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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ㅣ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4
이주홍 글, 김동성 그림 / 길벗어린이 / 2001년 4월
평점 :
이주홍의 <메아리> 는 어릴 때 처음 읽었을 때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읽으나, 참 좋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읽히고 있지만, 이만한 이야기가 어디 흔한가. 내가 속한 이 땅에서, 누구에게나 힘들었던 어느 한 시기, 특별히 외로운 삶을 이어갔던 어느 한 곳의 이야기가 마치 기억 속 내 먼먼 친척의 이야기처럼 아련해서, 인물들의 외로움이나 기쁨들이 내게도 전해온다.
깊은 산중, 그 중에서도 더 깊은 산중, 외딴집.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고 그끄저께 누나는 시집을 갔다. 돌이와 아버지, 누렁 암소 한 마리가 온 식구다. 그리고는 만날 보는 하늘, 만날 보는 산, 만날 보는 짐승들... 그리고 단하나, 사람의 말소리로 대해 주는 동무인 메아리. 이렇게 살아가는 돌이에게 아마도 누나는 누이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이고 동무였을 것이다. 그런 누이를 아버지는 설명 한자락 없이 훌쩍 보내버리고, 돌이는 그런 누나가 보고 싶어 죽을 것만 같다. 혼자 누이의 베개를 끌어안고 울고울고 하다가 누나를 찾아 재를 넘는다... 돌이는 밤이 되도록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아버지는 그런 돌이를 찾아 밤새 애타게 외친다. 마침내 아버지의 등에 업혀 돌아온 집에는, 그새 반가운 소식이 있다. 누렁 암소가 송아지를 낳아 돌이에게 동생이 생긴 것이다. 누나를 잃은 그 빈자리를 메워준 새끼 소 한 마리가 어찌나 반가운지, 돌이는 산마루로 올라가 메아리에게 자랑을 한다. 누나에게도 이제 자기는 괜찮다고, 동무가 있으니 걱정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지금 크는 내 아이들도 이 책을 읽는다. 어디 이런 사람들이 있나 싶겠지만, 어쩌면 마치 다른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야기 전체에 짙게 밴 외로움의 정서가, 겉모습은 다르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낯설지는 않아서인지.... 가만가만 생각하며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외로움은 낯설지 않다. 그래서 <메아리>는 우리 안에서 공명한다.
그 이야기에 김동성이 그림을 그렸다. 이주홍의 <메아리>에 더할나위없이 걸맞다. 친근한 색감의 수묵화가 무척 잘 어울린다. 책을 펼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림 속 산과 외딴 집, 몇 안되는사람들의 모습이 하도 보기 좋아서 아이와 나는 그림만을 먼저 감상하며 한 번을 다 보고, 다시 돌아가 글을 넣어 읽으며 보았다. 펼치면 시원하게 커지는 그림들 하나하나에 눈길이 간다. 시집갈 새옷을 입고 약간 슬픈 모습으로 목을 늘이고 앉은 누나, 누나의 머리에 비녀로 쪽을 찌어주는 아버지, 신랑 될 청년과 시아버지 될 이들의 모습을 돌이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몰래 보고 있는 장면에는 아픔이 묻어난다. 때묻은 누나의 베개에서 냄새를 맡으며 돌이가 홀로 울고있는 빈방을 볼 때도 아리다. 돌이에게 송아지를 보여주며 희미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등 뒤로 비치는 햇살에는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모두가 가만가만,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림들이다.
그림책이라 하기에는 글의 양이 제법 많고, 동화에 끼워넣은 그림이라 하기에는 그림이 차지하는 몫이 부쩍 크다. 길벗어린이에서 '작가앨범'이라고 이름을 붙여 동화와 그림을 둘다 제대로 살려내고자 한 것 같다. 적절한 이야기들을 골라 좋은 그림들을 이야기에 어우러지게 하여 책을 만든다면, 그 책을 보는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참 좋은 일이겠다. <폭죽소리> 나 <만년샤쓰> 같은 이 시리즈의 책들이 다 그 그림과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서로를 살렸는데, 앞으로도 '작가앨범'을 공들여 만들어주면 우리같은 독자들은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