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무릇 개인 간에 부탁을 할 때에도 먼저 제의한 사람이 아쉬운 것이 있는 것이고, 그 아쉬운 만큼 상대에게 무엇인가 양보를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미국측에 먼제 FTA를 제안한 우리 정부도 분명 무엇인가 아쉬운 것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제의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 할 테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적 약속이었을 때에는 별 문제가 안 될지 몰라도 국가 대 국가의 협약일 경우의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 어마어마함도 긍정적인 효과라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이것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제의를 한 값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모를까 결과가 분명학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도통 한미 협약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고 싶어도 어렵기만 해서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이 책을 통해 한미 FTA를 조금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깊은 내용에 대한 이해를 관두고라도 저자가 한 말이 계속 머릿 속을 맴돈다. 한국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모두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합의를 하지 않는 한 협상의 결과는 낙관적일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외쳐야 할 듯 하다.

" 여기는 등대. 여기는 등대. 미국이 좌측으로 우회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버랜드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참기가 힘이 든다. 곶감 빼먹듯이 야금야금 먹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했음에도 스르르 손이 가는 책. 온다 리쿠의 책들이다. 손에 잡으면 도통 놓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연거푸 내리 읽어버려야 할 책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전작의 놀라운 글솜씨에 대한 기대 때문에 책장을 들추며 느끼는 두근거림이란... 잠도 들지 못한 밤에 자려고 애를 쓰다가 불면증을 원망하며 집어든 책. '네버랜드'  다음에는 ' 빛의 제국'부터 먼저 읽으리라 작정했었는데 어둠 탓이었는지, 아니면 아직 인연이 아니었는지 '네버랜드'를 읽게 되었다. 그래서 또 한 번 밤을 새게 된 것이다.

'네버랜드'.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제목을 지닌 이 책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밤의 피크닉'과 마찬가지로 학교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학교'라...

우리에게 학교란 어떤 곳일까? 뉴스에서는 늘 학교를 치열한 공부를 해야하는 전투장으로, 교사의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탈선을 일삼는 아이들이 들끓는 곳으로 묘사하곤 한다. 그러나 학교가 그런 일들만 있는 곳은 아니다.  무시무시한 일보다 소소한 즐거움도 무시못할 정도로 많다. 늦은 밤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살벌한 곳이지만 간간히 매점을 들러 수다를 떠는 곳이기도 하고, 잘생긴 남선생님에 대한 연모의 정을 키우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슬픈 현실 속에 즐거운 일도 분명 있기에 우리에게 '학교'라는 단어는 무수한 이미지를 품게끔 한다.

이러한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누구나 고교 시절을 좋을 때였다고 말한다.  늘 변화무쌍하고 치열하다는 변함없는 제도를 간직하고 있는 학교 생활인데 우린 그 속에서 참으로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것이다.  콧물 줄줄 흘리던(요즘은 아가들이 너무 깔끔하다시피 해서 그럴 일이 없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콧물 닦는 손수건 한 장씩 가슴에 매달고 다녔더랬다,) 초딩 시절은 논외이고, 약간은 유치하다고 여겨지던 중학생(중딩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다)을 제친 고등학교 시절. 이제 사회로 가기 위한 막바지 관문이라서인지 어른이 된 몸 속에 아이도 어른도 아닌 존재를 품고 있던 시절. 그렇기에 혼란도 배가 되고, 스릴도 배가 되었던 것일 게다. 10대 부터 60대(?)까지, 학생을 비롯한 교사들까지 다양한 성향과 연령이 가득한 곳. 그래서 그곳에서는 어이없는 일도 신기한 일도 많았다. 어느 조직을 보더라도 학교라는 조직처럼 역동적인 조직이 있을까 싶다. 입시라는 엄청난 제도에 억눌려 있음에도 십대들의 통통 튀는 매력과 역동적인 모습은 감출 수가 없는 곳. 그렇기에 그렇게 엄청난 숙제와 시험에 시달렸음에도 우린 모의고사 성적을 기억하기보다 그곳에 담긴 추억을 기억한다. 가끔 동창을 만나 그곳 이야기를 되씹다 보면 웃음부터 나오는 이유도 추억 때문이다. 사회라는 조직에서는 맛볼 수 없는 웃음이 있는 곳, 그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너 다시 고교 시절로 가라면 갈래?"라고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렸기에 그곳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듯도 싶고, 돌아가기 싫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도 말했다시피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배경이긴 하지만 저런 곳이 학교의 진정한 모습이라 말해버리고 싶은 곳, 바로 네버랜드에 등장하는 남학생 기숙사 '쇼라이칸'이다. 그곳에서 네 명의 친구들이 방학을 보내게 된다.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늘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미쓰히로, 가장 평범하게 묘사된 이 이야기의 서술자 요시쿠니', 천역덕스러우면서도 분위기 메이커인 '간지', 엉뚱한 천재소년 '오사무'. 이들 네 명이 적당한 균형을 이루면서 기숙사 생활을 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헤집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가 목적을 가지고 상대를 괴롭히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라 드러난 생채기는 어느 새 아물어간다. 아마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상처를 헤집어 주지 않았다면 그 상처는 곪아 터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상처 헤집기는 일종의 신성한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통과의례라고나 할까? 

