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이주 프로젝트 - 생존하라, 그리고 정착하라 테드북스 TED Books 5
스티븐 L. 퍼트라넥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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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완독하고 싶었던 이유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책의 처음에 실려 있는 화성 사진을 보면서도 너무나 먼 행성의 이야기라는 느낌 때문에 조금은 시큰둥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평범한 밤하늘 사진이 실려 있었고 ‘화성의 황혼에 관찰되는 작은 흰빛의 점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다.’ 라는 설명이 있었다. ‘흰빛의 점’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위치까지 설명해주어서 발견한 아주 작은 점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이상하게 마음이 찡하니 아파왔고, 만약 화성에서 내가 그런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굉장히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감상적이었을까? 그럼에도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느낀 감정으로 인해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지구 밖 우주라는 공간을 미지의 세계가 아닌 실현 가능한 세계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하더라도,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나에게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지구의 생명이 결코 오래 이어지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행성에 이주해 살 수 있을 거란 상상은 해본 적이 없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며, 가능하더라도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이 땅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밤하늘의 달을 보면서 그곳에 인간이 발을 디딜 거라곤 상상할 수 없었던 거리감이라면 공감이 갈까? 저자 또한 화성에 인간이 가는 것이 머지않았다고 하면서도 인간이 적응하며 살아가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런 기반을 닦아야 하며 얼마큼의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게 바로 이 책이다.


가장 기본적인 우주에 관한 상식조차 없는 것은 물론이고 화성에 대해 무지한 나에게 화성에서 인간이 살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그런 마음을 간파한듯 저자는 화성 이주에 관한 지식을 다 드러내면서도 어렵지 않게, 일부의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심어주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인류는 단순히 화성을 방문하여 정착지를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화성이라는 행성 전체를 완전히 개량하거나 지구와 같은 환경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이야기다. 동시에 ‘인간이 화성에 자리잡을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검증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화성 탐사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도처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라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와 달의 거리가 약 36만에서 40만 킬로미터라면 화성은 가장 가까웠을 때가 5470만 킬로미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4억 킬로미터라고 하니 좀 가깝게 느껴졌던 화성이 순식간에 미지의 세계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지치지않고 진지하게 화성을 개량해서 인간이 살 수 있는 가능성과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미 화성 이주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는 회사가 있으며 때론 가능할 것 같으면서도 황당하기까지 한 이야기임에도 신뢰가 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 계획이 자극이 되어 이미 여러 나라가 우주여행 및 화성에 기지를 세우겠다는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하니 정말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고 말이다.

저자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 즉, 거주 장소와 엄청난 양의 보급품이 있어야 하며 가장 기본적인 산소 공급과 물, 식량, 의복, 복사열 차단 등 인간이 살아갈 조건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준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화성에 정착하는 일이 머지않았으며, 기반을 닦는 게 우리세대의 의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화성으로 향하는 이유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는 현실적인 지적도 하고 있다. 현재로써는 매우 복잡하고 엄청난 비용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지금도 준비하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으므로 상상조차 못하던 우주와의 교역로가 생기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그 모든 이야기의 뒤에는 지구가 얼마나 살기 편한 곳이며 ‘우리는 인류의 고향인 지구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고 헌신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말하고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이주를 해서 살아야 하는 건지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책을 통해 지구에서 오랫동안 인간이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멀리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생명체에 대한 폭넓은 이해, 삶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이해가 이뤄질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양쪽 다 취할 수는 없을까? 우주를 여행하는 동시에 지구에서도 자연과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는 없을까?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실험을 통해 지구를 더욱 소중히 지키는 방법을 배울 수는 없을까? 식민지를 침략하여 문명을 파괴하고 황폐하게 만들었던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없을까?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대항해시대가 인류 및 인류가 만들어낸 놀라운 문화적 성취를 보존하는 한편, 인간 정수를 이끌어내고 머나먼 미래의 우리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희망찬 시대가 될 수는 없을까? (145쪽)

저자의 바람처럼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성에서 바라본 지구의 작은 점이 슬프지 않게, 멀게 느껴지지 않게, 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다른 세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느껴지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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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6
강상중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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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다시 읽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오래전에 재밌게 읽었지만 뭔가 지치는 느낌도 없지 않아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단 생각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한눈팔기』를 읽게 되었고 주인공의 성격이 짜증이 나서 나쓰메 소세키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단정 지어 버렸다. 그리고 책장에 있는 『도련님』과『그 후』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와 맞지 않는 작가를 나름대로 인정하고 나니 좀 아쉽긴 해도 후련한 감은 있었다. 그리고 그런 판단과 취향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이 책을 읽고 경험했고, 개인적인 취향은 지향하되 경솔한 편견은 씌우지 않고 좀 더 포괄적인 시선을 두기로 다짐했다.


