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산처럼 - 이오덕의 자연과 사람 이야기 나무처럼 산처럼 1
이오덕 지음 / 산처럼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내게 이오덕 선생님은 항상 저 멀리 계신 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가깝게 계셨던 분이다.  생전에 한번 뵌 적이 없지만 그분을 글로 책으로 접한 이래로 내 마음의 지주가 되셨으니 멀고도 가까운 분이라 할 만하다.  대학 때 <삶과 믿음의 교실>에서 처음 만난 이래 늘 그랬다.  요즘 학교 도서실에서 사서 노릇을 하며, 동화읽는어른 모임을 하며 늘상 선생님의 글을 만나지만 늘 그렇게 한결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글로 사는 사람 중에 선생님 말씀이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과 '글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선생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  글로 살지 않는 내게도 그러하다.

  가끔 딸아이가 책을 읽은 뒤, 학교에서 써내라는 독후감을 앞에 두고는 도대체 뭘 써야 될지  모르겠다고 할 때가 있다.   책 읽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뭐가 중심인지 뭔 얘기로 시작하면 될 지 대체로는 나오는 편이지만, 이도저도 아닐 때는 지은이가 책 속에 쓴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들, 그 부분을 주욱 옮겨 적어보라고 한다.  거기 공감해버렸을 때는, 더이상의 내 말이 사족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럴 때처럼, 이오덕 선생님 책에는 내게 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다.  아니지,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게 맞겠다.  이분은 글에서나 교육현장에서나, 그이를 따르던 그 많은 후학들에게나 게다가 일상에서나, 꼬장꼬장하셨다.  그 꼬장꼬장함이란 게 늙은이의 잔소리 같은 것이 전혀 아니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만물에 대해 "이것 틀렸고 저것 고쳐야한다"고 하시는 말씀, 엉터리 같은 세상에서 용케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보셨을 때 "저것 좀 잘 보라고, 바로 저런 게 좋은 거라"고 하시는 말씀이시다.  얼마나 구구절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한세상을 사셨던지, 선생님을 흠모하고 따르던 그 많은 이들도 그분 앞에서는 주눅들기 일쑤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 세상 일이라는 게 선생님 보시기에 너무 엉터리였기 때문에 칭찬보다는 질타할 게 천지사방에 널려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저것 좀 보라고! 이 좋은 것 좀 제대로 보라고!" 하시는 말씀이 더 많다. 

  그렇게, 이 책 <나무처럼 산처럼>은 님의 책 중에서는 아주 편안한 책이다. 

  "지구에는 산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지만, 나는 지구에는 나무가 있어서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하느님이 만드신 만물 가운데 나무만큼 아름답고 착하고 성스럽기까지 한 목숨이 또 있겠는가?"

  내 생각도 그러하다.

  "모든 나무들이 다 제자리가 있어 제 할 일을 하면서 빛을 뿌린다.  하지만 누가 있어 나에게 꼭 어느 나무 한 가지만 골라서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감나무를 들겠다."

  내 생각도, 그러하다.  나는 서슴지 않고 감나무를 들겠다.  그런 터이라, 이 책에서 삼분의 일을 차지하는 감나무 이야기가 너무나 반가왔다.  내 속에 있던 생각들이 겹쳐지며 선생님의 글로 나타나거나, 내 안에 미처 들지 못했던 생각들이 선생님 이야기 속에서 흘러나올 때 그 세세한 관심, 깊은 사유에 절로 내 마음은 활짝 열렸다.  마치 내가 한 그루 감나무가 되어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 고개를 끄덕끄덕 하다가, 어떨 때는 귓전으로 흘려들으며 "뭐, 그런 걸 일일이 말로 하나--"하는 마음이 되고, 간혹은 "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라며 고개 갸웃이 듣고 있기도 하고 ^^  . 

  친구들이 내가 하도 감나무를 좋아하고 꽃이나 잎이나, 열매나 그 품새 들에 대해 지침 없이  이야기하고 사진 찍고   보여주고 하니까, 아니 감나무를 앞에 두면 그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반가와 하니까 내게 붙여준 별명이 '전생에 감나무'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꽃은 감꽃이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열매는 어쨌든 감이다(감이다, 라고만 말하면 하늘에 걸려 있는 달을 보고 달이다, 라고 말해버리고 마는 것과 같이 한없이 아쉽다).  물들어 떨어진 감잎의 색을 보고 감탄하며 그 두꺼운 큰잎을 책갈피마다 집어넣고는 혼자만 도저히 볼 수 없어서 아무에게라도 보여주고 이야기하던 생각이 난다.  선생님도 지금 그 감동을 어쩌지 못해 그렇게 구구절절 늘어놓으시는 것이다.  아, 나는 감나무 이야기를 들으며 생전의 선생님과 감나무 이야기를 함께 나누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물론 선생님이야 우리 교육과 어린이문학에 해와 같은 분이니 내가 어찌 나눌 만한 이야기가 달리 있으랴마는, 단지 내가 그리 감나무를 좋아하니 그 이야기라면  구구절절 나누며 밤을 샜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세상에 감나무를 그리 좋아하는 이를 만났으니 이리 반가운 일이 어디있겠나, 하면서.  언젠가 나도 <감나무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나의 감나무 이야기를.

  이 책에서 감나무 때문에 하도 반가운지라 다른 이야기들은 다시 책을 들춰야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주변의 온갖 것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냇가의 돌들, 참꽃, 구름, 보리매미 소리, 꾀꼬리 소리,개 이야기, 감자 이야기 들...  새겨듣지 않아도 절로 마음에 들어오는 이야기들이다.  평소의 생각을 총정리해 쓴 글들이 아니라 사유의 편린들이 가끔 거칠거나 모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책 한 권에 그 여러 조각들이 하나의 큰 무늬를 이루어 큰 아쉬움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편안했다.  선생님의 다른 책들에서처럼 결심이 서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나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종종 결심을 세웠다).  말년의 책이어서 그럴까....

  책을 내면서 말미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앞으로 내가 할 말은 다만 죽어가는 자연을 증언하는 것이다.  내가 부를 노래는 아직도 살아남은 내 모든 형제들에 대한 슬픈 찬미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러하다.

 

  책의 모양새에 대해서라면, 출판사의 몫인가 싶지만 책 안 사진들이 선명하지 못해 좀 답답하다.  1부의 제목은, 1부 전체의 표제로 붙이기에는 낯설다.  그런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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