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조는 엄청나 웅진 지식그림책 12
조은수 글 그림 / 웅진주니어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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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겁게 보는 타조 이야기!

동물원에서 혹은 동물백과사전, 심지어 그림책에서라도 타조가 나오는 걸 본 적이 있는 어린 아이라면, 타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게다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큰 움직임 없이 두리번 거리고 있는 타조의 모습 만으로는 타조를 알 수 없다. 지은이는 타조가 굉장히 신기하고 놀라운 동물이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다른 사람들-아이들마저-이 이 놀라운 동물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또 별로 높이 사지도 않고 뭐 그저 그런, 날지 못하는 큰 새 정도로 생각하는 걸 보고 "이야 이것, 뭔가 자세히 얘기해줄 필요가 있는 걸! 타조야말로 정말 억울하겠어!" 이랬음에 틀림없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알게 해 줘야지, 그래서 그림책을 구상한다. 여기까지는 순전히 나의 발랄한 상상 영역. ^^ 재밌는 그림책을 보면 펼쳐지는 나의 상상이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그림책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하는 거다. 

보면, 타조는 실로 엄청나다. 타조는 몸무게가 자그마치 150킬로그램이나 되어 남자 어른 두 사람 만큼이나 된단다. 새 한마리가! 타조는 목구멍이 불룩하기도 한데, 먹은 것들을 잠시 모아두기도 한다는 거다. 목구멍 저금통이라니, 굉장히 편리한 장치다. 타조는, 위험해지면 날지 못하는 대신 빨리 달려 달아나야 하니까 실제로 엄청 빠르다. 시속 65킬로미터라니, 시내주행을 하는 자동차의 속도보다 더 빠른 거다. 타조 알 하나는  1킬로그램을 훨씬 넘는다니 계란 무게의 스무배가 훨씬 넘는다. 그러니 진짜, 타조 알도 엄청나다. 이래저래 타조는 엄청나다, 그래.  

3~6세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줄 때, 아이들에게 타조가 엄청날까, 아빠가 엄청날까? 했더니 아이들은 타조를 안다면서도 다들 아빠가 훨씬 엄청나다고 한다. 아빠가 분명 키도 더 크고 더 무거울 거라고. ^^ 그러면서 나중에 책을 다 보고는, 음.. 쩝.. 믿기가 어렵다는 표정들. (정말 타조는 엄청나지? )  

그림책 답게 풀어가는 말이 리드미컬하고 재미있다. 타조에 대해 뭔가 궁금증을 유발하고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데도, 말 자체가 마치 놀이말처럼 재미있게 이어진다. 적절하게 반복되는 것도 리듬감을 살리고 기대감을 갖게 만들어준다. 나름 동물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데도, 읽어주기에도 딱 좋은 그림책이다. 사실에 근거한 정보를, 문학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게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타조 말고 다른 동물 그림책은 더 안 만드나? ^^)

그리 꼼꼼하지도 않게 또 전혀 추상적이지는 않게, 적당한 생략과 과감한 표현이 커다란 타조를 아주 시원시원하게 그려놓은 그림도 내겐 아주 맘에 들었다. 타조를 멋지게 표현했구나! 라고 생각했으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베 히로시의 <동물원 친구들> 생각이 날 만큼. 군데군데 과감한 배색도 그림책 보는 즐거움을 더해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표지 그림만은 좀 아쉬웠다. 한눈에 척 보기에, 그리 타조 같아 보이지가 않는데다가 너무 산만한 느낌이었다. 중간에 나오는 타조 알은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진짜 실물 크기 그대로였다. 알 뿐만 아니라 타조도 진짜로 보고싶다! 동물원에서 가만 있는 타조 말고 초원의 타조를.. 안되면 다큐 필름으로라도 보게 될 때 자세히 봐야지 싶다. 그림책 한 권으로 나는 (혹은 아이들은) 타조에 대해 호감어린 관심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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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소년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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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 좋았다. 처음에는 풋풋해서, 뒤로 갈수록 자전거 이야기가 흥미로와져서. 그야말로 우연히 내게 다가온 책이지만 한달음에 다 읽었다. 실은 무겁지 않아서 좋았지만, 한편 너무나 건전한 사람들의(혹은 건전하게 씌어진) 이야기라서 약간은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그들 앞의 세상은 왜이리 순탄한가.. 그들은 어째서 이렇게 어려울 때마다 당찬 마음을 먹고 또 그걸 제대로 돌파해가는가. 주변에 나쁜 사람도 없고 큰 갈등도 없고, 극복하기 어려운 불행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평범하다 할 수 있는 생일까? 소설에서 그걸 보고있자니 왠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드는데, 실은 그게 비현실이 아니라 '비소설적'인 느낌일 수도 있겠다. 그런 다소 평이한 이야기에 한걸음 더, 지은이의 문체는 더없이, 더할나위없이 평이하다. 마치그날그날 쓴 일기처럼 편안하다. 