늘 그렇듯이 각자의 비밀을 간직한 채, 자신들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가다 어떤 계기를 통해 스스로의 짐을 나눠 담는 그들. 사랑은 둘이 속삭일 수 있어도 우정을 나누기에는 둘보다 셋이, 셋보다 넷이 좋은 모양이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능란한 인물이 없는 한 셋의 우정이 유지되기란 좀처럼 힘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 속의 '넷'이란 숫자는 등장 인물들 사이에 묘한 균형을 이뤄주고 있다. 마치 '흑과 다의 환상'에 등장한 '리에코, 마키오, 아키히코, 세쓰코'처럼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각자가 진 짐의 무게가 엄청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내하고 묵묵히 짊어지고 나간다. 도피하거나 벗어내려는 듯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면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철이 안 든 나의 입장에서는 그런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늘 나이에 맞게 행동하리라 다짐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행동하라고 말하면서도 진정 그들의 입장이 되어본 적은 없었던 나에게 반성을 하게 한 책이다. 작품속에서 서술자인 요시쿠니가 말한다.

"불공평하다. 간지가 화내는 건 그 점인 것이다. 그들은 일견 어른의 논리로 간지를 대등하게 대하는 척하면서, 실은 부모의 논리를 간지의 목에 들이대고 그에게 자식으로서의 논리로 어른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간지는 처음부터 심한 열세에 놓여 있다. 그는 그 점을 화내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를 판단할 때 그랬던 것 같다. 일견 '너의 의견을 인정하마.' 말하면서도 '너는 어리니까, 너는 속물이니까' 라는 생각을 하며 내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상대방에겐 그들 나름의 절박한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다. 누군가 말했다. 꾀병도 병이라고. 이제부터라도 누군가 나에게 꾀병으로 다가온다면 나 역시 따뜻한 손을 내밀어줘야겠다.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대등하게 상대를 대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이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강해져야겠지.

'온다 리쿠'는 어쩜 이리도 섬세하게 인물들의 특징을 잡아내고 배려하고 있는 것인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왠지 '네버랜드'의 아이들이 성인이 된다면 '흑과 다의 환상'의 주인공들처럼 될 것만 같다. 늘 이 작가에게선 많은것을 배우고 있는 나는 또 다른 책으로 시선을 돌리련다. 나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 작품 속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리뷰를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참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환타지 소설이나 무협지, 또는 추리 소설을 본다고 치면 '오타쿠'나 보는 듯한 시선을 보냅니다. 게다가 이렇게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책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신선놀음이나 하는 듯이 지켜보기도 합니다. 자기들이 주식투자 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경우는 괜찮고 제가 책을 읽으면 '몹시 한가하시군요' 내지 '여유로우시네요.' 등등의 말을 합니다. 꼭 혼자서 놀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 기분 참 거시기합니다. 거기다가 소설을 읽으면 거시기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경제학' 서적이라도 손에 들고 있을라치면 '관심 분야가 참 넓으시네요.' 이런단 말입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소설이, 도대체 추리 소설이 어디가 부족하단 말씀입니다. 물론 당장의 이익이 남는 눈에 보이는 장사가 아닐지 몰라도 소설책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굳건히 책을 들고 가렵니다.

