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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완역본 ㅣ 하서 완역본 시리즈 1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유성인 옮김 / (주)하서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위드블로그의 20번째 책 리뷰이다."
놀라셨습니까? 이것은 제 얘기가 아닙니다. 이는, wearcom님의 "고민하는 힘"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작성한 후기 글의 첫 문장입니다. 정말 놀랍고 대단한 분이시죠. 제가 요즘 부르짖고 있는 "독서후기 나눔의 문화"에 적극 지지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동안 위블(Withblog, 위드블로그)을 통해 소개받아 읽고 후기 글을 올렸었던 책들을 세어보니, 어림도 없습니다. 다른 이웃지기님들은 위블을 통해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개의 후기 글을 올리셨습니까?
제 블로그의 글 범주(category, 목록) 수는 16가지입니다. 그 가운데 "With Books" 목록에 올라온 글 가운데, 위블을 통해 소개받아 공짜로 책을 읽고 후기 글을 올린 갯수를 세어보았습니다. 지난 오노 요시야스의 케인스주의 경제이론 탐구서, "불황의 메커니즘"까지 합해서 전부 12개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이 위블에서 제공받아 읽는 13번째 책에 대한 후기 글입니다. 그리고 소설책으로는 엘르 뉴마크의 '비밀의 요리책'에 이어, 2번째 책입니다. 첫 접근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러시아 문학의 거장,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러시아어: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1821년 11월 11일-1881년 2월 9일)가 쓴 소설, "죄와 벌"입니다.
굴곡의 세월을 소설로 녹여낸 도스토예프스키
인터파크도서를 통해 배송받은 '죄와 벌'은, 총 길이가 무려 767쪽에 크리가 15cm×22.5cm로 무척 두꺼운 완역본입니다.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 읽어야 했으며,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되어 다 읽기에도 물론 부담스럽기 그지 없었 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을 통하여 12,600원에 살 수 있어 두께에 비하면 오히려 저렴한 편입니다. 겉그림 의 디자인은 상징적이지만, 색채는 진한 녹색이어서 간결합니다.
지은이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문학의 거장으로, 심리학자이자,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에 바탕을 둔 영혼의 구제를 주요 주제로, 인간 심리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또 당대 러시아의 정치, 사회, 정신세계를 날카롭게 분석하며, 20세기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모스크바 말린스키의 시립 빈민구제병원에서 일하던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5살 때까지 이 곳 생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845년에 그의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여 자연주의 작가로 등단하였습니다.
그는 미하일 페트라셰프스키가 주도하는 공상적사회주의 모임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1849년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고,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로서 사형 집행이 되기 몇 분 전에 특별 사면을 받는 독특한 경험도 합니다. 그 뒤 4년 동안의 시베리아 유배 생활과 불치의 간질병 등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질곡과 고난을 겪으면서 살았습니다.
도박을 좋아하는 성격과 시베리아 유배 시절에 악화된 간질 등이 그의 창작활동에 큰 영향을 미쳐, 그의 작품 속에 중요한 요소들로 자주 등장합니다. 절망적인 인생을 살아왔지만, 인간 내면의 추악함보다는 영혼의 아름다움과 궁극적인 정화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오늘의 '죄와 벌'처럼, 인간 생활에 있어서 모순되는 선과 악의 투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원자를 분석하듯이 인간 내면을 성찰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는 "지하 생활자의 수기", "죄와 벌", "백치", "악령" 등이 있습니다. 말년에 집대성한 장편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탈고하고 난 몇 달 뒤인 1881년, 1월 28일에 6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이 가운데에서도, 오늘 읽을 "죄와 벌"은 이 뛰어난 본보기를 통하여 지은이에게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이라는 명성을 안겨 주었습니다. 더불어 토스토예프스키는 이 작업을 통하여 러시아 사실주의 소설의 독자적인 전통을 수립한 것이기도 하며, 20세기 문학 전반에 심오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통과 참회의 눈물을 통한 악한 내면의 정화 과정
전체적으로 1-6부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단원은 숫자로만 된 5-6개의 작은 소단원으로 연결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 안에서 인간 심성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꿰뚫고 들어가 그 안에 숨겨진 심리들을 무료하다 못해 지루할 만큼 섬세하게 분석하고 묘사를 통해 주요 인물들의 성격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특히 함께 읽다보면, 영혼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드러내 보이는 그의 심리 분석 능력과 섬세한 필체를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의 줄거리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주인공을 따라가며 섬세한 묘사를 통하여 전체적인 줄거리가 관망하는 듯 자연스럽게 전개됩니다. 지은이 도스토예프스키는, 페테르스부르크에 혼자 올라와 하숙하며 공부하고 있는 주인공, 법대생, 라스콜리니코프(애칭:로쟈)를 포함한 6-7명의 등장 인물들과 모든 주변 상황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고, 인간내면의 심리에 촛점을 맞추어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 초반의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며, 이야기도 다소 느슨하게 전개됩니다.