시작은 열여덟, 도쿄에서 서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가제가오카에 있는 집에서부터 대학 진학을 위해 자전거로 도쿄로 출발하는 장면이다. '떠날 때는 자전거로 간다.' 그렇게 시작하며 자전거와 이책의 관계를 드러낸다. 자전거로 100킬로미터, 그들에게도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출발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인공이고 화자인 쇼헤이와 마음깊은 친구인 소타에게는 암묵의 다짐이었다. 하나의 의식이었던 거다. (음.. 정말 건전하다. 반듯한 소년기를 거쳐왔음에 틀림없다.) 

'열여덟 살 나름의 미의식이라는 것도 있었다. 이제부터 집을 떠나 자기 힘으로 인생을 개척해나간다는 패기라고 할까. 상경은 그 첫걸음이니, 편안한 교통수단에 의지하지 말고 자력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페달을 밟아 전진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옳고 또 멋진 방법이었다. 

... 

그 상경 사이클링으로 우리는 소년 시절의 자기 자신을 미래로 데리고 가려 했던 것이다.'  

시작하는 첫 장부터 이렇게 건전하게 시작해서, 그 소년들이 서른 넘어 중년에 접어드는 나이가 될 때까지의 성장의 기록이 이 책이다. 그것도 자전거와 함께 힘든 시기를 넘고 함께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 이야기. 자전거로는 뒤로 달릴 수가 없다. 이것, 상징적이다. 소년의 이야기도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갈 뿐, 뒷걸음 치는 부분이라곤 없다. 자동차는 후진이 있는데. ^^ (원래 인생에서는 후진하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야 그 뒷걸음질도 실은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는 마치 휴식이라든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움닫기 같은 것이어서 어떤 의미에서는 그저 뒷걸음질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만. 그래도 보통의 인생에서는 멈춰섬도 있고 뒷걸음도 엄연히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인생은 마치 모두가 자전거 레이스를 시작한 듯,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인 것이다. 이 책이 자전거와 함께 한 소년의 성장기를 펼쳐가면서 후진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쇼헤이도 소타도 노부오도, 건강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 겁없이, 혹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묵묵히, 또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성정에 맞게 나아가는 그 길이 너무나 편안하고 믿음직스럽다. 이미 서른이나 된 시점, 비교적 순탄하게 소박한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낸 시점에서 뒤돌아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면서 쓴 것이라 그런지 긴박함은 별로 없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온통 미지에 둘러싸인 앞날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이미 지나온 과거를 편안하고 안정되게 이야기해 나가는 방식을 작가가 택하면서 독자도 그 길을 편안하게 따라가게 된다. 소박한 꿈이라고 할까, 이룰 수 있는 꿈을 마음에 품으며. 그런데 그런 느낌도 의외로 참 좋았다.  