그 중 제가 요즘 빠져 있는 '온다 리쿠'의 소설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전 이 작가의 작품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란 작품 속에 잠깐 언급된 적이 있고, '흑과 다의 환상'이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인 '유리'가 연기한 연극 속의 소재가 심층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어찌 이 작가는 이리도 교묘하게 사건과 사건을 책과 책을 연결시키면서도 뻔한 느낌이 들지 않게 글을 써 나가는 것인지 참 감탄, 또 감탄입니다.

이번에는 3월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는 늘 3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3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더군요. ) 이 학교는 넓은 습원 속에 위치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3월에 학기가 시작됩니다.  학교가 위치한 습원이란 환경도 너무나 광대하고 무엇인가를 품고 있을 듯한 근사한 배경입니다. 그런데 새학기를 하루 앞둔 2월에 입학한 아이가 등장합니다. 그녀가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이 학교에는 2월에 들어온 아이가 학교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이 이 아이를 주시하기 시작하게 되죠. 이 아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과 현실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와 시설들, 학교 내부 사정들이 이야기의 실마리로 풀려나오게 됩니다. 더 깊이 들어가다가는 '스포일러'가 되고 말 것 같아 관둡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밖에 모르던 제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붉은 여왕과 손잡고 뛰는 앨리스의 속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애드가 앨런 포우의 엄청난 두께의 소설집 속에서 '온다 리쿠'가 말한 작품들을 간혹 연관시켜 읽기도 해 봅니다. ('도둑맞은 편지'와 같은 작품들)두꺼운 애드가 앨런 포의 단편집 속에서 그녀가 말한 작품들을 골라 읽는 재미는 배스킨 라빈스의 선택의 즐거움 몇 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권합니다. 아직 온다 리쿠의 작품 전부를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처음 읽으시는 분이라면 온다리쿠의 소설을 저와 같은 순서로 읽어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우선 '삼월은 붉은 구렁을', 그리고 '흑과 다의 환상'을 그리고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를.... 다른 작품을 읽고 나서는 새로운 순서를 정하게 될른지도 모르긴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순서에 상관없이 읽어도 아무 무리가 없는 작품이긴 합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에 드는 대로 보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네요.

그럼 '온다 리쿠'의 세계에 여러분들도 푹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이건 책과 관련없는 내용인데요. 앞에서 말한 작품 외에 다른 작품의 책 디자인이 바뀌어 조금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 출판사에서 왜 '하드커버'를 원하는지 의문입니다. 이전의 작품들은 디자인이 꽤 끌렸는데 이제 읽을 '빛의 제국'이라던지 '네버랜드' 등은 출판사가 바뀌면서 책 디자인이랑 표지가 아예 바뀌었더라구요. 그래서 개인적인 섭섭함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 경제학
유병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등학교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해진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망설이며 살아야 하는 지금으로서는 해야 할 일을 딱 정해주던 그때가 그립기까지 합니다. 숙제만 하면 되고, 대학만 가면되는 분명한 목표말입니다. 얼마나 간단명료합니까? 물론 자유가 없었을지 모르는 때이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돈 내고 다니던 학교랑 돈 받고 다니는 직장이랑은 천양지판이니 말입니다. 돈 벌고 살아가면서도 늘 손에 남는 것은 없고 세상은 단순명료하기보다 복잡다단하기만 해서 이 미로를 헤쳐보고자 저도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나도 무엇인가를 해야겠구나 싶어서요. 증권사에 가서 펀드에 대해 질문도 해 보고, 정기적금도 알아보았지만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 경제에 관심을 가져 보고자 선택한 책입니다.

