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소년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어.. 좋았다. 처음에는 풋풋해서, 뒤로 갈수록 자전거 이야기가 흥미로와져서. 그야말로 우연히 내게 다가온 책이지만 한달음에 다 읽었다. 실은 무겁지 않아서 좋았지만, 한편 너무나 건전한 사람들의(혹은 건전하게 씌어진) 이야기라서 약간은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그들 앞의 세상은 왜이리 순탄한가.. 그들은 어째서 이렇게 어려울 때마다 당찬 마음을 먹고 또 그걸 제대로 돌파해가는가. 주변에 나쁜 사람도 없고 큰 갈등도 없고, 극복하기 어려운 불행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평범하다 할 수 있는 생일까? 소설에서 그걸 보고있자니 왠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드는데, 실은 그게 비현실이 아니라 '비소설적'인 느낌일 수도 있겠다. 그런 다소 평이한 이야기에 한걸음 더, 지은이의 문체는 더없이, 더할나위없이 평이하다. 마치그날그날 쓴 일기처럼 편안하다. 

시작은 열여덟, 도쿄에서 서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가제가오카에 있는 집에서부터 대학 진학을 위해 자전거로 도쿄로 출발하는 장면이다. '떠날 때는 자전거로 간다.' 그렇게 시작하며 자전거와 이책의 관계를 드러낸다. 자전거로 100킬로미터, 그들에게도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출발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인공이고 화자인 쇼헤이와 마음깊은 친구인 소타에게는 암묵의 다짐이었다. 하나의 의식이었던 거다. (음.. 정말 건전하다. 반듯한 소년기를 거쳐왔음에 틀림없다.) 

'열여덟 살 나름의 미의식이라는 것도 있었다. 이제부터 집을 떠나 자기 힘으로 인생을 개척해나간다는 패기라고 할까. 상경은 그 첫걸음이니, 편안한 교통수단에 의지하지 말고 자력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페달을 밟아 전진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옳고 또 멋진 방법이었다. 

... 

그 상경 사이클링으로 우리는 소년 시절의 자기 자신을 미래로 데리고 가려 했던 것이다.'  

시작하는 첫 장부터 이렇게 건전하게 시작해서, 그 소년들이 서른 넘어 중년에 접어드는 나이가 될 때까지의 성장의 기록이 이 책이다. 그것도 자전거와 함께 힘든 시기를 넘고 함께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 이야기. 자전거로는 뒤로 달릴 수가 없다. 이것, 상징적이다. 소년의 이야기도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갈 뿐, 뒷걸음 치는 부분이라곤 없다. 자동차는 후진이 있는데. ^^ (원래 인생에서는 후진하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야 그 뒷걸음질도 실은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는 마치 휴식이라든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움닫기 같은 것이어서 어떤 의미에서는 그저 뒷걸음질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만. 그래도 보통의 인생에서는 멈춰섬도 있고 뒷걸음도 엄연히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인생은 마치 모두가 자전거 레이스를 시작한 듯,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인 것이다. 이 책이 자전거와 함께 한 소년의 성장기를 펼쳐가면서 후진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쇼헤이도 소타도 노부오도, 건강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 겁없이, 혹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묵묵히, 또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성정에 맞게 나아가는 그 길이 너무나 편안하고 믿음직스럽다. 이미 서른이나 된 시점, 비교적 순탄하게 소박한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낸 시점에서 뒤돌아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면서 쓴 것이라 그런지 긴박함은 별로 없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온통 미지에 둘러싸인 앞날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이미 지나온 과거를 편안하고 안정되게 이야기해 나가는 방식을 작가가 택하면서 독자도 그 길을 편안하게 따라가게 된다. 소박한 꿈이라고 할까, 이룰 수 있는 꿈을 마음에 품으며. 그런데 그런 느낌도 의외로 참 좋았다.  

'핫카이 랠리'라는 게 정말 있을까? 하치(八)오지 지역에서 출발해서 동해(海)까지 가는 300킬로미터 길, 그걸 일본말로 줄여서 핫카이(八海)라고 부를 수 있다. 그 길을 맨 먼저 자전거로 달린 소타의 이야기를 놀라움으로 들은 구로베라는 친구가 그걸, '너만의 레이스'를 '우리의 레이스'로 해 보면 어떨까? 하면서 핫카이 런이 시작된다. 몇 년 새 규모가 커지면서 핫카이 랠리로 이름을 바꾸고 일반인에게도 개방하고 완주가 아니라 구간 주행도 가능하게 방식도 바꾸어서 이어나간다. 중반부터는 거의 핫카이 랠리와 함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마치 핫카이 랠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그 시작 혹은 그 근원을 찾아 취재해가는 과정이 이 책인가? 싶을 만큼 랠리는 이 책의 다른 주인공이다. 엄청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대단한 일인 만큼, 그 시작의 사소함까지 들어간다는 게 흥미롭고 현실감이 있다. 자전거와의 인연, 소년들에게 있어 자전거에 오른다는 것의 의미, 함께 자전거를 탈 친구를 만나 우정을 자전거와 함께 이어가는 일, 힘든 일에 부딪쳤을 때 자전거를 통해 이겨내는 나름의 목표를 설정하고 극복해가는 과정, 랠리의 즐거움, 자신의 능력에 책임감을 보태는 시기를 겪어가며 어느새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 그런 이야기들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아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는 과정이 잔잔하고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특히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가 따뜻하다. 그러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바로 이웃 일본에서 이런 일이 펼쳐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가능할까? 싶은 건 왜일까. 평범한 이야기인데도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의 보통 아이들이 겪고있는 끔찍한 과열 경쟁, 그것도 오로지 학과 공부와 성적만의 경쟁이라는 상황이 눈에 밟힌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스포츠란, 시험에 대한 압박을 풀어주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락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우려. (기우일까?) 중고등학생의 엄마로서 함께 느끼는 그 압박감으로 하여, 이 책 전체를 통해 전혀 그런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일게다. 그러고보니 답답하다.. 

하여간, 작중 쇼이치의 이야기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읽었다.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딱 청소년기에 필요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책이다. 앞도 보이지 않는데 한발한발 내딛고 있다고 생각될 때, 이 책을 읽으면 왠지 숨통이 탁 트일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나 자신 두 청소년의 엄마로서, 스스로 자전거에 올라타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고 싶다는 생각에 앞서 아이들이 이렇게 스스로 바람을 만들며 나아갔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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