  정치학을 전공한 저자가 나쓰메 소세키와 개인적인 공통점을 계기로 빠져든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나와는 공통점이 없으니 저자만의 애정이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논문과 연구에 대한 자료는 넘쳐나므로 이 책에서 나쓰메 소세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지 궁금했다. 자칫 개인적인 애정으로 넘쳐나지 않을까란 우려가 있었는데, 애정을 기본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과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까지 꼼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제3장으로 나눠서 1장에는『나는 고양이로소이다』2장은『산시로』『그 후』『문』3장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읽은 작품은『나는 고양이로소이다』뿐이라 구경꾼 입장에서 읽지는 않을까란 염려와는 달리 모든 작품 깊숙이 들어간 기분이었다. 1장에서는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를 더듬더듬 기억하면서 저자의 해석을 보며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저자가 강조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다양성을 제대로 체험했다. 내 책장에『그 후』가 있었기 때문에『도련님』을 읽고 바로 읽으려 했으나 저자가 2장에서 소개한 순서대로 읽어보라고 해서 아예 출간 순서대로 읽어보기로 했다. 현암사에서 나온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목표로 다음 책은『풀베개』로 정해놓고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세계를 무사히(?) 지나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왜 나쓰메 소세키 작품들이 짜증나고 나와 맞지 않는다고 결정해 버린 것일까를 계속 생각했다. 먼저는 주인공들의 성격이었는데 똑 부러지지 못하고 주변 환경에 휘둘리는 모습이 답답했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뻔뻔함이(단 두 작품만 읽고 섣부르게 단정 지어 버린 것이다.) 짜증을 가증시켜서 그 외에 것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한 것 같았다. 왜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생뚱맞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작품을 읽을 때 꼭 배경지식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나쓰메 소세키로 경험했으므로, 개인적으로 잘 맞지 않는 작가의(움베르토 에코, 헤르만 헤세, 톨스토이 등) 작품들의 배경지식을 알고 읽어야겠단 다짐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새로운 매력을 알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기대 되는 건 작품 속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려낸 유머다. 익히 알려진 대로 나쓰메 소세키는 영국으로 국비 유학을 떠나게 되고 거기서 경험한 서양문물과 인종차별,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때론 우스꽝스럽게, 때론 날카롭게 작품 속에 녹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양문명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없었기 때문에 때론 부정적이고 비극적으로 그려지는 인물과 현실의 괴리가 피부에 와 닿을 정도였다. 그랬기에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죽음에 대한 충동, 삶의 어려움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겠다는 각오, 자신이 경험한 시대의 혼돈과 자잘한 어려움과 즐거움을 작품으로 녹아내는 열정을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이 마음을 오랫동안 지켜야 할 것이고 실천에 옮기는 수밖에 없다.『도련님』을 읽었으니 이제『풀베개』를 주문해야겠다. 내가 다시 나쓰메 소세키를 읽게 될 줄이야! 이 책이 내게 온 것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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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테드북스 TED Books 1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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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았다. 분명 저자의 성장과정이고 그가 모두 겪은 일인데도 이런 삶이 있을까 싶어 차라리 소설로 믿고 싶어졌다. 책의 제목처럼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랍비를 살해했고 수감 중에 1993년에 일어난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까지 모의했다. 저자가 겨우 일곱 살 때 일어난 일이었고 그런 아버지를 둔 삶은 정상적이지 못했다. 수없이 이사를 다녀야했고 가난에 시달렸으며 온갖 모욕과 추문, 학교 폭력 그리고 새아버지의 폭력까지 견뎌야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저자의 삶은 일그러져 버린 것일까? 부모의 잘못된 종교관에서 비롯된 비극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란 호칭은 따라 붙어 있고 그의 삶은 일곱 살에 상상해보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삶으로 흘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 아닌 테러를 선택한 아버지 때문에 완전히 산산조각 나 버린 가정. 아버지는 그 대가로 감옥에 갇혀 있지만 정작 모든 모욕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남겨진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과 후회는커녕 삐뚤어진 신념만 강해졌다. 아버지의 삶이 평생 감옥에 갇혀 끝나버린 것처럼 저자를 비롯한 남겨진 가족의 삶도 끝나 버린 것 같았다. 그나마 무역센터 테러를 모의하지 않았을 때는 면회도 가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희망을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신념이 바뀌지 않는 한 잠깐의 평화도 유지될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변하지도 않고 곁에 있을 수 없는 아버지 대신 재혼을 했지만 모든 걸 악화시킬 뿐이었다. 새아버지의 폭력을 오랫동안 견뎌야했고 그런 삶을 영위해 간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없이 우울해졌다.


