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가운데에서도 기념 절기들은 찾아옵니다. 기독교에서의 부활절은 교회력(敎會歷, 라틴어: Annus Ecclesiasticus), 절기 중 하나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올해는 오는 4월 4일 일요일을 부활 절기로, 이번 한 주를 고난 주간으로, 그리고 오늘 4월 2일 금요일을 대부분 고난일로 지킵니다.
기독교를 종교로 받아들였던 화가,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도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과 관련한 그림들을 선보였는데, 그 숫자가 많지는 않기에, 오늘은 종교와 관련하여 다소 희귀한 그의 그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자연과 주변 환경에 자신의 감정이 이입된 상황을 탁월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고흐 그림과 아래 간략한 약력은 한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위키백과, "A R C(http://www.artrenewal.org)", "반고흐 미술관(http://www.vangoghmuseum.nl)", 문화 예술사(http://windshoes.new21.org)의 정보들을 활용하였습니다. 또한 "반고흐, 영혼의 편지(Dear Theo: The Autobiography of Vincent Van Gogh, 도서출판 예담 1999)"와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민길호 지음, 2006, 학고재)",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였습니다. 더 관심있는 분들은 직접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 고흐의 자화상(Self-Portrait), 1889년 9월, Oil on Canvas, Paris Musee d'Orsay, France
고흐는 모델을 쉽게 살 수 없었던, 그를 평생 괴롭혔던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자기 자신을 주제로 한 다양한 느낌의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도 유명하며, 또한 그런 유작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 자화상도 고흐의 말년에 가까운 1889년에 그린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 작품으로, 고흐 특유의 거친 붓질과 인상적인 화풍이 그대로 드러난 생기 넘치는 명작입니다.
이 시기는 고흐가 극심한 고독과 극빈했던 삶에 지쳐 현실에 대한 용기를 잃고, 예민한 신경증과 발작적 폭력성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 했으며, 결국은 생레미(Saint-Rémy)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많이 좋아지면서 퇴원하였지만, 1890년 7월 27일, 당시 고흐의 나이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 있는 밀밭 언덕(언저리)에서 영혼의 마지막 안식처를 찾아 예술가로서의 삶을 마감합니다.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놓치 않았던 말년의 고흐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아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글을 통하여 고흐의 심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흐가 병원에서 1889년에 완성한 위 자화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당시의 정신 병원에 입원하면서 삶에 대해 불태웠던 의지와 굳건한 심경을 진솔하고 희망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그림을 그리다 지쳐서 쉬는 틈틈이 조금씩 쓰고 있어. 그림은 아주 잘 진행되고 있지. 요즘은 내가 아프기 때문에 너무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고, 또 화가라는 초라한 직업을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단다. 건강을 위해 정신 병원에 조금더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모든 일이 지나고 나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파리에 있을 때의 어중간한 상태보다는 이렇게 확실하게 아픈 쪽이 더 나은 것 같아. 너도 이곳에서 막 완성한 환한 바탕의 자화상을 파리에 있을 때 그린 자화상 옆에 두고 본다면, 그때보다 지금이 더 건강해 보인다고 생각할 것이야. 사실 나는 훨씬 건강해졌단다.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어. 그 희망이 뭔지 아니? 가정이 너에게 의미하는 것이, 나에게 흙, 풀, 노란 밀, 농부 등 자연이 갖는 의미와 같기를 바라는 것이야. 다시 말해서 너에게 가정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할 이유이며, 필요할 때는 너를 위로하고 회복시켜 주는 것이기를 바란단다. 그래서 부탁하건데, 너무 일에 찌들지 말고 너 자신을 돌봐라. 아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이 당시 고흐는 주변에서 늘 감상하던 과수원 풍경 가운데, 올리브나무들도 유심히 관찰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런 감성을 다양한 느낌과 분위기로 묘사한 연작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래처럼 푸른 하늘에 이글거리는 듯 정열적인 올리브나무와 높은 산을 배경으로 구름 낀 하늘 아래 무거운 느낌의 올리브나무, 그리고 마지막에 찬란한 정적이 흐르는 올리브 과수원을 통하여 당시 고흐의 심경과 느낌을 색다르게 표현하였습니다.
