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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 서정윤의 홀로서기 그 이후
서정윤 엮음, 신철균 사진 / 이가서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사랑합니다 고객님'라는 마케팅 인사말을 듣고서 '서정윤' 시인은 다시는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시인의 저런 푸념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딱히 너도나도 써서 싫다기보다는 너무 흔하다 보니 가볍고 하찮게 취급되지 않는가 하는 우려에서 나온 생각일 터이다. 그렇기에 나역시 '사랑'이 아닌 다른 단어로 대체하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는 단어 '사.랑'
예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임병수(?)라는 염소와 유사한 소리(메헤헤헤~)로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가 얼핏 생각이 난다.
"사랑이란 말은 너무 너무 흔해, 너에게만은 쓰고 싶지 않지만은 달리 말을 찾으려 해도 마땅한 말이 없어 쓰고 싶지 않지만은 어쩔 수가 없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를 사랑해~~"
노래는 위의 가사처럼 되어 있는데 저 가사 뒤에도 무수히 많은 '사랑해'라는 가사가 연발되고 있다. 이미 '사랑'이란 단어 속에 의미가 명명된 이후부터 아무도 그것을 거스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중독성이 강한 그런 사랑을 두고 왜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라고 한 것인지... 견딜 수 있는 사랑과 견딜 수 없는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나누는 것인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래서 시는 어렵다니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함축이 많은 시어에 담긴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내는 작가 덕분에 사랑은 기다림이라는 것을, 사랑이 까치 소리를 더욱 크게 듣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말은 할 수 있지만 저렇게 표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읽는 내내 무릎을 칠 엄두도 못내고 가슴 절절히 시를 읽어 나갔다. 소설에 비한다면 분량이 턱없이 얇은데도 읽는 시간은 소설의 몇 배가 걸리는 것은 그러한 간결한 단어를 되새기고 씹고 넘겼다가 다시 되새겨야 했기 때문일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감상은 나에게 시를 읽을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이 많이 나오는데 '곽재구'씨가 엮은 '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라는 책도 무지 좋다는 걸 참고삼아 말씀드린다. ^^)
세상에 어려운 것이 어디 한 두 가지겠느냐만은 '사랑'만큼 어려운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란 시인의 말에 공감이 간다. 내가 하는 사랑은 내 마음이라지만 나를 사랑해 주었으면 하는 대상의 마음은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라던가? 그러나 사랑은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랑은 나 자신의 마음조차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견딜 수 없다고 울부짖으면서도 견디어 나가는 것일 테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은 없는 셈이던가? 아마 견디고 견디다 무뎌지고 잊혀지긴 할 테지만 절대 사라지진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 넘쳐나는 듯 보이지만 사랑이 메말라가고 있는 지금 여인네들이 신데렐라 이야기로 가득한 티비에 빠져드는 이유는 통속적인 그 사랑이 그립기 때문일 터이다. 누구에겐 닭살이 돋아 보이고 뻔한 결말 같아 보일지라도 우린 모두 통속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이 아닐까? 나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타산적인 사고가 오가는 사회 속에서도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현대인들. 그러나 메말라가고 있는 이 사회는 문학의 책임이라고 작가도 말하지 않는가! 내가 통속적인 사랑을 꿈꾸게 만든 것도 결국 문학의 책임일 지 모른다. 통속적인 사랑이든 심오한 사랑이든 시 한 편 속에 녹아 있는 생각의 단상들을 우리 모두 나누어 봤으면 좋겠다.