤트에 리뷰를 널리 널리 알려줄 것을 약속하고 응모를 했는데 정말 당첨이 되었다.. 바로 배달되어온 나일강의 여신 세권... 부자가 된 느낌과 함게 바로 집어 들어서 읽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흥미진진했고 책을 집어들때마다 떨쳐내기 힘든 흡인력에 늘 시달리면서도 아껴읽는 것인지 그 느낌을 좀더 음미하고 싶은 것인지 꾸준히 읽었음에도 약간 더디게 읽었지만 책을 읽는 시간 내내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환영들은 뚜렸했다..

 

시대는 기원전 18세기의 이집트.. 당시 이집트는 상하 왕국으로 분열된채 내전과 화적패의 약탈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 현실에서 파라오는 무능력했고 수십명이 되는 왕비들 사이에서 후계자까지 낳지 못하는 상황이였다..

그러한 가운데 젊은 귀족 타누스와 로스트리스는 깊이 사랑하는 사이로 등장하지만 로스트리스의 아버지의 반대와 계락앞에 그들의 운명은 고난의 길이 되어간다.. 이러한 사실들을 써내려가는 인물은 로스트리스의 아버지 인테프 경의 노예 타이타이다..

타이타는 뛰어난 외모로 남색의 취향이 강했던 인테프 경에 의해 고자가 된대다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인물이지만 다재다능하고 여러분야에 걸친 다양한 지식들로 인해 악랄한 인테프 경에게 없어서 안될 존재가 된다..

로스트리스가 어렸을적부터 늘 그녀곁에서 그녈 위해 많을 걸 희생하고 그녀의 사랑과 안위를 위해 노력하지만 교묘한 운명적 장난과 계략아래 로스트리스는 파라오의 아내로 지목되고 타누스는 화적패를 소탕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임무를 맡게된다..

그러나 그들의 애절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로스트리스는 파라오와의 첫날밤을 치루게 되고 타누스는 로스트리스의 결혼식이 있은 후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타누수를 찾아 타이타는 헤메고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꾸민다...

 

그렇게 1권은 끝이난다...1권만 보더라도 뒷편의 내용이 얼마나 방대하고 화려하고 흥미진진할지 짐작이 간다..

책의 초반에 로스트리스아 타누스의 사랑앞에 불행의 조짐이 퍼져가고 파라오가 끼어들며서 뻔한 스토리로 이어지겠구나라는 섣부른 판단을 했는데 의외로 그들의 사랑에만 치중된것도 아니고(중점스토리이긴 하지만..)이집트의 문화와 특징 시대적 배경등 탄탄한 구성과 막힘없는 서술에 나의 상상의 나래는 끝없이 펼쳐졌다.. 쉽게 눈에서 떼지 못했던 이유중의 하나는 어찌보면 낯선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소설임에도 머릿속에 펼쳐지는 그림을 쉽게 접었다 펼쳤다 할수 있는 묘사였다..

처음부터 그 묘사는 단연 돋보여서 꼼꼼하게 읽게 만들었다..

또한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사그라드는 그리고 함부로 하는 사랑이 아닌 로스트리스와 타누스에게 처해진 운명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개척해 가려는 의지가(타이타의 중재의 영향이 컸지만..)보여서 앞으로의 전개도 그런식으로 꼼꼼하게 진행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들었다..

또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돋보였던 부분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술자 타이타였다.. 서문에서 밝힌바와 같이 허풍 교만 자화자찬이 깃들었음에도 애정을 느낀다는 옮긴이의 말마따나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너무나 박식하고 다재다능해서 때론 어이없고 주책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미워하거나 젠체한다고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솔직하고 인정이 많은 타이타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일거수일투족의 묘사나 전개방식이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원전 18세기의 이집트라는 시대적 배경과 그들의 문화적인 잔인하고 냉소적인 면의 일부분은 책으로 읽기에 거북할정도의 적나라한 묘사가 인상을 찌뿌리게도 했다....

피할 수 없는 문화적 충돌인 반면 코드가 다른 나로써는 그 시대의 남색의 추태, 폭력과 체벌의 잔인함, 인간과 동물이 다를바 없어 보이는 노예제도등이 거북살스러웠던건 사실이였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는 기원전 18세기의 배경이라는 점과 사막과 무더위 그리고 혼란의 시기라는 점을 생각해 볼때 충분한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적나라한 잔인함 앞에서는 훌륭한 묘사가 난처했다..

그런만큼 저자는 이집트를 잘 이했고 저자의 고향인 아프리카에대륙에 대한 애정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구성과 묘사가 탄탄한 모험소설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나의 기분과 집중도의 영향도 있겠지만 어느정도 읽다보면 그 책의 분위기나 스토리를 파악해서 그 빛깔에 따라 읽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의 느낌은 좋다.. 서론에서의 위대한 타누스.. 그리고 옮긴이의 말에서의 기원전 18세기의 잃어버린 역사의 부분에 대한 복원의 찬사가 어떻게 이어지고 나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을지 궁금해진다..

나는 이제 기원전 18세기의 혼란기에 살고있는 이집트인이다..

이 모험이 끝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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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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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지도 못할꺼면서 욕심만 잔뜩 머금고 출근길에 책을 세권을 들고 갔다.. 사무실에서 책을 집중해서 읽는 시간은 극히 적지만 그냥 잠깐이라도 펼쳐보며 음미해볼 요량으로 몽땅들고 출근을 했다.. 오전일을 마무리 짓고 읽다만 책을 꺼내서 조금 읽은 후 오후에는 인더풀을 꺼내들었다..