▲ 올리브 과수원(Olive Grove), Oil on Canvas, Saint-Remy, June-mid, 1889, 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The Netherlands, Europe
▲ 올리브 과수원(Olive Grove), Oil on Canvas, Saint-Remy, 11-12, 1889, Van Gogh Museum, Amsterdam, The Netherlands, Europe
▲ 오렌지색 하늘에 올리브 나무(Olive Grove, Orange Sky), Oil on Canvas, Saint-Remy, 11, 1889, Goteborgs Konstmuseum, Goteborg, Sweden, Europe
바로 위 올리브 밭을 묘사한 찬란한 정적이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오렌지 색채의 밝은 하늘에 푸른색과 밝은 노란색의 노을을 찬란하고 화려하게 채색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밝고 환한 하늘 아래 올리브나무들은 마치 고요한 정적에라도 빠진 듯, 어둡고 진한 녹색으로 대조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정적과 고요가 한층 더 강조되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 어두운 붉은 색채의 땅도 진한 색으로 올리브나무와 통일하였으며, 그 땅에 드리운 올리브나무들의 그늘에 드리운 그림자들도 역시 더 진한 푸른색채로 어둡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붉은 땅은 우리를 위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고통의 피가 올리브나무와 함께 아직도 여전히 그 땅에 남아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고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며 죽으시던 그날의 저녁 노을이 위 그림과 같았을 것이라는 고흐의 생각과 신념을 대변합니다. 또한 오렌지빛 하늘에 그 찬란한 노란색의 노을빛과 찬란한 슬픔을 통하여 예수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죽음이었으며, 3일 뒤 영광스러운 부활을 약속하였던 희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올리브나무들을 그림 고흐의 작품은 더 많습니다. 빛의 흐름과 대기의 흐름, 각기 배경이 조금씩 다른 유사한 연작들을 찾아 감상하는 것도 고흐의 작품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적으로 그린 그림 외에도 직접 '그리스도의 시체를 끌어안고 탄식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그린 유작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덤에 장사된 예수 그리스도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마태복음 27장 46-61절)
▲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프랑스, 1793-1863), 비탄에 빠진 성모 마리아(Pieta), 1850년 경. Oil on canvas. Nasjonalgalleriet, Oslo, Norway
▲ 예수의 시체를 안고 탄식하는 성모 마리아(Pietà, After Delacroix), 1889, Oil on canvas. Vincent van Gogh Foundation, Rijksmuseum Vincent van Gogh, Amsterdam, the Netherlands.
위 세번 째의 올리브 나무에서 고흐가 묘사한 찬란한 슬픔은 이 '성모 마리아의 탄식'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밝은 노란 색채를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당한 온갖 수난과 고통, 십자가에 못박히는 참혹한 운명을 대조적으로 잘 드러낸 작품입니다. 고통을 견디다 죽음으로 사색이 된 예수의 얼굴은 안스럽기도 하고 평온해 보이기도 합니다.
찬한한 슬픔이 가슴을 파고드는 고흐의 '비탄의 마리아'
꾹 다문 입은 불평 한마디 없고, 만신창이가 된 몸도 인간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느껴지며, 진정 가슴으로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예수를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의 얼굴과 표정이 더 침통하고 구슬퍼 일그러졌습니다. 낭만주의 화가로 파리에서 태어나 보르도(Bordeaux)에서 공부한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프랑스, 1793-1863)의 같은 그림과도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처럼 같은 주제의 위 두 그림을 비교해 볼 때, 색채도 고흐는 들라크루아보다 훨씬 밝고 환한 노란색을 상용하였지만, 훨씬 더 찬란한 슬픔이 가슴을 파고 듭니다.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인간의 고통을 온전히 체험했던 예수를 가슴과 두 팔로 받아 안으려는 마리아에게 그 고통과 비탄이 그대로 전해진 듯 합니다.
자식의 고통을 보며 슬퍼하지 않을 부모가 세상 그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구나 아무 죄도 없이 그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아들의 육체적인 고통에 그 어머니는 얼마나 상심이 크겠습니끼?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아야 하는 그 어머니의 사랑은 "숭고한 사랑의 징표"로 묘사되었습니다. 이제는 속세를 벗어나 초연해진 듯 보이지만, 운명처럼 받아들인 숨어있는 예수의 고통과 슬픔을 붉은 피로 물들여 묘사했습니다.
이때도 건강 상태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괴로울 때면 보면서 위안을 삼으며, 언젠가는 해보고 싶던 들라크루아의 흑백 판화 '피에타(Pieta, 탄식하는 성모 마리아)'를 화폭에 그려보기로 합니다. 고흐는 좋아하는 화가들의 복제화를 보고 다시 그리는 작업을 많이 하였는데, 꿈 속에 나타난 천사같은 소녀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이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있었기 때문에 운명처럼 그렸던 복제화지만, 그 느낌은 확연히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