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중 - 유년동화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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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워서 코가 새빨간 아가가 아장아장 전차 정류장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낑' 하고 안전 지대에 올라섰습니다.  이내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차장은 '땡땡'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또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이 차장도 '땡땡'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 전차가 또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 하고 이번 차장은 내려와서,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 하고 갔습니다.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이태준 글, 김동성 그림이라고 되어있는 이 그림책의 '글' 부분이다.  글로만 보아도 영 마음이 짠해진다.  정말 군더더기 없는 글, 그런데  그렇게 간결하면서도 아가의 모습이 생생하게 잡힌다.  '낑' 하고 안전지대에 올라서는 모습, 갸웃하고 차장에게 묻는 모습,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는 모습... 마지막 차장이 아가를 걱정하여 꼼짝말고 한군데만 서 있으라는 말투도 참 생생하다.  한마디 더 뺄 것도 더 보탤 것도 없는, 아름다운 함축이다.  짧은 글 안에 섬세한 아름다움, 따뜻한 시선, 생생한 사실감들을 살려내는 이태준님의 글힘이 돋보인다.  하나를 덧붙이자면,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서 멀어져버린 '아가'라는 말, 이제는 거의 아기로 대체되어버린 이 말이 주는 옛스러운 정다움도 한몫을 하는 듯하다.   지은이가 아가, 라고 부를 때 그 대상에 대한 애틋한 정다움이 찰랑거린다. 

  이런 글에, 김동성님이 그림을 그렸다.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이라는 그림동화로 우연히 어린이 책 일러스트의 세계로 들어섰다는 김동성님은, 그래서 더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그의 그림을 보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첫 작품부터 정말로 예사롭지 않았다.  그때부터 김동성 그림, 이라고 되어있으면 언제나 주의깊게 보았다.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메아리>, <하늘길> 등에서 언제나 그의 그림은 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글을 보여주는 그림으로써만 아니라, 그림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잘 그린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김동성이라는 화가의 존재에 감사하게 된다.

  이 책, <엄마 마중>에서 그의 그림은 한층 더 깊고 자유롭다.  글만큼이나 그의 그림도 간결해져 있다.  <메아리> 들에서 보던 멋스런 사실화보다 이 글에는 훨씬 더 잘 어울리게끔 선들은 검소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전차 정류장 앞의 모습들이 이런 간결한 선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마치 박수근의  그림을 보는 듯, 나는 수십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정교하고, 군더더기란 하나도 없는데 한없이 풍부하다.  정류장의 풍경은 아마 더도 덜도 없이 그러했을 것이다.  아기를 업은 아낙, 두루막 차림으로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녀, 머리에 짐보따리를 이고는 전차 오기만을 기다리는 여자, 혼자 남자라서인지 외돌아  근엄하게 서 있는 할아버지... 전차가 들어오면 길게 펼친 그림책 한 장에는 그냥 긴 모습 그대로 전차가 가득하다.  광주리를 들고 아이의 손을 잡고 내리고 타는 사람들, 책보따리를 메고 달음질치는 학생들... 기다리며 정류장 표지판 기둥을 잡고는 빙빙 맴을 도는 아가 모습이나 전차가 올 방향을 바라보며 오두마니 앉은 하염없는 모습들에 내 눈이 사로잡힌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제 모습으로 있다.  제 모습으로 모두가 아름답다.  

  한 장씩 건너뛰며 그림은 기다림을 형상화한다.  아가의 기다림은 저 먼 곳에서 땡땡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는 전차로 환상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한 순간은 전차길 앞쪽의 거리 풍경으로 스산하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마치 존 버닝햄이 자주 쓰는 기법, 현실과 마음 속 상상의 세계가 교차되며 나타나는 기법이 연상된다.  존 버닝햄이 너무나 적절히 마음 속 희망의 세계와 건조한 현실을 풍부하고 환상적인 색채그림과 간결하고 어눌한 듯한 선그림으로 교차시켰듯, 이 그림책의 작가도 아가의 현실적인 시간과 어디선가 엄마를 태우고 씽씽 달려오고 있을 전차에 대한 기다림을 교차시킨다.  간결한 선그림과 환상적이고 풍부한 색채의 세계로, 그림책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넘나든다.  당연히, 존 버닝햄의 그림에 비해 김동성의 그림은 훨씬 나에게 정답다.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는 이 즐거운 발견의 느낌은, 보고 또 보아도 여전히 가슴 가득 차오르는 기쁨이다.  정말로, 좋다.