나의 세계를 정의하는 것은 가족과 친구에 대한 사랑,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또한 다음 세대에게 더 잘해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확신, 아버지가 끼친 피해의 일부를 사소하나마 힘닿는 데까지 보상하려는 욕구다. (126~127쪽)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테러 방지와 비폭력 메시지를 전하는 저자의 행동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라면 아버지를 증오하며, 주어진 불우한 환경에 대한 비난을 끊지 못한 채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데 저자는 그 모든 걸 견뎠고 이겨냈으며 이제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그것이 타인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살리는 일이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의 폭풍을 견디고 헤쳐 나가는 모습에 경견해지기까지 한다.


  그 모든 걸 혼자서 할 순 없었다. 자신이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도 변함없이 곁에 있어 준 친구들이 있었고 복잡다단한 의미의 남겨진 가족이 있었다. 혼자라 느껴졌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가능했고 그런 깨달음을 얻자 자신의 고통을 뛰어넘어 타인의 고통까지 관심 갖게 되었고 어루만지게 되었다.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저자의 모습에 잠시나마 내가 가진 편견과 색안경을 내려놓게 되었다. 내 맘대로 꾸려진 나의 내면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오류를 범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시선으로 타인에게 상처가 된다면 나도 정의로운 사람일 수 없다. 내 안의 평화가 유지될 때 세계의 평화를 지키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와 내 주변인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작은 평화를 지켜가는 일. 그것도 나만의 방식이듯이 정당한 행위에 수긍하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더 오래 지켜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게 평화든 정의든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 좀 더 긍정적인 요소가 되는 거라면 무엇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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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김형태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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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림에 관심이 많고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간 내가 만나온 그림에 관한 책들은 제한적이었다. 화가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보여주는 그림이거나 시대의 흐름을 읽으면서 어떠한 작품들이 완성되었는지, 그들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접근을 좋아하고 즐겼지만 다른 분야와 연결해서 예술을 보여주는 책을 만나다 보니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선했다. 예술과 경제라니. 경제에 관해선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내게 이 책은 흥미와 도전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다섯 가지의 주제와 예술의 연결이 처음엔 어색했다. 투시력, 생명력, 중력과 반중력은 자세히는 몰라도 익숙한 단어였지만 재정의력과 원형력은 입에 잘 감기지도 않을 만큼 낯설었다. 그런 주제에 도대체 어떤 예술 작품들이 얽힐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그간 몰랐던 비밀을 알아가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나에게는 생소하지만 이미 익숙한 경제 효과를 그림을 통해 알려주니 모호했던 게 정리 된 기분이 들었다. 이를테면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그림을 그저 신기하게만 바라봤었는데 착시효과처럼 착시경제의 일례를 보면서 경제와의 상관관계가 동떨어진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그리트의 그림에선 안이 밖이고 밖이 안이다. 캔버스에 가려 있는 것, 우리 관습과 익숙함에 가려 있는 바깥의 것을 표현하는 것이 마그리트의 그림이다. (106쪽)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흥미롭고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그간 익숙하게 봐왔던 그림이나 화가에 대한 해석을 간단명료하면서도 쉽게 알려준다는 점이었다. 마그리트의 그림이 초현실주의를 표현한 건 알겠는데 왜 그렇게 마음을 끌어당기는지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는 나의 시선조차도 관습과 익숙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그의 작품이 더 신선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평소에 피카소의 그림을 늘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의 작품의 왜 대단한지(개인의 취향을 떠나 나는 이해 자체를 하지 못했었다)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이 책에서 입체파 화가로 불리는 피카소를 다양한 시각으로 볼 줄 아는 화가로 연결시켜주니 그제야 그의 그림이 평면이 아닌 입체적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경제에 관해 취약한 나로서는 예술로 접근하는 방식을 먼저 보게 된 것이 사실이다. 내가 흥미 있는 부분을 재밌게 읽고 나면 저자가 연결시켜주는 경제 논리에 관한 이야기는 부수적으로 따라왔다. 저자가 설명하는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하지만(경제에 관해 무지한 나에게는 당연할 수밖에) 어떠한 작품과 경제관념을 연결하려는 의도는 알 것 같았다. 예술과 경제는 완전히 동떨어진 분야가 아니고 공통적인 남다른 시각과 통찰력,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그 모든 것이 상당히 닮아 있음을 독자에게 알려주려 한 것이다.

