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모든 임산부는 병원에 등록되면 반드시 기형아 검사를 받게 된다.   

9주 무렵부터 시행되는 기형아 검사는 몇 단계로 나뉘게 되고 또 위험군인지 아닌지에 따라 추가 검사가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선별(?)의 정확도가 높아 80~90%까지 사전 진단이 가능하다고 한다. 얼마나 다양하고 다채로운 검사법들이 있는지 놀라울 정도인데,  

first double marker : 임신 초기(9주~) 혈액검사로 다운증후군을 가능성을 판단한다 

NT : 초음파 측정 후 비정상 소견일 때 융모검사나 양수검사로 확진 

융모막 융모 검사 : 융모(태반 조직)를 이용해 염색체 검사, 다양한 '증후군'을 99% 잡아낸다. 

트리플 마커 : 임신 중기 혈액검사 

쿼드 : 트리플에 추가적으로 행하는 검사 

이밖에도 태아 당단백 검사, 양수검사, 정밀초음파 등등이 있는데, 더이상의 설명은 각설하고, 문제는 이 검사들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왜, 기형아 감사가 필요하며 그를 통해 우리가 알고 싶은 것 또는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모든 임산부들이 저 검사들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혈액 검사를 통해 '선별된' 산모들만 추가 검사를 하고, 위험성이 높을 때는 양수검사를 하게 된다.  

검사 결과 이상 없다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이상이 발견되었을 때는? 이것저것 추가 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결함'의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었을 때 문제는 시작된다.  

어쩌란 말인가?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본 많은 산모들은, '중절'을 선택해야 하는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 가운데는 실제로 중절을 감행하는 이들도 많다.  

기형 또는 결함을 갖고 태어나 평생 불행하게 사느니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좋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당장 '기형아 검사 해서 안좋게 나오면?"이라는 질문에 '수술해야지 별 수 있나'라고 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래야 할까? 

한국의 열악한 장애인 후생복지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것 사실이다. 냉정하게 볼 경우, 선별되지 않고 탄생할 어떤 인간들로 '인해' 소용될 인적 경제적 사회적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도 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별 검사와 낙태가 자연스럽게 용인되어도 좋은 걸까? 

기형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갈등을 겪었던 나는, 무엇을 위해서, 무엇 때문에 이걸 해야하는지 오랫동안 회의해야 했다. 물론 여기에는 이런 갈등도 포함된다. 내 아이가 혹시 위험군으로 판명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내가 이런저런 한국의 현실을 무시하고 삶이 고달파질 한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또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내 아이가 안전하다고 판명된다고 해서 나는 그저 안심하고 안도하고 있어도 되는 것인가.  

사실 한때는 심각하게 '기형아검사 반대를 위한 연대'까지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었다. 

기형아 검사의 목적을 나는 아직도 잘 알 수 없다. 아이에게 닥칠 위험성과 불안한 미래를 미리 알고 사전에 잘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면 혹 모를까, 열성 인자들을 미리 배제하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과연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좋은 것인가? 

여기에는 많은 문제들이 개입된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던 과잉진료의 문제부터, (35세가 넘은 고령(?)의 산모는 초산이든 경산이든 무조건 양수검사를 종용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물론 산모에게 거부권은 있지만 말이다.), 장애아 선별 배제 기능으로서의 의료 행위, 장애인이 처한 현실적 조건 등등.. 

이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필요한데, 아무튼 나는 주장한다. 기형아 검사따위는 거부하자고.. 혈액검사따위로 이상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내 안에 자리잡은 하나의 생명을 없애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면 상관 없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아이를 위해서라도 또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라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또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의 미래를 누가 책임 질 거냐고, 기형아를 낳고도 아이에게 그리고 타인들에게 떳떳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에게 가혹한 현실에 평생 맞서 싸울 자세가 되어 있냐고. 물론 나에게도 그런 자세 따위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 누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미리 책임지고 사는가. 문제는 지금 행해지는 그런 종류의 검사들이 겨냥하고 있는 불온한 의도이며 불안을 저당잡고 행해지는 폭력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숱한 혈액검사나 위험한 양수검사를 통해 나의 태아가 기형인지 아닌지 판별받아야 할 의무가 없고, 그들-의료 권력, 국가 권력-은 그걸 판별하고 삭제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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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친구 2009-09-24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또 말꼬리 잡는다고 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제가 글 읽다가 `의무`와 `권리`라는 단어의 뜻을 내가 잘 모르는 건가 하고 햇갈려서 다시 국어사전까지 찾아봤습니다. 사전을 다시 읽어봐도 의무라는 단어의 설명에는 강제력이 핵심이 되고, 권리를 찾아보니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 이더군요.