  위에서 일부러 이태준 님의 글을 옮겨 써보았다.  그림이 없는 글은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였다.  그렇게 보고 다시 그림과 함께 보고, 다시 글만 본다.  글에서는 아가가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로 끝이다.  그림은 거기서 안타까운 끝을 맺지 못하고, 좀더 많은 이야기를 잇는다.  하늘색이 깊어지며 눈이 내리고, 온갖 것들이 정지하는 듯한 순간이 온다.  그 속에 아가는 오두마니, 혼자 서 있다. ... 그러다 마지막 장을 펼치면 펑펑 눈내리는 동네, 작은 골목길, 그 골목길을 정답게 걸어가는 엄마와 아가... 아아, 다행이다.  아가의 손에는 빨간 막대사탕이 쥐어져있고 아가와 엄마는 서로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듯, 따뜻하다.  아가 혼자 기다릴 때 안스럽게 차갑던 눈발마저 갑자기 포근해진다.  글이 끝나고 세 장면, 이 부분은 순전히 그림작가의 몫인데, 그이가 보탠 따뜻한 손길이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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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1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연사랑 2005-01-2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 서평인데 그 자체로 한 편의 수필같아요....코만 새빨개서 가만 서 있는 아기, 누구에게나 애잔한 모습이겠지요....저, 이 글 데려갈께요.

sprout 2005-01-2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과분한 것 같은데... 한 편 수필 같다는 말이 참 이쁩니다.(기분이 엄청 뜬다는 말 ^^) 데려가신다니, 갑자기 글에 인격이 부여되는군요. 서연사랑님, 데려가시구요, 이뻐해주세요 ^^

글샘 2005-03-01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림책도 이렇게 예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거군요. 이태준의 글은 군더더기 없기로 유명하지만, 저 이야기는 정말 간결하지요. 그림도 한 번 꼭 보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sprout 2005-03-2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이야기에 대해 말씀해주시니 정말 반갑네요. 말씀대로지요... 그림도 꼭 보세요. 좋아하시리라 믿어요. 좋은 글과 그림이 주는 울림을 느끼게 되는 건 정말 큰 행운이라 생각해요.
 
나무처럼 산처럼 - 이오덕의 자연과 사람 이야기 나무처럼 산처럼 1
이오덕 지음 / 산처럼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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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이오덕 선생님은 항상 저 멀리 계신 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가깝게 계셨던 분이다.  생전에 한번 뵌 적이 없지만 그분을 글로 책으로 접한 이래로 내 마음의 지주가 되셨으니 멀고도 가까운 분이라 할 만하다.  대학 때 <삶과 믿음의 교실>에서 처음 만난 이래 늘 그랬다.  요즘 학교 도서실에서 사서 노릇을 하며, 동화읽는어른 모임을 하며 늘상 선생님의 글을 만나지만 늘 그렇게 한결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글로 사는 사람 중에 선생님 말씀이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과 '글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선생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  글로 살지 않는 내게도 그러하다.

  가끔 딸아이가 책을 읽은 뒤, 학교에서 써내라는 독후감을 앞에 두고는 도대체 뭘 써야 될지  모르겠다고 할 때가 있다.   책 읽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뭐가 중심인지 뭔 얘기로 시작하면 될 지 대체로는 나오는 편이지만, 이도저도 아닐 때는 지은이가 책 속에 쓴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들, 그 부분을 주욱 옮겨 적어보라고 한다.  거기 공감해버렸을 때는, 더이상의 내 말이 사족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럴 때처럼, 이오덕 선생님 책에는 내게 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다.  아니지,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게 맞겠다.  이분은 글에서나 교육현장에서나, 그이를 따르던 그 많은 후학들에게나 게다가 일상에서나, 꼬장꼬장하셨다.  그 꼬장꼬장함이란 게 늙은이의 잔소리 같은 것이 전혀 아니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만물에 대해 "이것 틀렸고 저것 고쳐야한다"고 하시는 말씀, 엉터리 같은 세상에서 용케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보셨을 때 "저것 좀 잘 보라고, 바로 저런 게 좋은 거라"고 하시는 말씀이시다.  얼마나 구구절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한세상을 사셨던지, 선생님을 흠모하고 따르던 그 많은 이들도 그분 앞에서는 주눅들기 일쑤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 세상 일이라는 게 선생님 보시기에 너무 엉터리였기 때문에 칭찬보다는 질타할 게 천지사방에 널려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저것 좀 보라고! 이 좋은 것 좀 제대로 보라고!" 하시는 말씀이 더 많다. 