"목적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꼭 730걸음이었다." 라고 묘사되었을 만큼 그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토스토예프스키와 많이 닮지 않았을가, 또는 사형선고를 받았던 그의 경력을 비교해볼 때, 자신이 그 모델이 아닐가 싶습니다. 삯바느질하는 사람, 자물쇠 장수, 숙수 노릇하는 여자, 여러 종류의 독일 사람, 몸을 팔아서 살아가는 젊은 여자, 하급 관리, 서너 명의 경비 등이 살고 있고, 여러 개의 작은 셋방이 있는 뒷골목의 5층 집 꼭대기의 다락방(옥탑방)에서 주인집 시녀, 나스타샤의 도움을 받으며 하숙하고 있었습니다.
만취해 잠에서 깬 어느 날 아침, 주인집 시중을 드는 시녀가 가져다 준 어머니의 장문의 편지를 받습니다. 오빠를 위해 희생하며 사는 누이동생 누냐(두네치카)가 가정교사로 일하러 들어간 집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아온 후 45살된 7등 문관, 루진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구구절절한 내용입니다. 이에 로쟈의 고민과 분노, 어머니의 인생과 동생의 운명에 대한 연민과 근심이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정밀하면서도 집요할 만큼 분석적으로 묘사되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을 통한 심리묘사의 진수가 시작됩니다.
그런 다음 날, 로쟈가 주인집 문지기 방에서 훔친 도끼로 전당포를 운영하는 고리대금업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와 시종처럼 일을 돕던 동생, 리자베타의 머리를 찍어 죽이면서, 지은이의 심리묘사와 소설의 줄거리도 반전되어, 보다 빠르고 긴장감있게 전개됩니다. 계획적인 살인 후, 극도의 긴장감이 풀리면서 이성을 잃은 듯 헤매기도 하고, 훔친 지갑이나 피가 묻은 주머니와 장화, 양말들에 대한 흔적(증거) 인멸을 위해 어디에 감출지, 어떻게 태울지, 어디에 버릴지 고민하다가 오한으로 쓰러져 악몽과 환상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에서부터 훨씬 더 인간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며 흩어져 있는 독자들의 상념을 빨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어느 외진 공사장의 큰 돌 밑에 훔친 물품들을 숨겨 놓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긴장이 풀려 쓰러진 채, 반쯤 무의식 상태로 열병을 앓습니다. 나흘 만에 깨어난 주인공 로쟈가 주인집 하녀, 나스타샤와 가장 친한 유일한 대학생 친구, 라주미힌의 도움으로 기력을 회복합니다. 혼자 있고 싶다는 일념과 오래된 습관대로 산책길을 따라 들어온, 수정궁이라는 깨끗한 식당에 들어섭니다. 그 곳에서 경찰서 사무장, 자묘토프를 만나 극도로 예민해진 살인 후의 심경을 들어냅니다. "만약 내가 노파와 로자베타를 죽였다면 어떻게 하겠소?"라며 횡설수설하는 장면에서 사건의 긴장감은 극에 달합니다.
