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슈베르트를 좋아한다.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를 어릴 때 아주 좋아해서 귀에 폰을 꼽은 채로 걸어다녔다.  막 스물이던 처녀가 지금과 같은 계절, 노랗고 흰 꽃들이 풀풀 날리는 햇살 가득한 교정에는 귀를 닫고, 스스로 택하여 소통했던 것이 죽음과 소녀였다니.  지금 생각하니 막연히 이상하다.  그런데 끌렸다.  그 중에서도 2악장에는, 홀렸다 해야 할까...

학교 다닐 때 몇 안 되던 클래식 음악감상실에서 알게 된 노래들 중에서 제일 삘이 꽂힌 노래가 슈베르트의 가곡 <바위위의 목동>이다.  처음 들었을 때, 누구의,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고 듣는데 숨이 막힐만큼, 아름다왔다.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내게 그 노래는 그렇다.  나는, 길가다 멈춘 사람마냥 노래의 세계로 들어가버린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작은 기타곡 <밤과 꿈>을 로드리고의 기타곡보다 더 좋아해서 스스로도 곰곰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슈베르트에 끌린다...  왜일까?" 

... 그러고보니 나는 <약흥의 순간>을, 두근거림, 설레임과 같은 느낌으로 듣는다.  내 차에서. 

또, 또 있다.  한때 내가 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말이다. 

몇해전부터 같은 가곡집에 있는 <물 위에서 노래함>을 보탰다. 

 

교학곡 8번 <미완성>,  피아노 5중주곡 <송어>, 가곡집 <겨울나그네>, <즉흥곡집> 정도가 익숙하고 다른 교향곡이나 가곡집을 사서 들어본 적은 없다.   <마왕>을 다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한동안 칼라스의 목소리로 오페라 아리아들을 들었다.  모짜르트의 돈 지오반니, 피가로의 결혼이나 코지 판 투테에 나오는 소프라노를 듣고 있으면, 곧 천상의 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귀하고 황홀한 소리는 나를 잠시동안 그 높은 세계에 있게 하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사역 중인 죄수들을 잠시 천상으로 인도했던 그 고귀한 아름다움.  모짜르트의 세계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슈베르트는...

고독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적막, 고독, 죽음, 아픔.  쓸쓸함과, 쏟아지는 햇살이 아닌 한줄기 빛과 같은 겸허한 환희.  어디에도 터질듯한 기쁨과 아름다움이라곤 없다.  그토록 유명한 가곡 <보리수>를 들을 때, 노래의 가락을 따라가기보다 피아노 반주에 마음을 빼앗겨본 사람들은 알리라.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그 쓸쓸함, 쏟아지는 쓸쓸함을. 

내게 모짜르트는 <천상의 고귀함>이고 슈베르트는 <인간의 슬쓸함>이 되었다.  모짜르트에 홀리고, 슈베르트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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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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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여러가지로 좋았다.  책을 보기 전에 이미 이 책을 소개하는 여러 글줄을 읽었기때문에, 이 책에서 여행지 소개같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집을 팔아 여행 경비를 마련했고, 마흔을 넘어서는 고개에서 어떤 '마음' 때문에  혼자서 낯선 곳으로 여행을 했고, 작은 제목들이 '베니스'  '노트르담'  들과 같은 것이 아닌 것은 물론, '무의식'  '분노'  '의존'  '동일시'  와 같은 것들이니, 김형경의 생각을 잠시 따라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십대 중반부터 정신분석과 심리학 책을 읽어온 마음, 생의 한 시기에 정신분석을 받았던 마음, 그 뒤끝에 여행을 떠났던 마음들이 이 책을 계기로 일단락지어진 듯하다, 고 김형경은 말했다.

  책 뒤쪽 추천사를 쓴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의 말마따나, 이 책은 기품있다.  그이의 말에 의하면, "문학적 향기가 나는 정신분석서"란다.  정신분석서로서 유용하되, 작가의 기품이 서려 향기롭고도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 명명에 공감한다.

  책을 읽으면서 우선 아픈 김형경( 혹은 아팠던 김형경)이 먼저 보였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것은 불쑥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아픈 김형경을 바라보고 있는 김형경이 보였다.  그이는, 이제 아픈 이가 아니라 아팠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가 되어 이글을 쓴다.  아마도 여행, 여행지라는 시간과 공간은, 자잘한 일상에서보다 그 돌아보기를 더 선명하게 만드는지...  작가는 여행지에서 돌아와 한 시기를 일단락짓는다.  그이의 여행을 바라보는 것,  그 안에 있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 나의 몫이다.