  그렇게, 이 책 <나무처럼 산처럼>은 님의 책 중에서는 아주 편안한 책이다. 

  "지구에는 산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지만, 나는 지구에는 나무가 있어서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하느님이 만드신 만물 가운데 나무만큼 아름답고 착하고 성스럽기까지 한 목숨이 또 있겠는가?"

  내 생각도 그러하다.

  "모든 나무들이 다 제자리가 있어 제 할 일을 하면서 빛을 뿌린다.  하지만 누가 있어 나에게 꼭 어느 나무 한 가지만 골라서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감나무를 들겠다."

  내 생각도, 그러하다.  나는 서슴지 않고 감나무를 들겠다.  그런 터이라, 이 책에서 삼분의 일을 차지하는 감나무 이야기가 너무나 반가왔다.  내 속에 있던 생각들이 겹쳐지며 선생님의 글로 나타나거나, 내 안에 미처 들지 못했던 생각들이 선생님 이야기 속에서 흘러나올 때 그 세세한 관심, 깊은 사유에 절로 내 마음은 활짝 열렸다.  마치 내가 한 그루 감나무가 되어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 고개를 끄덕끄덕 하다가, 어떨 때는 귓전으로 흘려들으며 "뭐, 그런 걸 일일이 말로 하나--"하는 마음이 되고, 간혹은 "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라며 고개 갸웃이 듣고 있기도 하고 ^^  . 

  친구들이 내가 하도 감나무를 좋아하고 꽃이나 잎이나, 열매나 그 품새 들에 대해 지침 없이  이야기하고 사진 찍고   보여주고 하니까, 아니 감나무를 앞에 두면 그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반가와 하니까 내게 붙여준 별명이 '전생에 감나무'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꽃은 감꽃이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열매는 어쨌든 감이다(감이다, 라고만 말하면 하늘에 걸려 있는 달을 보고 달이다, 라고 말해버리고 마는 것과 같이 한없이 아쉽다).  물들어 떨어진 감잎의 색을 보고 감탄하며 그 두꺼운 큰잎을 책갈피마다 집어넣고는 혼자만 도저히 볼 수 없어서 아무에게라도 보여주고 이야기하던 생각이 난다.  선생님도 지금 그 감동을 어쩌지 못해 그렇게 구구절절 늘어놓으시는 것이다.  아, 나는 감나무 이야기를 들으며 생전의 선생님과 감나무 이야기를 함께 나누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물론 선생님이야 우리 교육과 어린이문학에 해와 같은 분이니 내가 어찌 나눌 만한 이야기가 달리 있으랴마는, 단지 내가 그리 감나무를 좋아하니 그 이야기라면  구구절절 나누며 밤을 샜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세상에 감나무를 그리 좋아하는 이를 만났으니 이리 반가운 일이 어디있겠나, 하면서.  언젠가 나도 <감나무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나의 감나무 이야기를.

  이 책에서 감나무 때문에 하도 반가운지라 다른 이야기들은 다시 책을 들춰야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주변의 온갖 것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냇가의 돌들, 참꽃, 구름, 보리매미 소리, 꾀꼬리 소리,개 이야기, 감자 이야기 들...  새겨듣지 않아도 절로 마음에 들어오는 이야기들이다.  평소의 생각을 총정리해 쓴 글들이 아니라 사유의 편린들이 가끔 거칠거나 모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책 한 권에 그 여러 조각들이 하나의 큰 무늬를 이루어 큰 아쉬움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편안했다.  선생님의 다른 책들에서처럼 결심이 서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나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종종 결심을 세웠다).  말년의 책이어서 그럴까....

  책을 내면서 말미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앞으로 내가 할 말은 다만 죽어가는 자연을 증언하는 것이다.  내가 부를 노래는 아직도 살아남은 내 모든 형제들에 대한 슬픈 찬미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러하다.