마지막 줄에 쓰신 의료권력 국가권력 의무&권리 운운보니 조금 황당해서요. 기형인지 판별받을지 말지는 아무도 강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형을 판별해서 인공유산하라고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권리)은 의료인이나 국가에 없습니다. (태아의 사망가능성이 높고 태아로 인해 산모의 생명에 지장이생기는 경우가 아닌한) 의사가 먼저 인공유산하라고 행여나 한마디라도 했다가는 요새 바로 의료소송당합니다.

글 중간에도 써놓으셨더군요. `물론 산모에게 거부권은 있지만 말이다`. 세상에 거부권있는 의무라는게 있나요?

말꼬리 잡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기형아 검사 받는 것은 본인이 원하면 받는거고 싫으면 안받아도 되는거잖아요. 도대체 그걸 누가 강요합니까? 알고싶어하는 있는 산모가 자기돈 지불하고 본인이 원해서 검사받는 거죠. 글 뉘앙스가 무슨 군대 신체검사하듯이 강제로 소환해서 거부하면 벌금때리고 검사시키는 것 같아요.

보건소친구 2009-09-2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위험군(35세 이상의 산모나 과거 유산의 기왕력이 있는 산모등등)의 산모에게 융모막 검사를 하라고 고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산모나 태아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고지하지 않은 의사(그 의사분은 초음파 검사상 문제가 없었고 그런 문제가 교과서상에 확률이 매우 낮기에 고지하지 않았다는게 기억이 납니다)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그것도 수천만원을 위자료로 줘야한다는.

이런 현실속에서 의사는 고위험군이면 초음파 검사상 별문제없더라도 검사하라고 고지해야할 필요가 있지요. 과잉진료라기보다는 의사입장에서 생존을 위해서 행하는 방어진료의 의미가 더 크다고 봅니다.

저런 일들 한두번 겪어본 산부인과 의사는 오히려 전문의 타이틀을 포기하고 일반진료를 보는 의원으로 개업하더군요. 전문의 타이틀 걸어놓지 않은 의원중에 상당수가 산부인과입니다.

글쓴이 2009-09-2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중요한 것은 거부권(권리)는 명목상 주어지지만(그렇게 알고 있지만) 의무적(반강제적)으로 행해진다는 겁니다. 환자들은 병원에 등록되어 관리대상이 되는 순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면화된 공포 때문이기도 하고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이기도 하고 병원의 압박 때문이기도 하고 참으로 여러 복합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실제로 행사할 수 없는 권리를 어떻게 권리라고 할 수 있는지요?

일례로, 산부인과 내진을 강하게 거부할 때(그렇게 강하게 거부할 수 있는 강심장들도 거의 없지만) 그 요구를 들어주는 의사가 있나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이건 겪어본 수만 수십만 임산부들한테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어떤 산모는 진통 중에 내진한다고 들락거리는 간호사에게 '제발 그 손좀 치워요'라고 절규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 요구를 들어주는 줄 아십니까? 참 답답하군요.

왜 바보같이 자기 권리를 자기가 행사하지 못하냐구요? 사전적 정의가지고 딴지 걸지 마세요. 다 아시지 않나요? 아니면 정말 모르시는지..

그리고 기형아 검사, 절대로 선택사항이라는 고지 없습니다. 산부인과에 실제로 가보시죠. '피검사 받으세요' 그 한마디로 끝입니다. 많은 환자들은 말씀하신 그대로 신체검사하듯이 강제로 검사하는 기분 백이면 백 느낌니다.

다시 2009-09-2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의사 입장에서 생존을 위해 행하는 방어진료라니, 자기 안위를 보존하고 귀찮은 분쟁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편이 더 솔직하지 않나요? 현직 의사라고 들은 것 같은데, 일선 병원(모르긴 몰라도 보건소는 좀 다르겠습니다만)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현실을 많이 모르시는 것 같아 오히려 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물어봅시다, 정말로 산모들이 기형아 검사를 거부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의대에서 배우셨나요? 정말 궁금해서 그럽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면 어디인지 좀 알고 싶군요.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의사들은 병원 갈 때마다 실험실의 쥐가 된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환자들 입장을 죽었다 깨야, 아니 아팠다 깨야만 알게 되는가 봅니다. 전에 존경하는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의사들도 한번 크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해 봐야 정말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뭐, 꼭 아파 봐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또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그 말뜻이 무슨 뜻인지는 누구나 이해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