번뇌와 고통 속으로 불러들이는 묘사 기법의 절정
그러던 주인공, 로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 풀리헤리야와 누이동생, 두냐를 만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됩니다. 친구 라주미힌과 결혼을 약속한 루진이 한 식당의 원탁에 합석한 가운데, 두냐가 파혼을 확정합니다. 그 곳을 나온 로쟈는 말에 깔려 죽은 전직 관리의 집, 추도식에 들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큰 딸, 소냐를 찾아가 성경 읽는 의식으로 용서를 구하고 위안을 얻습니다. 다음 날, 살인자백을 결심한 로쟈는, 경찰서에서 예심판사로 일하고 있는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를 찾아가 횡설수설하는 신경질적인 상담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 때, 놀라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살인된 전당포 노파의 맞은 편 방에서 칠장이로 일하던 직공, 니콜라이가 자신이 살인했다고 자백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주인공 로쟈의 진부한 심리갈등이 또다시 이어지며, 독자들을 그 세계 속으로 끌고 갑니다. 특히 남편의 장례식을 마치고 난, 소냐의 어머니까지 결핵으로 사망하면서, 주인공 로쟈는 병적일 정도의 답답한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즉 이에서 지은이 도스토예프스키는, 독자들을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 뒤섞이게 하거나 어떤 사건을 로쟈의 상상 속의 세계로 오락가락하게 만들며, 그런 공포 속의 나락 끝으로 몰고 갑니다. 심지어 책을 읽는 내내 독자는 그 나른하고 답답한 갈등의 권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가운데, 친구 라주미힌에게 "자네가 미친놈인가, 아닌가를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러 왔네"라는 말을 들을 만큼, 주인공 로쟈는 어머니와 누이동생도 챙기지 않은 채 정신병자처럼 거리를 배회하거나 소냐의 장례식장을 찾아가 조문하기도 합니다. 그날 저녁, 예심판사 포르피리가 찾아와 자수할 것을 종용합니다. 이에 로쟈는, 누이동생 두냐가 가정교사로 일하던 농장의 지주이자, 아직도 여동생을 욕심내고 있는 스비드리가일로프를 찾아가 허락할 수 없다는 협박도 하고, 어머니와 동생을 찾아가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는 등 자백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주변을 정리합니다. 마지막으로 소냐를 찾아가 결심을 하고는 광장에 들러 대지에 입맞추며 환희에 벅찬 감격으로 참회합니다.
그리고는 경찰서에 들어가, "내가 관리인 노파와 그 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죽여 금품을 훔쳤습니다."라고 뚜렷하게 소리칩니다. 로쟈는 살해 과정과 출세를 위한 범행 이유를 사실 그대로 자백했고, 친구 라주미힌의 구명과 주인집 아주머니의 노력, 로쟈의 선행에 대한 주변 이웃들의 증언이 뒷받침되었으며, 다행히도 재판은 우울증과 병적인 편집광 증세가 발작되어 일어난 살인강도로 결론짓고, 겨우 8년의 제 2급 징역형이 언도됩니다. 소냐를 통해 오빠의 소식을 듣던 두냐와 라주미힌도 결혼을 하였으며, 그 후에 어머니 폴리헤리야도 사망합니다. 시베리아의 요새에서 복역하는 로쟈를 따라간 소냐는 옥바라지를 하고, 소냐의 사랑에 눈을 뜬 로쟈도 새로운 인생을 맞으며 환희에 찬 현실과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상으로, 러시아의 문호(文豪)토스토예프스키가 삶의 지혜와 영혼의 울림을 전달하는 데에 소설을 매체로 이용한 또하나의 예술성을 경험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느낀 소감을 아래와 같이 10 가지로 정리함으로써, '죄와 벌'에 대한 독서 후기를 마무리지으려고 합니다. 첫째, 무려 767쪽이나 되는 이런 대작을 완역본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인터파크도서와 위블 운영진에게, 이 자리를 빌어 먼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시간을 갖고 여유롭게 탐독하면 좋을 초절정의 심리소설
둘째, 마지막 끝 장까지 읽으며 든, 가장 큰 아쉬움은 '오타'의 남발입니다. 두께의 압박만큼이나 오타의 수정과정도 만만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2007년 11월에 초판 1쇄로 발행되어 2009년 2월에 초판 5쇄로 발행된 신간을 읽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오타가 종종 발견되는 점은, 읽는 내내 고전에 대한 신뢰는 물론, 집중해야할 주의를 흐트리기에 충분할 정도입니다. 하서출판사의 불찰이 많이 아쉽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더불어 즉각적인 '오타의 수정'이 시급해보입니다.