'핫카이 랠리'라는 게 정말 있을까? 하치(八)오지 지역에서 출발해서 동해(海)까지 가는 300킬로미터 길, 그걸 일본말로 줄여서 핫카이(八海)라고 부를 수 있다. 그 길을 맨 먼저 자전거로 달린 소타의 이야기를 놀라움으로 들은 구로베라는 친구가 그걸, '너만의 레이스'를 '우리의 레이스'로 해 보면 어떨까? 하면서 핫카이 런이 시작된다. 몇 년 새 규모가 커지면서 핫카이 랠리로 이름을 바꾸고 일반인에게도 개방하고 완주가 아니라 구간 주행도 가능하게 방식도 바꾸어서 이어나간다. 중반부터는 거의 핫카이 랠리와 함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마치 핫카이 랠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그 시작 혹은 그 근원을 찾아 취재해가는 과정이 이 책인가? 싶을 만큼 랠리는 이 책의 다른 주인공이다. 엄청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대단한 일인 만큼, 그 시작의 사소함까지 들어간다는 게 흥미롭고 현실감이 있다. 자전거와의 인연, 소년들에게 있어 자전거에 오른다는 것의 의미, 함께 자전거를 탈 친구를 만나 우정을 자전거와 함께 이어가는 일, 힘든 일에 부딪쳤을 때 자전거를 통해 이겨내는 나름의 목표를 설정하고 극복해가는 과정, 랠리의 즐거움, 자신의 능력에 책임감을 보태는 시기를 겪어가며 어느새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 그런 이야기들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아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는 과정이 잔잔하고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특히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가 따뜻하다. 그러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바로 이웃 일본에서 이런 일이 펼쳐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가능할까? 싶은 건 왜일까. 평범한 이야기인데도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의 보통 아이들이 겪고있는 끔찍한 과열 경쟁, 그것도 오로지 학과 공부와 성적만의 경쟁이라는 상황이 눈에 밟힌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스포츠란, 시험에 대한 압박을 풀어주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락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우려. (기우일까?) 중고등학생의 엄마로서 함께 느끼는 그 압박감으로 하여, 이 책 전체를 통해 전혀 그런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일게다. 그러고보니 답답하다.. 

하여간, 작중 쇼이치의 이야기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읽었다.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딱 청소년기에 필요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책이다. 앞도 보이지 않는데 한발한발 내딛고 있다고 생각될 때, 이 책을 읽으면 왠지 숨통이 탁 트일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나 자신 두 청소년의 엄마로서, 스스로 자전거에 올라타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고 싶다는 생각에 앞서 아이들이 이렇게 스스로 바람을 만들며 나아갔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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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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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787년에 영국이 시에라리온을 세울 당시에는 해방된 노예들의 주거지였다. 그래서 도시 이름도 프리 타운, 즉 '자유의 도시'라 불렸다 그러나 시에라리온이 독립한 이후 이곳에 함께 살던 부족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반란군은 수년 동안 군사 정부에 대항해서 싸웠다. 반란군은 청소년들을 유인해서 교육시킨 뒤 싸움터에 내몰았다. 그리하여 수천 명에 달하는 아동 병사들이 내전에 참가했다. 이들 중 많은 어린이가 다치거나 죽었다.' (실제로는 반군 뿐만 아니라 정부군도 어린이를 전쟁터로 끌어당겼다. 이스마엘은 정부군에 속했다.)