 

  책의 모양새에 대해서라면, 출판사의 몫인가 싶지만 책 안 사진들이 선명하지 못해 좀 답답하다.  1부의 제목은, 1부 전체의 표제로 붙이기에는 낯설다.  그런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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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 하늘에서 본 지구 366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지음, 정영문.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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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가 <reflections on our earth>다.  이 책을 열어보면 정말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제목은 <발견, 하늘에서 본 지구 366>인데, 그것도 그렇다.  이 책을 통해 이 지구는, 우리에게 "발견"된다.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훌쩍 올라간 곳에서, 조금 더 거시적으로 조금 더 관조적으로, 그래서 더 아름답게 더 안타깝게 발견된다.  지금 너무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은 그 아름다움 만큼이나 안타까움을 안에 품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하는 깨달음에서 '이런 것이 이제 사라질 수도 있단 말인가', 하는 안타까움으로 온다.  그렇게 안타까움으로 발전하게 하는 인식의 첫 단계, <발견>이라는 제목이 그래서 와 닿는다.  지은이의 뜻이 담긴 원제 <reflection>도 반성의 뜻을 담은 반영으로 읽힌다.  지은이는 우리에게 보라고, 발견하라고 한다.  지은이가 먼저 발견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지속 가능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우리가 잃고 있는 이 대자연, 문명, 그 속에 얽힌 사람들의 삶이 그 선명함으로 하여 비장하기까지 하다.

 연전 웹 상에서 여러 경로로 베르트랑의 사진들을 본 적이 있다.  네덜란드의 광대한 튤립밭을 하늘에서 본 모습은, 경이롭고 충격적이었다.  그 색과 선으로 깊이 각인된 그 사진은, 그야말로 내게 "발견"의 느낌을 남겼다.  그 사진을 비롯한 다른 많은 사진들을 보면서 이런 작업의 의미에 생각이 미쳤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내게, 그 사진찍기가 내게는 하나의 발견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대상을 주목하고, 응시한다.  흘려보내지 않고 집중한다.  거기 있는 그것을, 그대로의 그것을 본다.  거기서 놀랍게도, 사랑이 싹튼다.  내가 보고 있는 그 장면, 내가 고정시켜버린 그 장면을 나는 마음에 담는다. 사진찍는 일은, 때로 내게 그러하다.   희한하게도 사랑이 싹튼다.  정확한 말인지 알 수가 없는데... 달리 어떻게 말할지를 모르겠다.  베르트랑의 작업이 전문적이고 기술적이고 광범위하다는 것이 다르고, 사랑과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는 것이 같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의 사진집에서 그것을 본다.

  이 사진집은 격조 높다.  사진들에서 그는 통찰력있는 사유를 펼친다.  아무 날, 아무 곳을 펼쳐도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에게서 사유를 이끌어 낼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얼마 전 한국에 와서 전시회를 하였고, 한국의 하늘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하니, 한국이 곧 <reflection> 되는 날을 기다린다.  내가 사는 이 곳이 발견되는 순간의 그 느낌에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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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out 2005-01-18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쑥스럽지만... 기분이 좋아집니다. 예리하시군요! ^^ 한 일년 마음과 글이 겉돌다가 요즘 다시 책 읽기와 글쓰기에 마음이 들어갑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더 높이 더 빨리 - 비행기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그림책
이현주 그림, 조현권 글 / 길벗어린이(천둥거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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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가 플라이어 1호로 처음 동력비행에 성공하여, 인류에게 비행기의 역사를 열었다. 

  2003년 12월 17일, 비행기의 100번 째 생일을 축하하는 어린이 그림책, <더 높이 더 빨리>의 초판 1쇄가 돌베개어린이에서 출판되었다.  무심코 출판일을 들추어 보았더니, 진짜로 그렇게 되어있었다.  비행기의 생일을 맞아 비행기에게도 어린이에게도 의미있는 선물을 하고싶었던 출판사의 계획은, 성공적이다.  아주 멋진 한 권의 그림책을 보고 새의 비행, 라이트 형제와 오토 릴리엔탈과 같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하늘을 쳐다보면, 새들은 난다.  자유롭게 난다.  얼마나 오랜 옛날부터 사람은 새처럼 날고 싶었던가? 새처럼 가볍지도 않고, 새처럼 힘차게 날갯짓을 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날고 싶은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 꿈은 사람을 결국 공중으로 띄워 올린다.  열기구로, 비행선으로, 글라이더로, 그리고 비행기로.  막연하게,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하늘 위를 떠다니던 날것들이 그림책 안에서 정연한 흐름으로 질서를 잡는다. 