셋째, 지은이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성선설'의 전제 아래 기술합니다. 즉 인간의 양심을 바탕으로 주인공 로쟈의 살인에 따른 고민과 심리적인 갈등을 철저하게 해부하고 있으며, 그 고통의 과정을 통하여 사건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읽다보면, 곳곳에 숨어있는 지은이의 인류애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개인적으로 '가족애의 소중함'을 깨닫게 만들어준 책이었습니다. 주인공 로쟈의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지긋한 애정, 누이동생 두냐의 오빠를 위한 희생정신, 그리고 어머니 폴리헤리야의 든든하고 무한한 사랑이 내용 전반을 끌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힘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오히려 전직 관리의 딸 소냐와 로쟈의 사랑보다도 줄거리 전체를 끌고 가는 더 큰 힘으로 작용합니다.
다섯째, 책의 두께에 대한 압박은 최절정입니다. 진부할 만큼 장황한 심리묘사와 3자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는 기술방식이 줄거리의 전개를 느슨하게 만들며, 긴장감을 절대적으로 퇴조시킵니다. 책을 덮은 지금까지도 입에서 쓴내가 날 정도이고, 속도 느글거립니다. 아마 독자들도 마찬가지로, 지은이 토스토예프스키의 표현처럼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치 담즙에 목욕하고 나온 느낌(p. 483)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 이야기 전개의 구성은 시종일관 두괄식, 또는 미괄식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두께의 압박과 느린 행보의 이야기 전개 때문에, 애독자라 할지라도 따분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독자들이 처음부터 이를 참고하여 글 읽기에 활용한다면, 내용 파악이나 속독, 그리고 완독을 위한 계획과 시간 배정에 다소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곱째, 지은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독자들을 주인공, 로쟈와도 같은 심리불안과 범죄로 인한 고통 속으로 끌고 다니며, 전체적으로 단연 그런 묘사가 돋보입니다. 마치 독자를 고문하는 듯한 수준입니다. 이를 만나는 독자의 반응은 매우 난감하고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지은이의 "암시적인 묘사" 방식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 행위 후에 답답한 마음을 이끌고 해가 저물어가는 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더위는 여전히 찌는 듯했다.(p. 206)" 이처럼 날씨나 공기에 대한 묘사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런 상황이 독자들의 인식을 난감하게 하며, 주인공과 같은 당혹스러운 심리상태로 몰고 다닙니다.
또 한 가지를 예로 들면, 주인공 로쟈가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에도 그에 대한 정확한 이유나 근거, 계획, 각오 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며 꿈을 꾸는 듯, 횡설수설하는 장면에서 "하하하, 실천에 옮기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정의에 입각하여 양과 척도, 숫자를 계산하여 많은 이들 중에서 가장 무익한 놈을 골라 해치움으로써...(p. 364)"라고 정당화하는 단 한 줄의 문장만으로 해명할 뿐입니다.
여덟째,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을 때는 독자가 내용이나 줄거리를 추론하거나 분석하는 것은 완독에 부정적이거나 위험해보입니다. 물론 이런 구성과 기술방식은 주인공의 심리에 독자들을 몰입시키고자 하는 지은이의 철저한 계획과 의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 볼 때, 오히려 속독으로 빠르게 독파하는 것이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편안한 책읽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홉째, 그러나 저도 읽는 내내 정자세로 책상에 앉아 정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잡념에 시달리거나 혼자만의 상념에 빠지기 일수여서 진도가 잘 나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냥 쉽게 소설 한 권 읽어볼까하는 생각으로 이 고전을 집어드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무척 어렵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완독하기에는 더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열째, 그러므로 이는, 심리소설에 매우 관심이 높은 독자나 학문적으로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권할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4-5일 정도 여유를 갖고 심취해보고 싶은 독자나 방학을 이용하여 토스토예프스키의 예술세계를 탐독해보고 싶은 독자들이 있다면, 새로운 소설세계의 심미학(審美學)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