어린이 세계 풍물 지리백과에서 시에라리온을 소개하는 항목이다. 그저 지리백과의 한 항목이었을 뿐, 게다가 스쳐지나갈 게 뻔했을 멀고 먼 아프리카의 한 나라, 이스마엘 베아라는 한 소년이 자신의 길고긴 여정을 소개하면서 우리네 삶 속으로 들어온다. 책의 힘이란 그렇지... 빼어난 기억력과 - 이것이 특히 그의 크나큰 고통의 이유이기도 했거니와- 문학적 감수성을 갖춘 한 십대 소년의 글을 통해 나도 고통의 한 순간을 통과해야만 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아프리카의 내전 이야기..  그러나 보통의 책에서는 차마 다룰 수 없었던 너무나 상세하고 그래서 처참한 기록들. 어떻게, 드넓은 우주 한가운데 그저 작고작은 초록별일 뿐인 지구라는 곳에서, 온갖 동식물종들보다 우월한 종인 듯 마음대로 땅 위를 활보하는 인류라는 종이, 이토록 여러 곳에서 전쟁, 전쟁이라는 광기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파괴하고 불특정의 무죄한 다수를-사람과, 동식물과, 무생물까지도- 파멸로 이끌어갈 수 있단 말인가. 인류라는 종은 대체 전 지구적으로 어떤 존재인가. 모든 악은 인류에서 나오는 듯하다.. 자연과 인류 스스로의 파괴자.. 이스마엘 베아의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시에라리온의 이야기는 더이상 어떤 처참한 상황이 가능할 지 알 수 없는 마지막의 공포를 전달한다. 전쟁과 폭력,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죽음이다. 몸 뿐만 아니라 정신의 죽음이 이어진다. 

시에라리온, 주로 스텝과 유사한 사바나로 이루어진 나라, 해안 근처에는 아직도 열대림의 흔적이 남아있고, 강가의 조약돌 사이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는 나라, 500만 중 많은 사람들이 자급자족으로 살아간다는, 기본적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는 나라. 그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스마엘과 또래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수영을 하고 사소한 집의 일을 돌보면서 형제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하루를 즐겁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스마엘은 랩과 힙합에 빠지면서 래퍼로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로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곧잘 암송하던, 인생이 즐겁던 장난꾸러기 소년일 뿐이었다.  

그런 이스마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마치 벼락처럼 어른들의 전쟁이 덮친다. 정말로 그건 벼락처럼 그에게 내려꽂혀 그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상황으로 몰고간다. 단지 어린 소년의 감각으로, 어린 소년의 본능으로 그는 죽음을 피해 달아난다. 스스로도 수없이 많은 죽음의 상황을 겪고,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목격하였지만 그래도 죽음은 끝까지 그 두려운 그림자로  그를 따라다닌다. 그것이 그 아이에게 지워진 감당할 수 있을만한 무게였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흔히들 말하기 좋아하는, 그 고통을 니가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너에게 주어지는 거야, 따위의 말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아무도 그런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원인을 독재 군부와 반군의 투쟁, 부족간의 갈등, 이런 언어로 규명한다는 것은 얼마나 값어치 없는 일인지. 무고한 생명들은 그 속에서 죽어가고 넋을 잃고 황폐해진다. 살아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삶이다. 어린이는 어린이의 삶을 잃어버린다. 그것이 전쟁의 손끝이 남기는 무시무시한 상처들이다.  

이 책은 전쟁의 기록이기도 하며, 생명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기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도 여기 생명은 이어진다. 그건 비장한 일이다. 어제 전쟁을 겪어도 오늘 삶은 또 이어진다. 그것이 삶의 곤혹스러움이다. 이스마엘은 전쟁의 깊고도 날카로운 손아귀 속에서도 순간순간 또 삶을 경험한다. 그것은 비록 죽음과 동거중인 삶이지만, 그래도 뛰고 있는 삶이다. 그 죽음과 삶의 기록을 고통으로 들은 자, 전쟁을 증오하게 될 것이고 진실로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지구상의 어느 누구든, 때가 되면 통과의례로 이스마엘 베아의 기록을 고통으로 읽을 일이다. 

놀랍게도, 그 날카로운 전쟁의 손길이 온 나라를 할퀴고 있는 그 상황에서도 순간의 평화, 부분의 평화가 있다. 기적과도 같은 그 평화... 물론 찰나와 같아 순식간에 박살이 나버리긴 하지만, 그래도 존재하는 찰나의 평화는 기적과 같다. 그런 기적같은 순간에 보여지는 작은 마을의 모습들은 더 아프고 더 안타깝다. 그러나 그 모습들은 평화로운 시에라리온을 마음 속에 그려볼 수 있게 한다. 보통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두려움 속에도 돌봄이 있다...  