  혼자 여행을 하리라, 다짐해본다.  '언젠가.' 

  책 282쪽, 혼자 여행하는 이들을 생각하는 부분에서 깊이 공감한다.  그 향기로운 표현을 흠뻑 들이마시고, 취한다.   

"

또한 혼자 여행하는 이들은 바삐 이동하기보다는 한자리에 가만히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니, 한자리에 조용히 오래 머무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혼자 여행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박물관 계단이나 유적지 그늘에, 공원 벤치나 길가 풀숲에, 어디든 마음 내키는 곳에 머무르곤 했다.  그런 때 그들은 의식과 감각의 어느 지점에 샛길이 열리고, 그 샛길을 따라 한없이 걸어 들어가 세상을 잊은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

  그 샛길을 따라 한없이 걸어들어가, 그 한 지점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본다.  언젠가의 나였고, 그 어느 시기의 나일지도 모르고, 지금의 나이기도 한 그 사람.  혼자 여행하는 모든 이들은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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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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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나오는 우화는 바로 일상적 삶에 있어서 변화와 창조적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해준다.  변화의 의지를 갖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자는 항상 모험의 즐거움과 적응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이 책을 추천한 글 중의 하나다.  ??  정말 그런가?  이런 책이?  2000년에 나와서 지금도 꾸준히 읽힐 뿐만 아니라, 여전히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한다.  나는, 그냥, 어리둥절할 뿐이다.  내게 이 책은, 회사 사보 같은 데 나오는,  매출 신장을 위해 늘상 권장하는 자기 암시 같은 것을 담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들으나마나한 이야기로 들렸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그래,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다짐하게 만든다는책, 인생의 지혜를 설파한다는 책이라고 하니 역시나 그냥 어리둥절할 뿐이다.  어떤 상징도 어떤 은유도 없이,이럴 때일수록 이렇게 하지말고 저렇게 하라는 그 이야기가 대체 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일까.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럭저럭 평범한 책읽기를 한다고 생각해왔던 내게는 영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생쥐 두마리, 성향이 다른 꼬마인간 둘.  아쉬울 것 없던 조건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다들 조금씩 다른 반응을 보인다.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인 인생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이야기... 라고 내게는 보인다.  정말 옆집 아줌마도 자기 아이를 앞에 놓고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을만한 비유가 아닌가?  너무나 직설적이고 도식적이고 작위적이어서, 어떤 교훈도 내게로 오지 않는다.  게다가 동창생들이 오랜만에 만나 옛날과 지금의 자신들을 비교하며 살아온 태도에서 교훈을 찾아내는 이야기라니...  딱 사보 아니면 사원대상 소규모 강연 감이 아닌가.  성공 신화를 만드는데 유용한 이야기라고?  ... 그 속에 어떤 위대한 진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진실이 걸치고 있는 옷이 너무나 양아치적이어서 (잠시 양아치에게 미안하다) , 어쩌다 이 책이 내 손에 떨어졌는지 원망스럽다.  이런 책이 있다는 건 가능하지만, 베스트셀러가 되고 스테디셀러가 된다는 사실은,,, 속절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말 특이한 경우인데, 이토록 '많은 독서인'들과 내가 다르게 느낀다고 생각한 책은 정말 처음이다.  그걸 깨달으니까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뭔가, 그 진흙 속에 진주가 박혀있었던 것일까?  내가 못 찾은, 혹은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던...    그러나, 그래도 정말 이런 책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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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2005-04-10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선물받아서 읽었는데 교훈적인 이야기로 생각이나네요..

sprout 2005-04-12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 어떤 분이신가요? 멘트가 짧아서 궁금해집니다. 바로 그, 아무 맛도 없이 교훈을 주려고 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까지 된다니 속절없어졌답니다. 알고보면 제가 교훈적인 걸 워낙 싫어하는 것 같기도... ^^