책이 참 쉽게 쓰여져 있더군요. 경제에 문외한인 독자를 고려한 흔적이 가득합디다. 그 중에서 가슴에 와 닿았던 구절 중 하나가 바로 여자를 오리에 빗대어 분류한 부분입니다. 전문직으로 의사 변호사와 같이 혼자 벌어 충분히 살 수 있는 황금오리, 공무원으로 노후 대비가 마련되는 청둥오리, 재태크에 눈이 밝은 유황오리, 그런대로 맞벌이를 하는 집오리, 전업주보이면서 경제에 밝은 것도 아닌 탐관오리(ㅜㅜ),  무남독녀에 재산 많고 명줄도 ?아싸 가오리. 남자의 여자 선택기준이란 우스개 소리입니다. 기억의 개찬이 있었을 것이기에 정확한 내용에서 조금 벗어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해해 주시길... 하여튼 이 구절을 읽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난 무슨 오리에 속하는 것일까?

이미 결정난 사항으로 황금오리에는 절대 속할 수 없으니 무엇인가 노력하고 싶은데 도통 책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더 열심히 공부해서 황금오리에 속하지 못한 것이 원통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때늦은 후회인 걸요. 후회의 눈물을 삼키며 제가 한 일이란 것은 책장을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책의 3분의 2까지 읽을 동안 저자는 계속 말합니다. "여자들 이래서는 안 됩니다. 해외 여행 때만 환율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화장품값에만 관심을 가져선 안 됩니다.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물론 옳은 말입니다. 그래서 계속 관심을 가져보려고 책을 읽어봤는데 허걱. "공부엔 왕도가 없다"이런 선문답 뿐인 것입니다. 그의 결론은 경제엔 왕도가 없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고 관심을 가지랍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방향은 알려주셔야 하지 않겠습니다. "학교 수업 잘 듣고 열심히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했더니 서울대 갔습니다."라는 인터뷰와는 그래도 조금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쪼곰 실망입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단서라도 주고 책을 끝맺으시지 이건 입문서라고 하기에도 민망합니다.  저는 계속 책에다 대고 "그래서?"라고 외치는데 책은 "어쨌든"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동무서답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증권사에 갔더니 얼마 되지도 않는 돈 투자하면서 말귀도 못 알아 듣느냐는 듯한 눈치를 주지 않겠습니다. 상담원이 웃으며 한숨까지 쉬시더이다. 그래서 펀드란 말 듣고 장기로 하나 가입하고 나서, 부랴부랴  집에 왔더니 펀드가 아니라 보험이더라구요. 이러다가는 저도 탐관오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얼마 되지 않는 이자라도 바라보면서, 손해보는 적금이나 들면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다른 책 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소심한 성격이라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엄두도 안 나거든요.