 

내게 경제 용어나 이론들이 생소하듯 이 책에 수록된 예술작품들도 다양했다. 이미 익숙한 작품도 있었고 신기하게 바라보는 작품들과 완전히 낯선 작품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작품에 대한 접근이 진부하지 않았다. 익숙함을 뒤집어 예술로 승화했던 많은 사람들처럼 저자도 그런 시선에 충실하고자 했고 그래서 조금 애매하고 어려울 수 있었던 예술과 경제의 조합이 난해하지 않았다. 책 제목처럼 온전히 예술과 경제에 관해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많은 것과 연결되어 있고 얽혀 있듯이 큰 주제의 곁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끌어낸다. 웬만한 지식과 통찰력이 아니고서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읽는 내내 깨닫고 감탄하기도 했다. 덕분에 1차원으로만 바라보던 예술 작품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보게 되었고 상상력과 존재하는 것을 뒤집을 수 있는 시선도 나름 갖게 된 것 같다. 그러한 통찰력이 내 삶에도 적용된다면 앞으로 내가 살아낼 삶이 더 다채롭고 흥미진진할 것 같다는 상상도 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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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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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먼 나라처럼 느껴지는 중국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다. 늘 안 좋은 뉴스들이 먼저 들려왔고 그런 자극적인 소식들만 접하다 보니 점점 더 알 수 없는 나라로 인식되었다. 중국에 대해 알고 싶은 갈증은 있었지만 워낙 거대한 나라다보니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몰라 늘 아쉬웠다. 우리나라 저자가 중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과 에세이를 읽어 보아도 후련하게 풀어주지 못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러다 위화 작가의 이 책을 읽게 되었고 비로소 중국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열 개의 단어로 중국에 대해 말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단어가 좀 많아 보였다. 그러나 한 단어씩 중국에 대해 풀어갈 때마다 더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일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중국의 근현대를 모두 훑고 온 기분이라 기운을 뺏긴 감도 없진 않았지만 그만큼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좋았다. 중국을 대표하는 위화라는 작가의 삶에 녹아든 중국의 이야기와 작가로서 중국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어우러져 거대한 중국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그런 시대에는 한 개인의 운명을 결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정치 상황의 파도에 따라 흔들렸고 자기 앞길에 행운이 기다리고 있는지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124쪽)

 

저자의 성장과정에서 드러난 당시의 중국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지나치게 주관적인 시선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인민’과 ‘영수’에 대해 말할 때, 저자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문화대혁명)을 견뎌낸 것이 가슴 찡하면서도 우울해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우리 역사에도 그와 같은 시절이 있었지만 역시나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기에 암울할 수밖에 없었다. 말 한마디에 반역자로 몰려 삶을 빼앗길 수도 있었고 책 한권도 맘대로 읽을 수 없는 시절에 과연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저자는 그런 시절의 기억을 세세하게 끄집어냈고 꾹꾹 눌러 기록했다. 당시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회오리치는 정치적 상황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견뎌온 저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고 지난하다 불평할 수조차 없었다.

 

저자가 경험하고 겪어온 시절의 이야기를 모두 공감할 수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단어씩 중국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자 또한 명확한 경계를 긋거나 확실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통해 나 같은 이국의 독자들도 당시의 배경을 그냥 바라보게 했다. 중국 태생이 아니면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영수’와 ‘풀뿌리’ 같은 이야기를 피부에 와 닿게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나라의 한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할 수 없듯이 저자는 단어에 담긴 중국의 모습을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 시각에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작가로 바라 본 시각이 눅진하게 다가와 근거리에서 당시를 바라보는 착각이 일기도 했다.

 

그러한 시선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의 중국의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차이’를 통해 중국이 얼마나 거대하고 불균형한 발전을 이뤄왔는지를 말하고, ‘혁명’에서는 ‘정치권력의 새로운 분배’와 ‘경제권력의 재분배’로 낳은 현재의 중국을 이야기한다. ‘홀유’라는 단어로는 중국을 안 좋은 뜻인 ‘대륙’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던 사회적 현상을 들려주기도 한다.

 

옮긴이는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문인들이 대부분 방관자의 입장인 것에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열 단어로 중국을 충분히 안 것 같기도 하고 부족한 것 같다고 앞서 말했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서 중국을 드러낸 깨어있음이 좋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글을 쓴다는 것에 굉장한 용기와 노력이 뒤 따른다는 사실을 느껴 저자를 경이롭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의 시선이라면 중국을 오해하지도 옹호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고 싶은 작가이고 그의 문학을 섭렵하는 것은 물론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더불어 저자의 시선으로 인해 내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선까지 키워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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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8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반짝 2016-06-29 12:0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3등 겨우 턱걸이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