비로그인 2005-07-06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prout 님 말씀데로 이책은 너무나 직설적이고 도식적이고 작위적이어서 그래서 교훈을 줬다고 하면 이해가 가실까요? 인기있는 경영서나 성공론들보면 감히 자신하고는 멀게느껴지는게 대부분 입니다. 처음에 나도 이렇게 하고 싶어서 그 책을 잡다가 나는 이렇게 못할것 같다는 역시 성공은 아무나하는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게 되지요. 하지만 님 말씀데로 여기는 생쥐두마리와 두 아이만 나옵니다. 그리고 직설적입니다. 쥐새끼정도라면 따라할 수 있을것 같지요? 저도 이 책이 도움이 되서 회사를 박차고 나왔고 결과에 만족합니다. 왜 이책이 인기 있는지 아시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셨길~^^ 그리고 어린이 책을 많이 보시던데 거기서도 왕자나 공주이야기 보다 버려진 아이 작은 동물들이 어린이에게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도 하잖아요^^
 
떡갈나무 바라보기 - 동물들의 눈으로 본 세상 사계절 1318 교양문고 6
주디스 콜. 허버트 콜 지음, 후박나무 옮김, 최재천 감수 / 사계절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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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읽고 이글을 보는 이는 아직 안 읽은 책을 소개할 때, 종종 애를 먹는다.  지은이의 글을 읽고 거기에 수긍하고 공감하게 될 때, 지은이의 이야기 그 자체가  가장 정확한 전달이 되기 때문에 내가 할 말이 없어진다.  단지 나는, 수없이 지은이의 의견에 공감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배운다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느낌을 쓰자니 그런 말들밖에 나오지 않는다.  읽으며 여러 번 새롭고 경이로운 느낌 앞에 서 있는 듯 하였다.

  지은이에게 이 책을 쓰게끔 영감을 주었다는 야곱 폰 웩스쿨의 수필의 여러 부분이 이 책 안에 그대로 인용되어있다.  어쩌면 지은이 또한 야곱 폰 웩스쿨의 글에 더 덧붙이거나 뺄 수 없을만큼 완벽한 공감을 겪었을 지 모르는 일이다.  다른 존재, 생태계를 이루는 나 아닌 다른 존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나, 타자, 그것들이 속한 환경 모두를 이해하는데 유일하게 가능한 한 방식이 아닐까.  어떤 다른 존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 그의 영역, 즉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경험이 아니라 개개의 동물에게 특별한 유기적인 경험을 나타내는 '움벨트'라는 말이 있다.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책 <동물과 인간 세계로의 산책>이라는 책을 쓴 생리학자 야곱 폰 웩스쿨이 만들어 낸 말이라고 한다.  기존의 용어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개개의 동물이 인식하고 경험하는 주변의 생물 세계'를 나타내기 위해 태어난 말이다.  이 말이 이 책의 열쇠말이다.

  "

암컷 진드기가 개간한 숲에 있는 한 나무의 가지 끝에 꼼짝 않고 매달려 있다.  자세를 보아하니 지나가는 포유동물 위로 떨어질 태세였다.  포유동물이 지나갈 때까지는 환경 속의 어떠한 자극도 암컷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알을 낳기 전의 암컷에게는 포유동물의 따스한 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진드기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 아래로 운 좋게 포유동물이 지나가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숲에 잠복해 있는 수많은 진드기들은 이러한 상황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한다.  때문에 자기가 있는 쪽으로 먹이가 다가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암컷은 오랫동안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어야만 한다.  로스토크의 동물연구소에는 18년동안 굶주린 진드기가 아직도 살고 있다.  자그마치 18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세월이다.  (......)

18년동안 전혀 변하지 않는 세상을 견디는 능력은 가능성이라는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는 동안 여러 시간을 차단당하는 것처럼, 암컷 진드기도 기다리는 동안 수면에 가까운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진드기의 세계에서, 시간은 여러 시간 동안 멈춰 있다기보다 한 번에 수년 동안 정지해 있는 것이다.  부티르산(acid)의 징후가 암컷을 깨워 다시 활동하게 하고 나서야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

  여기까지가 야곱 폰 웩스쿨의 말이다.

  그 뒤로 이 책을 지은 이의 친절한 해설이 이어진다.  우리 인간이 정한 24시간, 한 달, 일년이라는 개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진드기의 시간에 대해서.  이것과 비슷한 수많은 예들을 보여주면서, 지은이는 우리를 다른 생물의, 혹은 타자의 공간, 시간, 기질의 입장으로 들어가보기를 권한다.  그것은 경이롭게 활짝 열리는 세계가 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면서.  그 암시를 기분 좋게, 또한 경이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인 것이다. 