저도 이전에 리뷰 쓰신 분 생각에 동의합니다. 경제에 관심조차 없으셨던 분은 이 책을 읽으시는 게 도움이 될 듯 하나, 관심을 가지려고 조금 발버둥치려는 분들께는 별 소득이 없을 듯 합니다. 그래서 별 표 몇 개 뺍니다. 그런데 참 쉽게 글을 쓰시는 능력으로 보아 좀더 심도 있는 글도 가능할 듯 합니다. 이 분이 여자 경제학 말고 구체적인 경제학을 써 주신다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흑과 다의 환상 - 상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전에 본 책에서 어느 필자가 말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고 평생 동안 자연만 마주하고 살아간다고. 그들에게는 퍼덕거리며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기지 않는다고. 책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 여지가 없기에 그들에게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과 같은 게 있을 리도 없다고. 책을 읽지 않는 그들은 자연과 자신의 일치 속에서 살아가므로 원초적으로 행복하다고. 그리고 그들은 지구에게도 행복을 준다고. 나무를 잘라 종이를 만들어 책을 만들어 읽는 것은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는 일이므로 자연과, 책을 읽지 않는 그들이야 말로 완벽한 순환의 톱니바퀴를 이룬다고 말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고 한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단다. 그럴 듯 하다. 아니 이 구절을 읽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데 그의 논리를 듣고서 나는 크게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무위자연'이라 외친 노자의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자연을 거스르고 인위적인 학문을 수양하여 그의 경지에 다다라야 하는 것처럼, 그의 그런 논리조차 그의 책을 읽는 이만이 수긍도 부정도 할 수 있겠지만 그의 말은 아주 그럴 듯 하다. 물론 논리적으로 그의 주장을 파고들 수도 있을 것이다. 논리적 비약이라든지, 성급한 일반화라든지, 잘못된 명제의 사용이라든지의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하지만 난 굳이 그의 주장에 반기를 들고 싶지가 않다. 왜냐 하면 내가 병이 든 것을 인정하고서라도 많은 책을 접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온다 리쿠'의 작품을 접하면서는 내가 병이 든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질문을 너무 에둘러 왔나 보다. 하여튼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어딘가에 몰입하기 위해서이다.  현실을 잊고 어딘가에 잘 짜여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면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사람들은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영화 같다'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현실은 영화보다 더 냉혹하고 더 참혹하며, 더 리얼하다.(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어느 부분에서 내가 원한다고 해피엔딩이란 결말을 정할 수도 없을 뿐더러 독자의 반응에 따라 줄거리가 바뀔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참혹한 현실을 잊고자 난 이야기에 빠져든다. 간혹 어설픈 이야기를 읽고 허탈해 하기도 하고, 이야기의 선택에서 실패하기도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그 나름의 즐거움과 가르침과 허무함을 나에게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짜여진 이야기 속에서 나는 더이상 가슴을 졸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온다 리쿠'의 이야기 속에서 난 나도 모르게 마음을 졸이고 있다. 그를 처음 접한 것은 '밤의 피크닉'이라는 소설이었다. 비밀이 담긴 두 고등학생들의 이야기.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가 학교에서 행해지는 보행제라는 행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잔잔하면서도 치밀한 이야기라는 느낌. 그를 처음 만난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뿐 그의 다른 작품에 관심이 가진 않았다. 보통 같은 작가의 이야기엔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가 녹아 있기에 그의 또 다른 작품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그런데. 늘 사건은 그런데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그런데 어느날 나타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란 매혹적인 앞표지를 가진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보다 더 나를 끌어당긴 앞표지였다. 뭉크의 '절규'처럼 어두컴컴한 듯 하면서도 독자를 유혹하는 듯한 앞표지.  말 없는 수다가 가득할 것만 같았다. 그 책을 집어드는 순간 나는 정말 그 책 속으로 화악 빨려드는 느낌이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결국 이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겠군.'이라고 생각했다. 그 책은 그야말로 네버엔딩 스토리.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보다 더한 천 두번째 이야기 쯤 될 것 같다. 그 책을 읽고 매력을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 책을 읽자마자 그의 다른 번역 작품을 기다리던 나에게 어느 순간 그의 책이 쏟아져 들어왔으니까. 그 두 번째 책이 바로 내가 리뷰를 쓰고 있는 '흑과 다의 환상'이다. 네 명의 동창생들이 저마다의 과거를 가지고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떠나는 여행. 현실에서는 좀처럼 꾸리기 힘든 여행 동반자들이긴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고 너무나 흥미진진해 보였다. 그들이 풀어놓을 듯 말 듯한 이야기를 들으며 꼭 그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인 양 난 들떠 있었다. 그들의 꿈 얘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그들의 꿈을 꾸었고, 그들의 과거 때문에 나 역시 한 동안 어수선했다.

 '흑과 다의 환상'은 정말 실수로 펼쳐놓다가 완성된 그림이 아닌 완벽하게 짜여진 한 편의 명작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사람을 더 가슴 졸이게 만드는 것일 게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가 글을 완벽하게 짜 맞추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의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능력이다. 뻔한 거짓말 같지 않아 보이는 그의 글솜씨는 과히 천의무봉이라 할 만하다.

 두 권으로 된 '흑과 다의 환상'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 역시 무엇인가 이야기를 간직한 숲 속을 여행한 기분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설렘이 있었다면 여행을 끝난 후는 아련함과 애틋함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설렘과 긴장만이 가득하다면 좋겠지만 언젠가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은 그리 기쁜 일만은 아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다. 아마 그의 마지막 번역작품을 읽기 전까지는 이러한 설렘을 계속 간직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덕분에 나도 나의 과거를 미스테리인 양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조각난 퍼즐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꼭 권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