시끄러운 사무실에서 읽기엔 이 책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잠깐 읽었을 뿐인데 어느새 책의 절반을 읽어버렸다.. 한번 쥐면 흡인력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마력.. 공중그네 덕인지 인더풀은 좀 더 유쾌하게 편안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수영중독에 걸린 샐러리맨, 문자 중독에 걸린 고딩, 자꾸 자신이 예뻐 스토거가 붙는다는 착각에 빠진 여성, 읽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는 강박관념을 가진 저널리스트등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공중그네에서는 적응이 되지 않아 마음의 벽을 내리고 읽다가 그 벽을 무너뜨렸는데 인더풀은 완전히 적응해서 혼자서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괜시리 눈물 짓기도 하면서 편하게 읽었다..

이라부의 엽기 처방은 계속되고 그런 이라부 틈에서 치유되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마치 내가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가 치유되는 친근감과 그들 안에 존재하는 존재감을 느끼며 나 자신은 어떠한가라며 곰곰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가 만들어낸 고질병에 걸린듯 하면서도 당연한 것 같은 느낌.. 어찌 되었든 문제가 있으면 잠시 멈춰서 자기를 점검해보며 앞으로의 삶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 웃고 우는 사이에도 이런 느낌들은 자연스레 파고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이라부와 마유미.. 그들이 친숙해져 버렸다.. 아니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그들과 헤어진다는 아쉬움이 들어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런데에는 그들의 겉모습이나 생각들이 독특하긴해도 거짓없이 대하는 그들의 진솔되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이라부 종합병원과 환자들.. 그들 덕에 유쾌한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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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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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이다..

어떤 식으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건지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것 같지 않은 뉘앙스의 유혹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림에 대해서 아는건 없지만 보는건 좋아하는 터라 그림과 함께한 이런 책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겉표지의 몽롱하면서도 두려움을 일게 만들기까지 하는 책을 손에 쥔 여자의 모습.. 거기서부터 책 읽는 여자들의 세계가 시작된다..

 

대충 훑어봐도 책 읽는 여자가 그득한 책.. 나의 마음에 쏙 들었다.

한결같이 그녀들은 독서와 읽기.. 그리고 몽상에 빠져 있었고 그녀들의 세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증은 더해갔다..

저자의 말로 시작된 서문에서 책 읽는 여자는 왜 위험하다라고 했는지 조금은 수긍이 갔다.. 과거 여자들의 책 읽기가 얼마나 위험했는지 시대적인 면이나 공간적인 면 그리고 정신적인 면들까지 두루 두루 살펴주며 여러 각도에서의 해석과 함께 중간 중간 그와 상응하는 그림들까지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13세기부터 그런 그림이 존재한다는게 그저 신기해서 정신을 놓고 읽었는데 그림들은 충분히 매료될만 하나 그에 대한 설명들과 화가의 소개들이 너무 간단명료했다.. 간단명료라는 설정에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글들이 있는데 이 책에서의 설정은 시대와 화가 그리고 그림을 동떨어지게 만드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화가에 대해서 굳이 자세히 알아야 그림을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세부사항을 요구하는 추상적인 설명들이 점점 책 읽는 여자의 위험성에서 나를 떼어놓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책읽기와 여자에 대한 또다른 설명이 있었지만 왠지 이질감을 떨쳐 내기가 힘이 들었다..

그림은 내가 느껴야하고 그림에 대한 설명도 그런 느낌 위주지만 같은 주제임에도 동떨어진 느낌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하나 하나의 객관성이라고 해야 할지 단지 수집의 목적이라고 해야할지 섣불리 얘기할 수 없었다. 그런 두 느낌이 확고해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그런 와중에 몇몇 그림은 작가나 그림에 대한 지식이 약간 있어 짧은 글 안에서도 쉽게 이해하며 수긍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이 너무 많았다..

좀 더 감상적이면서 그림속에서의 독서열이 느껴지는 그런 해설을 원했는데 아마 그건 독자의 몫인가 보다..

다행인건 이 책에 실린 그림들에서 그녀들의 독서와 읽기는 풍경 속에 못박힌 듯 매료된다는 것이다.. 그녀와 책 사이에 당신이 들어올 틈이 없다는 말이 충분할 정도로....

 

독서라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고 권위를 나타내는 시기를 거쳐 공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 그녀들의 열기가 느껴져 오로지 삶의 목적은 독서라는 것이라는 지나친 비약이 통할정도의 그녀들... 아름다웠다.

무엇엔가 골똘히 집중하는 모습..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모습에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나온다는 말도 이해가 갔다..

그러나 그녀들의 독서의 열기가 너무 뜨겁고 그런 읽기를 통해 남성만의 권위주의에 도전한다는 깨어있음이 두려워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도 모르겠으나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의 여성의 독서의 변화에 대해서 이 제목이 합당한가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이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의 시대는 나눌 수 있겠으나 독서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시대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목으로 따져본다면 예전에는 여성의 독서 자체만으로도 위험했겠으나 요즘엔 너무나 맣은 독서량이 위험에 빠트린다는 말인데 그런 위험성이 여성에만 국한되는건 여성의 독서를 통한 지적 상승외에 여러가지를 의미하지만 여전히 남성의 권위주의가 느껴지는건 왜일까...

그림들만으로는 그런 의미가 약하지만 이런 제목의 틀 속에서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의 독서하는 여성들의 존재는 왠지 그런 이미지가 더 강했다...

 

독서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그녀들이 여성으로써의 의미를 부각시키면서 갖게 되는 더 넓은 세계를 통해 단지 아름답다 위험하다라고 규정하는건 도발적이던 질문의 열기를 삭히기 충분하다.

이런 의미들을 권유하는 것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여성의 독서는 더 큰 세계를 의미한다는 여운이 남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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