  덧붙여, 책 어디를 뒤져보아도 정보가 없는, 이 책 안에 있는 '그림들'은 더할나위없이 훌륭하다.  이 책을 엮은 이들은 이 그림들에 대한 소개와 찬사를 마땅히 이 책 어딘가에 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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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4
이주홍 글, 김동성 그림 / 길벗어린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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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홍의 <메아리> 는 어릴 때 처음 읽었을 때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읽으나, 참 좋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읽히고 있지만, 이만한 이야기가 어디 흔한가.  내가 속한 이 땅에서, 누구에게나 힘들었던 어느 한 시기, 특별히 외로운 삶을 이어갔던 어느 한 곳의 이야기가 마치 기억 속 내 먼먼 친척의 이야기처럼 아련해서, 인물들의 외로움이나 기쁨들이 내게도 전해온다.

  깊은 산중, 그 중에서도 더 깊은 산중, 외딴집.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고  그끄저께 누나는  시집을 갔다.   돌이와 아버지, 누렁 암소 한 마리가 온 식구다.  그리고는 만날 보는 하늘, 만날 보는 산, 만날 보는 짐승들...  그리고 단하나, 사람의 말소리로 대해 주는 동무인 메아리.  이렇게 살아가는 돌이에게 아마도 누나는 누이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이고 동무였을 것이다.  그런 누이를 아버지는 설명 한자락 없이 훌쩍 보내버리고, 돌이는 그런 누나가 보고 싶어 죽을 것만 같다.  혼자 누이의 베개를 끌어안고 울고울고 하다가 누나를 찾아 재를 넘는다... 돌이는 밤이 되도록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아버지는 그런 돌이를 찾아 밤새 애타게 외친다.  마침내 아버지의 등에 업혀 돌아온 집에는, 그새 반가운 소식이 있다.  누렁 암소가 송아지를 낳아 돌이에게 동생이 생긴 것이다.  누나를 잃은  그 빈자리를 메워준 새끼 소 한 마리가 어찌나 반가운지, 돌이는 산마루로 올라가 메아리에게 자랑을 한다.  누나에게도 이제 자기는 괜찮다고, 동무가 있으니 걱정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지금 크는 내 아이들도 이 책을 읽는다.  어디 이런 사람들이 있나 싶겠지만, 어쩌면 마치 다른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야기 전체에 짙게 밴 외로움의 정서가, 겉모습은 다르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낯설지는 않아서인지....  가만가만 생각하며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외로움은 낯설지 않다.  그래서 <메아리>는 우리 안에서 공명한다.

  그 이야기에 김동성이 그림을 그렸다.  이주홍의 <메아리>에 더할나위없이 걸맞다.  친근한 색감의 수묵화가 무척 잘 어울린다.  책을 펼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림 속 산과 외딴 집, 몇 안되는사람들의 모습이 하도 보기 좋아서 아이와 나는 그림만을 먼저 감상하며 한 번을 다 보고, 다시 돌아가 글을 넣어 읽으며 보았다.  펼치면 시원하게 커지는 그림들 하나하나에 눈길이 간다.  시집갈 새옷을 입고 약간 슬픈 모습으로 목을 늘이고 앉은 누나, 누나의  머리에 비녀로 쪽을 찌어주는 아버지, 신랑 될 청년과 시아버지 될 이들의 모습을 돌이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몰래 보고 있는 장면에는 아픔이 묻어난다.  때묻은 누나의 베개에서 냄새를 맡으며 돌이가 홀로 울고있는 빈방을 볼 때도 아리다.  돌이에게 송아지를 보여주며 희미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등 뒤로 비치는 햇살에는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모두가 가만가만,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림들이다.

  그림책이라 하기에는 글의 양이 제법 많고, 동화에 끼워넣은 그림이라 하기에는 그림이 차지하는 몫이 부쩍 크다.  길벗어린이에서 '작가앨범'이라고 이름을 붙여 동화와 그림을 둘다 제대로 살려내고자 한 것 같다.  적절한 이야기들을 골라 좋은 그림들을 이야기에 어우러지게 하여 책을 만든다면,  그 책을 보는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참 좋은  일이겠다.  <폭죽소리> 나 <만년샤쓰> 같은 이 시리즈의 책들이 다 그 그림과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서로를 살렸는데, 앞으로도 '작가앨범'을 공들여 만들어주면 우리같은 독자들은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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