이스마엘은 어느날 갑자기 유니세프에 의해 그 지옥을 빠져나오게 되지만, 책의 나머지 1/3은 그의 재활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또 보여준다. 이미 파괴되어 산산조각이 난 유리구슬처럼, 뾰족한 파편으로만 남아 스스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상대까지도 찌르고야 마는 흉기가 되어버린 영혼이다. 그런 어린 영혼들이, 인류의 또다른 특징인 연민과 박애, 사랑의 힘으로 느리게 느리게 치유되어간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이 책을 끝까지 볼 수조차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 조차도 숨가쁜 과정이었다. 한 순간도 마음 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평화? 지역이라는 곳에서도 전쟁은 일상적인 일이다. 컴퓨터 게임으로 날마다 전쟁을 경험하는 아이들의 나라, 그런 게임을 만들고 팔아 살아가는 어른들의 나라가 아닌가? 두렵다. 우리는 마음 속에 전쟁이라는 괴물을 키우는 일상의 이 무감각한 삶을, 정말로 벗어던져야 한다. 제대로 아는 것이 먼저겠지. 전쟁이라는 괴물의 무참한 속성을. 모두, 정말로 고통스럽겠지만, 이스마엘의 고통스런 고백에 귀를 기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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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풍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
장 지오노 지음, 박인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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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에 걸친 비극의 대서사시, 정말 대단한 줄거리에 

실로 감당하기 힘든 문장.  

이런 경우도 있구나... 싶었던 책. 번역의 문제인가? 장 지오노의 작품이라곤 <나무를 심은 사람> 밖에는 읽지를 않아서 알 수도 없다. 그 책은 좀 유려하던가 말이다. 도서히 비교할 수조차 없다. 다른 번역을 찾아 다시 읽든지, 프랑스 문학의 거장이라는 장 지오노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어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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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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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알래스카라는 미지와 만나도록 운명지워졌던 걸까.  

일본에 살던 한 소년이 학창시절 헌책방에서 우연히 알래스카 사진집을 손에 넣게 되고, 이상하게도 그 책에 실린 모든 사진이 마음에 든다. 손때가 묻어 책장마다 모서리가 새카맣게 변할 만큼, 외출할 때도 들고 다니며 본다. 처음에는 그냥 좋아서, 그러다가 나중에는 거기 실린 마을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대체 그곳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소년은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사진 아래 조그맣게 나와 있는 마을 이름, 쉬스마레프. 소년은, 편지를 쓴다. 

"쉬스마레프 마을이 찍힌 사진을 책에서 봤습니다. 저는 알래스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찾아가고 싶어졌습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 저를 초대해주셨으면 합니다....." 처음 써본 영문 편지, 주소는 '미국, 알래스카'. 수신인은 쉬스마레프 촌장이었다.  

이런 경우 편지를 쓸 확률은? 그 편지가 제대로 도착할 확률은? 심지어 답장이 올 확률은...? 

반년이 지난 어느 날, 소년은 편지를 받는다. 

"...편지는 잘 받아보았습니다. 그렇게 먼 곳에서 우리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니 무척 고맙습니다. 여름은 순록 사냥이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언제든지 오신다면 환영하겠습니다...." 

이런 게 꿈이 아닐까? 소년은 그때부터 반년동안 알래스카 여행 준비를 해서 드디어 출발, 며칠을 비행해서 쉬스마레프 마을에 도착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강렬한 체험을 하게되는 3개월. 무엇보다 자신의 작은 방에서 상상만 했던 곳에 실제로 자신이 서 있다는 기쁨,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 준 여행. 그때 그는 열 아홉의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그 후 사진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였고, 7년 만에 알래스카로 돌아온다. 알래스카의 자연과 야생 동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진을 찍어 발표한다. 

