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함께 교외에 나갔다. 그곳에 부모님이 아는 사람이 살고 있어서 그 집 마당의 수돗가에서 물을 받느라 신세를 좀 지고 있었다. 부모님은 물을 받으시느라 분주한데, 수돗가 옆쪽으로 개가 보였다.
그 집에는 개가 4마리가 있다. 수돗가를 사이에 두고, 3마리와 1마리.
수돗가 왼쪽으로는 어미로 보이는 검은 개는 줄에 묶여 있었고, 길이가 15cm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 누런 강아지 2마리는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라, 다가가서 세마리를 번갈아가며 쓰다듬어주고 있는데, 어미개를 보니 자꾸 수돗가를 향해 혀를 내밀고 있는 품새가 좀 수상해 보였다.
그래서 물그릇을 보니, 언제 줬는지도 모르게 바싹 말라 흙먼지만 붙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물을 마시고 싶어하는 것 같아 부모님이 물을 다 받으실 때까지 기다리는데, 내 맘을 알아차리고 개한테 물을 먼저 주라고 하셨다. 그릇을 닦고, 물을 주면서 툴툴거렸다. "생명체를 이렇게 하찮게 여기다니... 너무하다."
물을 가득 담아 갖다 주니 정말 1분 이상을 얼굴을 박고 먹어댔다.
그리고, 수돗가 오른쪽의 집도 없이 털 숭숭 빠진 푸석한 모습으로 힘없이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끈에 묶여있는 하얀 개. 이 개는 마치 주인이 죽으라고 고사지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밥그릇도 안 보이고, 이 녀석한테도 물을 줘야 겠는데 물그릇이 안 보이는 것이다. 아빠가 "아~ 저기 있다." 하며 그릇을 주셨다.
이 녀석 물그릇은 더 가관이었다. 바닥엔 오래된 먼지가 들러붙어 잘 닦이지도 않았다.
아~ 왜 개를 그렇게 방치하는 걸까? 주인이란 사람은 저쪽에서 비닐하우스 뼈대를 만드느라 바쁘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우리한테는 맘껏 물 떠가라고 수도를 내주면서 왜 자기집 마당의 개한테는 물 한방울 안 주는 걸까? 그렇게 쓸모없는 개를 방치하느니 차라리 개고기 좋아하는 사람들 혀라도 즐겁게 보신탕집에 갖다주는 게 낫겠다.
물이 맑은 햇살에 증발해 버릴까봐 그릇을 그늘로 옮겨주고 왔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오늘 같이 맑은 봄날에는 우리처럼 제 발로 자유로이 걸어다닐 수 있는 인간에게만 좋은 날인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