  열기구는 어떻게 하늘로 뜨는 것인지?  누가, 어떤 열기구로 얼마나 오래 떠 있을 수 있었는지?  열기구로는 어떤 점이 불가능했는지?  그리고는 비행선이다.  다시, 비행선은 어떻게 뜨고 어떻게 나아가는지?  떠다니는 비행선 말고 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거기서 양력이 나온다.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도 하늘로 들어올릴 수 있는 힘, 새들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다.  그렇게 글라이더가 나타나고, 2000번이 넘는 실험으로 비행기 발전에 크게 기여한 오토 릴리엔탈의 새 날개 연구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어서 더 오랫동안 날기 위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날아오를 수 있기 위해 연구한 라이트 형제, 글라이더에 엔진과 프로펠러를 달아 새처럼 제 힘으로 날 수 있는 비행기가 등장한다.  라이트 형제의 설계도, 플라이어 1호, 직접 만든 비행기 엔진 등, 보고 싶던 많은 중요한 것들이 빠짐없이 배치되어있다.  서로서로 어울리며, 조화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들에 대해 어린이가 알고 싶은 이야기는 거의 다 정리되어 있지 않나 싶을만큼, 세심하게 기분좋을만큼 질서있게 배치되어있다. 

  1783년 11월 21일, 처음으로 사람을 태우고 비행에 성공한 몽골피에 기구로부터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에서 한 때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술렁거리게 했던 모든 중요한 날 것들이 정교한 그림으로 등장해서 눈이 즐겁다.  사진을 이용해서 꼼꼼하게 일러스트 작업을 한 듯한 그림들은 사실적이면서도 사람의 손맛이 느껴져서 아름답다.  지금 쓰이고 있는 다양한 비행기들을 보여주며 책은 비행기에 대한 헌사를 마무리하는데, 책의 영향에 힘입어서인지 책에 등장했던 모든 기구, 비행선, 글라이더, 비행기 들이 "꿈"의 결정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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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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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갈피마다 터져나오는 안타까움, 참지 못하는 울음, 동참을 호소하는 말들...

  김혜자님이 이 책을 쓴 이유를 생각하면 무조건 마음으로 동의하게 된다.  내게 손이 두 개가 있는 이유를, 그이가 말하는 방식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한 손은 내 자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   다른 사람을 위해 벌릴 그 나머지 한 손을 아직 접고 있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위해 김혜자님은 이 책을 썼다.

  모두들 알고는 있다.  TV를 통해, 신문을 통해 언제나 전쟁, 난민들의 이야기,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편안히 거실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그 표정없는 얼굴, 지친 모습들을 무심코 본다.  가끔은 비통한 마음이 되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뿐, 내 손 하나는 그들을 위해 벌리지 않는다.  지구 위 어딘가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그들의 마음이 되어보기를 거부한다.  지붕이 있고, 몸에는 입을 것을 걸쳤고,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있는 75%에 들었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이 책이 그런 내 행위를, 그런 범죄적인 무신경을 질타하고 있다.  안타까운 목소리로, "당신의 나머지 한 손을 내밀어주세요.... 당신의 손에 수많은 생명이 달려있다고 해도 그 손을 닫고만 있을건가요..?"

  혜자님의 뜨겁고 아픈 호소, 온몸을 바치는 그이의 행동,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노력들에 무딘 마음도 움직인다.  우리 식구 모두, 지구 위 어딘가에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위해 조금씩 자신의 것을 내기로 했다.  우리야 그정도로 마음을 내는 것 뿐이고, 온몸 온마음으로 나선 김혜자님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별이 되어야하니 내내 건강하기를 빌어본다.

  교육사상가인 파울로 프레이리의 말을 인용했다는 제목, 지은이가 더 이상의 제목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맞는다고 생각했다는 제목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는 내게는 썩 이 책의 호소와는 맞닿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참교육학부모회에서 학교 체벌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내건 슬로건과 같아서인지.... 직설적으로는 교육 현장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의 마음에는 더도 덜도 없이 적합하다고 생각이 되었다니까....  조금 더 넓은 뜻으로, 상징적으로 받아들여본다.  책 안에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김혜자님이 아이들과 함께 한 고통과 안타까움의 현장, 사랑의 현장이 많이 담겨있는데, 표지에는 탤런트 김혜자님이 활짝 웃는 얼굴로 연기자다운 모습으로 있다.  출판사에서도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지금의 표지보다는 책의 내용과 함께 있던, 현장에 있는 김혜자님의 사진을 표지로 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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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1-15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좀 가식적이긴 하지요? 그건 요즘 판매술이라 치더라도, 마음 찡한 책이었지요. 잘 읽고 마음이 조금 더 착해져서 갑니다. ^^ 좋은 주말 보내세요.

sprout 2005-01-16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저도 그 책 읽고 마음이 조금 더 착해진 것 같네요. 덕분에 좋은 주말 보내고 있답니다! ^^

cheonks 2005-01-17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게 닫혀진 마음들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직도 난 한 쪽 손이 그대로 있는걸...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