1952년 생, 호시노 미치오. 그의 글을 읽으면, 그와 알래스카는 운명으로 얽혀있다, 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라는 전달자가 있어 우리에게 알래스카를 보여준다. 나 또한 알래스카와 어떻게 운명지워진 것일까? 호시노 미치오를 통해 완전한 미지였던 알래스카가 내 삶과도 얽혀든다... 신비롭다 할밖에.  

여러 권의 책을 펴냈지만, 이 책은 특히 깊은 울림을 준다. 깊은 밤, 그러나 대낮처럼 환한 백야의 알래스카의 한 모퉁이에서 그는 글을 쓴다. 알래스카라는 원초적인 자연이 그 속에 품고 있는 생명과 또 무생명의 이야기를, 그 속에서 자리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알래스카가 끌어당긴 자신의 이야기를. 밤이 되어도 해가 지지 않듯, 흐려지지 않은 맑은 마음으로 글을 쓴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그는 순응하고 바라보며, 겸손하다.    

일본인- 알래스카에서의 삶, 이런 비현실적인 가느다란 줄을 잇고 있는 그이지만, 일때문에 남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 문명의 속도에 놀라고 낯선 세계와 마주칠 때의 소외감이 두렵다. 그는 이렇게 쓴다.

'이런 두려움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안데스 산맥을 횡단한 어느 탐험대의 이야기였습니다. 대상을 편성해 남미의 산악지대를 여행 중이던 어느 날, 짐을 져야 할 셰르파들이 멈춰 섰습니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난처해진 탐험대는 급료를 더 올려줄 테니 빨리들 서두르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일당을 올려달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셰르파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여전히 갈 수 없다며 버텼습니다. 현지인들의 말을 할 수 있는 대원이 대체 왜들 이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셰르파 대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너무 빨리 걸어왔소. 그래서 마음이 아직 우리를 따라오지 못했소. 마음이 우리를 찾아 여기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그 탐험대원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탐험대원들은 아마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 낯선 이방인들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세계에 자신들은 결코 동화될 수 없다는 소외감, 그 소외감이야말로 낯선 세계와 맞닥뜨렸을 때 인간이 겪게 되는 두려움의 실체입니다. ' 

아.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나는 호시노 미치오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책을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책은 자주 멈췄다. 왠지 옆길로 는질는질 걸어왔다고만 생각했던 나의 삶조차도, 마치 아직 따라오지 못한 정신을 놓친 채 어딘지 모르는 낯선 곳에서 허둥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났다.  

알래스카에는, 영혼을 놓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이 아직 있을 것이다. 그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알래스카 안에서도 완전히 사람과 격리된 곳에서 살아가는 제이미 가족도 그럴 거다. 그들도 때로 뼈에 사무칠 정도로 외롭다. 그러나 그때마다 제이미는 이렇게 생각한단다. '과연 도시는 여기보다 덜 외로울까, 거기 가면 좀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 그리고 고독과도 친구가 된다. 그들은 알래스카의 아름다움, 그 깊은 쓸쓸함을 사랑한다. 자연이 인간을 향해 내미는 그 고독한 손길을 매만지며 그곳에서 살아간다.  

그의 삶에는 툰드라가, 극북의 바람이, 백야의 엷은 빛이, 무리지어 이동하는 카리부 떼가, 그리고 북극의 툰드라에서 긴긴 여행 끝에 머나먼 북쪽의 해안에 당도한 등피나무가 들어있다. 그는 사진 촬영을 위한 캠프에서 잠자는 중 곰의 습격을 받아 죽었다, 고 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어찌 그런 일을 정신을 놓치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으랴. 그의 생은 또다시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북극에서의 삶으로, 곰의 생으로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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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꿈 2009-08-27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글을 읽으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몇년 전 나도 참 따뜻하고 감동적이여서 여러 사람에게 권해준 책이였는데...집에가서 다시 한번 찾아봐야지.

2009-10-07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8-27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좋아해요.
알래스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담겨있더군요.
풍광도 그렇고, 정말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

2009-10-07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