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떡갈나무 바라보기 - 동물들의 눈으로 본 세상 ㅣ 사계절 1318 교양문고 6
주디스 콜. 허버트 콜 지음, 후박나무 옮김, 최재천 감수 / 사계절 / 2002년 6월
평점 :
나는 읽고 이글을 보는 이는 아직 안 읽은 책을 소개할 때, 종종 애를 먹는다. 지은이의 글을 읽고 거기에 수긍하고 공감하게 될 때, 지은이의 이야기 그 자체가 가장 정확한 전달이 되기 때문에 내가 할 말이 없어진다. 단지 나는, 수없이 지은이의 의견에 공감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배운다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느낌을 쓰자니 그런 말들밖에 나오지 않는다. 읽으며 여러 번 새롭고 경이로운 느낌 앞에 서 있는 듯 하였다.
지은이에게 이 책을 쓰게끔 영감을 주었다는 야곱 폰 웩스쿨의 수필의 여러 부분이 이 책 안에 그대로 인용되어있다. 어쩌면 지은이 또한 야곱 폰 웩스쿨의 글에 더 덧붙이거나 뺄 수 없을만큼 완벽한 공감을 겪었을 지 모르는 일이다. 다른 존재, 생태계를 이루는 나 아닌 다른 존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나, 타자, 그것들이 속한 환경 모두를 이해하는데 유일하게 가능한 한 방식이 아닐까. 어떤 다른 존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 그의 영역, 즉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경험이 아니라 개개의 동물에게 특별한 유기적인 경험을 나타내는 '움벨트'라는 말이 있다.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책 <동물과 인간 세계로의 산책>이라는 책을 쓴 생리학자 야곱 폰 웩스쿨이 만들어 낸 말이라고 한다. 기존의 용어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개개의 동물이 인식하고 경험하는 주변의 생물 세계'를 나타내기 위해 태어난 말이다. 이 말이 이 책의 열쇠말이다.
"
암컷 진드기가 개간한 숲에 있는 한 나무의 가지 끝에 꼼짝 않고 매달려 있다. 자세를 보아하니 지나가는 포유동물 위로 떨어질 태세였다. 포유동물이 지나갈 때까지는 환경 속의 어떠한 자극도 암컷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알을 낳기 전의 암컷에게는 포유동물의 따스한 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진드기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 아래로 운 좋게 포유동물이 지나가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숲에 잠복해 있는 수많은 진드기들은 이러한 상황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한다. 때문에 자기가 있는 쪽으로 먹이가 다가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암컷은 오랫동안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어야만 한다. 로스토크의 동물연구소에는 18년동안 굶주린 진드기가 아직도 살고 있다. 자그마치 18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세월이다. (......)
18년동안 전혀 변하지 않는 세상을 견디는 능력은 가능성이라는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는 동안 여러 시간을 차단당하는 것처럼, 암컷 진드기도 기다리는 동안 수면에 가까운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진드기의 세계에서, 시간은 여러 시간 동안 멈춰 있다기보다 한 번에 수년 동안 정지해 있는 것이다. 부티르산(acid)의 징후가 암컷을 깨워 다시 활동하게 하고 나서야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
여기까지가 야곱 폰 웩스쿨의 말이다.
그 뒤로 이 책을 지은 이의 친절한 해설이 이어진다. 우리 인간이 정한 24시간, 한 달, 일년이라는 개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진드기의 시간에 대해서. 이것과 비슷한 수많은 예들을 보여주면서, 지은이는 우리를 다른 생물의, 혹은 타자의 공간, 시간, 기질의 입장으로 들어가보기를 권한다. 그것은 경이롭게 활짝 열리는 세계가 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면서. 그 암시를 기분 좋게, 또한 경이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인 것이다.
덧붙여, 책 어디를 뒤져보아도 정보가 없는, 이 책 안에 있는 '그림들'은 더할나위없이 훌륭하다. 이 책을 엮은 이들은 이 그림들에 대한 소개와 찬사를 마땅히 이 책 어딘가에 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